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들여지는 밤-30화 (3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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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드가 입찰장으로 들어서면서 옆을 지나던 최치수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최치수는 얼굴이 험악해져 자신보다 어린 아마드를 보고 빈정댔다.

“아무리 외국인이라도 사과도 안 하나?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세상 무서운 줄 모르지.”

아마드는 통역사에게 치수가 한 말을 전하라 했다. 통역사가 난감해하며 말해주자 아마드가 미소를 지었다.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데 비키지 않고 버틴 건 당신 잘못이야. 내가 잘 타고 태어나긴 했는데 당신이 이 자릴 감당할 수 있을까?]

치수가 아마드의 말본새가 마음에 안 든다며 달려들려 하자 보디가드들이 막아섰다.

치수도 분란은 만들 수 없어 물러났다.

입찰금액을 받아든 심사단들은 심사숙고했다.

기업에서 앞다퉈 로비를 하는 동안 볼 수 없었던 입찰 단장을 보고 다들 놀랐다.

최치수는 하필 입찰 단장이 아마드인 걸 보고 투덜거렸다.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 없어 새파랗게 어린 게 사람 고생을 시켰다고 욕을 했다.

치수는 입찰 결과 발표 직전에 아마드에게 실수하긴 했지만, 금액은 무시할 수 없을 거라며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결과는 명 비서가 장담했던 대로 유형 그룹에게 넘어갔다.

치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앞에 있는 서류를 마구잡이로 구겨 잡았다. 그의 옆에 있던 비서 멱살을 잡아 올렸다.

“입찰금액이 다르잖아. 이 새끼 확실하다며.”

“맞았는데, 컥컥. 죄송합니다. 이사님.”

잔뜩 흥분한 채로 주위를 둘러보니 입찰에 참여한 다른 업체와 악수하는 두 사람의 분위기가 묘했다.

치수는 이성을 잃고 씩씩거리며 지한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두 업체 대표의 대화가 들렸다.

“축하합니다. 차 대표. 일전에 말했던 대로 우리 업체 물건을 납품하는 건 잊지 맙시다.”

“물론입니다. 그런 걸로 속여서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김 대표님.”

두 사람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대화 내용에 치수의 화가 더 치솟았다.

“둘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구만. 그래놓고 이게 공정한 입찰이야!”

빌미를 잡았다 생각해 생떼를 썼다.

“그러는 일참은 경쟁 입찰금액을 산업스파이로 빼내기까지 하지 않았나?”

“최 이사! 사업 그렇게 하는 건 범죄예요. 차 대표가 미리 말해 주지 않았다면 내가 당할뻔했지. 누가 범죄인지 법정가서 따져라도 보겠습니까?”

치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지한의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의 힘에 테이블이 부서졌다.

기자들은 좋은 건수를 잡아 플래시를 터뜨렸고, 그는 끝내 가까이서 사진을 찍던 기자를 때리기까지 했다.

입찰장 안에 보안 요원들이 들어와 치수를 저지해 끌고 갔다.

“차지한! 너 이 새끼 내가 가만 안 둬. 너 잘사는 꼴을 보면 내가 최치수가 아니다.”

지한은 끌려가는 치수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치수의 눈이 살기로 가득했다. 그는 지한을 무너뜨리기 위해 어떤 수단도 상관없다 다짐했다.

장내가 수습되고 유형그룹과 입찰 심사단의 짧은 미팅을 끝으로 일은 마무리 되었다.

로비에 있던 가현은 치수가 끌려가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치수가 가현과 눈이 마주쳤다. 살기가 가득한 모습에 두려움이 엄습해 몸을 돌려 버렸다.

가현은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도 사람들로 붐빌 입찰장으로 갈 엄두가 안 나 안절부절못했다.

가현에게 전화가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종결된 후였다.

명 비서와 지한이 로비로 내려왔다.

“어떻게 됐어요?”

“우리가 따냈지. 내가 된다고 했잖아요.”

“와! 정말 잘됐어요.”

“가현 씨 밥 내기한 거 잊지 말아요?”

“밥 내기를 했어?”

가현과 명 비서가 지한을 보았다. 지한이 불만 섞인 말투로 한 말에 두 사람은 벙쪘다.

“입찰 성공하게 계략은 내가 세웠는데 명 비서가 왜 얻어먹어?”

“…….”

두 사람의 놀란 표정을 보고 지한이 성큼 앞서 걸었다.

“밥이나 먹고 들어가지.”

한정식 집에 도착해 가현은 모로코 입찰 건 물밑 작업을 다 듣게 되었다.

일참그룹에서 산업스파이를 이용해 정보를 빼돌리려는 걸 알고 오히려 미끼를 던졌다고 했다. 다른 경쟁 입찰 업체에도 먼저 알려 신뢰를 얻은 후 두 업체가 함께 정보를 일참에 넘긴 것이었다.

그 업체는 여러 가지 설득으로 일부 사업에 물건을 납품하는 것으로 유형과 손을 잡아, 오늘 입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한을 물끄러미 보았다. 저 남자의 머리에는 또 어떤 계략이 있을까?

