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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는 밤-65화 (6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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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엄마를 모셔오고 아버지 같은 교진, 엄마, 지한과 지내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정가현으로 살았던 시간을 멈추고 다시 서가현으로 돌아왔다.

“죄송해요. 정가현도 좋았지만, 친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어요.”

“당연히 돌아가야지. 기억을 잃었던 동안 성씨가 같은 딸로 살아줘서 고마워.”

가현은 울컥했다. 자신의 성을 빌려주고 거기다 그렇게 친자식 대하듯 신경 써줄 사람이 이 각박한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가현에게 교진은 은인이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아무것도 없던 제 모든 걸 신경 써주신 분은 아버지 하나세요. 감사해요.”

가현은 교진에게 다가가 꼭 안았다. 그도 딸을 토닥이듯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이상할 만큼 행복한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결혼기념일이 다가와 가현은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흐른 것이 믿기지 않았다.

결혼기념일에 어떤 걸 하지?

고민도 의미가 없었다. 모로코 사업이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다친 지한의 치료 시간만큼 더뎌져 더 바빠졌다. 거기에 한 번씩 회사 출근을 미룰 만큼 집중하는 정사는 가현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결혼기념일이 사흘 남은 어느 날 지한은 분주하게 업무를 마무리하고 오후에 귀가했다.

“무슨 일 있어요? 일찍 퇴근했네요.”

“갈 곳이 있어. 추운 지방으로 가야 해. 염두하고 짐을 싸.”

황당할 만큼 급작스럽게 떠나야 한다고 하니 일 때문이라 생각했다.

“어딜 가는데 그래요? 나도 같이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요?”

“짐 챙기는 걸 도우라고 말은 했어. 네가 챙길 것만 간단히 챙겨.”

“정말 말 안 해줄 거예요?”

“일 때문에 가는 건 아니야. 가보면 알아. 가면서 이야기할게.”

지한은 더 물을 여유도 주지 않고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겼다.

그를 따라 공항에 도착한 후, 티켓을 보고 알았다.

사막 한가운데서 별을 보며 들었던 그린란드.

그는 그때를 잊지 않고 있어 고마웠다. 하지만 가는 여정은 험난했다.

1년 만에 40도를 오르내리는 작렬하던 사막에서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얼음의 땅 그린란드로 두 사람의 여행은 냉온 차가 컸다.

베이징으로 건너가 코펜하겐으로 가 칸게를루수악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만으로도 지쳤지만, 하늘과 주위 풍경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회색과 흰색과 파란 하늘로 조화가 된 풍경은 더 광활하게 느껴졌다.

공기가 너무도 많아 모든 것이 선명한 색이라 눈을 돌리는 곳마다 그림이었다.

“말도 안 되게 멋져요.”

“마음에 들어?”

“너무 갑작스러워서 얼떨떨 하지만 너무 좋아요.”

그린란드란 이름과 반대인 자연풍경은 눈 돌리는 곳마다 예술이었고 숙소로 가는 창밖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검은 지붕에 붉은색으로 벽을 칠한 오두막이 동화 속 마을을 연상케 했다.

모든 것이 신기해 가현은 신이 나게 숙소로 들어가 또 한 번 놀랐다. 침상을 덮은 동물 가죽이 북극곰이었다.

불쌍하지만 소파 덮개로는 너무 호사스러워 앉지도 못하고 신기해 가죽을 쓸어내렸다.

밖은 날씨가 심상치 않게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뒤덮었다. 바람이 윙윙 귀신 소리를 내며 무섭게 휘몰아쳤다.

“오늘은 별 보긴 힘들겠어. 그래도 일몰은 볼 수 있겠네.”

낮게 깔린 구름 위로 오렌지색 하늘이 구름을 물을 들여 자연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풍경을 자아냈다.

“너무 아름다워. 하늘 전체가 타오르는 것 같아요.”

“이걸 보여주고 싶었어. 밤하늘도.”

오렌지색 하늘이 붉은색을 띠며 타오르는 걸 끝까지 구경했다.

밖은 황량하고 추웠지만, 오두막 숙소는 아늑하고 따스했다. 거실 통창을 통해 그와 일몰을 감상했다.

그의 품에 안겨 보는 일몰은 너무 아름다웠고 오두막은 너무 로맨틱했다.

“고마워요. 난 아무것도 준비 못 했는데.”

“네가 옆에 있으면 됐어.”

지한은 가현을 지긋이 바라보다 입을 맞추었다. 달콤한 입맞춤이 길어져 야릇한 일몰이었다.

윙윙 바람 소릴 들으며 잠이 들었다. 오랜 비행시간이 피곤했는지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역시나 지한은 일찍 일어나 자리에 없었다.

거실로 나와 거실 창밖을 구경했다. 어제 하늘을 가득 채웠던 구름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파란 하늘이 선명했다. 하늘에 뜬 태양이 사막과 다르게 빛이 났다.

온통 설산과 흰 눈과 물 위에 떠 있는 푸른빛이 도는 빙하가 전부여도 질리지 않았다.

지한이 장작을 한 아름 안고 오두막으로 들어왔다.

“오늘 저녁은 기온이 더 떨어진다고 해.”

“지금도 추운데요.”

