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가현을 희롱하는 목소리가 유혹적이고 위험했다.
가현은 계속되는 자극에 아랫배가 묵직해졌다. 처음 느끼는 뭉근한 감각이 당황스러워 그의 손길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큰 체구에 갇혀 내맡겨질 뿐이었다.
그의 손길이 가장 은밀한 살결을 가르고 들어왔다. 당황한 가현이 무릎을 꼭 붙이고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지한의 손을 꼭 무릎으로 쥐고 있는 것과 같았다.
“눈 떠.”
가현이 촉촉해진 눈을 뜨고 그와 시선을 맞췄다. 그는 흐트러짐도 없이 가현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꼭 지금 당황하는 자신이 이상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딱딱한 말투였다.
“다리 벌려.”
가현의 눈이 흔들려도 그는 달라진 것 없이 명령할 뿐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처음 가르치는 사람처럼 아무런 사심이 없는 게 느껴졌다. 가현은 홀린 사람처럼 그와 시선을 마주하고 살며시 다리를 벌렸다. 기다렸다는 듯 그의 손이 가르고 들어와 가현이 닿아본 적도 없는 자극점 깊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아!”
굵고 긴 손가락의 움직임에 가현이 함께 반응해 신음이 흘렀다.
“아앗.”
“힘을 빼. 네가 날 힘들게 하고 있어. 서툴러도 분발해 봐.“
그의 차가운 손끝이 가현을 봐주지 않고 몸과 정신까지 휘저었다. 가슴을 들썩이며, 자극된 몸을 바르작거릴수록 가현은 더한 자극을 기대했다.
흥건하게 젖어 든 몸이 지한의 손을 적시고 가현의 몸은 지한의 타액으로 적셔졌다.
생각지 않은 침범은 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지한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가현의 마음과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성을 벗어난 몸이 자신이 아닌 것처럼 바르작거렸다. 막연하게 알던 선정적인 행동을 자신이 하고 있어 당황스러웠다.
“아응.”
그의 셔츠 자락을 간절히 움켜쥐고 신음을 내뱉는 가현의 손길에 그의 와이셔츠가 흐트러져 상반신이 드러났다.
가현의 몸이 그의 손에 맞춰 오르내릴수록 신음은 별채 안에 높아졌다.
“정가현 예민하군. 어떻게 반응할지 더 괴롭히고 싶어져.”
지한은 달큰한 살결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아프면서도 어떤 것보다 더 자극적이라 통제력을 잃은 몸이 젖어 들었다. 그의 손끝이 농밀하게 가현의 자극점을 훑어 가느다란 허리가 휘어 잘게 떨었다.
절정에 다다른 몸이 점점 더 그의 손길에 무너져내렸다.
그에게 함락된 가현이 엉망으로 흐트러져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정말 트라우마 따위는 생각할 틈이 없었다. 차지한이라는 남자로 가득 채워져 가현은 그의 손에 집중해 다음 자극만 생각하게 되었다. 완전히 그에게 길들어 그만 바라보게 되었다. 머릿속은 그로 채워져 그의 손길만 기다리는 야한 여자가 되어 버렸다.
모든 것이 무너진 그때, 지한이 매달리는 가현에게서 몸을 떼어냈다.
그리고 은밀한 곳을 가득 채우던 손길을 단번에 걷어냈다. 몸속을 채우던 묵직한 감각이 사라지자 허전했다.
가현은 뜨겁게 달아오른 지한의 몸이 사라져 몸을 말아 누웠다. 그의 체온이 아쉬웠다.
“여자 하나에 정신 못 차리는 놈을 보고 싶지 않으면 이쯤 하지.”
“…….”
남녀 간의 깊은 관계가 아니라 냉정한 비즈니스를 하듯 선을 긋는 말이었다.
가현이 누운 소파 앞에 선 채 와이셔츠 앞섶이 벌어져 상반신이 반쯤 드러난 옷을 탁탁 정리했다. 그는 테이블에 놓인 물수건을 들어 가현의 체액으로 적셔진 손을 닦았다.
“이미, 네 머릿속에 나로 꽉 찼을 것 같은데.”
조금 전까지 여자와 뒹굴었다고 느껴지지 않는 평온한 표정으로 가현의 눈만 내려다보았다.
그는 물수건을 테이블에 던지고 한쪽 소파에 놓인 재킷을 집어 들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별채를 나가 버렸다.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워 가현은 소파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몸을 말아 누었다.
흐트러져 그의 자극에 흐물흐물하게 흥분한 자신이 못나 보였다.
아직 하반신은 그의 손길에 뭉근한 감각으로 여운이 남아있었다.
그의 손에 희롱당한 가슴이 소파에 쓸리자 쓰라렸다.
“미쳤어, 정가현.”
트라우마를 잊게 해달라고 한 자신이 잘못인 줄 알지만 홀린 것처럼 나신이 된 채 그의 손에 무너지게 될 줄은 몰랐다.
