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 *
“전하!”
규연의 애타는 목소리가 궐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녀의 간절한 청도 언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후원을 지나 대비가 머무는 통명전으로 향하는 내내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성치 못한 다리가 통증을 버텨 내지 못해 주저앉는 소리가 들리고, 안절부절못하며 따르던 상궁들이 요란하게 호들갑을 떠는데도 멈출 줄을 몰랐다.
줄지 않는 간격은 꼭 마음의 거리 같았다.
규연이 이를 악물고 입술을 짓이기며 뒤쫓아 가지만, 쉽게 멀어지는 언을 따라잡지 못해 좁혀지지 않는, 그 지독하고 잔인한 간극을 떠오르게 했다.
“대비마마! 아들놈이 문안을 올리러 왔으니 문 한번 열어 보시지요!”
기어코 언의 걸음이 대비전 마당에 닿았다.
꼭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포효 같았다. 평소보다 낮은 음성에는 감추지 않은 분노가 그대로 드러났다.
“주상전하! 송구하옵게도 대비마마께서 옥체가 곤하다 하시어 약을 드시고 오수에 드셨습니다. 하니…….”
“옥체가 곤하시다?”
“예, 전하. 부디…….”
“하긴. 그래. 곤하실 만도 하겠구나. 중전의 다리를 그리 만들어 놓으셨으니.”
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달려 나온 연 상궁의 안색이 흙빛이 됐다.
중전에게 매를 든 결과가 어떤 식으로든 따라오리라는 것은 진작 예상했다. 하나 이리 빨리, 그것도 언을 통해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비마마! 그곳에 가만히 앉아 소자의 목소리를 듣고 계심을 압니다. 어서 문을 여시지요.”
“전하. 소인이…….”
“내게 한 마디만 더 거짓을 올렸다가는 네 목을 벨 것이다.”
흉흉한 살기는 나이 든 상궁의 목소리를 먹어 치웠다. 연 상궁은 입술만 달싹이며 허리를 숙였다.
언의 눈에 인 불꽃은 다시 굳게 닫힌 통명전의 문으로 향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불을 붙일 수 있었다면, 통명전은 물론이고 궐 전체가 활활 타고도 남을 듯한 불씨가 그에게 보였다.
“흑아. 활을 다오.”
군복이 아닌 새까만 무복을 입은 앳된 소년이 곧장 등에 멘 활을 꺼내 언에게 넘겼다. 물음도, 만류도 없었다. 소년은 절대적인 복종을 드러내며 언의 손에 무기를 바쳤다.
“전하! 통,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화살 끝이 겨눌 곳은 명확했다. 언이 시위를 당기자 전각 앞의 궁인들이 모두 땅에 엎드려 빌었다.
“어느 방에서 우아하고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아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쪽이려나. 아니면 저쪽이려나.”
“어찌 이리 무엄한 짓을 한단 말입니까!”
허세가 아닌 진심이었다. 이를 느낀 대비는 분노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문밖으로 나왔다.
“천인공노할 일입니다. 언제부터 궐이 이리 행패를 부려도 되는 곳이었단 말입니까! 아무리 내가 어미로 보이지 않는다 하여도 이리 모욕을 줄 수는 없습니다!”
격앙된 목소리가 공간 가득 울려 퍼졌다. 꽉 쥔 주먹과 가빠진 호흡에서 대비의 격노가 보였다.
“옥체가 곤하시다더니 역시 죄 거짓이었나 봅니다. 대비마마의 요란한 소리에 잠든 아바마마도 깨어나시겠습니다.”
“어찌 감히 그런!”
“먼저 행패를 부리셨기에 소자 역시 한번 보여 드린 것일 뿐입니다, 대비마마.”
“내가 언제 행패를 부렸다고 이리 패악질입니까!”
“중전의 다리를 그 모양으로 만든 게 행패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누르고 있는, 한없이 낮은 목소리가 대비의 귓가로 흘러들어 갔다.
등골이 섬뜩해지는 서늘한 기운이 여인을 얼어붙게 했다. 모자란 폭군을 보며 느끼는 한심함 섞인 두려움이 아니었다. 언에게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공포였다.
당혹스러웠다. 다른 이도 아닌 중전의 일에 언이 이리 나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지금껏 그녀가 마주한 언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지. 보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너무도 오래전에 보아 잊어버린 것이지.’
언의 눈에 타오르는 홍염은 오래전 대비가 보았던 총명한 대군을 떠올리게 했다.
