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들여지는 밤-39화 (3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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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한이 좋은 곳이지만 혹시 모를 일을 생각해 남겨둔 일행과 현지 가이드가 함께 움직였다.

도시 중심부에 존재감을 뿜고 있는 아리바트 센터는 한참을 넋을 놓고 구경했다.

“쇼핑하시겠어요? 이곳에서 가장 큰 아웃렛이에요.”

“쇼핑은 괜찮아요. 이런 건축물은 처음 봐요. 여기서 종일 봐도 질리지 않겠어요.”

웅장한 규모의 센터 외관과 파사드 디자인이 더해져 이슬람 문양으로 화려한 옷을 입힌 것 같았다. 아름다운 사람이 잘 차려입어 더 돋보이는 것처럼 빛이 나 보였다.

도심 구경에 빠진 가현을 가이드가 지나치는 곳마다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렇게 멋진 곳인 줄 몰랐어요. 제가 모로코에 무지해서 미안할 정도예요.”

“아그달 거리는 모로코 내의 이슬람 문화와 역사를 잘 간직한 가장 깨끗하고 잘 정돈된 도시예요. 좋아해 주시니 제가 안내하면서 즐거워요.”

거리 구경에 빠져 걷다 보니 시장이 나왔다. 역시 시장은 활력이 넘쳤다.

시장 중간에 오래된 책방이 있었다. 아라비안나이트와 같은 흥미로운 책을 만날 것 같았다.

“저기 들어가 보고 싶어요.”

“아랍어나 프랑스어 하세요?”

그의 질문에 가현이 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었다.

“아니요, 하지만 마법서 같은 멋진 책을 만날 것 같아요. 아랍어는 몰라도 신비로운 내용이 들어 있을 것 같거든요,”

글은 몰라도 아랍어와 아랍문화가 녹아든 표지들은 활자가 아닌 예술품으로 보였다. 책 내용을 물어보고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샀다.

“모로코 사람들은 민트티를 즐겨요. 드셔보시겠어요?”

“민트티 좋아해요. 가요.”

아랍권답게 여자들이 있는지 꼭 확인하고 들어가라는 가이드의 말과 함께 호텔들이 많은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민트티는 입맛에 맞아 가이드에게 모로코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한이 돌아와야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 싶었다.

“다른 도시도 구경하시겠어요?”

“다른 도시까지 가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일행이 돌아와야 가죠.”

“그때는 다른 일정이 있어요.”

그는 알고 있는 눈치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이에요. 가보시면 좋아하실 거예요.”

“가고 싶지 않아요. 이곳에서 기다릴래요.”

가현은 혼자 남겨진 쓸쓸함을 더 느끼고 싶지 않았다. 다른 도시로 가면 더 낯설 것 같아 최대한 라바트를 둘러보기로 했다.

가현은 숙소 침대에 누웠다. 해가 지는 붉은 햇살이 길게 늘어졌다.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아 유난히 피곤했다.

킹사이즈 침대는 쓸데없이 넓게 느껴졌다. 침대 귀퉁이에 몸을 말아 누워 해가 지는 걸 무료하게 보다가 잠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신혼 첫날밤은 가현에겐 지독하게 더운 날씨에 더 지독하게 외로웠다.

몇 시간 자지 않았는데도 금세 눈이 떠졌다.

해가 뜨지 않은 건물 내를 걸어 다니다 수영장을 보고 뛰어들었다.

옷을 입은 채 수영장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더운 열기가 차가운 물에 식어갔다.

“저녁까지 뭘 하지?”

일찍 깨어 하루가 더 길었다.

아침 식사 후 가이드를 재촉해 라바트 시내를 걸었다. 더운 날씨라 낮은 지나치게 사람을 지치게 했다.

열기가 식은 이른 오전은 꽤 괜찮았다.

“오늘은 뻔한 관광해 봐요. 여행자들이 오면 가는 뻔한 곳요.”

“네, 정말 쉐프샤오엔은 안 가보시겠어요?”

“혼자 가고 싶지 않아요.”

속마음을 말하고 나니 마음은 더 허했다.

가이드도 가현의 말을 듣고 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게 식상한 관광을 시작했다.

엄청난 규모의 건물이 지어지던 중 권력자의 죽음으로 중단된 건축물이 도시 한가운데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하산 탑 기둥들 사이를 걸어 구경했다. 넓은 부지에 있는 기둥들이 꼭 자신 같았다.

모하메드 5세 묘 앞 왕의 묘를 지키는 근위병은 신기했다.

기념품에서나 볼 복장으로 말을 타고 부동자세로 있는 근위병은 비현실적이었다. 말을 흔히 볼 수 없던 한국과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 왕정국가에 온 것을 느끼게 했다.

“멋지네요. 다른 곳은 없어요?”

무표정하게 고저 없는 목소리에서는 전날 도심 건물을 감탄하던 가현의 생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왕궁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락돼 기다리고 있을 때, 세단 하나가 지나다 멈춰 섰다.

한 남자가 가현의 이름을 어설프게 불렀다. 흘려들어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믿기지 않아 가현이 뒤돌아보았다.

아마드가 놀란 얼굴로 가현에게 다가왔다.

[너 정말! 너야! 오 세상에.]

