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들여지는 밤-40화 (40/67)

40

아마드가 사람을 불러 이야기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닭고기야. 비둘기는 싫어?]

“응. 비둘기는 먹고 싶지 않아.”

가현이 파스티야를 한 입 베어 물고는 숟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가현의 속도를 보고 아마드가 입을 쩍 벌렸다.

[너 아침 안 먹었어? 조금 전에 점심 전이라고 정색했어. 지나치게 잘 먹잖아.]

“여기 음식이 특별한가? 맛있어.”

[다행이야 입맛에 맞다니. 넌 모로코에 왜 온 거야?]

“신혼여행.”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말 놀랐는지 아마드는 큰 눈이 더 커져 얼빠진 표정으로 먹는데 열중하는 가현을 보기만 했다.

“왕자님에게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표정 너무 바보 같아.”

[이건 내가 왕자라고 밝힌 것보다 더 충격적이야. 언제 결혼한 거야? 신혼여행은 혼자 오는 거야? 내가 아는 신혼여행 그게 맞는 거야?]

“질문은 하나씩 받을게.”

아마드가 처음 만나 가현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했다. 흥분을 가라앉히려 심호흡한 아마드가 천천히 질문했다.

비스듬하게 쿠션에 기대있던 몸을 바르게 하고 대단한 대담이라도 하는 태도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가현은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기 바빴다. 그는 또박또박 질문하고 착한 학생처럼 대답을 기다렸다.

[결혼은 언제 한 거야?]

“이틀 전. 아니다 오늘이면 3일 전.”

[왜 신혼여행을 혼자 왔어?]

“같이 왔는데 그 사람이 아주 바빠. 라바트에 도착해서 바로 일 때문에 시에라리온에 갔어. 오늘 저녁에 돌아와.”

[시에라리온? 신혼여행을 와서 일하러 갔다고?]

“그렇게 됐어.”

[어떤 사람이길래. 그렇게 해?]

적개심이 가득한 아마드는 처음 보았다. 늘 허허실실 웃던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니 다른 사람 눈에 정말 나쁜 놈으로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현이 먹던 걸 멈추고 물을 마셨다. 자신의 처지를 하나씩 나열하니 입맛이 사라졌다.

“아주 바쁜 사람.”

[우리 만났을 때 물어볼 걸 그랬어. 결혼할 남자가 있냐고.]

“그때는 이 사람과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

[내가 한발 늦었네.]

아마드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나라의 왕자가 자신이 결혼한 걸 아쉽다고 말하니 이상했다.

처음부터 가현에게 호의적이던 아마드를 처음 본 날부터 편하게 대했다. 아마드의 친화력은 어떤 사람도 호감이 가게 할 에너지가 있었다.

“아쉽다고 말해 주니 지금 신혼여행 상황이 위안이 되네. 황공합니다. 왕자님.”

가현은 가이드가 살짝 당황하는 걸 보고 풋 웃었다.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아마드는 옆에 기다리는 사람에게 민트티를 가져오라 말해 가현도 부탁했다.

“모로코는 민트티를 많이 먹는다고 들었어. 생각보다 이 민트티도 여기 음식도 좋아.”

[내가 한국에서 먹었던 전통차도 맛있었어. 가끔 생각이 나.]

“아, 대추차.”

[이곳과 정 반대 날씨가 신기하고 정말 견디기 힘들게 추웠지만, 가끔 그리워.]

아마드는 평소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 마셨으면 일어나자, 혼자 저녁까지 놀아야 한다며.]

“어딜 가려고?”

[네 덕분에 한국을 잘 구경했으니까. 이번엔 내가 안내해야지.]

가현을 재촉해 차를 타고 출발했다. 도심을 벗어나 꽤 멀리까지 달렸다.

“정말 어딜 가는 거야? 저녁까지 돌아올 수는 있는 거야?”

의심의 눈초리에 아마드가 크게 웃었다.

[너 그런 말도 왕족에게는 불경한 행동이야.]

“아, 네. 죄송하네요, 왕자님.”

그의 말처럼 몇 분이 지나 산 중턱에 온통 하늘색의 마을이 나타났다.

티끌 한 점 없는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시리게 맑은 하늘과 영롱한 파란색 페인트칠이 된 마을은 잘 어울렸다.

가현은 창밖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두 사람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쉐프샤오엔에 도착했다. 골목마다 온통 아름다운 파란색이 반겼다.

골목 어귀를 걸어가며 기념품을 파는 곳과 그림들을 감상했다.

“와. 정말 예뻐.”

[좋아할 줄 알았어. 내가 한국 궁에 갔을 때도 너 같았어?]

가현이 뛰어다니며 좋아하는 모습에 키가 큰 아마드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아마드의 기억은 추운 고궁을 거닐고 있는 모양이었다.

큰 모자챙을 젖힌 가현의 얼굴이 하얗게 빛이 났다. 그녀가 아마드를 올려다보며 눈을 찡긋했다.

“아마도?”

아마드는 ‘설마’라며 앞서 걸어 나갔다.