그를 따라 걸어와 벽난로 앞에 앉으며 말했다. 벽난로의 따뜻한 열기에 가현의 어깨가 푹 내려앉았다.

“지금은 추운 편이 아니야. 여긴 연평균 영하 30도야. 춥다는 건 그만큼 맑다는 말이지. 오늘은 별 볼 수 있을 거야.”

“기대돼요.”

지한은 가져온 장작을 정리해 쌓았다. 장작 몇 개를 벽난로에 던져 넣고 불쏘시개를 뒤적였다.

자연스러운 그의 행동이 퍽 잘 어울렸다.

정장을 흐트러짐 없이 차려입고 세련된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이 늘 자연스러웠다. 집에서도 슬랙스 바지에 셔츠가 주 옷차림이어서 그걸 벗어난 지한은 상상이 잘 안 되었다.

신혼여행 중에도 데리아를 입은 건 사막 여행 외엔 없었다.

두꺼운 패딩에 비니 모자까지 눌러쓴 그는 이곳에서 산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아 보였다.

“지한 씨 지금 모습 편해 보이고 좋아 보여요. 여기서 오래 산 사람처럼.”

“나쁘지 않은데, 같이 올 거야?”

“아니요. 전 추운 곳은 여행이면 모를까 사는 건 자신 없어요.”

“그럼 어렵겠는데.”

가현이 함께여야 한다는 말은 듣기에 좋았다. 지한은 벽난로 주위를 정리하고 가현 옆에 앉아 벽난로에 떠오르는 장작을 바라보았다. 가현은 그의 넓은 어깨에 기대어 함께 벽난로 장작을 보았다.

“나 요즘 너무 행복해요. 이게 깨질까 봐 무서울 만큼요.”

“그럴 일은 없어.”

한 치도 의심하지 않는 그가 좋았다. 정말 그렇게 만들어 줄 것 같아서였다.

“지한 씨가 그렇다면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아요. 당신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요.”

지한은 옆에 앉은 가현의 얼굴을 내려다보고는 그녀를 들어 무릎에 앉혔다.

가현이 놀라 긴장하는 게 역력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예쁜 말만 하면 가만있을 수가 없잖아.”

지한이 입술을 겹치며 진하게 모닝 키스로 마음을 전했다. 지한의 키스가 짙어져 바닥에 깔린 북극곰 가죽 위에 뉘어졌다. 깊어지는 키스를 겨우 떼어낸 가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지한을 의심했다.

“아침부터 또 그러는 건 아니죠?”

“그러는 게 뭐야?”

“어젯밤에 일몰 보다가 했던 거요.”

“못할 것도 없지.”

지한의 눈이 장난기가 가득해졌다. 저 눈빛이 언제 진득하게 변할지 두려웠다.

한번 시작되면 끝을 보아야 만족하는 그였다.

가현의 끝과 그의 끝은 체력 차이가 너무 컸다. 그만큼 가현은 감당되지 않는 감각에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되어 잠이 들어야 끝이 났다.

매번 열정적인 그의 사랑이 가현을 긴장시켰다.

지금 그가 눈빛이 바뀐다면 언제 끝이 날지 겁이 났다. 오늘 하루 그린란드 여행은 날아가 버릴 게 뻔했다.

가현은 얼른 지한의 품에서 빠져나가 벌떡 일어났다.

지한이 팔베개한 채 북극곰 위에 늘어지게 누워 가현을 올려다보았다.

“아쉬운데.”

“어제 나한테 어떻게 했는데 아쉬워요. 오늘은 양보 못 해요. 꼭 이곳을 둘러볼 거니까 바빠요.”

그의 손을 끌어 일으키려 했지만, 그는 딸려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팔에 힘을 주어 가현을 당겼다.

균형을 잃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넘어졌다. 가현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일으켰지만, 가현의 등을 손으로 눌러 일어나지 못했다.

가현은 입을 쭉 내밀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 퉁퉁거렸다.

“정말 이럴 거예요?”

“잠시만 이렇게 있어.”

내민 입을 지한이 깨물어 놀란 가현은 몸을 꿈틀거렸다.

“정말 아무 짓 안 해. 이대로 잠시만 있어.”

지한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힘을 뺐다. 그의 심장 소리가 쿵쿵 크게 들려왔다.

눈을 감고 그의 심장 소릴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지한 씨 심장 소리 좋아요.”

이렇게 행복한 순간 차가운 그의 손이 약속을 어기고 음흉한 늑대가 되려 했다.

가현이 그의 손을 잡아 옆으로 데굴 굴러 지한의 가슴팍 위에서 빠져나갔다.

“아무 짓 안 한다더니 거짓말이야. 빨리 일어나요.”

가현의 재촉에 지한이 한숨을 쉬고 몸을 일으켰다.

“아쉽군.”

좀 전까지 넘치던 활력은 어디 갔는지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가현은 겉옷을 입고 미련을 못 버린 지한의 목도리를 둘러 당겼다.

그의 얼굴이 까치발을 든 가현의 얼굴 앞까지 당겨졌다.

“어림없어요.”

지한은 귀여운 으름장에 코끝에 입을 맞추고 먼저 걸어 나갔다.

길들여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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