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아버지, 좋은 물건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아는 다기원이 있단다. 주로 재벌가 사모님들이 주 손님이라서 그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곳이 있다니 가봐야겠어요. 지금 준비하고 나올게요.”
가현이 표정이 밝아져 주방을 나갔다. 두 사람이 가현을 보고 안심했다.
“털고 일어난 것 같은데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가현은 교진이 안내한 다기원에서 손쉽게 선물을 구매할 수 있었다.
큰 숙제 하나를 해결한 뿌듯함에 기분이 좋았다.
“진작 아버지께 여쭤볼 걸 그랬어요. 전 아내인 제가 더 그 사람을 모른다고 의기소침했어요.”
“대표님은 자신에 대해 말하는 분이 아니야. 그분 옆에 오래 있었던 사람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야. 그러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마라.”
“네, 제가 속이 좁았어요.”
가현이 구매한 선물을 차에 살고 교진에게 먼저 돌아가라 말했다.
“이제 정말 봄 날씨예요. 옆에 공원이 있던데 잠시 걸으며 산책하고 갈게요.”
“몸은 괜찮겠어? 함께 갈까?”
“괜찮아요.”
“여기에 고 기사를 남겨둘 테니 타고 와.”
“타고 가세요. 저는 택시 타거나 아니면 연락할게요.”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를 보고 돌아섰을 때, 검은 차가 옆으로 줄지어 섰다.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차에서 우르르 내리더니 가현을 에워쌌다.
“당신들 뭐예요? 왜 앞길을 막죠?”
가현이 둘러싼 남자들을 돌아보고 화를 냈다. 검은 세단의 창문이 열렸다.
“이게 누구신가? 나 기억합니까? 최치수 이사님 모시는 사람인데 그때 이사님 옆에 있었는데.”
가현은 살벌한 분위기의 남자들을 보고 놀라 몸이 굳었다. 반응 없는 가현을 보고 그들 중 우두머리가 곱지 않게 말을 뱉었다.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위압감에 기가 눌렸다.
“기억 못 하는구나. 그거야 상관없고. 우리 최 이사님이 할 이야기가 있답니다. 우리 차 대표님 와이프 정가현 씨 잠깐 갑시다.”
심장이 또다시 방향을 잃고 뛰기 시작했다. 치수의 부하가 차 문을 열었다.
“난 탈 이유 없어요. 할 말 있으면 직접 오라고 해요.”
가현이 용기를 내 깐죽거리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가 가현의 말에 크게 웃으며 재밋거리를 찾은 것처럼 말했다.
“그럼 곤란해질 텐데.”
톤이 낮은 가벼운 목소리가 오히려 섬뜩했다.
가현이 위험을 감지하고 전화를 걸자 옆에 있던 남자가 핸드폰을 뺏어 바닥에 떨어뜨려 발로 부숴버렸다.
놀란 가현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에요?”
“핸드폰은 왜 부수고 그러냐. 손님 물건인데 조심해야지.”
“죄송합니다.”
두 사람은 죄송하다고 말은 하지만 핸드폰 정도야 아무렇지 않다는 반응이 말과 달랐다.
“우리 애들이 잘못한 거니까 새로 하나 해 드릴 게 우선 탑시다. 내가 해코지라도 할까 봐 그럽니까. 이 벌건 대낮에 그쪽을 뭘 어쩔 거야. 걱정하지 말고 타십쇼. 우리 이사님이 그렇게 고지식한 분은 아니란 말이지.”
“…….”
열린 차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위험 신호가 머릿속을 울렸다.
가현은 또다시 과호흡이 올까 호흡을 가다듬으며 에워싼 남자들 틈을 노려 도망치려 했지만 금세 그들에게 가로막혔다.
“참, 사람 짜증 나게 만드네. 태워드려야 하나보다 규식아.”
“네, 형님.”
남자들이 에워싸 다가오자 그들을 피해 차에 탈 수밖에 없었다.
가현은 양손을 맞잡고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차 안은 숨이 막혔다.
“어디로 가는 거죠?”
“가보시면 압니다.”
험상궂게 생긴 남자는 대답도 귀찮아했다.
가현은 어디로 가는지 몰라 더 불안하기만 했다. 지한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이 최치수라는 위험인물이 어떤 행동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현은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려 숨을 골랐다.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해 밖 간판을 보기도 했다.
큰 오피스텔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긴장한 가현이 탄 문이 열렸다. 무서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위협적인 남자들이 데려간 정형화된 오피스텔에 최치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기분이 좋아 보여 진심으로 가현을 반겼다.
“이제야 오셨어!”
“무슨 짓이죠?”
“조용히 할 말이 있어서 모셔왔는데 섭섭하네.”
“저랑 따로 할 이야기가 뭐가 있죠? 제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래서 차지한이 꽂혔나?”
“…….”
“겁대가리 없이 할 말 다 해서?”
