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어렵게 연락이 닿은 주안과 만나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주안은 살아 돌아온 가현을 반갑게 맞았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세상에 자신이 살아온 걸 반겨주니 고마웠다.
“주안아. 오랜만이야.”
“가현아! 어떻게 된 거야?”
“말하자면 사연이 길어. 나 사실 기억을 잃었어. 너도 기억을 못 했는데 얼마 전에 기억이 돌아오고 파티에서 만났던 네가 생각났어.”
“기억을 잃었다고?”
놀란 주안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물을 마신 그가 가현이 사라진 시점을 기억하며 말해 주었다.
“너 사라지고 온갖 소문이 다 돌았어. 돌아와서 정말 기뻐.”
“고마워. 나 같은 사람은 잊고 세상은 너무 잘 살아서 의기소침했어.”
“무슨 말이야. 네가 돌아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래서 말인데,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아는데 엄마를 찾을 수 없어. 찾는 걸 도와줘 제발.”
“당연하지. 너희 어머니가 나에게 얼마나 잘해주셨는데 형이 검사잖아.”
“나 행방불명으로 되어 있는데 자세한 건 형이 알게 하면 안 돼. 혹시 모르잖아.”
“알겠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엄마와 헤어졌던 그곳부터 시작이었다.
아버지를 해치고 엄마와 자신을 감금했던 자들은 작은 깡패집단이라고 했다.
그들을 떠올리니 살이 떨렸다. 자신을 끈적한 눈으로 보던 남자들과 실제로 자신에게 다가오던 남자는 우두머리에 의해 제지당해 가현은 무사할 수 있었다.
“그 깡패들 이름을 알 수가 없어.”
“장형원? 그 조직 이름 같은데 조금 더 알아볼게.”
“고마워. 너까지 끌어들여 미안해.”
“무슨 말이야. 가현아, 그런 생각하지 마. 그런데 너 결혼했다고 했잖아. 얼마 전에 납치사건이 너라고.”
“맞아. 어쩌다 그렇게 됐어.”
“이상한 건 널 구해 낸 사람 중 일부가 장형원의 사람이야. 기사에 나왔는데 몰랐어?”
“뭐?”
가현은 납치사건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돌아온 기억에 집중하느라 최 이사가 꾸민 납치사건은 멀리하고 있었다.
가현은 정리되어 가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생각은 멀리 나아가는데 입으로는 주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나도 알아볼게. 엄마 찾는 걸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아니야, 나도 너희 어머니 꼭 찾고 싶다.”
“그래, 나 먼저 일어나야겠어.”
가현은 급하게 카페를 나와 터벅터벅 걸었다.
‘지한이 그들을 알고 있다.’
가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에게 기억이 돌아온 걸 말하려고 했다. 엄마를 찾는 건 쉽지 않았고 그의 정보력이라면 손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젠 완전히 알게 될 때까지 지한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제발 아닐 거야. 그 사람이 관련된 일이 아닐 거야.”
가현은 불안한 마음을 떨치려 자신을 다독였다.
***
가현은 작은 단서라도 찾으려 아버지의 회사 동료를 수소문했다. 가현의 기억에 남자들은 아버지의 사업확장을 거론하며 협박했었다. 회사 상황을 전혀 몰랐던 가현에게 가장 큰 숙제였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가현에게 주안의 도움이 켰다.
“아버지와 형의 말로는 무리해 사업확장 중이셨대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기업이 무너질 때는 가관이었더라.”
“어땠는데?”
“남은 회사를 서로 갖겠다고 이권 다툼이 엄청났어. 그중에 너희 작은 아버지들이 그 지분을 서로 가지려고 싸움이 엄청나게 났나 봐.”
“그랬구나.”
“네가 살아 돌아왔으니 아버지 재산도 돌려줘야지.”
주안은 화가 나는지 가현의 편을 들며 안타까워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난 엄마가 어디에 살아계시는지 그게 더 중요해. 혹시, 아빠처럼 돌아가셨다면…….”
생각하기 싫은 상상을 떨쳐버리려 머리를 흔들었다.
“살아계셔도 어디서 힘들게 사시면 어떡하나 걱정이야.”
가현은 눈물을 참으려 입술이 떨렸다. 결국 참은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걸 보는 주안은 희망을 가지라 위로했다.
“울지마, 가현아 꼭 살아계실 거야.”
“돌아가셨다는 생각은 절대 안 해. 그랬다면 기사에 행방불명으로 나지도 않았을 거라 믿어.”
“맞아. 꼭 살아 널 기다리실 거야.”
“그래.”
가현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들의 이익으로 엄마가 험한 일을 겪고 있다면 한시라도 구해 내야 했다. 찾는 시간이 느려질수록 가현의 근심은 커졌다.
가현은 수소문 끝에 아버지가 신뢰하던 김 부장을 만났다. 그는 다른 회사를 차려 운영 중이라고 했다.
“네가 살아 있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구나.”
“혹시 어머니 소식은 아세요?”
