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들여지는 밤-66화 (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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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밖 바닷가를 따라 설치된 데크를 걷고 누크 곳곳을 구경했다. 순록과 사향소를 볼 수 있다고 했지만, 사향소는 결국 보지 못해 아쉬웠다.

어디를 가나 설산과 빙하가 눈에 닿았다. 봐도 봐도 지겹지 않은 풍경을 감상하며 식사와 차를 마시고 평온한 일상에 행복해했다.

저녁 일몰은 어제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캠핑하듯 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가 구워주는 스테이크 맛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지를 들어 올렸다.

“정말 맛있어요.”

굽느라 먹지 못하는 지한의 입에 고기 한 점을 넣어주었다. 지한도 맛있는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든든한 저녁은 소꿉장난 같았다.

숙소로 돌아와 지한이 명 비서와 통화로 일을 하는 사이 가현은 어두워지는 하늘을 구경했다.

생각보다 지한의 일 이야기는 늦어져 가현은 책을 꺼내 들고 소설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별 보러 가자.”

“좋아요.”

그의 그림 같은 미소에 가현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사막에서 들었던 말처럼 사막의 하늘과는 또 다른 매력에 넋을 놓았다.

“말도 안 돼요. 정말 가까이 있는 것 같아요.”

가현이 높이 손을 뻗었다.

“너무 선명해서 눈이 시릴 정도예요. 별자리 잘 모르는데 여기서는 책에서 봤던 별자리가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너무 신기해.”

선명한 하늘에 별이 촘촘히 늘어서 더 밝게 반짝이려 뽐을 내는 것 같았다.

패딩으로 된 담요를 둘러쓰고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장갑을 껴도 매서운 추위가 뚫고 들어와 손가락 끝이 저릴 정도였다.

추위에 볼과 코끝이 붉어져도 쏟아지는 별을 보는 것은 문제 되지 않았다.

“들어가는 게 어때?”

“조금만 더 보면 안 돼요? 다시 이런 하늘을 또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다음에 또 오면 되잖아.”

“그때는 또 다를 거잖아요. 오늘 이 하늘은 오늘밖에 못 보니까.”

지한이 가현을 자신의 담요 속에 넣어 꼭 안아주었다.

“이렇게 하니까 덜 춥다.”

그렇게 또 한참을 하늘이 무거워 쏟아지진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인 하늘을 하염없이 보았다.

“지한 씨.”

“응.”

“사랑해요.”

지한은 가현의 고백에 잠시 침묵했다.

“사랑 그런 걸 믿지 않지만 지금 내가 너만 보면 이성적일 수 없는 마음이 그런 거라면.”

가현이 담요 속에서 돌아서 키가 큰 얼굴을 올려 보았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가현을 보고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랑해. 가현아.”

가현이 까치발을 들고 지한에게 키스했다.

추운 그린란드의 바람이 매섭게 불어도 두 사람의 키스는 뜨거웠다.

행복해 눈앞이 흐려지는 눈을 감으며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과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이 남자의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린란드의 별이 쏟아지는 밤은 행복했다.

***

더운 여름이 오는 초입, 지한의 생일이 며칠 후라고 했다. 그린란드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 이번에는 제대로 챙겨주고 싶었다. 결혼기념일은 그의 멋진 이벤트로 행복했지만, 그의 생일은 자신이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가현은 아무리 고민해도 차고 넘치게 많은 걸 가진 그에게 적당한 선물을 찾지 못해 난감했다.

‘적당한’은 부족했다. 그가 좋아할 선물을 주고 싶었다.

장원댁은 오늘도 분주하게 음식 재료 손질을 하고 있었다.

“장 여사님, 지한 씨 좋아하는 게 뭐예요?”

“음식이라면 갈비찜, 탕평채.”

“아니요, 다른 거 없어요? 며칠 있으면 생일인데 저 작년엔 이곳에 없어서 못 챙겨줬어요. 이번에는 잘 챙겨주고 싶은데 마땅한 게 생각이 안 나요.”

장 여사도 파를 다듬으며 고민하더니 한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글쎄, 옛날 도련님 어릴 때 사모님이 생일이면 케이크를 직접 만드셨어. 도련님이 다른 건 잘 안 드셨는데 그건 그렇게 잘 드셨어.”

“그거예요!!! 케이크 제가 만들게요.”

장 여사는 가현의 무모한 도전에 당황했다.

“생일날 케이크는 나도 안 만들어. 그게 보통 손이 많이 가야지. 그래서 중요한 날 행사 케이크는 로제 호텔에서 예약해서 받아.”

“이번에 제가 해볼게요. 집으로 불러서 음식 하기도 하잖아요. 케이크도 가능하지 않아요?”

“가끔 집에서 파티할 때는 그렇게 할 거야. 정 실장님께 물어봐.”

“감사해요, 장 여사님.”

“쉽지 않을 텐데 뭐 예쁜 와이프가 만들어주면 무엇인들 안 맛있겠어.”

