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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는 밤-41화 (4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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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며칠 안 된 아내를 이곳에 혼자 뒀는데 내가 모를 수가 있나?”

“내가 애완견이에요? 감시해요?”

“우리나라가 아닌 곳이야. 한국보다 안전하지 않아.”

“한국에서 우연히 알게 됐어요. 그리고 여기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고요.”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지한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모로코 왕자를 우연히 알게 됐다?”

“당신이 믿지 않아도 괜찮아요. 왕자인 것도 이곳에 와서 알았으니까. 놔줘요.”

“믿어보도록 노력하지. 하지만 또 이상한 말이 들리게는 하지 마.”

무슨 말을 들은 걸까?

그는 여전히 자신을 믿지 않고 있다. 가현은 지한의 손을 뿌리치며 돌아섰다.

“피곤해 보여요. 빨리 쉬세요.”

“내일 아침 일찍 여행을 떠날 거야. 내가 1박 2일을 부재했던 보상이야. 그 옷도 가져가면 근사하겠어.”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그는 무엇이 잘못된 줄도 몰랐다. 가현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돌아섰다.

***

최치수의 사무실로 들어오는 부하의 얼굴이 험상궂게 인상을 쓴 채였다.

“선물은 잘 전달했냐?”

“형님, 그 새끼가 선물 돌려보냈습니다. 나 참.”

“뭐?”

골프채를 휘두르던 치수가 골프채를 공중에 든 채 부하를 보았다. 그의 능글거리던 눈이 살기로 변했다.

부하는 그의 변화에 아차 싶어 몸을 사려 고개를 숙였다.

“측근만 참석해서 축의금도 선물도 받지 않는다고 돌려보냈습니다.”

“지랄하고 있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려고 했더니. 화를 부추기는군.”

치수는 책상에 있는 서류를 꼼꼼하게 읽었다.

“차지한 그 새끼가 결혼을 할 줄을 누가 알았겠어. 하면 백 회장 딸이랑 할 줄 알았지.”

서류에 가현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계집애가 취향인 줄은 몰랐지.”

낄낄거리던 최치수가 손가락 두 개를 튕겨 가현의 사진을 툭툭 쳤다.

“이름과 나이 외에 뭐가 아무것도 없잖아.”

“알아봐도 인사기록 카드 외에 학교에서도 아무도 모른답니다.”

“이 계집애 자세히 좀 알아봐. 차지한 잡는데 이만한 미끼가 없겠어. 느낌이 딱 오거든.”

치수는 지한을 어떻게 잡을지 궁리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 있었다.

***

동이 트기도 전에 짐을 꾸렸다. 전날 많이 걸어 잠이 쏟아졌다.

메르주가에 도착해 오늘의 여행지를 알았다. 드넓게 펼쳐진 모래언덕이 종착지였다.

건물도 모래언덕도 하늘 외엔 온 세상이 황금빛 풍경으로 경이로웠다.

“사막으로 신혼여행을 간다니 내 신혼여행은 파란만장하군요.”

“사막에 있어 보면 다를 거예요. 평생 한 번은 경험해 볼 만한 곳이죠.”

사막을 바라보는 가현은 이젠 큰 기대도 없어 보였다.

리안은 멋진 여행이 될 거라 장담했지만 찌는 듯한 더위에 사막까지 직접 찾아가고 싶진 않았다.

“베이스캠프까지 낙타를 타고 갈 거예요. 이거 받으세요.”

그가 준 것은 푸른색의 옷이었다.

“베르베르인의 전통 복장인 젤라바입니다. 사막에서는 이 옷이 유용해요.”

주로 푸른빛의 얇은 천으로 된 원피스 형태의 옷이었다. 가현은 그들의 복장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진작에 입고 다닐 걸 후회가 될 정도로 생각보다 시원하고 좋았다.

지한이 입고 나온 데리아도 다르지 않았다. 모래바람으로 얼굴까지 가린 그의 눈매가 더 돋보였다.

옷을 입고 나오자 심상치 않던 바람이 더해져 주위가 뿌옇다. 결국, 모래바람이 일어 출발이 지연되었다.

서걱서걱한 모래가 뺨을 문지르는 게 느껴졌다.

더 난감한 건 말도 타보지 않은 가현이 낙타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보기보다 거대한 녀석을 타는 것이 무서웠다.

지한이 낙타 타는 것을 도와주어 간절하게 물었다.

“다른 이동 수단은 없어요? 낙타를 탈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요.”

“성격은 안 좋지만 타보면 말 타는 것과 같아.”

“누굴 닮았네요.”

지한은 피식 웃고는 가현을 태우고 그도 뒤에 있는 낙타에 올라탔다.

낙타를 타고 가다 보니 커다란 모래언덕이 산처럼 웅장하게 펼쳐졌다. 가도 가도 사막뿐이라 할 말을 잃었다.

사막에 오니 말을 하는 것보단 그저 바라보는 것이 익숙했다.

더운 날씨만 아니라면 딱 좋을 풍경이 가현은 좋았다.