세간에서는 모자라지 않지만 뛰어나지도 않은 대군이라며 혀를 찼지만, 사람 보는 눈 하나로 왕후까지 된 대비는 언의 재간을 단숨에 알아봤다.
참으로 명석하고, 참으로 재주가 많은데, 이를 감출 줄도 알아 배 속에 품은 제 아들에게 해가 될까 두려웠던, 고작 열 살 어린 의붓아들. 그게 언이었다.
그러나 여럿의 욕심이 만든 운명의 광풍은 언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대비를 떨게 하던 대군은 이제 없었다.
한데 오늘만큼은, 마주하고 있는 지금만큼은, 그 시절 느꼈던 불안함과 위협이 느껴졌다.
“전하!”
언의 위압감이 대비를 뒤덮어 갈 때, 규연이 아픈 다리를 끌고 가까스로 통명전에 도착했다. 아픔을 참아 내느라 짓이긴 입술에 피가 잔뜩 맺혀 있었다.
가련한 여인의 시선은 언의 양손에 들린 활과 화살로 향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건만 그림이 그려졌다. 규연의 낯빛이 단번에 사색이 됐다.
“전하. 이만 돌아가시지요. 곧 수라를 드실 시간이기도 하고 주강도 이어지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언을 대비와 멀리 두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수라를 들기에는 아직 이르고, 언이 경연에 들지 않은 지가 한참임을 알면서도 이유로 들며 그의 발길을 돌리려 했다.
“마침 잘 왔습니다. 대비마마께 보여 드리세요. 그 다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규연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언은 벌겋게 타오르는 불꽃을 태우기만 했다.
다시 돌아갈 생각도, 대비에게서 얌전히 멀어질 마음도 없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활로는 성에 안 찹니다. 칼춤이라도 춰야 이 분이 풀리겠어요.”
활을 내던진 손이 순식간에 검을 뽑아 냈다. 언이 흑이라 부른 그림자의 검집에 꽂혀 있던 장검이었다.
활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들리자 다시 또 우는 소리가 들렸다.
궁인들은 모두 납작 엎드려 통촉하시라는 청했고, 칼끝에 노려지는 대비는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언을 바라봤다.
“행패가 무엇인지 대비마마 앞에서 판을 제대로 벌여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자 이리 검을 쥐고!”
“전하, 제발…….”
언이 검을 고쳐 쥐고 대비가 서 있는 곳으로 던지려 할 때, 그의 뒤에 서 있던 규연이 앞으로 달려 나가 대비의 앞을 막아섰다. 두 팔을 벌리고 선 여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지금 무엇합니까.”
“신첩의 불찰로 인한 일입니다. 벌하실 생각이시라면 신첩을 벌하십시오.”
검을 던지려는 움직임이 뚝 멎었다.
꺼지지 않은 화염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이 규연을 담았다. 언은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다 조소를 뱉어 냈다.
“이러니 그대를 안지 않는 게지. 오랜만에 낭군 노릇 좀 해 보겠다는데 이조차 같잖은가 봅니다.”
눈에 있던 불씨 하나가 날아와 가슴에 내려앉았다. 이미 새까맣게 태운 속으로는 모자란 것인지, 언의 불꽃은 또 규연의 마음에 화상을 남겼다.
“신첩을 위해 이리하시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전하.”
맺혔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까이 있는 언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 울음에 먹먹해진 음성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오랜만에 하는 낭군 노릇이라 했으나 거짓이었다.
규연을 생각한다면 이리 행동할 리 없었다. 애초에 언이 규연을 생각해 무언가 일을 벌일 리도 없었다. 누구보다도 규연 자신이 이를 잘 알았다.
“신첩의 다리가 엉망이 되어 화가 나신 것도 아님을 압니다.”
“…….”
“어떤 연유에서든 이리 움직이시면 분명 말이 흐를 겁니다. 그뿐이겠습니까. 감당하지 못할 일들이 들불처럼 번질 겁니다.”
“…….”
“전하를 지키셔야 합니다. 무엇이 전하의 속에 천불을 내었든, 대비마마께 검을 던지시면 어떤 화가 덮쳐 일을 벌일지 몰라요. 전하, 제발……. 제발 전하를 생각하시어요.”
언만. 언만 지키면 됐다. 흔들리는 낭군을 잠재울 수 있다면, 해서 지금의 위기를 넘어갈 수만 있다면, 규연은 다 괜찮았다.