지나고 나니 헐벗은 채 온실에 홀로 남겨진 자신이 비참했다.
잠깐만에 그의 손길에 길든 가현은 눈을 질끈 감고 혼자 울음을 삼켰다.
***
“장 여사님, 추위 때문에 창고에 있는 식자재가….”
이른 아침 한파로 창고 식자재가 냉해를 입었다고 장원댁에게 말을 전하려다 다이닝룸에서 지한과 마주쳤다.
지한은 눈길도 주지 않고 가현을 지나쳤다.
“안녕하십니까.”
“…….”
가현이 인사를 했지만 지한은 대꾸도 없이 커다란 다이닝 테이블에 앉았다. 장원댁이 차린 아침이 정갈했다.
가현은 아침부터 마주한 지한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냉해라니 며칠 춥다고 했더니 요즘 깜박깜박해서 이 정신머리에 관리를 한다는 게 잊었네.”
가현의 시선이 지한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장원댁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창고로 따라나섰다.
“가현아, 그런데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해?”
“아니에요. 추워서요.”
“그러면서 왜 따라나서 얼른 가서 출근 준비하지.”
“아직 시간 있어요.”
창고까지 따라간 가현은 멍하게 서 있었다.
전날 그와의 손길에 무너져 내리던 자신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창피하지만 어제 적나라하게 마주했다.
차지한만이 트라우마를 잠재울 수 있었다. 희망을 발견한 것 같았지만 아침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하데스를 닮은 차지한의 자주라는 생각을 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꿎은 장난처럼 세상 누구보다 차가운 남자의 손길만이 자신에게 안식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더는 그를 멀리할 수도 없었다. 그의 존재가 가현에게 중요하다는 걸 확인하고서는 오히려 그의 주위를 맴돌게 되었다.
가현은 사용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저택을 나섰다. 저택 대문에 다다라 경비원과 인사를 나누고 저택을 벗어났다.
그녀의 옆으로 검은 세단이 조용히 멈춰 섰다.
조수석 창문이 열리고 운전석에 앉은 명 비서가 가현을 불렀다.
“가현 씨 대표님이 타고 가라십니다.”
“저는 따로 출근하면 됩니다.”
“빨리 타.”
뒷좌석 창문이 내려지고 그가 짧게 말했다. 간결한 말에 토를 달지 못하고 가현이 조수석에 탔다.
차를 타고 숨을 참다 얕게 내쉬고를 반복했다. 숨이 막힐 만큼 그의 차 안 공기는 그를 닮아 있어 불편했다.
그가 혹시 어제 일로 무슨 말이라도 할까 긴장했지만,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일참 기업 입찰 관련 자료 가지고 와.”
“네.”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해 서로가 얼굴을 보았다. 지한은 무료하게 두 사람 중 하나를 지칭했다.
“명 비서에게 지시했어.”
“네, 도착해 보고드리겠습니다.”
사무실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모니터에 가득한 숫자들은 가현의 눈앞을 부유했다. 그가 지시한 자료를 가지고 들어가는 명 비서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가현을 보고 씩 웃었다. 가현은 민망해 고개를 돌려 바쁜 척했다.
가현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의 사무실 문을 여러 번 돌아보았다.
차지한이란 남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트라우마로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차지한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으면 불안해졌다.
트라우마가 더 무서운지 차지한이 더 무서운지 어느 것이 더 독인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저주라도 걸린 것처럼 왜 이래 정가현.”
의도적으로 그에게 가까워지려 모든 레이더가 차지한을 향해 가동됐다.
가현은 그림자처럼 지한의 동선을 따라 나타났다. 우연한 마주침이라 생각해 지한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임원진 미팅하러 대회의실로 향하는 그와 세 번째 마주쳤을 때는 그가 불러 세웠다.
“정가현 씨, 한가해?”
“네? 아닙니다.”
“명 실장. 비서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지?”
“네, 신경 쓰겠습니다.”
“일이 한가한가 본데, 업무량을 늘려. 대표 뒤꽁무니나 따라다니기엔 잘 돌아가는 머리가 아깝잖아.”
지한이 독한 말을 할 거라 각오했지만 자신을 세워놓고 명 비서에게 질타해 당황했다.
“죄송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명 비서님 잘못이 아닙니다.”
울상이 된 가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측은지심이 없는 사람이니 각오했지만 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건 미안했다.
지한이 가현의 앞에 다가와 작게 말했다.
“설마 어제처럼 안아달라고 따라다니는 건가?”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다 몇 걸음 뒤에 선 명 비서를 살폈다.
가현이 창피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원하는 바는 기다려.”
지한이 가현의 어깨를 툭 치고는 대회의실로 걸어갔다.
굴욕감에 가현이 주먹을 꼭 쥐었다. 그에게 무엇을 기대한 걸까. 자신이 바보 같았다.
길들여지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