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가현의 셔츠를 걷어 올린 그가 익숙한 살결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절로 신음이 흘렀다.
“아.”
도드라진 갈비뼈를 건드릴 때는 저릿한 감각이 살결을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그가 주는 쾌락에 빠져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아 속삭였다.
“서로에게 중요한 날이니까.”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지한의 뜨거운 입술이 살결에 달라붙어 야살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그의 손길에 몸이 뭉근하게 달아올랐다. 뜨거워진 피가 이성을 잃게 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가현의 다리 사이로 손길을 이어갔다. 뜨거운 손이 더 뜨거운 살결과 만나 녹아내릴 듯 온몸을 달궜다. 참지 못하고 그의 팔을 붙잡고 점점 더 쌓여가는 쾌락에 머릿속이 점멸했다.
지한이 기다리지 않고 젖어 든 가현을 자기 몸에 밀착시켰다. 가현이 허리를 휘며 그에게서 멀어져 그가 허리를 잡아 고정했다.
이성을 벗어난 몸이 지한에게 매달리다 힘이 빠져 미끄러지길 반복했다.
그는 가녀린 다리를 자기 허리에 감아 안아 올렸다.
빈틈없이 밀착된 몸이 밀착되다 못해 고정하듯 밀려들었다. 가현이 참지 못하고 몸을 떨며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반복되는 반동에 가현의 몸이 움직임에 맞춰 흔들렸다. 이미 힘에 부쳐 그에게 기대에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더는 못하겠어요.”
“체력을 더 길러야겠어. 우리 결혼이 서로의 필요 때문이지만 부부관계를 배제할 생각은 없어.”
“지금까지 온실에서 가진 잠자리 나쁘지 않았고.”
“아웃.”
그는 가현을 다그쳐 더 격렬하게 움직였다.
“그러니 분발해.”
지한의 목에서 쇳소리가 날 정도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더는 못한다며 가현이 울먹였다.
“네 몸은 지나치게 뜨거워.”
“대표님이 차가운 거예요.”
“이렇게 뜨거워 이성을 잃게 만들면서 적당히 하라는 게 말이 된다 생각하나.”
지한의 눈길은 몸보다 더 뜨겁게 느껴져 시선을 피했다. 그가 감각에 휩싸인 가현을 감상하는 눈길에 낙인이 찍힌 듯 더 뜨거워졌다.
“이젠 내가 손만 대면 젖어 들잖아.”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그의 노골적인 말에 얼굴이 붉어져 어깨에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노골적인 말에도 익숙해져 이 말 할 때 넌 날 미친놈이 되게 자극하니까. 읏.”
“앗.”
“지금처럼.”
그의 허리 짓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거칠다 못해 타들어 갈 것 같은 두 사람의 살결이 마찰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방을 울렸다. 요란하게 서로의 체액이 마찰하던 소리가 둔탁하게 바뀌고 끝이 났다.
가현의 쳐진 몸을 안아 든 지한이 복도로 나갔다.
놀란 가현은 그에게 몸을 밀착했다.
서로의 몸이 연결된 채 그는 유유히 복도를 걸었다.
“미쳤어요, 누가 보면 어떡해요.”
“이 시간에 이곳은 아무나 못 들어와. 무단 침입한 건 정가현이지.”
“창으로 누구든 볼 수 있어요.”
“그 정도는 얼마든지.”
“난 싫어요.”
“앞으로 고려하지.”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로 들려 가현이 한숨을 쉬었다.
부드러운 침대에 뉘어진 가현은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한 기분이었다.
그의 침대에서 몇 번이고 혼미하게 정신을 잃어가다 깨워지길 반복했다.
“내일부터 운동해.”
“지금 몸으로는 무리예요.”
목이 잠긴 대답에 그도 인정하는지 웃었다.
“내일부터 많은 것이 달라질 거야. 자둬.”
그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게 느껴지더니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감았는데도 햇살은 눈꺼풀 사이를 파고들었다. 몸을 움직이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밤새 그와 가진 관계를 생각하면 당연했다. 손가락 하나 겨우 까닥하는 정도로 만족했다.
가현이 눈을 뜬 곳은 낯설었다. 창 가득 쏟아지는 햇살이 길게 늘어져 오랜 시간 잠들었다는 걸 짐작했다.
“여기 대표님 방? 못 살아.”
가현은 조금 더 힘을 내어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갈지 고민했다. 사용인들이 보면 어떡하나 특히 교진이 볼까 겁났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고급스러운 조명이 창에서 비쳐 든 빛을 받아 크리스털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설 연휴에 무작정 그를 찾아 들어왔던 차지한의 방이었다. 장소가 어디인지 알게 되자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이미 없었고 상황판단을 못 해 그대로 앉아 있었다. 침대 옆 시계는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미쳤어. 출근도 안 하고 자 버리면 어떡해.”
전날 밤 그의 허락은 거칠었고 자신도 그만큼 달아올라 그에게 매달렸다.
별채가 아닌 곳에서 그와 관계를 맺은 건 처음이었다. 어쩌면 그의 영역에 자신을 들였다는 뜻 같아 기분이 좋았다.
