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으허억!”
영의정이 계속 몸부림치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을 때, 단상 위로 휼과 이경이 다가왔다.
아수라장이었던 연회장은 수월하게 진압됐다. 휼의 군대가 수적으로 우세했고, 실력 또한 뛰어났다. 뒤꽁무니 빼기 바빴던 붉은 옷의 병사들은 적수가 되지 않았다.
“…….”
“…….”
언과 휼의 시선이 오래도록 맞닿았다. 누구 하나 쉽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우선 영의정부터 포박해라. 대신들은 모두 생포해야 하니.”
“예, 대감.”
휼은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영의정부터 치워 내라 명했다.
“놓아라! 놓아라, 이놈들! 감히 나를! 이 몸을!”
팔은 하나 잘려 버렸고 이제 곧 죗값을 치를 터인데, 마지막이 다가왔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발악하는 모양새가 한없이 추했다.
영의정이 끌려가는 동안, 언과 휼의 시선이 다시 맞닿았다.
휼은 눈앞에 있는 형이 한없이 야속했다. 폭군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휼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양귀비에 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또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었는지. 잃어버린 형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말하기가 입 아팠다.
그렇게나 외면해 놓고, 기어코 이렇게 검을 쥔 채로 마주하게 해 놓고, 일언반구 말도 없이 휼의 검에 베여 사라지려 했던 것도 야속했다.
설령 언이 한없는 폭군이라 해도, 휼이 언에게서 아무런 희망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언을 베는 것 자체가 휼에게는 고통이었다.
그런데 죄책감을 덜어 주겠다며 홀로 악인이 되려 했다는 점이 휼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어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신단 말입니까. 어찌해서요. 형님의 존재가 제게 부담이 된다 해도, 그냥 그렇게 두라고 말씀하시면 어디 덧난답니까. 내가 이만큼 고통을 견디며 일구어 놨으니, 그 값은 받아야겠다고. 나를 죽이지는 말라고. 그냥 그렇게 말씀하셔도 시원치 않을 판에, 어찌 이리 미련하게 구십니까.’
차마 전할 수 없는 말이 혀끝에 맴돌았다.
“베거라.”
휼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언을 바라보고만 있자 결국 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베는 게 네게는 낫다.”
깔끔하게 해치우는 편이 휼에게 나았다.
“그리고 나에게도 낫겠지. 네 형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푼다고 생각하고 베거라. 양귀비에 취해 헤롱거리는 못난 형이어도 형은 형이지 않더냐.”
언은 휼이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휼이 여전히 그를 미워하고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양귀비를 이야기하며 제 어둠을 뒤집어쓰려 했다.
그래야 휼이 언을 베어 내기 쉬울 터이니.
“대체 왜…….”
끝의 끝까지 없는 죄까지 끌어안으며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초연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언의 모습을 보니 검을 쥔 휼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이경은 그런 휼과 언을 불안하게 바라봤다.
‘마마께서도 뜻을 꺾지 못하셨다는 것인가.’
언의 죽음은 예견된 상황이었다. 언은 숱하게 그의 마지막에 대해 이야기해 왔고, 이경 역시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해 왔다.
그러나 규연이 언을 만났음을 알기에, 둘이 함께 시간을 보냈음을 알기에, 이경은 언의 뜻이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눈앞의 언은 그저 죽음을 기다리고만 있었다.
“죄인을 추포하거라. 의금부의 옥에 가둘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는 언이 답답해하고 있을 때, 휼이 검을 검집 안에 넣으며 명령했다.
예상 못 한 일에 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휼아.”
“무엇 하느냐! 추포해 가두라 명하지 않았느냐!”
언이 휼을 불러 보았지만, 휼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언을 가두라는 말만 남겨 두고 등을 돌렸다.
* * *
“카악, 퉤!”
“뒈져라, 이놈! 뒈져라!”
휼은 언을 바로 베는 대신, 유배형에 처했다. 정확히는, 유배지에서 사약을 마시라는 게 언에게 주어진 형벌이었다.
한낮에 강화도로 압송된다는 소식이 들리자 폭정에 분노하던 백성들이 너도나도 뛰어나와 언에게 욕을 하고 오물을 던졌다.
아무런 죄도 없고, 오히려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게 언이었지만, 자리에 모인 이들 중 누구도 이 사실을 아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언은 정말 죄를 지은 것처럼, 그저 가만히 그들의 욕을 받아들였다. 소복 위에 온갖 얼룩이 생기고, 사방에서 악취가 풍겨도 언은 아무런 저항 없이 그저 앉아만 있었다.
여름 해가 뜨겁게 내리쬐어 온몸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은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지독한 갈증이 이는데, 이상하게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강화도가 가까워질수록 규연의 얼굴이 또렷해졌다.
처음 만났을 때 손에 쥐여 줬던 앵두를 보고 수줍게 웃던 모습도, 처음 손이 닿았을 때 얼굴을 붉히던 모습도, 언의 품에 기대 쫑알거리던 모습도, 품에 안겨 눈을 맞춰 오던 모습도, 지독히 생생하게 살아났다.
언이 모질게 밀어낼 때마다 울던 모습도, 그럼에도 기대를 버리지 않아 언을 아프게 했던 모습도, 가지 말라며 언을 붙잡던 모습도, 또한 선연했다.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지독하게 아플 것임을 알기에 마음이 쓰였다. 조금이라도 덜 아팠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다는 것을 아니 바라면서도 죄스러웠다.
