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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화 (1/1,004)

1화 출세하니 부인을 버리는구나

우당탕…….

사정없이 문밖으로 내팽개쳐진 월령안(月寧安)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며 욱, 하고 피를 쏟았다.

“너, 너희는……!”

아무리 그의 명이라지만 육씨 가문에서 자신을 쫓아내다니. 그녀는 눈앞의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육씨 가문에서 정식 절차를 밟아 맞아들인 정실이자, 전신(戰神) 육장봉(陸藏鋒)의 아내였다.

‘육장봉이 나를 어쩜 이렇게 대할 수가 있어?’

“월령안 맞지? 삼 년 내내 장군 부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면 분수를 알아야지. 우리 형님이 돌아왔으니 네 호강도 이젠 끝났어. 얼른 꺼져!”

월령안을 육씨 저택에서 내친 사람은 육장봉의 사촌 동생이자 수족인 육비우(陸飛羽)였다.

물론 월령안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잘 아는 사람이기에 더욱 놀랍고 믿을 수 없었다.

“난 육씨 가문에서 정식으로 맞아들인 정실이다. 네가 쫓아내고 싶다고 쫓아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육장봉에게 직접 와서 얘기하라고 해.”

월령안은 가까스로 일어서며 얼굴에 묻은 피를 손으로 닦아냈다.

버림을 받아도, 육씨 가문을 떠나게 되어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 이유도 없이 육씨 가문에서 내쫓길 수는 없었다.

육씨 가문도, 육장봉이란 이름의 남편도 그녀에게는 너무나 중요했다. 육씨 가문과 수많은 공을 세운 남편이라는 보호막이 없다면, 피비린내 나는 운명이 그녀를 기다릴 것이다.

하물며 육씨 가문에 시집온 삼 년간, 집안사람 모두에게, 특히 육장봉에게는 할 만큼 했기에 그녀는 떳떳했다.

“당신이 뭔데? 무슨 자격으로 우리 형님을 만나? 이건 형님이 보낸 거야. 눈치가 있으면 이혼장을 가지고 어서 꺼져. 우리 집안사람들 눈에 거슬리지 말고.”

육비우는 품속에서 편지를 꺼내 월령안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피했지만, 봉투에 얼굴을 긁히고 말았다.

편지가 툭, 하고 땅에 떨어지는 순간, ‘이혼장’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날 버린다고?”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차올랐다.

육비우가 사람을 끌고 와서 저택 밖으로 내동댕이칠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러나 이혼장을 보는 순간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흘러내렸다.

아프지 않을 줄 알았다. 육장봉에게 시집온 건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혼장을 본 순간,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고 억울함도 깊어졌다.

시집와서 삼 년간 매달 육장봉에게 편지를 보냈다. 삼 년을 내리 보냈지만, 답신은 한 통도 없었다. 그러다가 받은 첫 답신이 이혼장일 줄이야.

이혼장!

혼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사내였다. 삼 년간 전장을 누비다 승리하고 돌아와 첫 번째로 한 일이 조강지처를 버리는 것이라니!

‘사내들이 바라는 세 가지가 벼슬, 재물, 그리고 마누라가 죽는 것이라더니. 내가 안 죽고 있으니까 내쳐서 다른 여인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려는 건가?’

“당신은 의붓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언니 자리를 꿰차고 시집왔지. 그런 여인네를 버리지 말고 같이 살라고?”

육비우는 경멸조로 말하며 파리 쫓듯 휘휘 손을 내저었다.

“월령안, 얼른 꺼져. 형님이 당장 돌아올 테니까. 당신이 아직 남아 있는 걸 보면 역겨워서 집에 발도 들여놓지 않으려 할 걸.”

황제가 그에게 밀지를 보냈다. 형님이 입성하기 전에 여인을 내쫓으라고 했다.

그런데 어제 돌아와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보니 일을 그르치게 되었다. 따져 보니 형님은 이미 성에 들어왔을 시간이었다. 형님이 집에 오기 전에 반드시 쫓아내지 않으면 황제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난 그런 적 없어!”

월령안은 고개를 숙여 이혼장을 주워들고 사나운 눈길로 육비우를 쏘아보았다.

