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60)

<13화>

본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헬리콥터가 아닌 승용차를 탔다. 일부러 사이좋은 모습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다정하게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그림이 좋았다.

“오늘 고마웠어요. 내 편 들어 준 거.”

애초에 이런 불편한 상황을 만든 건 그였지만, 어쨌든 자신의 편에 서 준 건 고마웠다.

“차재경 씨가 그렇게 감동받은 표정으로 고맙다고 말하면, 나 또 괜히 기대하게 되는데.”

“계속 연기할 생각인 거예요?”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움켜쥔 도결의 손을 힐끗 내려다보면서 그녀가 물었다. 도결은 멀리서 사진기를 쥐고 서 있는 남자들을 바라보면서 픽 웃었다.

“손잡는 거 싫어합니까?”

재경은 딱히 그에게 눈치를 주려던 건 아니었다. 집에서는 사용인들의 눈치를 보느라 침대를 같이 쓰고 있었고, 밖에선 이렇게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었다. 이러다 재경 자신도 진짜 결혼했다고 착각하게 될까 봐 부담스러워졌다.

“꼭 그런 건 아닌데요. 이러다 진짜 정이라도 들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재경이 고개를 들어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자, 도결이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정드는 게 왜요?” 

“그야 평생 이대로 살 것도 아니니까….”

점점 작아지는 재경의 목소리를 들은 도결이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럼, 앞으로 헤어질 사이니까, 미리 거리를 두자. 뭐 그런 겁니까?”

“아, 말이 그렇게 되려나. 뭐 하여튼 그런 거죠.”

“그럼,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차가운 태도로 묻는 도결을 보면서 재경이 고개를 기울였다.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뭐가요?”

“우린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계속 뜨거웠는데.”

도결이야 재경을 맞선녀로 착각해서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재경은 반대였다. 청혼하는 주혁을 보고 충동적으로 선택한 밤이었다. 오랫동안 뜨거운 것 말고, 라이터에서 잠깐 피웠다가 꺼지는 불꽃 크기면 충분했단 뜻이었다.

“아, 아. 그랬었죠. 그땐 제가 영원히 고도결 씨를 볼 일이 없을 줄 알고….”

“나는 반대였어요. 앞으로 평생 함께하고 싶은 여자라서 뜨거웠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재경의 손을 툭 놓았다. 

“아니, 뭐 그렇다고 손까지 놓을 건 없지 않나요?”

재경이 작게 항의하자, 도결이 팔을 뻗어 그녀의 오른쪽 어깨 위로 손을 얹었다. 놀란 재경이 눈을 끔뻑이자 그가 무심하게 그녀의 왼손을 끌어 자신의 허리 위에 올렸다.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게 인생이라고 하더군요. 난 부부로 지내는 동안만큼은 재경 씨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래요, 근데 이건 너무 가깝지 않아요?”

“재경 씨도 약속해 줘요. 나한테 최선을 다하겠다고.” 

진성그룹 고도결 부회장의 책임감이야 워낙 유명했다. 언론계에 있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마약과 음주 운전 등으로 논란을 만들어 온 다른 재벌들과 달리 그는 언제나 깨끗하고 성실한 면모만 보여 왔다. 도결은 계약 결혼도 최선을 다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부담 주지 말아요. 난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이런 연기 말고 진짜 사랑인 것처럼 뜨겁게 사랑해 보잔 뜻입니다.”

“이러다 지금보다 더 정이 들면 곤란하잖아요.”

“부부 사이에 정이 안 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뭐 전부 틀렸다고 할 순 없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도 재경도 맡은 일을 대충 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최선을 다하는 쪽이 훨씬 정신 건강에 좋을 듯싶었다.

*   *   *

의도했던 것처럼 언론에선 재경과 도결이 산책하는 데이트 사진들로 인터넷을 도배했다. 재경은 평범한 데이트만으로도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면서, 그의 인기를 다시금 느꼈다.

“안녕하세요?”

“아, 차 기자. 오랜만에 보네.”

“개인적인 일이 있었거든요.”

그녀가 전부 다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기사를 통해 알고 있는 동료들이 눈을 찡끗거렸다. 

“결혼 축하해. 한서일보 날아다니드라?”

기자들은 보통 본사로 출근하는 게 아니라, 출입처가 있는 회사로 출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같은 신문사 기자들보단 타 신문사 기자들과 만나는 일이 더 잦았다. 지금도 그런 경우였다.

“음. 딱히 소스를 드리진 않았어요.”

“아, 차 기자. 근데 그 익명 게시판 확인해 봤어?”

“아니요, 통 바빠서. 지금 들어가 볼게요.”

노트북을 켠 재경이 인터넷에서 운영되는 익명 사이트 게시판을 열었다. 기자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찌라시가 도는 사이트였다. 평생 엮일 일이 없을 거라 믿었던 사이트였는데. 놀랍게도 그 익명 사이트에 재경과 관련된 제목들이 우르르 업로드되어 있었다.

익명게시판

오늘 나왔네요. 침대 인터뷰 기자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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