여태껏 눈물을 막았던 둑이 터져 버린 것인지, 규연의 젖은 뺨은 마를 새가 없었다. 흐려진 시야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는 언이 보였다.
그는 검을 쥔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언이 어떤 얼굴로 보고 있는지 궁금한데, 차마 눈물을 닦아 내지 못했다.
두려워서. 너무도 두려워서. 익숙하다 했지만, 넝마가 된 마음이 다시 갈가리 찢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규연은 뿌연 세상 뒤에 숨어 언을 봤다. 안 보아도 그의 낯에 지독한 경멸이 서려 있을 것이 뻔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중전은 대체…….”
어느새 바짝 다가온 언이 규연의 턱을 그러쥐었다.
하늘은 규연의 작은 소원도 들어주고 싶지 않은지, 우악스러운 손길에 고여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려졌던 시야가 트이고, 언이 어떤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지 똑똑히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전하.”
멸시가 가득한 얼굴이리라 생각했다. 규연을 향한 미움을 조금도 감추지 않은, 야차보다도 무서운 얼굴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규연이 마주한 언의 얼굴은 그녀의 예상과 너무나도 달랐다.
〈어어? 으악!〉
〈괜찮습니까, 낭자? 미안합니다. 이리 마당에 나와 있을 줄은…….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뉘, 뉘십니까?〉
〈아, 이경의 벗입니다. 그러니까…….〉
〈연성 대군 대감이십니까?〉
〈나를 알아요?〉
〈이경에게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경이 혹시 험담을 잔뜩 늘어놓은 것은 아니지요? 그보다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예, 대군 대감. 다행히 무사합니다. 몹쓸 꼴을 보여 송구합니다.〉
〈몹쓸 꼴이라니요. 전혀요. 그리 말하지 마세요.〉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하니, 잊지 못할 겨울밤에 서로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양반가에서도 쉬이 구할 수 없는 비단옷을 입고, 옥으로 장식한 갓끈을 쓴 미남자. 쉽게 통성명을 할 수 없어 흐려지는 말끝. 규연은 단번에 언이 누구인지 알아봤다.
그는 규연이 서 있던 쪽의 담을 넘었다. 규연은 낯선 사내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 그대로 뒤로 넘어졌고, 이를 보고 더욱 놀란 언이 그녀를 일으켰다.
넘어지며 하필 돌부리를 짚었다. 괜찮다 했지만 규연의 손바닥에는 생채기가 났고, 언은 그 손을 보며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다 쥐여 준 게 새빨간 앵두였다.
‘그날의 눈과 같지 않습니까, 전하.’
규연이 다친 것이 참으로 속상하다는 눈빛.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표정.
그날 이후로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고 여겼던 얼굴이 규연을 마주했다.
“전하, 어찌…….”
이번만큼은 정말로 규연의 상처를 보고 화가 나서 벌인 일이라는 것처럼, 다리의 핏자국에 진심으로 가슴이 에인 것처럼, 그래서 그녀가 야속하다는 것처럼 언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착각일 리 없었다. 궐에 들어온 이래 매 순간을 그리워했던 눈이니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한데 왜……. 이러실 리가 없는데…….’
규연은 혼란스러웠다. 한편 우습게도 동시에 마음이 부풀었다. 참으로 천치같이 못난 것임을 알면서도, 언이 보인 찰나의 틈이 반가워서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두둥실 떠올랐던 기대는 금세 가라앉아 땅속 깊이 지옥까지 처박혔다.
“나는 중전이 질립니다.”
분명 헛것이 아니었건만, 분명 그날의 눈이 맞았건만.
어느새 피어오르는 그날의 향기를 갈무리한 언은 다시 냉혹하고 야멸찬 낭군이 되어 규연의 마음을 으스러뜨렸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얼굴, 무언가를 바라는 얼굴, 내 너머에 무언가 다른 것이 있으리라 믿는 그 눈이 질려요.”
“…….”
“매달리는 여인 따위에 눈길을 주는 사내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를 조금도 안달 나게 하지 않는데.”
언은 진절머리가 난다며 속삭이고는 걸음을 옮겼고, 마음이 짓밟힌 여인만 멍하니 홀로 남아 마당에 서 있었다.
통명전으로 향하는 내내 그러했던 것처럼, 언은 이번에도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파 울고 있는 여인은, 차디찬 겨울밤에 그리도 염려했던 여인은 이제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