“난 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적도 없고, 언니를 대신해서 시집온 것도 아니야! 언니는 결혼을 피해 제 발로 도망친 거였어! 그리고 노부인께서 직접 오셔서 육 장군 대신 나한테 청혼을 하셨어! 난 육씨 가문에서 정식으로 맞이한 정실이야!”

승리하고 돌아오는 바깥주인을 맞이하려고, 어제만 해도 기쁨에 들떠 하인들에게 명령해 저택을 이리저리 손보았다. 그런데 오늘, 남편에게 뒤통수를 크게 맞을 줄이야…….

그는 아직 아내를 만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남편 마음속에서 그녀는 의붓언니를 죽게 했을 뿐만 아니라 출세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독한 여인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육비우가 콧방귀를 뀌었다.

“형님은 당신을 인정하지 않아. 형님이 인정하는 아내는 승상 댁의 소(蘇) 소저뿐이야. 월령안, 네 어미와 함께 승상 댁에 들어가 소 소저를 쫓아내면, 네가 승상 댁 아가씨가 되어서, 소 소저 대신에 장군 부인이 될 줄 알았지? 너무 순진했네. 온몸에 돈 냄새나 진동하는 당신이 형님의 배필로 가당키나 해? 다시 한번 말하는데…… 험한 꼴 당하기 전에 빨리 꺼져. 난 여인네라고 봐주지 않거든.”

철썩!

이때 병사 하나가 냉수 한 대야를 끼얹고는 우쭐거리며 아첨했다.

“나리, 보십시오. 제 방법이 어떻습니까!”

“앗……!”

월령안은 무방비 상태에서 냉수를 그대로 뒤집어썼다. 신경 써서 차려입은 옷은 물에 흠뻑 젖었고, 손에 든 이혼장도 날아갔다.

“편지…….”

정신을 차린 월령안은 본인 걱정은 뒤로 하고 땅에 떨어진 편지부터 주웠다. 이는 육장봉이 자신에게 보낸 이혼장이자 유일한 답장이었다. 이 편지를 들고 가서 육장봉에게 따질 생각이었다.

‘도대체 왜? 무슨 구실로 나를 내쫓겠다는 거지?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정신 나갔어? 이혼장이 젖으면 장군께 다시 쓰라고 할 테냐?”

육비우도 깜짝 놀라 병사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월령안을 난처하게 만들어 육씨 가문에서 내쫓겠다고 소함연(蘇含烟)과 암암리에 약속하기는 했다. 하지만 기껏해야 문밖에 내동댕이치는 정도였지 이렇게까지 망신을 주려던 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여인을 괴롭히는 건 내 평판에 흠이 날 짓이지.’

“나리, 저야 저 여인이 가지 않으려고 해서 그랬지요. 장군께서 당장 입성하십니다. 우리가 아직도 처리를 못 한 걸 보시면, 나리를 한바탕 혼내실 것 아닙니까.”

병사가 억울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흠뻑 젖고서도 움직일 기미가 없는 월령안을 보고는 한층 더 기분이 언짢아 뇌까렸다.

“여인네가 얼굴도 참 두껍네. 장군께서 이혼장을 보내셨는데도 여기 계속 버티고 있어 뭐 하게? 잘 들어. 소 소저는 천운이 따라서 죽지 않고 장군께 구조됐어. 그리고 변방에서 장군께 큰 도움을 주었지. 시간이 지나 이제 두 분은 서로 사랑하고 있어. 장군께서는 당신같이 악독한 여자가 아닌, 진짜 승상 댁 아가씨를 아내로 맞아들이실 거야. 그러니 눈치가 있으면 어서 꺼지라고. 장군께서 오시면 좋은 꼴 못 볼걸.”

“소함연과 정분이 났다고? 소함연처럼 가식적인 여자를 좋아하다니 너희 장군 안목이 대단하시구나! 그런 사람한테 시집온 내가 눈이 멀었지!”

월령안은 이혼장을 꽉 움켜쥐었다. 봉투에 물이 흥건히 배어들었다.

“육장봉은 어디 있느냐? 꼭 만나야겠다!”