영의정을 능지처참하고 부관참시하리라는 휼의 심판이라도 조금 위로가 될까 했지만, 규연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언이 간절할 터이니 이 또한 그리 마음을 가볍게 해 줄 리 없었다.
휼은 언이 남겨 둔 모든 증거를 다 활용했다. 누구도 빼놓지 않고 전부 잡아들였고, 폐단의 중심이었던 자들에게는 한 명도 빠짐없이 참형을 내렸다.
‘분명 잘 해낼 테지. 휼은.’
선한 자였다. 측은지심이 뭔지 알고 총명한 동생이니, 앞으로의 일을 잘 헤쳐 나가리라 믿었다. 언이 심어 둔 수많은 나무의 열매를 잘 수확해 내리라 확신했다.
“내리시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움직이고 나니 어느덧 한나절이 흘렀고, 언은 강화도의 끝에 도착했다.
움직이는 옥에서 내리니 초가 앞에 깔린 자리 위로 사약이 놓인 소반이 놓여 있었다.
“죄인 이언은 왕의 교지를 받으라!”
언은 소반 앞에 차분히 앉았다.
몸이 낫기 위해 마셨던 여러 탕약과 똑같아 보이는 사약이 시야에 들어찼다.
관원은 폭정을 일삼아 나라를 어지럽힌 죄를 묻는다며 휼이 내린 교지를 읽었다. 관원의 목소리가 멈추면, 언은 눈앞의 사약을 들이켜야 했다.
오래도록 그려왔던 장면이었다. 검이든, 사약이든, 언에게 찾아올 것이 분명한 마지막을 몇 번이고 그리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사약을 마주하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고작 이 탕약 하나에 목숨이 달아난다는 것이 허망하면서도, 그간 언이 버텨 왔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 기분이 묘했다.
두렵지는 않았다. 다만, 간절히 바라게 됐다.
‘부디 다음 생에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길. 지옥에서 몇 번이고 불타야 얻을 수 있다 하면 그리 타오를 테니까, 부디 한 번만 다시 규연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시길.’
이 생이 끝나고 다음 생에 닿으면, 그때 부디 한 번 더 규연을 만날 수 있길. 그래서 마음껏 사랑하며 언의 죗값을 치를 수 있길.
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다.
“죄인 이언은 사약을 받으라!”
교지를 다 읽은 관원이 우렁차게 외쳤다. 언은 감았던 눈을 뜨고, 차분하게 사약이 담긴 사발을 두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삼켰다.
“크헉!”
순식간이었다. 목구멍이 타오르는 듯한 감각이 퍼지다 피가 쏟아진 건.
몇 번이고 피를 토해 내던 언은, 그대로 자리 위에 쓰러졌다.
* * *
“으…….”
정신이 들자마자 엄청난 흉통이 언을 덮쳤다. 그는 옷자락을 쥐어뜯듯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
사약을 들이켰고, 피를 토했다. 그러니 언이 눈을 떠야 하는 곳은 이런 허름한 초가가 아니라 염라 앞이어야 했다.
그런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저승 같지 않았다. 몸에 닿아 오는 감각도, 속을 태우는 통증도, 지나치게 생생했다.
“상상한 것과 저승이 달라 놀라신 겁니까.”
“……휼아.”
언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휼이 언의 곁에 있었다.
“네가 왜……. 그보다 그러면 여기는…….”
“어디 마음대로 떠나가려 하십니까. 저는 형님을 죽인 죗값을 치를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지옥에 가시려거든 혼자 가십시오.”
언은 그제야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우쳤다. 이곳은 지옥이 아니었다. 그냥 어디인지 모르는 초가 안이었다.
“분명 사약이었다. 피를 토했고.”
“약을 바꿨습니다. 그렇게 피만 토해 내는 약으로요.”
휼의 말에 언이 놀라 입을 벌렸다.
“이경만 압니다. 전하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을요. 다른 이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앞으로도 모르게 할 테고요.”
“…….”
“그냥 살아가십시오. 누군가 전하께 찾아가 다시 왕이 되어달라 청하도록 만들지 않을 테니.”
“…….”
“애초에 찾아간다고 들어줄 장자도 못 되시면서 이리 전부 짊어지려 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우습습니다. 형님께서는 제게도 죄를 지으신 겁니다.”
휼은 언을 살렸다. 분명 큰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언을 끌어안았다.
“평생 형님을 찾지 않을 겁니다. 아마 제가 죽을 때까지 그리하겠지요.”
“…….”
“그러니 그저 조용히, 마마와 함께 조용히 살아가십시오. 운명이니 복수니 하는 것들은 전부 끝났으니.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세요.”
“…….”
“밖에서 이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경이 모실 겁니다. 마마께서 계신 곳으로요.”
말을 마친 휼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끝까지 언을 바라보지 않았다.
“휼아.”
“값이라고 치십시오.”
언이 다급하게 휼을 부르자 그가 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저를 위해 땅을 일구신 그 값을, 제가 쳐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휼은 미련 없이 방을 빠져나갔고, 겨우 몸을 일으킨 언이 문을 열고 나갔을 땐 이미 떠난 휼 대신 반가운 얼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야속하십니다. 참으로요.”
이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