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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입찰은 둘 다 자료 빼돌렸으니 신경 쓰지 말고 그 단장이나 알아 와.”
“네, 사람을 풀겠습니다.”
“그래, 이 사업도 공식적인 걸로 하면 이길 수가 없어, 우리 쪽 주먹이 들어가야 수월해지지.”
심사단의 단장으로 온 정부 인사는 도통 만날 수가 없었다.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모로코 심사단장이 입국한 소재도 파악되지 않아 그를 찾는 데 혈안이 되었다. 그가 주먹을 쥐어 소파를 퍽퍽 치며, 자신의 불법적인 행동이 사업에는 꼭 필요하다며 정당하다 합리화했다.
“내가 차지한 그 새끼 조인트 까는 게 소원이다. 이번에 한번 봐라.”
혼잣말을 중얼거린 치수의 눈이 희번덕희번덕 살기를 띠었다.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
“가현 씨, 오늘이 드디어 디데이예요. 그때 부탁한 입찰 관련 자료 준비됐어요?”
신사업 입찰은 오랜 시간 가현이 참여해 명 비서를 도와 준비했다. 모로코에서 추진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국영기업이 진행하는 입찰이니 전 세계 기업이 참여하는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1차 입찰에서 3개 기업이 선정됐고 모두 다 한국기업이었다.
“네, 여기 있어요. 이걸로 입찰금액 정하시려는 거죠?”
“맞아요. 이게 아주 중요하다고 깔끔하게 정리 잘했어요.”
명 비서는 지한만큼 잘못을 문제 삼진 않아도 그만큼이나 칭찬은 인색했다.
윗사람에게 듣는 칭찬이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오늘 당연히 가야지. 이 사업 가현 씨 공도 크니 함께 축하해야죠.”
“저 가도 돼요?”
“물론이죠. 준비해요.”
명 비서가 기분 좋게 사무실을 나가자, 가현에게 늘 친절했던 서 대리가 다가왔다.
“가현 씨, 외근 나가?”
“네, 저 출근했을 때부터 진행하던 일이 오늘 마무리되거든요.”
“잘 됐다. 아까 들으니까 입찰한다 들었는데 안 되더라도 너무 낙담하지 마.”
시작도 하지 않은 입찰을 부정적으로 위로하는 말이 이상했다.
늘 긍정적인 격려를 아끼지 않던 서 대리의 태도가 묘하게 걸렸다.
“잘 되게 해야죠.”
어색하게 웃으며 서 대리를 살피고 있을 때, 지한과 명 비서가 사무실로 들어와 가현을 찾았다.
서 대리는 당황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 잘 돼야지. 가현 씨 잘 다녀와.”
그녀의 말을 곱씹을 시간도 없이 서둘러 따라나섰다.
입찰을 하러 가는 차 안에서 지한은 메일을 확인하고 명 비서와 일 이야기를 했다. 조용한 것보다는 덜 답답했다.
“오늘 준비는 잘했겠지?”
“네, 마지막 자료까지 다 챙겼습니다.”
모로코 건설사업에 입찰할 업체들이 입찰 시간 1시간 전에 모두 모였다. 최치수는 입찰 장소에 들어서는 지한을 보고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아이고, 차지한 대표님, 오늘 입찰 준비는 잘했습니까?”
“기분이 좋아 보이네. 최치수.”
“기분 좋을 일이 있어야지, 유형에서 우리가 로비하려면 낚아채 가서 우리는 열만 받았지.”
“그것도 능력이지. 아래 직원들을 잘 뽑아야지. 최 이사. 머리 안 쓰던 놈들을 죄다 데려다가 일 시키니, 깡패짓하던 머리만 돌아가잖아.”
치수의 표정이 좋지 않아졌다. 눈매가 날카로워져 지한을 깎아내릴 방법만 찾았다.
치수의 매서운 눈이 가현에게 꽂혔다.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표정에 가현이 시선을 피했다.
“그때 연말 파티 아가씨네? 이런 일까지 참여를 했나? 난 차지한 따까리인 줄 알았지.”
“네가 그러니 다 그렇게 보이겠지. 둘 다 가서 입찰 준비해.”
명 비서와 가현은 묵례하고 돌아섰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가현은 얼굴이 붉어졌다.
“일도 하고 심심할 때 재미도 보고 좋네. 회사에서 그런 스릴도 있어야 아랫도리 쓰는 맛도 나지.”
지한이 씩 입꼬리를 올렸다.
“그 생각밖에 없으니까 최치수가 거기서 발전이 없지. 회장님 얼마 전에 만나 뵈었는데 또 사고 쳤나?”
“뭐야?”
치수의 얼굴이 험악해지고 나름대로 참는다고 주먹을 말아쥐고 주먹이 나가는 걸 참고 있었다.
그도 여기에서 주먹을 날리면 입찰은 날아가는 걸 알고 있으니 함부로 행동할 수 없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적당히 놀고 일해. 그러다 회장님한테 내쳐지면 갈 때나 있어?”
“그딴 걱정은 네 놈이나 해.”
지한이 세게 치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 최치수 갈 때 없으면 나한테 와. 뒷수습 일자리 줄게.”
