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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는 밤-18화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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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차갑던 지한의 눈빛과 달랐다.

차가움이 농축되며 차갑다 못해 얼려버려 감각을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면 살갗이 뜨겁게 느껴지는 것처럼 그의 눈빛이 차갑다 못해 시리게 뜨거웠다.

그의 눈빛에 갇혀 꼼짝도 못 하고 서 있었다. 그는 강렬한 눈빛과 상반되게 그는 담백하게 돌아섰다.

“가지.”

그는 설명도 없이 가현을 이끌었다.

그의 마법에 현혹된 사람처럼 가현은 말 한마디에 이끌려 차에 탔다. 지한이 도착한 곳은 다른 곳도 아닌 집이었다.

사용인에게 귀가를 알리지 않고 정원을 가로질러 걸어가다 엉뚱한 방향으로 틀었다.

말없이 그의 몇 발짝 뒤에서 따라 걷던 가현은 그 자리에 서 움직이지 못했다.

이 집에 와 비를 피하려고 가현이 들어가려다 면박을 당했던 온실이 딸린 별채 앞이었다.

그가 열어서는 안 될 문을 열고 가현을 돌아보았다.

이 집에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던 그곳은 금단의 구역이었다. 나쁜 짓을 하는 것처럼 긴장됐다.

“거기 계속 서 있을 건가?”

“…….”

그의 말에 이끌려 다시 발걸음을 뗐다. 낮은 계단 아래 서 지한을 보았다.

저곳에 들어가도 될지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물끄러미 그를 보고 있으니 지한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자신을 트라우마에서 해방시켜 주겠다는 그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이 손을 잡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잡지 않을 수도 없었다. 가현은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손바닥 위에 작은 손을 얹었다.

그가 힘있게 끌어당겨 계단을 단숨에 올라가 금단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

별채의 넓은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구획이 나누어지지 않은 별채는 하나의 공간이라 더없이 넓어 보였다. 한쪽에 온실과 연결된 벽면 크기의 커다란 문이 있는 것 외에는 한눈에 다 들어왔다.

고풍스러운 중세 시대를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에 잘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소파와 콘솔 그리고 소소한 가구 외에는 물건이 많지 않았다.

벽에 걸린 파스텔 색감의 그림이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아 눈에 띄었다.

층고가 높은 천장에는 크리스털이 달린 커다란 샹들리에가 눈길을 끌었다. 흔들리는 크리스털이 빛을 받아 보석처럼 눈부시게 반짝여 그가 말을 걸 때까지 구경했다.

“이 집에 있는 사람 중 이곳에 못 들어오는 사람이 대다수야.”

“네, 알고 있어요.”

지한은 소파로 걸어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앉았다. 다리를 꼬고 앉은 그는 고풍스러운 이곳과 잘 어울렸다. 가현은 묘한 공간에 시선을 빼앗겨 둘러보며 감상평을 말했다.

“이곳은 넓고… 고풍스럽고… 대표님과 어울리네요.”

별채에 모나지 않게 어울리는 그가 앉은 모습을 감상하듯 보았다.

“이곳에 들어왔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지.”

그의 목소리에 무게가 실려 가현의 심장을 묵직하게 누르는 느낌이었다.

지한은 이해할 수 없는 묘한 말과 평소보다 차분하지만 열기로 가득한 목소리로 가현을 흔들었다.

“특별한 의미?”

가현은 그가 한 말을 따라 말했다. 그 말을 곱씹어 이해하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직도 필요한가? 그 머릿속을 비울 생각.”

“네.”

가현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지한이 미묘한 표정으로 쏘아보았다. 차갑다 못해 시리게 뜨거운 눈빛이 경고 같아 긴장되었다.

“이후에 나 외에는 떠오르지 않을 텐데…… 괜찮겠어?”

“공포심만 지울 수 있다면요.”

가현은 물러날 곳이 없었다. 어떤 장소 어떤 곳에서 트라우마로 쓰러질지 모르는데 이것만 없다면 살 것 같았다.

입꼬리를 올린 그의 입술에서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원하는 대로 그 작은 머리에서 나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게 해주지.”

“…….”

왜였을까 그의 말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니 벗어.”

가현의 눈빛이 흔들렸다.

망설임도 없는 그의 목소리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한 번도 누군가 지켜보는 곳에서 옷을 벗어본 적이 없었다.

망설이는 가현을 보고 느긋하게 입술을 쓸며 지켜보았다. 그녀를 도와줄 리는 없었고 눈앞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지한은 그녀를 벼랑으로 먼저 밀어버릴 남자였다.

망설이던 가현이 입고 있던 블라우스 단추에 손을 가져갔다.

느린 손길이 단추 하나를 여는 데 한참이 걸렸다. 느리다 채근할 법도 한데 지한은 인내심 있게 가현이 하는 모든 행동을 눈에 담았다.