“아마드! 너 여기 어떻게 있는 거야!”

[나 한국 통역사가 없어서 네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아마드가 웃으며 하는 말을 옆에 있던 가이드가 말해 주었다.

“오늘은 내 가이드가 네가 하는 말을 알려주는데. 리안 내 말 전해줄래요.”

리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드는 눈을 찡긋하고는 예전에 했던 약속을 상기시켰다.

[우리 우연히 세 번 만나면 식사 함께하기로 했어.]

“아 맞다. 좋아 오늘은 같이 밥 먹어.”

[잠시만.]

차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선글라스를 쓴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대는 아마드를 설득하는 것 같았지만 그는 웃으며 가현에게 돌아서 걸어왔다.

“가 봐야 하지 않아? 곤란한 상황이면 그냥 가도 돼.”

[우연히 세 번 만난 인연은 보통 인연이 아니야. 그걸 놓치면 내가 바보지.]

“너 지금 너무 흥분해서 바보 같거든.”

[여기서 나한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흔치 않아.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아직 한국에 있는 거 같다.]

어메이징을 연발하는 아마드는 신나 보였다.

그의 밝은 에너지가 전해져 좀 전까지 시들어있던 가현이 생기가 돌아왔다.

[여행 온 거야? 이 먼 곳까지 무슨 일로 온 거야. 이게 가능한 일일까? 우리 운명인가 봐.]

가현이 크게 웃었다. 뒤에 있던 남자가 아마드애게 귓속말을 하자 아마드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질문은 한가지씩 해. 이 먼 곳에서 날 아는 사람이 이렇게 반겨주는 거 기분이 꽤 좋아.”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지. 차가 있어? 내 차를 따라와.]

그는 가현을 재촉해 어딘가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을 보고 가이드가 당황했다.

“여긴 아무나 못 들어가는 곳인데.”

“네? 왜요?”

“왕족이나 왕정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들어가요.”

“네?”

단순히 아마드를 중동의 석유가 많이 나는 나라의 갑부쯤으로 생각했다. 그가 왕이나 나라와 관련됐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저분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여긴 그런 분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에요.”

“…….”

화려한 이슬람 양식의 건물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가현이 아마드를 불렀다.

“아마드, 여긴 이슬람 국가라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다더라, 그곳이 이곳이고.”

[미안. 설명하지 못했어. 이곳을 통째로 비웠어.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도 돼.]

미심쩍은 표정의 가현을 보고 아마드는 자세히 설명했다.

[노출된 곳에 있기가 그래서 여길 데려왔어. 말을 못 했는데 난 이곳에서 왕족이야. 그러니 안심해도 돼.]

“뭐?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말할 필요가 없었고 말할 기회를 놓쳤어.]

아마드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놀란 가현은 자신이 알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쿠션이 가득한 자리에 앉은 아마드는 편안해 보였다. 썩 잘 어울리는 그는 달라 보였다.

“너 정확히 모로코에서 어떤 사람이야.”

곤란해하던 아마드가 이마를 긁적였다.

[왕자.]

“뭐?”

[믿기 힘든가 본데 여기서 모로코의 모하메드 5세 무덤을 봤어?]

가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가현을 살폈다.

[그분이 내 조상님이셔.]

미간을 잔뜩 찌푸린 가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아마드를 보기만 했다. 아마드는 민망했던지 말을 하려다 말고 기다렸다.

그 사이 두 사람의 앞에 많은 음식이 차려졌다.

“지금 점심시간 전이야.”

[그럼 마실 걸 내오라고 할까?]

“아니, 이 많은 음식 아까운 줄 모르시네요. 왕자님.”

[보통 이런 상황이면 너처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 고마워.]

가현이 앞에 있는 음식들을 맛보며 말했다.

“고마울 건 없어. 널 또 만나게 될 줄 몰랐고 그래서 너에 관해 묻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내가 생각보다 많은 일을 겪어서 이 정도 일로 놀랍지도 않아.”

화려한 음식들이 하나같이 맛있어 보여 어느 것을 먼저 먹을지 고민 중이었다.

“여기서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은 뭐야?”

[모로코 사람들이 흔하게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어. 이 세상에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두 종류?”

[응, 파스티야를 먹어 본 사람과 불행히도 그 맛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야.]

“뭐야?”

농담인 줄 안 가현이 해맑게 웃었다.

[정말이야. 우리 속담에 그런 말이 정말 있다니까.]

“그게 파스티야라는 거지?”

[맞아. 꼭 먹어 봐야 해.]

파스틸라라고 불리기도 하는 파이로 바삭한 껍질 안에 고기를 넣고 구운 후 하얀 슈가 파우더와 시나몬 가루를 뿌려 만든다며 전문 요리사처럼 설명했다.

비둘기 고기나 닭고기를 사용하고 간혹 새우를 넣은 파스티야도 볼 수 있다는 말에 호감을 잃었다.

서울에서 본 회색 비둘기가 떠올랐다. 도심에 사는 비둘기는 병균을 옮기고 유해 동물로 인식되고 있으니 그걸 먹는다는 생각만으로 입맛이 뚝 떨어졌다.

“이거 비둘기 고기로 만든 거야?”

의심의 눈초리로 눈은 앞에 놓인 음식을 경계했다.

길들여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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