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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는 밤-11화 (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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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숙이 밀고 들어오는 그의 숨이 폐 끝까지 밀려드는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살기 위해 숨을 들이마시듯 그의 옷을 꼭 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틈 없이 맞물린 입술에 딸려 그의 품 안에 가현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딩딩 엘리베이터 도착음과 함께 열린 문이 닫힐 때까지, 겹쳐진 입술이 가현을 채웠다.

서늘한 그의 손이 목덜미를 잡아 잃어가던 정신을 잡아끌었다.

가쁜 숨이 잠시 진정을 찾으며 세차게 조여오던 흉통이 조금 나아졌다.

그렇다고 해도 한번 온 과호흡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가현을 태운 지한이 직접 차를 운전했다. 운전을 하며 그는 교진에게 전화했다.

- 네, 대표님.

“정가현 사무실에서 과호흡이 왔습니다. 서 닥터 집으로 오라고 하세요.”

- 가현이가 또 쓰러졌습니까?

놀란 교진의 걱정하는 질문에 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정신은 잃지 않았습니다. 응급처치는 했으니까 불러요.”

그가 말하는 응급처치가 키스라고 생각하니 잃지 않은 정신이 원망스러울 만큼 창피했다.

그는 신경도 안 쓰겠지만 가현은 고개를 돌렸다.

차 안에 가득한 머스크 향이 신경 쓰였다. 그의 향이 가득할 때는 늘 키스할 때였다. 그 생각을 하니 얼굴이 붉어졌다. 밀폐된 차 안에 둘만 있는 것이 신경 쓰였다. 빨리 집에 도착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

가현은 아침 해가 비쳐 드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햇살에 부유하는 먼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현은 원치 않게 지한의 사무실에서 만난 고지국 국회의원과의 불미스러운 일로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나쁜 인간들은 차고 넘치게 많은 세상인 건 기억을 잃었어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머릿속을 제어하는 잊힌 기억이 답답할 뿐이었다.

그냥 기억만 잃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 밑바닥에 숨어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 공포로 다가와 문제를 일으켰다. 기억을 잃은 것도 서러운데 트라우마로 일상생활도 평범하게 할 수 없어 억울했다.

며칠을 차지한이란 남자만 생각했다.

왜 트라우마로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밀려들 때면 그 남자의 스킨십에 사그라드는 걸까?

창피해도 그 순간에는 그에게 매달렸다. 분명 자신이.

산책로를 돌아 정원에 들어왔다. 하늘은 흐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보며 많아지는 생각에 한숨을 푹 쉬었다.

야옹

며칠 전 조금 친해진 아직 어린 길고양이가 다가왔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먹을 것이 없나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고는 ‘야옹’하고 가현을 보고 울었다.

제법 아는 체를 해 쪼그리고 앉아 손을 내밀었다.

서슴없이 다가오는 고양이는 손에 코를 가져다 대고 볼을 비볐다.

“안녕? 이젠 아는체 해주는 거야?”

고양이는 사람의 손길이 그리웠던지 연신 가현의 다리 사이를 오가고 손에 얼굴을 비볐다.

사람을 피하면서 선뜻 입밖에 말하지 못했던 마음속의 고민을 고양이에게 중얼거렸다.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야옹.”

대답이라도 하는 듯 고양이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울었다.

“고마워. 된다고 말해줘서.”

“해석도 마음대로인가?”

롱코트에 손을 찔러 넣은 지한이 여전히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셨어요?”

지한인 것을 알고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 와중에도 고양이는 새로운 사람이 궁금한지 지한의 바지에 다가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지한은 돌발적인 고양이의 행동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작은 고양이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경계를 잔뜩 하는 그는 며칠 전 고 의원에게 했던 고압적인 태도와 너무 달랐다. 평온한 표정으로 고 의원의 손을 부러뜨리고 가슴에 금배지를 박아 넣던 남자가 맞는지 손바닥만 한 고양이게 날을 세우는 커다란 남자가 처음으로 귀여워 보여 피식 웃었다.

“뭐가 웃겨?”

빈정 상한 듯해 보이는 지한에게 작게 변명을 했다.

“아, 작은 고양이를 경계하셔서요.”

“난 고양이 같은 동물은 싫어.”

“…….”

잔인함도 서슴지 않는 이 남자가 무엇인들 좋아했던가 싶었다.

쭈뼛거리며 그의 앞에 어색하게 서 있자 그가 건물 쪽으로 말도 없이 발길을 돌렸다.

가현이 그의 발길을 세웠다.

“저, 며칠 전에는 감사했어요.”

머뭇거리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신변이 위험한 순간에도, 호흡곤란으로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도 그가 자신을 살렸다. 그에게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었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 내 사무실에서 주인인 줄 알고 까부는 사냥개는 살려둘 생각이 없으니까.”