가현이 어제 일이 떠올라 옷을 찾았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가릴 것은 침대 시트 외엔 없었다. 부끄러운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때, 사용인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평소 친했던 사용인은 얼굴을 붉히는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고 가현에게 지한의 뜻을 전했다. 가현과 나누던 말투와 다르게 존댓말에 깍듯한 태도였다. 나이 어린 가현과 눈을 맞추지 않고 어색해하는 그녀처럼 가현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가현 씨, 지내는 곳을 옮기라는 대표님 지시가 있었어요.”
“아, 그렇군요.”
“이거…… 입고 나오세요.”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가현이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자 사용인이 샤워가운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방과 멀지 않은 방은 자신이 깨었던 방만큼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어리둥절하게 둘러보던 가현이 사용인을 따라 방에 딸려 있던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드레스룸은 얼마 전에 지한의 지시로 갔던 편집숍과 비슷했다.
옷과 신발, 가방까지 값비싼 물건들이 넘쳐났다.
“이게 다 뭐야?”
혼자 한 말에 사용인이 대답했다.
“사용하시던 물건은 다 옮겼습니다. 대표님께서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하셨어요. 혹시 더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말씀 주세요.”
그가 결혼을 허락한 후 하루아침에 가현의 상황은 달라졌다.
자신이 지내던 방보다 큰 드레스룸 한가운데에 서서 멍해졌다. 그와 결혼한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와 처음 특별한 관계가 됐을 때처럼 그와 결혼한다는 건 더한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긴장됐다.
몇 시간 만에 사용인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고 그녀가 지내는 방과 그녀가 걸치는 옷이 달라졌다.
그가 준비해 준 옷이 어색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옷을 찾아 입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내가 잘한 선택일까?’
어제만 해도 자신했던 마음이 오늘은 걱정되었다.
***
다음 날, 결혼을 허락한 지한은 두 사람의 결혼을 이용해 하나씩 일을 해결해 나갔다.
서재에 있는 지한에게 커피를 가져다주던 교진은 생각지 않은 말로 지한을 당황하게 했다.
“가현이와 결혼은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무슨 말입니까? 정 실장님.”
“가현이를 사랑하십니까?”
“…….”
교진은 다른 날과 다르게 굳은 표정으로 지한을 설득하려 노력했다.
“가현이는 이제는 제 딸입니다. 그 아이가 행복하지 않은 결혼은 볼 수 없습니다.”
“가현이는 효은이가 아닙니다.”
지한은 아프게 교진을 베었다. 그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효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현이를 온전히 제 딸로 생각하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기억까지 잃을 정도로 아픔을 겪은 아이입니다. 제가 아는 대표님도 아픔을 겪은 분입니다. 대표님을 아끼지만, 결혼은 말리고 싶습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결혼은 결정됐습니다.”
슬픈 표정의 교진은 결혼을 어떻게든 말리고 싶어 했다.
지한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교진에게 말했다.
“알고 계십니까? 이 결혼을 하고 싶다고 조른 사람이 정가현 입니다. 설득은 정가현 씨에게 하십시오.”
교진을 남겨두고 지한은 명 비서와 집을 나섰다.
출근하는 그를 보는 사용인들의 시선이 다른 날과 달랐다.
“귀찮군.”
“무슨 일 있으십니까?”
“명 비서, 한 달 후에 결혼식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백 본부장님과 결혼 결정하셨습니까?”
“아니, 정가현.”
“네?”
명 비서는 놀라 그 자리에 서 지한을 따라가는 것도 잊었다.
“출근 늦겠어.”
지한은 그의 놀란 반응에 입꼬리를 올렸다.
며칠 동안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정신없는 결혼 준비가 시작됐다. 아침부터 지한은 그녀를 찾아왔다.
출근 준비 중인 가현은 그를 보고 직감했다.
하루하루가 서프라이즈의 연속이었다.
“오늘부터 출근은 하지 않도록 해.”
“전 지금 일이 좋아요.”
“유형의 대표 아내가 유형 비서실에서 일을 한다?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것까지 생각하지 못했어요.”
가현은 결혼으로 이렇게 많은 것이 바뀔 거로 생각지 못했다. 결혼은 두 사람의 주위를 하루아침에 다 바꿔놓았다. 적응하지 못하는 건 가현뿐이었다. 지한은 주위의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일은 집에서도 할 수 있어. 정가현 씨 능력은 나에게 유용하고 내 아내가 된다면 오히려 더 유용한 능력이 되겠지.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조치했어. 그보다 오늘 백 회장님을 함께 만나야 해.”
“대표님, 저도 함께요?”
“차지한.”
“…….”
“남편 될 사람에게 앞으로도 대표님이라 부를 건가?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하겠군. 특히 백 회장님 앞에서는 조심해.”
“아. 네.”
대표라는 말이 익숙해져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게 쉽지 않았다.
“오후에 차를 보낼 거야. 오도록 해.”
“네, 대표님.”
“지한 씨.”
대표님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얼굴을 굳히며 가현의 호칭을 수정했다. 그는 잠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선뜻 이름만 부르는 것이 어색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잠자코 기다리는 그와 어색하게 서 있다가 겨우 입을 뗐다.
“지한 씨.”
“좋아. 가현아. 나도 이름만 부를 테니 익숙해져.”
그가 부르는 가현이란 이름에 설렜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는 평이한 부름인데 자신은 의미를 부여했다.
길들여지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