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60)

<56화>

돌아가는 차 안.

취한 도결을 위해 정화는 본가에 있는 기사님께 운전을 부탁했다. 뒷자리에 앉은 두 사람 사이에 평소보다 더 긴장감이 흘렀다. 

도결은 사랑스러워 죽겠단 눈으로 재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재경은 그의 시선 때문에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왜 자꾸 그렇게 봐요?”

“갑자기 나타나서 놀랐어요.”

재경은 그의 말에 해명이라도 하듯 웅얼거렸다.

“도결 씨도 갑자기 왔잖아요. 우리 집에. 근데, 그게 그런 눈으로 볼 일이에요?”

“내 눈이 어떤데요?”

그가 입꼬리를 예쁘게 올리며 물어 왔다. 그 모습이 매혹적이어서 시선을 뗄 수 없는 재경이었다. 머뭇거리던 재경이 붉어진 뺨을 손으로 가리며 대답했다.

“부끄러워서 그래요. 그만 봐요.”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고개를 돌린 재경이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차 안으로 밀고 들어오자, 단정했던 재경의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바람에 흩날렸다.

달칵. 안전띠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몸이 재경 쪽으로 기울어졌다. 갑자기 가까워진 그의 숨결에 놀란 재경이 숨을 참았다. 

길쭉한 그의 손이 재경의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창문이 서서히 올라가는 동안 그의 눈은 재경의 입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너무 가까워요.”

작게 속삭이는 재경의 입술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던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꺾었다. 어느 틈에 그녀의 귓가에 닿은 그의 입술이 온몸을 녹여 버릴 것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키스할래요?”

끼익. 쾅!

“꺄악!”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은 차가 순식간에 멈춰 버렸다. 그 뒤 정적이 흘렀다. 

재경은 너무 놀라서 두 팔을 뻗어 그를 꽉 붙들었는데, 그의 얼굴이 생각보다 더 가까웠다. 두 사람의 입술은 어느 때보다 더 뜨겁게 맞닿아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놀란 기사가 고개를 돌렸다가 화들짝 놀라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흐읍.”

도결이 재경의 뺨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서서히 그녀의 몸 위로 올라탔다. 그녀의 도톰한 아랫입술은 그의 입술 사이로 몇 번이고 삼켜졌다가 뱉어졌다.

“잠시만 계세요. 나가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달칵 소리와 함께 차 안이 더욱 고요해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심장이 멋대로 날뛰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사랑하는 그를 잃어버릴 뻔했다는 두려움과 그를 온전히 가지고 싶은 욕망이 가슴속에서 뒤엉켰다.

이대로 세상이 멈춰 버린다고 해도 상관없을 만큼 완벽한 순간이었다. 재경은 자신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를 자신의 목숨만큼 사랑하고 있었다.

“…흡.”

재경이 뜨거운 입맞춤을 이어 갔다. 짧은 찰나였으나,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 본능이었다.

“사랑해요.”

그가 재경의 입술에서 입술을 떼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재경의 입술이 다시 또 그를 덮치면, 그가 다시 또 재경의 입술에서 떨어졌다.

“재경 씨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증명해 줘요.”

재경이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이자, 그가 씨익 웃어 보였다. 그녀의 하얀 목덜미 위로 그의 입술이 달려들었다. 

도결의 입술이 닿는 곳은 달궈진 쇳덩이가 닿았다 떨어지는 것처럼 자극적이었다. 움찔거리는 그녀를 꽉 붙들고 도결이 몇 번이고 자신의 영역을 표시했다.

*   *   *

앞으로 일어날 일에 비하면 방금 일어난 교통사고는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침대에 올라온 도결은 그녀를 향해 날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재경은 맹수의 입에 물린 먹잇감이 되어 붙들린 채였다.

“하아.”

뜨거운 열감은 입안을 타고 흘렀다. 짤막한 신음에서 뜨거운 입김이 흘러나와 서로의 목덜미를 더욱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재경의 몸 위를 정복하고 올라탄 도결의 상체는 보기 좋은 단단한 근육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재경이 천천히 복근으로 시선을 옮기자, 도결이 몸을 움찔하더니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재경의 가녀린 몸 위에서 그가 작게 속삭였다.

“혹시라도 부담스러우면.”

“좋아요.”

그가 눈썹을 꿈틀대며 재경을 다시 보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그의 목을 제 양팔로 감쌌다.

“고도결 씨를 원해요.”

갑자기 적극적인 재경을 보면서 그는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조용해졌다. 도결이 사정사정해서 그의 집으로 들어온 재경이었다.

결혼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거리감이었는데, 갑자기 재경이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그에게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없었어요. 그저 늦게 깨달았을 뿐이에요.”

그녀의 작은 손이 그의 샤워 가운을 천천히 끌어 내렸다. 온전히 보이는 그의 근육을 손바닥으로 느릿하게 훑으며 잘게 웃었다.

“사랑해요. 도결 씨.”

그를 이용하는 밤이 아니었다. 고작 몇 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재경은 지금 그의 모든 것을 원하고 있었다.

*   *   *

도결의 집.

사무실을 따로 만들지 않은 재경 덕분에 백 비서는 매일같이 전 상사의 집으로 출근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모닝커피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려던 도결은 백 비서를 발견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백 비서? 일찍 출근했네요. 아직 7시인데.”