낙타가 모래언덕에 줄지어 그림자를 드리우고 걷다 보니 사진으로 봤던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비현실적 풍경과 뜨겁게 내리쬐는 열기와 흔들리는 낙타 등 위에서 자세를 잡는 데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천막 몇 개가 전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뜨거워지는 햇살을 피해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네 개의 천막은 크기가 작았지만, 원형의 천막은 다른 천막에 비해 상대적으로 컸다.

“원형 천막에서 쉬시면 됩니다. 식사는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리안이 입구를 막고 있는 장막을 걷어주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영화에서 볼 법한 화려한 침대와 모랫바닥에 깔린 카펫 위에는 여러 개의 쿠션이 더없이 편해 보였다.

카펫 위 쿠션들이 어딘가 많이 본 것 같았다. 아마드를 만났을 때 갔던 왕족들이 쉬는 장소라는 곳과 닮아 있었다.

“사막 투어가 이렇게 화려해요?”

“모로코 왕실에서 전용기와 사막 여행까지 함께 준비해 줬어.”

“그래서 이렇게 화려했군요.”

“왕실에서 쓰는 것과 같다더군. 어때?”

가현은 테이블에 놓인 촛대와 잔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너무 사치스럽고 이런 걸 누려도 되나 부담돼요.”

“신혼여행인데 이 정도는 돼야지.”

신혼여행을 돈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함께 있어 주기만 해도 좋았다. 그는 가현이 결혼한 이유를 제대로 몰랐다. 그에게 바란 건 그의 곁에 있는 것뿐이었다.

“이런 이벤트 필요 없어요. 난 대표님 곁에 있고 싶을 뿐이에요.”

“난 바쁜 사람이고 네 곁에만 있을 수 없어. 내 아내로 평생 옆에 있고 싶어 하지 않았나?”

지금 같은 말씨름이 귀찮다는 듯 되물었다.

‘당신 곁에 평생 있는 방법이 당신 아내일 뿐이었어요.’

지한의 생각은 매우 달랐다. 어쩌면 그의 곁에 있으려는 마음이 욕심일 것이다. 그래도 그를 포기하기엔 그를 향한 마음이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네, 제가 선택한 길이죠. 죄송해요.”

“정가현! 가현아.”

지한은 한숨을 내쉬고 가현에게 다가왔다. 그가 이마를 문지르며 쉽게 풀리지 않는 숙제를 만난 것처럼 난감해했다.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

“제가 기대가 컸나 봐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가 부르는 이름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래도 가현은 입은 후드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

작렬하는 해가 이글이글 모래언덕을 달구고 있었다. 숨 막히게 파란 하늘 아래 황금빛 언덕으로 무작정 걸어갔다.

모래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 꽤나 오래 걸렸다. 숨이 차 자리에 주저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모래언덕만 끝없이 보였다.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이곳이 오히려 편리한 도심보다 좋았다. 아무 잡념도 걱정도 없이 뜨거운 열기에 함께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시간관념도 사라질 정도로 사막 한군데는 조용하고 황량했다. 꼭 가현의 마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자신에게 어울리는 곳이었다. 뒤쪽 언덕을 올라온 지한이 가현의 옆에 앉았다.

그는 물방울이 맺힌 음료병을 건넸다. 음료병을 잡으니 새삼 이곳의 열기가 실감 나게 시원해 좋았다.

음료병을 돌려 열어보려 해도 열리지 않았다. 두 손에 힘을 줘 용을 쓰고 있으니 지한이 음료병을 돌려 손쉽게 병뚜껑을 열어주었다.

“고마워요.”

“난 그렇게 살가운 사람이 아니야.”

“알아요.”

그는 햇살에 눈을 찌푸리고는 가현이 보고 있는 사막의 모래언덕에 시선을 고정하고 가현을 달랬다.

“노력은 해보지. 하지만 원하는 대로 해줄 수는 없어.”

그로서는 많은 걸 배려한 대답이었다. 늘 삐딱하게 말하던 남자에게 듣는 말치고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 정도의 대답에 감동까지는 아니어도 늘 고압적인 어투로 명령하던 그에게 들어보지 못한 말이라 좋았다.

“고마워요…. 저도 노력해 볼게요.”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말없이 사막을 보고만 있었다.

“이곳이 마음에 들어. 머릿속을 비우기 가장 좋은 장소 같군.”

“저도 그래요. 여기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

“부담스럽다더니.”

“저 화려한 잠자리만 빼고요.”

“여자는 도통 모르겠어. 오히려 일이 쉽지, 제일 어려워.”

“대표님에게 어려운 것도 있나요? 전 대표님이 제일 어려워요.”

“호칭은 언제 바꿀 거야? 가현아.”

‘가현아’라는 이름만 부르면 가슴이 쑥하고 바닥까지 꺼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여지없이 심장이 두근두근 주책맞게 뛰었다.

“노력 중이에요.”

“지금 불러. 한 열 번? 좋아, 그 표정 보니 절대 하지 않을 것 같고 딱 세 번만 불러.”

“그렇게 말하면 더 못 부르겠잖아요.”

“가현아, 가현아. 가현아. 쉽네.”

이 남자는 심장을 녹아내리려고 작정했나 보다.

길들여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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