자신은 그가 필요해 매달리지만 자신이 감당할 남자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곱씹을 때 지한의 말이 신선했다.

“정가현 씨. 언제 밥 살 거지?”

“…….”

그는 정말 벼룩의 간이라도 내 먹을 사람이었다.

***

봄날처럼 따뜻한 공기.

향긋한 꽃내음.

퍽퍽.

8살인 아이에게 체벌이라기엔 가혹한 골프채를 휘두르는 화가 난 남자.

고통을 참으려 이를 콱 다문 아이를 그는 죽일 듯 노려보며 소릴 질렀다.

“너랑 급이 달라 놀지 말라고 했지. 그 애가 훔친 거잖아.”

“아니에요. 효은이가 훔치지 않았어요. 제가 줬어요.”

“못난 새끼.”

골프채로 성에 차지 않는지 아이에게 발길질을 했다. 온실 바닥에 쓰러져 머리를 돌부리에 부딪혀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아프다. 더는 맞고 싶지 않아.’

누군가 달려와 손수건으로 지혈을 했다.

“사장님 진정하십시오. 제가 자식을 잘못 길러 그렇습니다. 도련님 잘못이 아닙니다.”

입술이 터지고 이곳저곳 멍이 든 아이는 반쯤 정신을 놓고 남자의 지혈하는 손에 의지해 있었다.

아이를 때리던 남자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이 녀석 여기서 못 나오게 문 걸어 잠가.”

또 반복되듯 구타가 시작됐다. 조각난 꿈은 고통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번에는 여자가 애원했다.

“제발 그만 때려요. 당신 아이라고요. 이 아이가 무엇을 잘못 했다고 그래요. 날 때려요.”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 저 녀석이 태어나고 되는 일이 없어. 내 새끼가 아닐지 누가 알아.”

남자의 씩씩대는 숨소리와 폭언이 끝나지 않고 메아리쳤다.

몸을 움직여도 움직일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처럼 숨이 조여왔다. 죽을 것 같은 손길에 허우적거렸다.

‘숨이 막혀.’

단단한 손이 목을 조이고 있었다.

헉헉거리며 최대한 숨을 쉬려 할 때 어떤 손이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주었다.

놀라 눈을 번쩍 뜨고 튕기듯 일어나 앉았다. 머리가 아파 관자놀이를 짚었다.

“대표님, 대표님 괜찮으세요. 손이 너무 아파요.”

꿈에서 깬 지한이 꽉 움켜잡은 건 가현의 손이었다. 지한이 움켜잡은 가현의 손을 뿌리쳐 놓았다.

가현을 확인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그는 날을 세웠다.

“네가 여기 왜 있어?”

“괜찮으세요? 악몽 꾸셨어요? 왜 이렇게 식은땀을 흘리세요.”

가현이 손수건으로 그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려 했다. 지한은 귀찮다는 듯 이마로 다가오는 손목을 잡아 다시 한번 더 날을 세웠다.

“물었을 텐데, 네가 왜 여기 있지?”

“복도 지나던 길에 이 방에서 소리가 들려서.”

“여기 평소 지나다니던 복도도 아니고, 방에서 소리가 난다고 누가 들어오는 걸 허락했지?”

조목조목 말이 안 되는 걸 지적하니 할 말이 없었다.

이미 그는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저, 그게.”

그가 잡은 팔목을 내팽개치듯 놓고는 침대에서 아무렇게나 일어나 앉았다.

“이 방에서 꺼져.”

가현은 방을 뛰어나갔다.

“젠장.”

한동안 악몽을 꾸지 않았다. 신기하게 가현에게 말도 안 되는 스킨십을 제안한 날 이후로 지한은 주기적으로 꾸던 악몽을 꾸지 않았다.

상습적인 가정폭력은 엄마를 병들게 했다.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엄마가 떠나고 난 뒤엔 지한을 향한 폭력은 가혹해졌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폭력에 지한은 하루가 멀다하고 멍 자국을 달고 살았다.

가끔 술에 취한 아버지는 도를 넘는 행동을 한 적도 몇 번이었다.

지한의 마음은 피폐해졌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무분별한 음주로 아버지는 암 선고를 받고 지한이 13살이 되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혼자 남겨진 지한은 슬프지 않았다. 정확히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에게 가장 큰 적이 사라진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고통에서 벗어난 그에게 세상은 그저 회색빛이었다.

“또 시작이군.”

지난 일인데도 그저 반복되는 악몽에서 자신이 힘겨워하는 게 싫었다. 아버지라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신은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일어나 샤워를 했다. 머리를 털며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가시지 않는 악몽이 못마땅해 그는 저택 안을 뛰기 시작했다.

지한은 그래도 가시지 않아 별채로 향했다.

별채 앞에 가현이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대표님께 밥 사려고요!”

얼굴을 살피던 그녀가 한 말은 어이없었다.

길들여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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