죽일 듯 노려보는 치수는 오늘 입찰을 이길 거라 자신해 지한의 뒤에 혼잣말했다.
“오늘까지 그렇게 잘난척해라 이 새끼야. 제대로 엿 먹여 줄게.”
명 비서는 표정이 굳은 가현을 위로했다.
“가현 씨 최치수 이사 말은 무시해. 원래 저속한 인간이야. 안 엮이는 게 좋은 사람이야. 오늘 시원하게 우리가 한 방 먹일 테니까 걱정하지 마.”
“입찰에 질 수도 있잖아요.”
“걱정하는 일은 안 생길 거예요. 내가 장담할게요.”
“저도 입찰 우리가 따내면 좋겠어요. 처음 맡은 일인데 제가 노력한 결과가 좋으면 좋잖아요.”
“밥 내기할까? 다 대안을 만들어 놨어. 끝나면 말해 줄게.”
명 비서가 눈을 찡긋했다.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지한이 자리로 돌아와서도 그는 바빴다. 입찰에 참여한 기업 외에 기자들과 여러 관계 인사들이 지한에게 인사를 해서였다.
많아지는 사람들과 기자들의 과열된 열기로 플래시가 터지니 가현의 호흡이 다시 안 좋아졌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사색이 된 가현을 보고 지한이 물었다.
“몸 안 좋나?”
“몸 안 좋아요? 가현 씨.”
명 비서도 덩달아 물었다.
“죄송해요. 저 조금만 쉬고 올게요.”
“나가 있어.”
“네.”
“안 좋으면 들어오지 말고 로비에서 쉬고 있어요.”
가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급하게 입찰장을 나왔다.
곧 입찰이 있을 예정이라 모두 입찰장에 모여 복도는 조용했다.
가현은 사람이 더 없는 곳을 찾아 복도 끝으로 향했다.
호텔 구석 벤치에 앉아 천천히 숨을 쉬고 있을 때, 누군가 불쑥 눈앞에 음료수병을 내밀었다. 올려다보니 아마드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랍 사람답게 전통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아마드. 여기는 어떻게 있어요? 안녕하세요. 통역사님.”
통역사도 처음 볼 때보다 더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었다.
몇 시간 함께 했을 뿐인 사람인데도 반가웠다.
[나 여기가 숙소야.]
그는 여전히 유쾌한 사람이었다.
“아 그렇구나. 아 맞다! 한복 그 비싼 한복을 그냥 받을 수 없어 돌려주고 싶었는데 잘됐다.”
[내가 여자 옷이 왜 필요해. 나랑 함께 사진 찍은 기념으로 선물이야.]
“사진 한 장으로 500만 원짜리 한복을 선물 받을 수는 없어.”
[네가 아니었어도 난 그렇게 했어. 부담 가질 필요 없어, 보시다시피 내가 돈이 많아.]
그가 입은 전통 옷은 고급스러웠다. 그 나라에서도 아무나 입는 옷이 아니라 짐작이 갈 만큼 고급스러웠다. 위아래로 훑은 가현이 그의 옷차림을 계속 관찰했다.
“이렇게 옷 입으니까 정말 아랍 사람 같아. 그 티브이에서 보던 아랍 왕자님.”
번역하던 통역사가 살짝 당황했다.
아마드는 크게 소리를 내 웃었다.
[내가 올해 들은 말 중에 제일 재밌는 말이다.]
가현은 뭐가 웃긴 건지 얼굴을 긁적였다.
[가현. 넌 정말 재미난 친구야. 너만 만나면 웃고 있어. 오늘 식사나 할까? 우리 우연히 두 번이나 만났어.]
“미안. 난 일 때문에 왔어. 조금 쉬다가 가봐야 해.”
[아쉽네. 밥은 먹어야 하잖아.]
“내 상사 성격이 고약하거든.”
아마드는 가현의 말에 웃었다.
[내 보디가드도 그렇게 생각하려나 아니면 통역사가.]
아마드가 돌아본 그들은 시선을 피했다. 가현이 자신의 처지를 보고라도 잘해야 한다고 핀잔을 주었다.
“밑에 사람한테 잘해야 해.”
[그래야겠어. 만약에 우리가 세 번째 우연히 만나면 같이 식사하자. 어때?]
“그래. 나도 좋아.”
뒤에 있던 보디가드가 시계를 보고 아마드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아마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밀었던 음료를 손에 쥐여주었다.
받아든 가현은 웃으며 인사했다.
“고마워. 아마드.”
[다음을 기대할게.]
그는 돈 많은 사람처럼 보디가드를 줄줄이 데리고 사라졌다.
가현은 처음 보는 음료수병을 따 입에 가져갔다.
열대 과일 맛이 무척 좋았다.
동그래진 눈으로 병을 세심하게 보았다.
“정말 돈이 많긴 한가 봐. 이런 건 처음 먹어봐. 석유가 많나?”
생각해보면 아마드에 대해 아는 것이 이름 외에는 없었다. 개인 통역사에 보디가드까지 그의 재력은 상당해 보였다.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가현은 아마드를 만나고 기분 탓인지 몸은 몸이 빨리 회복되었다.
아마드가 건네준 음료는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감탄하고 병을 찬찬히 둘러보길 반복했다.
길들여지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