확실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남에게 무릎을 꿇어가며 후방을 안정시킬 때, 온갖 모욕을 당하며 경성 관리들을 상대할 때, 지쳐서 피까지 토해 가며 군량을 마련할 때, 육장봉 당신은 무슨 낯짝으로 소함연과 변방에서 사랑 놀음을 했어?

그리고 소함연!

애초에 소함연 본인이 혼약을 무시하고 달아나, 내 어머니를 죽음에 몰아넣고 나까지도 궁지에 빠뜨렸잖아. 그런데 무슨 염치로 내 자리를 꿰차고 육장봉의 아내가 되겠다는 거지?

육 부인이라는 자리는 딴 사람은 몰라도 단 한 사람, 소함연에게만큼은 절대 양보 못 해!

육장봉이 입성했다고?

좋아! 성안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물어봐야겠어. 육장봉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를 버리는지!’

그때 그 머나먼 곳에서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시신을 모셔왔던 꼬마 장군이 자신을 이렇게 대하다니.

자신이 절망에 빠졌을 때 울지 말라고, 울면 나쁜 놈들이 비웃을 거라며 위로해 주던 꼬마 장군이 자신을 이렇게 대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들어 육씨 저택의 현판을 한 번 보았다. 다시 눈길을 돌려 기세등등하게 계단에 서 있는 육비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얼굴을 힘껏 훔치고 이혼장을 든 채 몸을 돌렸다.

흠뻑 젖은 기다란 머리카락이 등에 착 달라붙어 그 모습이 더욱 초라해 보였다. 비틀거리는 발걸음, 왜소한 뒷모습에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이 배어 있었다.

“나리, 우리가 너무한 게 아닐까요? 사내들이 여인 하나를 괴롭힌 꼴이잖아요.”

대야를 들고 있던 병사가 괜히 속이 켕겨 말했다.

장군은 분명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확실하게 얘기한 뒤, 정중하게 내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런 설명 없이, 강도처럼 사람을 끌어냈다. 육비우는 한술 더 떠 사람을 내동댕이쳤다.

‘장군이 알면 군법으로 다스리지 않을까?’

육비우도 찜찜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황제의 밀지를 떠올리고는 금세 가슴을 쭉 펴고 힘차게 대답했다.

“너무하긴. 변방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함연 소저가 어떤 고생을 했는지 다 잊었단 말이냐? 저 여자만 아니었으면 함연 소저가 북요 사람들에게 사로잡혀 노예가 되는 일은 없었어.”

육비우는 말할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바로 이때, 저택에서 어린 하녀 하나가 커다란 봇짐을 안고 뛰쳐나왔다.

“아가씨, 아가씨!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하녀가 어찌나 급하게 뛰었는지 계단에 서 있던 육비우와 병사를 치고 지나갔다. 그들은 그대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악! 아이구, 아이구…….”

어찌 된 영문인지 육비우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눈과 코가 퉁퉁 부었다. 대야를 들고 있던 병사는 더욱 가관이었다. 이가 두 대나 빠지고 온 얼굴이 피범벅이 되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하녀는 매섭게 뒤를 돌아보았다.

‘흥, 네깟 놈들이 감히 우리 아가씨를 괴롭혀!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아가씨, 아가씨……!”

하녀는 발이 아주 빨랐다. 몇 걸음 만에 월령안을 따라잡았다.

“물건은 모두 가져왔고요. 옷도 챙겨왔어요. 아가씨, 어서 갈아입으세요.”

“괜찮다! 세상 사람들은 항상 약자 앞에서 우월감을 보이려 하잖니. 딱해 보일수록 동정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녀의 얼굴에서 이제 더는 슬픔과 분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냉정함과 결단력뿐이었다.

월령안이 걸음을 잠깐 멈추고 뒤따르는 하녀에게 분부했다.

“추수(秋水)야, 돌아가자마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정리 하거라. 연지 가게, 물분 가게만 빼고 날이 저물기 전에 모조리 처리하도록 해라. 가격은 상관하지 마. 겉으로는 파는 것처럼 해도 선물하는 것처럼, 소씨, 육씨 가문과는 연관이 없는 분들께 팔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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