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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는 밤-38화 (3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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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기로 떠나는 신혼여행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에 앉은 지한은 일에 몰두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셋은 모로코에서 진행될 회의를 대비해 미팅을 진행했다. 숨돌릴 틈도 없이 2시간의 회의 끝에 지한과 명 비서는 또다시 릴레이 회의를 했다.

가현은 지쳐 침실로 가 소파에 앉았다. 남들이 말하는 행복한 신혼여행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라윤이 신부대기실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감당하기 힘든 자리니까. 지금을 즐겨요.’

“후, 감당하기 힘든 자리는 맞네. 즐기지는 못하겠다.”

창밖 끝도 없는 구름바다 위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하늘 위에서 그늘 하나 없이 하얀 구름에 반사된 햇빛에 눈이 부셨다.

“불만이 있으면 미리 말해.”

지한이 언제 들어왔는지 가현에게 시원한 주스를 건넸다.

“언제 들어왔어요?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명 비서가 가보라더군, 결혼도 신혼여행도 이렇게 하는 신부라면 분명 서운할 거라고 말해 주었어,”

“틀린 말은 아니네요.”

가현이 손에 들린 주스를 마시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라윤이는 뭐라고 했지?”

“백 본부장님이 절 만난 걸 알아요? 하긴 모르는 게 어디 있겠어요.”

한숨을 쉰 가현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한이 반대편 의자 손잡이에 걸터앉아 가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제 발로 떠나게 될 거라고 이 자리를 감당하래요. 그리고 지금을 즐기라고.”

“좀 전 말이 그 말이었군.”

곧 스페인 공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와 지한도 가현의 옆자리에 앉아 안전띠를 채웠다.

“당신이 아버지라 부르는 정 실장이 결혼을 반대하더군.”

“저에게도 그러셨어요.”

“정 실장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야. 그의 말처럼 난 행복한 결혼을 약속 못 해.”

“알고 있어요.”

담담하게 말했지만, 가슴이 따끔거렸다. 눈이 시큰거리는 걸 보이고 싶지 않아, 창밖을 보며 햇빛에 눈이 부신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스페인은 한 시간 후에 출발할 거야. 그리고 모로코에 도착하면 나는 곧장 시에라리온으로 가.”

“시에라리온요? 거기가 어디예요?”

“북아프리카에 있는 나라 중 하나야.”

“…….”

“1박 2일 일정으로 다음 날 저녁에 도착해.”

“모로코에 저 혼자 두고 또 어딜 간다고요?”

“그렇게 됐어.”

차지한이란 남자는 너무했다.

이 결혼을 강행한 건 자신이지만 이 남자는 시작도 전에 상처만 줬다. 참아 오던 감정이 폭발했다.

“아무리 그래도 신혼여행이에요. 너무하지 않아요?”

가현은 안전띠를 풀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착륙 중이야.”

“밖에 나가 앉을 거예요.”

지한이 가현의 팔목을 잡아당겼다. 그의 무릎 위에 앉혀져 일어나려 했지만, 그가 단단히 잡았다.

“놓아줘요. 이거 놔요.”

“다른 날이었다면 이해하라 했겠지만, 신혼여행에 이렇게 만든 건 미안해.”

그의 미안하단 말에 서러움이 폭발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녀오면 근사한 곳에 데려갈게.”

“이거 놔요. 다 필요 없어요.”

발버둥을 치는 가현을 끌어당겨 무릎에 앉힌 채 안았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현이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리자 그는 어색하게 어깨를 토닥여 줄 뿐이었다.

스페인에 도착하고도 그의 품에 안겨 울고 있었다.

지한은 가현의 얼굴을 들어 확인했다.

“호흡곤란은 요즘 괜찮나?”

가현이 대답하지 않고 얼굴을 돌리려 했다. 그는 놓아주지 않고 가현의 볼을 붙잡았다.

“내 가치가 떨어지는군. 그 눈물 멈추게 할 방법은 이것 외에는 모르겠어.”

그는 말이 끝나자 단번에 입술을 겹쳤다. 그의 키스는 늘 뜨거웠다. 미워 죽겠는데 입술까지 강탈해가는 남자가 미워 그의 입술을 잘근 물었지만, 그는 그래도 놓아주지 않았다. 더 깊숙이 말캉한 혀를 밀어 넣어 턱이 아플 만큼 입을 벌려 그의 통제하에 두려고 했다.

그의 힘에 밀려 반항하지 못하고 품에 안겨 키스에 빠졌다.

그의 손이 종아리를 훑으며 올라와 원피스가 딸려 올라갔다. 문만 열면 명 비서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를 저지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입술을 억지로 떼어내고 그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명 비서가 밖에 있어요.”

“결혼한 신혼부부가 키스 정도도 안 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나?”

“이건 키스가 아니라 앗.”

그의 손톱이 키스를 넘어 말캉한 정점을 긁었다. 자극에 단단해진 살결이 더 도드라졌다. 자신도 모르게 지른 소리에 입술을 말아 물었다.

“여기서 우리가 잠자리를 가진다 해도 누구 하나 말릴 사람은 없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밖에서 소리를 듣는다는 생각만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벌써 상상했나? 얼굴이 붉어졌어.”

“그런 거 아니에요. 여기서는 싫어요.”

