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들여지는 밤-63화 (63/67)

63

“맞아요. 난 제천에서 잘 지낸다 생각했어요. 가끔 당신이 생각나지만 그건 당연한 거니까. 그냥 무시했어요. 그런데 그 남자를 보고 깨달았어요.”

가현의 눈매가 아련해졌다. 그를 떠나고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난 당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시간을 정해서 마음껏 그리워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렇게라도 해서 버틴 걸 알게 됐어요. 당신에게 돌아가지 못할 거면 그리워할 시간도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날부터 안 갔어요.”

“……그 자식은 마음에 안 들지만 날 생각했다니 나쁘지 않네.”

그는 툭 던지듯 말하더니 다시 눈매가 매서워졌다.

“그런데 저녁에는 왜 만났어?”

서른이 넘은 남자가 꼬치꼬치 묻는 게 귀여웠다.

“지한 씨, 지금 되게 유치한 거 알죠.”

“유치한 게 아니라 이해관계를 확실히 하려는 거야.”

또 어떤 오해를 할까 싶어 말해 주었다.

“엄마는 아버지 그날의 사고가 지한 씨 탓이 아니니 용서하라고, 제가 행복해지길 바랐죠.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고 집을 잠시 나와 걸었는데 걷다가 만났어요.”

“나 때문에 그놈을 또 우연히 만났다고.”

“말하자면 그렇죠.”

“꼭 말해 주고 싶었어요. 내 탓으로 당신을 다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넌 어때? 그 자식 그런 행동 또 트라우마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닌지 걱정했어.”

“괜찮아요. 당신이 그렇게 다쳐서 난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이제는 숨기는 게 능사가 아니라 생각했다. 이젠 숨길 일도 없었다.

이미 그를 떠날 때 그를 사랑했다 말했던 가현이 숨겨서 자존심을 챙길 것도 없었다.

“아버님의 사고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없는 것처럼 이번 내가 다친 죄책감으로 널 내 옆에 둘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어.”

“지한 씨.”

그가 얼마나 고민했는지 알았다. 자신만큼 그도 힘겨워했다는 걸.

“그 일은 잊힐 수 없을 거야. 알고 있어.”

지한은 가현의 앞에 다가와 섰다. 깊은 눈매가 가현을 응시했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주시하는 눈에 빨려들 듯했다. 아직도 바보같이 그의 눈빛에 눈도 돌릴 수 없었다.

“용서가 필요하다면 내 옆에서 해. 내 옆에서 미워하고 내 옆에서 원망해.”

그의 말이 가슴 한 켠 묻어두었던 마음을 움직였다. 꾹꾹 눌러놓은 마음이 문을 열고 기지개를 켰다.

지한은 가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에게 돌아가 원망과 미움을 다 표출하며 지내다가 그 후는……. 혹시 다시 돌이킬 수 없어 떠나게 된다면 그때는 감당할 수 있을까. 감정의 끝을 보고 일어설 수 있을까.

“다시 우리 시작한다 해도 그러다 틀어지면 그땐 더 힘들어질 거예요. 우리 후회할 거예요.”

“후회? 차고 넘치게 했어.”

지한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난 후회해도 너와 함께 하겠어.”

“…….”

가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차가운 손길이 훑어 내렸다.

울컥하던 가현이 그의 차가운 체온에 눈물을 속으로 삼켰다.

그는 몇 달 전과 달랐다.

자신이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그를 밀어내려 했던 것처럼 지한은 그대로 가현을 밀어내다가 함께 할 때를 타진하며 단련된 것 같았다.

그의 단단한 마음에 자신이 조금 기대도 되지 않을까 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욕심이었다. 자신이 모른 체 하는 만큼 그는 힘들어질 것이다.

“나는 당신 말처럼 할 수 없어요.”

“아버님께 받을 벌은 지옥에 가서 만나 뵙고 직접 받겠어.”

가현이 인상을 쓰고 눈물을 떨구었다.

“지금은 네 곁에서 너를 지키는 것으로 갚을게.”

단단한 그의 말에 가현은 안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마음이 그를 향했고, 아직도 그만 보면 마음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니 원망은 내 곁에서 해. 난 못 놔줘.”

지한이 팔을 뻗어 허리를 끌어당겨 안았다.

“한번 내 여자가 되면 죽어서도 안 놓아. 내 사람은 너 하나야.”

지한에게 염치없는데, 자신을 안 놓는다고 말하니 안심이 되는 걸까.

가현 또한 밀어내 봐도 차지한이었다. 그여야만 했고 그라서 놓을 수 없었다.

“나 예전 일들 생각하면 마음 아픈데, 바보같이 그 말이 좋아요.”

“정가현은 솔직해서 좋았지.”

지한이 가현의 양 볼을 감싸 쥐고 들어 올렸다.

지한의 부드러운 입술이 닿자 걷잡을 수 없었다.

가현이 그의 목덜미에 매달렸다. 지한은 적극적인 반응에 가현의 목덜미를 잡으며 입맞춤이 키스로 변했다.

가현은 사납게 파고드는 그를 밀어내지 않고 목에 두른 팔로 꼭 끌어안았다.

뜨거운 키스에 머릿속까지 눅진하게 풀어져 가현이 꽁꽁 억누르던 마음을 풀어놓았다.

지한은 오랜 시간 하지 못한 키스를 보상이라도 받듯 가현을 책상 위에 앉히고 입술을 삼켰다.

통제력을 잃지 않으려는 지한이 깊게 빨아들이던 숨을 한 번에 풀어 입술을 떼었다.