“아니, 너랑 사모님 두 사람 모두 행방불명으로 알고 있었지.”
“전 회사 상황은 전혀 몰랐어요. 갑자기 남자들이 집에 들이닥쳐 저희를 끌고 갔고 끌려간 곳에서 아버지를 만났어요. 전 그 당시 회사 상황이 어땠는지 알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그때는 사장님이 사세 확장을 한다고 돈을 많이 끌어왔어.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임원진들이 말했지만 이미 사장님은 결정하셔서 소용없었어. 그 과정에서 무리하게 안 좋은 사람들 돈까지 투자받았던 것 같다. 그걸로 깡패 같은 놈들이 몇 번씩 찾아오고 했어.”
“혹시 장형원 사람들인가요?”
“그건 모르겠지만 사장님이 그렇게 된 건 장형원 그들이었지.”
“우리 회사와 관련 없는 일도 도맡아 했고 회사보다 엉뚱한 일에 뛰어다니시는 일이 많았단다. 그 일은 정확히 모르겠다.”
가현은 손에 땀이나 두 손을 문질렀다.
“다음에라도 더 기억나는 게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해 주세요.”
“그래, 사모님을 찾나 본 데 꼭 찾길 바란다.”
“네, 감사합니다.”
가현은 김 부장을 만나고 온 후 악몽에 시달렸다.
가현이 몸을 뒤틀며 괴롭게 신음했다. 늘 아빠는 어두운 지하창고에서 무릎을 꿇고 그들에게 빌다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가현은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를 잡으려 했다. 애타게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아 애가 탔다. 허공을 휘젓는 손을 덥석 잡아 꿈에서 건져준 건 지한이었다.
“가현아 꿈이야. 괜찮아.”
눈물이 그렁그렁해 잠에서 깬 가현의 머리를 쓸어주는 지한이 걱정스럽게 내려다보았다.
“또 같은 꿈을 꿨어?”
“네, 그런가 봐요,”
온몸이 경직되어 욱신거릴 정도였다.
지한이 팔베개해주며 가현을 끌어안아 등을 쓸었다. 가현은 그의 손길을 느끼며 멍하게 안겨 있었다.
납치 후 그는 세심하게 가현을 배려해 고마웠지만, 그가 자신의 과거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에게 다가가던 마음은 주춤했다. 가현은 그의 품에서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가현은 지한의 아침 출근 준비를 도왔다. 그가 넥타이를 매는 동안 재킷을 손질했다.
그녀가 챙겨주는 옷을 입은 지한이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가현의 얼굴을 쓸었다.
“살도 빠지고 안색이 너무 안 좋아졌어.”
“괜찮아요. 낮에 쉬면 돼요.”
“쉬지 않고 매일 외출한다고 들었어. 정말 아무 일 없는 거야?”
그가 날카로운 눈매로 그녀의 일과를 다 아는 것처럼 물었다. 긴장됐지만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다.
“악몽을 매일 꾸고 있어서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풀려고 나가요. 혹시 나 감시해요?”
“감시 같은 건 하지 않아. 오늘 일정 있나?”
“별일 없어요.”
“그럼 점심때 나와 식사나 같이 해.”
“바쁘잖아요.”
“밥은 먹고 해야지. 오후에 봐.”
그가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가 보낸 차를 타고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했다. 그와 첫 데이트를 했던 ‘오츠’ 퓨전 음식점에 도착하니 강 교수가 가현을 반겼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이야기 전해 들었습니다. 결혼 축하해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잘 지내셨어요? 축하 감사합니다.”
예전과 같은 자리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지한은 그사이 늦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같은 자리에 앉았지만, 정원의 풍경은 볼거리가 많아졌다.
봄 햇살 아래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고 색색의 꽃들과 초록 옷을 입은 나무들이 싱그러웠다. 말라 있던 잔디는 선명한 초록색 옷을 입고 구석에 핀 들꽃을 오고 가는 벌과 나비들이 정원을 가득 채웠다.
“정원이 많이 달라졌어요. 너무 예뻐요.”
“저 정원이 있어 힐링한답니다.”
강 교수는 오늘 메뉴를 안내하는 안내판을 건네주었다.
“두 분 처음 봤을 때 알아봤죠. 결혼하실 줄 알았어요.”
“그때는 전혀 결혼할 마음이 없었어요. 그럴 상황도 아니었고요.”
“상황은 만드는 거죠. 차 대표님이 여자에게 그렇게 말이 많은 것도 처음이었고 가현 씨는 너무 티가 났으니까.”
강 교수에게 듣는 말은 민망하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로 대답해 주었다.
“제가 그렇게 티가 많이 났어요?”
“조금. 나이가 드니 보이는 정도였어요. 오늘은 덴마크 가정식이에요. 대표님은 늦으시나요?”
“네 조금 늦을 거예요. 바쁜 분이니까요.”
“그럼 식전 차를 먼저 드릴게요.
창밖을 바라보던 가현은 주안의 전화를 무심코 받았다. 오늘따라 그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길들여지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