두 사람을 따르는 경호원들이 줄지어 따라와 다른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조용한 곳으로 갈까. 여기는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두 사람은 한낮의 더위를 피하러 그늘진 이층 테라스에 앉았다.

[널 세 번이나 만날 줄은 몰랐어. 만약 세 번째 만나면 너에게 프러포즈하려고 했지.]

“뭐? 말도 안 돼.”

가현은 어이없어했지만 아마드는 씩 웃으며 정말이라 말했다.

[진짜야.]

“넌 날 전혀 모르잖아.”

[글쎄, 알려고 하지 않았지. 세 번이나 우연히 만나는 건 쉽지 않으니까.]

“그건 그래.”

가현이 그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진작에 나타나지 그럼 결혼 상대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어. 궁금한 게 있는데 만약 너랑 결혼하면 그 여자는 몇 번째 부인인 거야?”

[뭐? 나 아직 결혼한 적 없거든.]

아마드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큰소리로 싱글이라 외쳤다.

“여기는 일부다처제가 가능하지 않아?”

[가능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 그리고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하고 싶어.]

“로맨티시스트였네. 넌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가현은 그가 하는 농담을 웃어넘겼다.

[난 오늘 놓쳤으니 조금 더 걸리겠군.]

“나? 난 좋은 사람이 아니야.”

[그건 상대가 판단하는 거야.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너에게 잘해야 할 거야.]

“네가 말해 줄래? 전혀 모르거든.”

가현은 그의 말에 지한이 떠올랐다.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냉정하게 못된 말만 하던 지한이 얄미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정말 만난다면 꼭 해줄게.]

시계를 보던 가현은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일어섰다.

“가야겠어. 너무 늦으면 안 되니까.”

[신데렐라는 이제 깨어날 때지.]

아마드 덕에 행복한 시간을 보낸 가현은 아마드와 헤어지며 고마워했다.

“오늘 쉐프샤오엔 여행은 민트티 위에 뿌려진 설탕처럼 달콤한 도시였어. 그런 곳을 보여줘서 고마워.”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얼마든지 불러.]

“신데렐라는 누더기로 변할 시간이야. 오늘 정말 고마웠어, 안녕.”

생각지 않은 만남은 우울한 신혼여행을 즐겁게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저녁 식사 시간이 넘어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비행기가 연착됐어. 늦어질 것 같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전화도 아닌 문자 한 통을 뚫어지게 보았다. 예전이라면 지한이 아니라 이조차 명 비서를 통해 알렸을 것이다.

이것조차 고마워해야 하나?

푹푹 찌듯 더운 지방인데도 지한과의 신혼여행이 사무치게 추웠다.

저녁도 거의 먹지 않은 가현은 중정 의자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중정에 불빛이 영롱하게 반짝였다. 쓸쓸한 가현에게 리안이 다가왔다.

리안은 확연히 어두운 가현의 표정을 보고 새로운 재미를 제안했다.

“저 모로코 전통결혼식 옷을 입어보시겠어요? 이곳이 결혼도 신혼 여행객도 많아서 다 준비되어 있어요.”

“제가 입어 봐도 돼요?”

“물론이죠. 다른 곳에는 관광객들 체험 프로그램도 있는걸요.”

“입어보고 싶어요.”

사용인들이 도와 흰 전통의상을 입은 가현은 제법 그럴싸했다. 흰 천에 상아색 레이스처럼 수놓아진 자수가 아름다웠다.

거울을 보며 이리저리 보고 있는 가현에게 사용인들이 칭찬했다.

“여기 일하시는 분들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다들 칭찬하세요.”

“감사해요.”

가현은 머리 장식을 얹고 물었다.

“어울려요?”

“잘 어울리는군.”

뒤에서 낮은 지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현이 머리 장식을 잡고 돌아보았다.

그가 재킷을 한 손에 든 채 셔츠를 걷어 올리며 문에 기대어 보고 있었다.

사용인과 리안은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그가 가현에게 다가와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모로코 결혼식을 하고 싶어?”

“여기 결혼식도 많이 해서 옷이 있다고 해서 입어봤을 뿐이에요.”

가현은 아직도 지한을 향한 미움이 가시지 않았다.

“갈아입고 올게요.”

머리에 쓰고 있던 장식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돌아섰다. 지한은 가현의 팔을 잡아당겼다.

굴곡진 몸매가 그대로 그의 가슴팍에 닿았다.

“아직 마음이 안 풀렸나?”

“놓아줘요.”

굳은 얼굴로 그에게 딱딱하게 말했다.

“아직 안 풀렸네. 비행기 연착은 내 의지가 아니었어.”

“그렇겠죠.”

눈을 마주치지 않고 피하는 가현을 기어코 보게 만들었다.

“이렇게 화만 낼 수 없을 텐데.”

“무슨 말이에요? 알아듣게 말해요.”

“정가현이 모로코 왕자를 어떻게 알지?”

질문은 직설적이었고 그의 목소리에는 음습한 추궁이 담겨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길들여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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