그가 가현 앞으로 다가왔다.

“사람은 의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매번 내가 살려 줄 수는 없잖아. 몸이든 목숨이든 셀프로 지켜.”

“의지로 해결되면 트라우마가 아니에요.”

자신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그는 죽었다 깨어도 모를 것이다. 늘 생각했지만 남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잔인한 사람이었다.

“대표님 같으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연기할 수 있겠어요? 제가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그냥 고문이라도 해서 실토하게 하시죠.”

지한은 무료한 눈으로 날을 세우고 화를 내는 가현을 내려다보고는 한마디 던지고 돌아섰다.

그 말에 가현은 더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의 그늘을 벗어나서는 이제는 살 수 없는 처지였다. 한숨이 절로 났다.

“고문이 적절했다면 이미 했겠지. 내일부터 다시 출근해.”

“……나쁜 놈.”

그렇게 며칠을 더 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처럼 지냈다. 누구 하나 재촉하는 사람이 없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간 주방에서 교진은 가현의 앞에 약사발을 들려주었다.

짙은 갈색의 약이 하얀 약사발 안에서 찰랑였다. 짙은 한약 냄새에 가현이 약과 교진을 번갈아 보면 물었다.

“이게 뭐예요?”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에 좋다는 한약이야. 몸에 좋은 거니까 얼른 마셔.”

“저 이런 거 안 먹어도 돼요. 병원에서 주는 약 먹는걸요.”

“그걸로도 안되니까 여러 방법을 써봐야지.”

그녀의 앞에 사탕이 담긴 그릇을 내려놓으며 장 여사가 웃었다.

“정 실장님이 가현이 얼른 나으라고 비싸게 주고 지으신 약이야. 얼른 쭉 마셔.”

눈앞에 자신이 약을 마시기만을 기다리는 두 사람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가현을 걱정하고 챙겨주지 않았다면 정말 홀로 견뎌야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베풀어 준 마음이 가현에게 진하게 배어들었다. 목이 메 가만히 약사발만 내려다보았다.

“왜 못 마시겠어?”

기다리던 장 여사가 참지 못하고 물어오자 말은 못 하고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정말 감사해요.”

“별소릴 돈은 정 실장님이 썼어.”

“약 챙기는 건 장 여사님이 했죠.”

두 사람은 가현을 앞에 두고 서로에게 공을 돌렸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가현이 웃었다. 갑자기 눈물을 매단 가현을 보고 두 사람이 놀라서 쳐다보았다.

“저 복이 터졌나 봐요. 두 분을 만난 걸 보면요.”

“울긴 왜 울어? 얼른 먹고 아프지 마.”

“네. 안 아플게요.”

머쓱해하던 장 여사가 우는 것을 핀잔줬지만, 그 속에도 애정이 담겼다.

눈물이 또르륵 볼을 타고 내렸다. 하지만 따뜻한 마음만은 온몸 가득 차올랐다. 밝게 웃는 가현의 눈가가 반짝반짝 빛났다.

손에 든 약사발을 단번에 마셨다. 장 여사가 가져다 놓은 사탕을 얼른 입 안에 넣어주었다. 한쪽 볼이 부푼 가현을 보고 교진이 웃자, 두 사람이 따라 웃었다.

***

며칠 후 오전, 비서실이 분주하게 돌아갈 때 라윤이 지한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큰 키가 돋보이는 바지 정장을 차려입은 그녀는 우아하고 세련되어 모두 돌아볼 정도로 잘난 여자였다.

“잘 지냈어요. 김 비서님.”

“네, 백 본부장님. 대표님은 지금 화상통화 중이십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죠.”

그녀는 비서실 직원들과 친숙하게 인사를 하곤, 비서진들과 약속 시간을 확인하며 대화를 했다.

라윤이 비서실을 무심히 둘러보다 움직임을 멈추고 한곳을 응시했다. 갑자기 또각또각 걸어가 가현의 파티션 앞에 서 비딱하게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마주치지 않길 바랐는데, 여기서 또 보내요.”

“……안녕하세요.”

가현이 라윤을 알아보고 어색하게 인사했다. 가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호의적이지 않았다.

“들어가시죠. 본부장님.”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요.”

라윤은 비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현에게 다음 만남을 염두에 둔 말을 남기고 대표실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묘한 분위기에 서 비서가 관심을 보였다.

“가현 씨는 백라윤 본부장님을 어떻게 알아?”

“아 그게… 말하자면 길어요.”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관계라 딱히 설명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또 생각해보면 그저 낯선 타인이었다. 라윤이 말하는 것처럼 따로 이야기할 거리도 없건만 그녀는 왜 그렇게 날을 세우는지 알지 못했다.

질문은 설명이 어려워 난감했다.

길들여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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