밀어내도 가슴께를 희롱하던 손은 아래 얕은 천을 젖히고 가현의 몸을 매만졌다.

이미 손길 한 번에 준비를 마친 가현을 지한이 웃으며 놀려댔다.

“싫다면서 이렇게 준비하고 있으면 반칙이잖아.”

“대표님이 이렇게 애무를 하는데 당연한 현상이에요.”

“지한 씨. 여전히 호칭은 쉽게 변하지 않아.”

“읏.”

지한은 호칭을 고쳐주고 느긋하게 가현이 달아오르는 모습을 즐기며 애무했다.

가현은 자신을 다그치는 그가 얄미웠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최대한 참아 내며 밖을 살폈다.

그의 손은 더 얄밉게 자신을 다그쳤다.

가녀린 다리가 그의 무릎에 앉혀져 적나라하게 드러난 채 그의 어깨를 물며 신음을 참았다.

“이런 장소를 종종 이용해야겠어.”

그는 평소와 다르게 더 자극적인 손놀림으로 가현을 훑었다. 조금 전보다 더 큰 자극에 바들바들 떨었다.

입으로는 신음을 참아도 아래로는 정직하게 지한의 자극에 반응했다.

똑똑

화들짝 놀라 그의 무릎에서 몸이 튀어 올랐다.

그가 붙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미끄러졌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둘의 애정행각을 들킨 것같아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무슨 일이야?”

지한은 이 와중에도 평온하게 문을 두드린 이에게 물었다.

“잠시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곧 나가지.”

가현이 그제야 긴장을 풀고 그의 가슴에 늘어졌다.

“아쉽네. 신혼여행은 시에라리온을 다녀와서 즐기지.”

“으읏.”

지한이 손가락을 얄궂게 훑으며 그녀를 자극하던 손을 물렸다.

가현이 숨을 몰아쉬며 그의 무릎에서 내려오려 했다. 하지만 그는 여유를 부리며 그녀를 붙잡았다.

“빨리 나가봐야죠.”

“정가현 맛은 보고 가야지.”

그는 가현으로 가득한 손을 가현이 잘 볼 수 있게 입으로 훑어 올렸다.

숨이 막혀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만 있었다.

“맛있네. 다녀오기 싫을 만큼.”

눈이 동그래진 가현의 원피스를 내려주고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내일까지 지금 있었던 일 잊지 말고 기억해.”

지독하게 야한 눈빛으로 어울리지 않게 이마에 입맞춤하고 침실을 나갔다.

순수한 입맞춤이 유난히 야하게 느껴져 이마가 홧홧했다.

***

신혼여행 첫날 치곤 가혹했다.

아침 일찍 라바트 공항에 도착하자 그는 소형 비행기를 타고 시에라리온으로 떠났다. 모로코에 발을 디디자마자 가현은 1박 2일 동안 라바트에 홀로 남겨졌다.

그가 남겨준 모로코 가이드가 공항에서부터 그녀를 안내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모로코 안내인인 리안입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혹시, 시에라리온이란 나라 아세요?”

인사를 하고 그에게 그가 떠난 나라에 관해 물었다.

아프리카에 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처음 듣는 낯선 나라 이름은 더 적응되지 않았다.

“네, 그럼요.”

“어떤 곳이에요?”

“치안이 안정적이지 않아 여행하기엔 위험한 나라예요.”

“아! 그렇군요,”

시에라리온이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 가현이 편할 리 없었다. 숙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고풍스러운 모로코 양식으로 지은 건물 전체가 숙소라고 했다. 밖을 지키는 사설 경호원까지 배치되어 있을 정도였다.

건물 중정은 이슬람 양식으로 꾸며져 중앙에 놓인 분수가 아름다웠다. 분수 아래에는 그녀가 오기 전에 뿌렸는지 생화 꽃잎들이 둥둥 떠다니고 중정 위로 파란 하늘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혼자 있기엔 너무나 컸고 메인 침실의 킹사이즈 침대는 쓸데없이 넓었다. 침대 위 생화 꽃잎으로 하트 모양을 장식해 가현조차 잊고 있던 신혼여행을 상기시켰다.

“아……. 신혼여행.”

집안을 뛰어다녀도 사용인들 몇 외엔 보이지 않았다.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아 무료한 오전은 뜨거웠다. 가이드가 도심 구경을 가겠냐고 말했다.

“피곤하지 않으시면 도심 구경하시겠어요? 기다릴까요?”

“지금 준비할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숙소가 아무리 좋아도 혼자 남겨진 느낌은 우울함만 더했다. 가이드를 따라 도심 구경을 시작해 활력을 찾았다.

아프리카의 낙후된 지역을 생각했던 모로코는 생각과 완전 다른 세상 같이 근사했다. 현대화된 도시에 이슬람 전통을 가미한 건축물들은 독특한 예술품으로 보였다.

“이곳은 너무 흥미로워요. 정말 멋진 도시예요.”

“저도 처음엔 그랬지만 이젠 익숙해요.”

아라베스크 문양들이 모던한 건축물과 어우러져 신비롭기까지 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새로워 두리번거리며 길을 걷느라 한 블록을 지나는 것도 오래 걸렸다.

신혼여행인 것도 잊을 정도로 가현은 모로코 여행에 빠졌다.

길들여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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