백 비서는 일어나서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평소에 차 대표님이 더 일찍 나오셨는데. 오늘은 좀 늦으시네요.”

의아하게 생각하는 백 비서를 보면서 도결이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였다.

“좀 피곤한 모양이에요.”

“네. 기다리면 됩니다.”

늘 부회장님 소리를 입에 달고 살던 백 비서가 도결을 보는 둥 마는 둥 소파에 앉았다. 노트북을 꺼내 일하는 백 비서의 모습을 보면서 도결이 생각에 잠겼다.

“백 비서는 이 일이 재미있는 모양입니다.”

“아, 네.”

대충 대답하는 백 비서를 보면서 도결은 어쩐지 서운함을 느꼈다. 

사람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재경과 한결 가까워진 백 비서에게서 질투를 느꼈고,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니 자극이 되고 있었다.

“차 대표님! 잘 주무셨습니까?”

갑자기 백 비서가 신이 나서 일어나자, 도결의 고개도 절로 돌아갔다.

“더 쉬지. 왜 벌써 나왔어요?”

도결이 재경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걱정하자, 재경의 뺨이 붉어졌다. 힐끗 백 비서의 눈치를 본 재경은 누가 보아도 수상했다. 백 비서는 두 사람의 사이를 빤히 짐작해서인지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

“소리가 나는 것 같아서요.”

“백 비서가 애도 아니고. 혼자서 일해도 괜찮습니다. 안 그래요? 백 비서.”

그가 싸늘한 눈초리로 백 비서에게 대답을 강요하고 있었다.

“아니요. 꼭 차 대표님이 필요합니다만?”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는 백 비서를 본 재경이 머쓱하다는 듯이 눈웃음을 보였다.

“좀 늦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대표님. 아직 이른 시간인걸요.”

재경에게 다정하게 대답하는 백 비서를 보면서 도결이 황당하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

“백 비서. 방금 나한테 인사할 때랑 분위기가 너무 다른 것 아닙니까?”

“네. 다릅니다.”

도결이 황당해하자, 백 비서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신난 백 비서를 보고 도결이 미간을 구겼다.

“원래 이렇게 지조 없는 사람이었습니까?”

“지조는 돈에서 나옵니다. 차 대표님 부군.”

백 비서의 입에서 나온 부군 소리에 도결이 얼빠진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부군?”

“이젠 차 대표님이 제 상사시잖습니까. 그럼 고도결 씨는 제겐 차 대표님의 부군이 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바뀔 일이 아닐 텐데요?”

“아무래도 제 전 직장 상사라는 게 걸리긴 하지만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단한 의리네요.”

도결이 어이없다는 듯 투덜대자, 백 비서가 씨익 웃어 보였다.

“두 배입니다. 무려 기존 연봉의 두 배를 제안해 주셨어요.”

“백 비서가 이렇게 돈을 좋아하는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제안해 볼 걸 그랬네요.”

그가 삐딱하게 말한 뒤 계단을 올라가자, 재경이 배시시 웃어 보였다. 두 사람은 상하 관계였지만, 친한 친구 사이처럼 가까워 보였다. 정작 서로는 인지를 못 하는 눈치였다.

“보내 주신 원고는 잘 정리해서 이펍으로 만들었습니다. 차 대표님.”

대기업에서 비서 실장으로 있던 백 비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했다. 덕분에 재경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일정을 소화해 낼 수 있었다.

“고마워요.”

*   *   *

며칠이 지나자, 벌써 다음 잡지가 나왔다.

표지에 대한 고민도, 인터뷰에 실을 사진에 대한 고민도 꽤 오래 했는데. 좋은 반응들이 재경의 성취감과 보람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재경은 벌써 두 번이나 잡지를 성공시켰다. 사람들은 재경의 예상처럼 개천에서 난 용을 궁금해했다. 

사랑을 인정받고 싶어서 평생 일에만 미쳐서 살았던 한 여자의 소설 같은 이야기가 인기를 얻었다.

이북으로 만들어진 잡지는 몇 명의 사람들에게 아쉬움이 남았는지 메일로 소장할 수 있는 종이책으로 제작해 달라는 제안들도 있었다.

“다음 달 예약은 첫 달 예약보다 다섯 배나 늘었어요.”

백 비서는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를 보면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대기업에선 가진 것을 지켜야 하니, 본의 아니게 수비적인 전략을 해 왔지만 스타트업 기업인 이곳에선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전략을 짤 수 있었다. 그 부분을 백 비서는 무척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 몇 가지 악의적인 댓글이 보이던데. 보셨어요?”

재경의 물음에 백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를 뽑아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심한 댓글들은 따로 모아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준비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자 재경은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하지 않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 부분은 도결과 매우 다른 점이었다. 부회장은 모든 해답을 빠르게 내놓았는데, 재경의 결정은 언제나 오래 걸렸다.

“으음.”

상사의 약혼자를 빼앗았다는 내용의 댓글은 재경을 무척 비도덕적인 사람처럼 보이게 하긴 했다. 그렇지만 고소는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안 하실 겁니까? 그냥 두면, 진짜라고 생각할 텐데요.”

“차라리 다음 잡지에서 한서일보 한은화 차장을 인터뷰하는 건 어떨까요?”

재경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백 비서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좋은 생각이었다. 여성에게 인지도를 얻었으니, 그쪽으로 쭉 밀고 나가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하려고 할까요? 신문사에 몸담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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