입술을 떼지 않으려는 가현의 입술이 쪽 소리가 나며 떨어졌다.

거칠어진 키스만큼 가현이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골랐다.

“네가 이러면 내가 이성적일 수 없어.”

지한의 표정이 사나워져 가현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입술이 가현을 다 맛볼 것처럼 빨아들였다.

지한의 입맞춤이 작은 틈도 주지 않고 가현의 살결을 훑고 지나갔다. 그의 뜨거운 입술에 추위에 떨던 몸이 녹아내렸다. 입고 있던 붉은 스웨터 가슴께 위를 손톱으로 긁었다.

가현의 몸이 작은 자극에 들썩였다.

지한은 다리를 허리에 감게 하고는 번쩍 안아 들어 소파에 눕혔다.

스웨터를 위로 끌어올려 스웨터로 눈을 가린 체 두 손을 스웨터에 옭아맸다.

눈이 가려진 가현은 긴장해 더 예민해졌다.

바스락거리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셔츠를 벗는 소리에 입안이 바짝 말랐다. 귀를 혀로 핥아 올리는 감각과 거친 숨결이 가현의 귓가에 흩뿌려졌다.

“비를 흠뻑 맞아 젖은 널 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한 줄 알아?”

긴장한 가현이 대답도 못 하고 벌어진 입으로 숨을 골랐다. 그는 물기가 촉촉한 목소리로 뇌쇄적인 말을 귓가로 쏟아냈다.

“단번에 삼켜 버리고 싶은 걸 겨우 참았어. 오늘 네가 내 곁에 남지 않았다면 난 변태 새끼처럼 널 범하는 상상으로 술에 취했을 거야.”

지한의 노골적인 말이 귓가를 가득 채울 때 그의 손길이 몸을 가린 얇은 레이스를 뜯어냈다.

결박되어 있던 풍만한 정점이 흰 살결과 함께 그의 눈앞에서 흔들렸다.

“아이처럼 물고 빨고 싶은 걸 얼마나 참았는지 넌 모를 거야.”

귓가를 맴돌던 숨결이 목덜미를 따라 내려가 쇄골 중앙에 움푹 파인 우물로 혀를 밀어 넣었다.

가현이 두 손이 결박된 채 바르작거렸다.

단단해진 정점을 훑던 차가움이 가시고 뜨거운 숨결이 가현을 삼켰다. 그는 가현을 야금야금 먹어 치울 듯 빨아들였다.

앗.

그는 통제를 잃고 가현을 몰아세웠다.

작은 손이 자극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향하던 지한의 얼굴을 끌어올려 입술을 겹쳤다.말리지 않고 지한은 입술을 겹쳤다.작은 손은 결박되어 바르작거렸다.

“키스해줘요, 지한 씨.”

아래로 향하던 지한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입술을 삼켰다. 놓아주지 않을 듯 빨아드리는 입술에 가현의 얼굴이 딸려 올라갔다.

오래 입안을 맛보던 지한은 입술이 가지 못한 길을 따라 손끝이 모험을 시작했다.

차가운 손끝이 선을 그으며 아래로 향했다. 자극에 뜨거워진 가현의 살결에 닿았다.

뜨거운 살결에 차가운 손끝이 닿자 찌릿하게 더 큰 자극을 바라는 몸이 반응했다.

크고 긴 손가락이 기대하는 예민한 살결에 그림을 그리듯 점점이 차가운 손끝을 각인시켰다.

가현은 참지 못하고 몸을 바르작거렸다.

“아직도 떠나고 싶나?”

절대 그런 말이 못 나오게 작정한 그의 손이 가현의 깊은 곳을 침범했다.

몸이 휘어드는 가현이 대답을 못 하자 대답을 재촉했다.

“말해봐. 정가현.”

“가고 싶지 않아요.”

“다시는 떠난다는 말은 나오지 않게 내 생각만 나게 해 줄게.”

지한이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가현을 다그쳤다. 그의 손끝에 가현이 신음을 흘렸다.

그는 자신 외에는 아무 생각도 못 하게 해주겠다는 첫 정사처럼 가현이 다른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다그쳤다.

손가락을 따라 자극이 극에 달하자 지한은 더는 참지 못하고 손을 걷어냈다.

“더는 안 되겠어.”

가현은 빠져나가는 손길에 진저리를 치며 결박된 팔을 바르작거렸다.

여운을 가다듬을 틈도 주지 않았다. 그의 버클이 열리는 소리에 심장이 주체하지 못하고 뛰었다.

무섭도록 뜨거운 기운이 손길이 오가던 곳에 비벼졌다.

그것만으로도 입이 바짝 마를 만큼 예전 그와 나누었던 정사가 떠올라 절로 몸이 움직였다.

“이미 길든 몸이 기억을 잘하는데.”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노골적인 야한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야한 모습으로 내 앞에서 유혹하고 있으면서 하지 말라니. 지금 얼마나 자극적인지 넌 모를 거야.”

지한의 뜨거운 것이 가현을 잠식했다.

숨도 쉴 수 없는 뜨거운 것이 가현을 꿰뚫고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급작스러운 큰 자극을 감당하지 못하고 얕게 숨을 몰아쉬며 적응하려 애썼다.

그는 작게 욕을 내뱉었다.

“젠장.”

오랜만의 정사는 두 사람을 더 달궜다.

가현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그가 주는 자극에 길들여진 몸은 본능만 살아남은 것처럼 작은 자극에도 절로 몸을 움직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노골적인 움직임에 민망한데도 어설픈 가현의 움직임에 뜨거운 기운은 더 부피를 키우며 가현을 건드렸다.

길들여지는 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