장원댁은 최근 지한의 변화에 기뻐했었다. 가현을 보는 지한은 예전과 180도 바뀌어 있었고 무뚝뚝한 듯 보여도 사용인들이 두 사람을 보는 재미로 산다고 할 정도로 집안에는 활기가 돌았다.

생일날 가현이 미역국을 끓여 지한이 앉은 식탁 앞에 내려놓았다.

“지한 씨 내가 끓였어요. 한번 먹어봐요.”

“……맛있어.”

지한이 한 수저 뜨더니 잠시 여운을 남기고 맛있다는 단답형 대답을 했다.

식사를 시작한 지한은 군말도 없이 미역국을 먹었다.

뒤늦게 자리에 앉은 가현과 가현의 엄마가 미역국을 한 수저 뜨고 동시에 인상을 썼다.

“가현아 너 이거 뭘 넣은 거야? 이런 걸 지금 차 서방 준 거야?”

“윽, 지한 씨 왜 거짓말해요? 맛없다고 해야지. 이걸 왜 먹어요?”

가현은 맛없는 미역국을 먹고 있는 지한을 타박하며 국그릇을 들었다.

가져가려는 국그릇을 지한이 붙잡았다.

“난 괜찮아. 네가 처음 끓여준 미역국이야.”

“마음은 고마운데요. 이건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아니에요. 저녁에 다시 끓여줄게요.”

결국 단호하게 가현이 국그릇을 뺏어갔다.

아쉬워하는 지한을 보고 가현의 엄마가 웃으며 한 소리 했다.

“내가 미안해. 진작 음식이라도 가르쳤어야 하는데 이런 걸 먹게 했어. 그리고 고마워, 못한 것도 예쁘게 봐줘서 우리 가현이가 차 서방 같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야.”

“그런 말씀 마십시오. 가현이가 해주겠다는 마음이면 됩니다. 맛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역국으로 소동을 벌인 생일 아침은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났다.

저녁의 난리 통을 보기 전까지 지한은 오늘 무슨 일이 있을 줄도 모르고 신신당부한 가현의 뜻대로 일찍 퇴근했다.

그가 퇴근하면 늘 문 앞까지 나와 마중하던 그녀가 없었다.

“이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교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애매한 대답을 했다.

“주방에 있습니다. 지금 나오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지한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영 불안해 빠른 걸음으로 코너를 돌아 주방을 보았다.

그가 급하게 옮기던 걸음을 뚝 멈췄다.

난장판인 주방에는 외부에서 온 전문가조차 난감해하고 있었다.

얼굴에 크림까지 묻힌 가현이 열심히 앞에 놓인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를 장식 중이었다.

주방 사람들이 지한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가현도 그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지한 씨, 왔어요.”

“이게 다 뭐야?”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지한은 당황한 마음을 숨기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가현을 보았다.

“지한 씨 생일 케이크 만들고 있어요.”

“괜한 걸 했군. 여러 사람 힘들게.”

큰 케이크는 전문가의 손에 손댈 곳 없이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가현이 만든 작은 케이크는 한쪽 크림이 흘러내리고 누가 봐도 엉망인 채였다.

가현도 노력은 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실망한 표정이었다.

바닥에 흩뿌려진 재료들을 피해 가까이 다가간 지한이 가현의 작품을 말도 없이 바라보았다. 주위 사람들도 조용히 그가 말하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이 긴장됐다. 지한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더니 한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

“잘 만들고 싶었는데 미안해요. 첫 생일이라 직접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아니야. 만족해.”

그는 어느 때보다 밝았다.

“아침에도 그러더니 너무 티 나는 입발림이에요.”

“정말 잘 만들었어. 꼭 필요한 케이크야 장담하는데 이번 케이크가 내가 지금까지 받은 생일 선물 중에 가장 좋아.”

꼭 놀리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지려 했지만, 그의 표정은 정말 밝아졌다. 알 수 없는 지한의 대답이 미심쩍었지만, 그는 가현이 만든 케이크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저녁 손님이 가기 전까지 손대지 말라고 투명 반원 덮개까지 덮어 명령까지 내려졌다.

가현은 자신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서라 생각했다.

하지만 제대로 생일 선물을 챙기지 못한 미안함이 자꾸 걸렸다.

백 회장과 라윤이 지한의 생일을 축하하러 저녁 식사에 참석했다.

라윤은 떨떠름한 표정이지만 뾰족한 말은 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두 사람의 선물은 가현이 엄두도 낼 수 없는 선물들이었다. 백 회장은 통 크게 자신의 지분 일부를 주겠다는 서류를 내밀었다. 지한도 라윤도 놀라 말렸지만 이미 결정한 후라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회장님 이건 못 받습니다.”

“너 내 사위 되면 줄려고 했는데 그건 물 건너갔고, 나도 이젠 회장 자리 힘들어 물러나기 전에 자식으로 생각한 너 줄 몫이야. 더 욕심내지 마.”

백 회장은 더 달라고 하지 말라는 농담으로 지금 상황을 무마했다.

길들여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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