최치수가 소파에 기대 실실 웃으며 사람 속을 뒤집었다. 그의 협박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할 말이 뭐죠?”
“기억이 없다던데. 거기다 차지한이 살렸고.”
다른 이들이 모르는 사실을 어디서 캐냈는지 가현의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
“무엇을 알고 싶은 거죠?”
“자, 이야기하려면 앉아봐. 당신이 나한테 필요한 사람인가 확인하는 중이니.”
가현이 인상을 썼다. 앉지 않고 버티고 있어 치수가 손짓해 그의 부하가 억지로 앉게 했다.
“이제 들을 준비가 됐나?”
“괜한 헛소리 하지 말고 말해요.”
“자꾸 날 자극하는데 그러다 정말 큰일 나는 수가 있어. 당신 남편도 못 보고 말이야.”
웃음기가 가신 그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차지한이 당신을 찾는다고 혈안이 될 거야. 내가 본 넌 차지한이 차지한 일부를 나에게 돌려줄 수 있게 해줄 좋은 미끼거든. 지 마누라가 잡혀 있는데 안 내놓고 배기겠어.”
가현은 이 와중에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 치수가 묘한 표정이 되었다.
차지한이 자신을 사랑한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그를 잡은 건 자신이지 그가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눈앞의 이익을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당신은 차지한을 모르네요. 그 사람은 나 때문에 자신이 성취한 걸 쉽게 놓치지 않을 거예요.”
“과연 그럴까? 네가 제대로 모르지, 그 자식이 어떤 새끼들을 부리는지. 그 자식이 드러나지 않아도 나 보다도 더 깡패 새끼야.”
“당신이 말한 그런 사람이 차지한이라면 내가 그 사람 옆에 있다고 해서 당신이 아는 차지한이 내려놓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헛수고했네요.”
“네 말대로 헛수고면 널 가만 안 둘 거야. 그런데 내가 촉이 좋거든. 이 바닥에 오래 굴러먹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단 말이지. 차지한을 잡을 좋은 미끼는 너야. 그러니 내가 얻을 때까지 얌전히 있어 그럼 무사히 보내주지. 나도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야.”
“날 감금하겠다는 거예요? 미쳤어요?”
치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둬. 명색이 차 대표 마누란데 함부로 하지 말고.”
“네, 형님.”
가현의 팔을 잡아 일으킨 남자가 옆 방에 가현을 밀어 넣었다.
문고리를 돌려도 열 수 없었다.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자 자신을 가둔 남자가 짜증을 냈다.
“이거 열어요. 당장 열란 말이야.”
“입 다물어라. 일주일 정도만 참으면 끝날 테니까”
오피스텔 방 안에 갇힌 가현은 가만있지 못했고 방안을 왔다 갔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핸드폰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자신 때문에 지한에게 불리한 상황이 될까 걱정이 되었다. 치수의 반응을 보고 지한이 위험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자신이 독이 될까 노심초사했다.
딱히 방법은 없어도 그에게 자신이 피해가 될까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
지한에게 연락한 교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대표님, 가현이가 5시간째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딜 갔습니까?”
지한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저와 백 회장님 선물 준비로 다기원에 갔다가 제가 먼저 들어왔습니다.”
“우선 집에서 기다려 보세요. 제가 알아보죠.”
달라진 분위기에 옆에 있던 명 비서가 심상치 않은 걸 느끼고 물었다.
“사모님께 문제가 생겼습니까?”
“5시간째 행방이 묘연해.”
잔뜩 찌푸린 미간이 펴지지 않았다. 놀란 명 비서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네?!”
“명 비서. 청담동에 있는 다기원으로 사람을 보내. 다기원 CCTV 확인하고 영상 확보해, 가현이 마지막 위치는 정 실장님께 물어봐. 그리고…… 조형원 애들 풀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최근 최치수 쪽이 심상치 않았어. 우리 쪽에서 감시하는 것도 눈치챈 거 같고. 실수한 게 있긴 하지만 그만큼 조심하겠지. 그 녀석들도 고생했으니까.”
“알겠습니다.”
명 비서가 빠르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정가현 어디 있는 거야.”
지한은 창밖을 노려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몇 시간이 지나고 명 비서가 사무실로 급하게 들어섰다.
“이것 좀 보십시오.”
그가 내민 태블릿을 받아 CCTV 영상을 확인했다. 가현이 치수의 부하인 깡패들에게 에워싸여 차에 타는 모습이었다.
핸드폰이 박살 나는 걸 보고 지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손에 들린 태블릿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영상에는 분명 겁에 질렸지만 버텨내는 가현의 모습이 보였다.
뻗쳐 오르는 화에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목소리가 낮게 깔려 당장이라도 사람 하나 숨 막히게 할 정도였다.
“최치수 어디 있어?”
“소재 파악 중입니다.”
명 비서의 손에 들린 부서진 핸드폰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 새끼 당장 찾아!”
지한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저승사자 같았다.
길들여지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