가현이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곳에 들어섰을 때보다 그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와 다른 눈빛이 날카롭게 가현을 응시했다.

“두려운 머릿속 비워달라고 하지 않았어?”

“…….”

지한의 말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잔상들은 이제 공포였다. 이것만 없다면 살 것 같았다.

그리고 차지한 그와의 스킨십은 언제나 공포를 물러나게 하는 마법 같았다.

지금은 그것이 절실했고 가현은 용기를 내었다.

힘겹게 풀었던 단추 하나를 끝으로 가현의 블라우스 단추가 스르륵 풀려 내려갔다.

그녀의 손이 빨라질수록 지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잘하네.”

독려하듯 지한은 툭 던지는 말투로 칭찬했다.

대리석 바닥으로 쉬폰 블라우스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속옷 사이로 풍만한 가슴골이 드러났다.

시간을 끌어봐야 오히려 부끄럽기만 했다.

가현은 눈을 질끈 감고 치마와 캐미솔을 벗었다.

마지막 속옷을 끌어 내렸을 때 봉긋한 가슴 끝에 연분홍 정점이 드러났다.

그제야 다리를 꼬고 앉았던 지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신의 그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가현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가현의 커다랗고 불안한 눈망울이 잔인한 그를 올려다보았다.

팬티만 입고 선 가현이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그는 흐트러짐 없이 슈트를 차려입은 그대로였다. 그런 그 앞에 나신으로 서 있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손 내려.”

가현이 차마 내리지 못하고 있자 그녀의 허리를 잡아채어 어깨에 둘러멨다.

그의 손이 두 다리를 단단히 잡아 그의 등을 보고 매달린 꼴이 되었다.

“앗. 내려줘요.”

“그러게, 말을 들었어야지.”

지한은 가현을 소파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사용인의 말로는 그는 자신이 이 집에서 처음 쓰러졌을 때도 침대에 자신을 던졌다고 했다.

소파에 내동댕이쳐진 가현의 머리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흘러내렸다. 지한이 누운 모습을 내려다보더니 그녀가 누운 머리맡 소파 끝에 앉았다.

1시간 전이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모습으로 그의 앞에 있다니 꿈을 꾸는 것처럼 얼떨떨했다.

그의 손에 이끌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침대나 다름없는 넓은 소파에 누워 있다니….

머리맡에 앉은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의 시선이 꼼짝도 못 하고 누운 봉긋한 정점에 닿았다.

그의 차가운 손끝이 눈으로만 탐하던 가현의 자극점을 문질렀다. 생각지 않은 터치는 손끝으로 전해지는 차가운 온도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 앞에서 빠짝 긴장했던 몸을 잘게 떨며 어깨를 움츠렸다.

‘음.’

목으로 타고 오르는 신음을 입술을 깨물어 참았다.

늘 생각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낮은 체온은, 매번 낯설었다.

농밀하게 차가운 손끝이 가현을 희롱했다. 어디로 옮겨갈지 모르는 손끝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눈을 질끈 감고 참아보려 했지만 깨물고 있던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흘렀다.

“으음.”

생각지 않게 신음을 더 내뱉기도 전에 그에게 입술이 삼켜져 턱이 들렸다.

그의 손끝과 대비되게 입술은 더없이 뜨거웠다.

단번에 삼켜진 입안으로 그의 말캉한 열기가 다물린 입안을 가르고 들어찼다. 입안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턱이 아플 정도로 크게 입을 벌려 그를 받아들였다.

그에게 먹히듯 잠식된 키스에 숨쉬기가 힘들어 드러난 가슴께가 들썩일 정도였다. 그 열기를 잠재우듯 차가운 손길이 그 위를 짓눌렀다.

손과 입술이 오고 가는 곳마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교차해 모든 감각들을 하나하나 깨웠다.

두 가지 감각이 오가는 곳마다 온몸이 바르작거렸다.

그의 손길이 거세지고 입안을 밀고 들어오는 말캉한 부피감에 놀라 눈을 떴다.

꿀렁이는 그의 목젖이 눈앞에 있었다. 그의 손 가득 들어찬 자신의 살결이 문질러지는 감각에 입술을 떼려 했다.

발버둥 치는 가현의 작은 몸을 단번에 들어 무릎에 앉혔다.

그의 커다란 손이 손쉽게 가현을 저지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가현을 리드했다.

소름이 돋다가 뜨거운 입술에 녹아내리기를 반복하니 그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몸을 채우는 감각을 받아들이기 바빴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손길이 가현의 몸을 마구 휘저었다.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그의 애무는 가현을 달아오르게 했다.

층고가 높은 넓은 공간은 작은 소리에도 울려 벽을 타고 다시 돌아왔다.

가현이 자신의 신음에 놀라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참는다고 참아질까?”

길들여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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