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들여지는 밤-10화 (1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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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글거리며 하는 말은 가현의 나이를 듣고는 더 노골적으로 질문했다.

“남자 친구는 있어? 그냥 세월 보내기엔 아까워.”

처음 보는 사이에 질문하기에는 무례하지만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미난 거리를 찾았다는 듯 질문이 계속되어 가현은 긴장되었다.

“…….”

“내 주위에 괜찮은 남자들이 많아. 소개해 줄까?

“아닙니다.”

빨리 회의실을 나가려 했지만 고지국은 이 방을 나가게 두지 않았다.

“나는 어때? 내가 이래 봬도 나이보다 동안에 건강검진을 해도 30대로 나올 정도로 힘도 좋다니까.”

놀란 토끼 눈을 한 가현이 노골적인 말에 대답을 못 했다.

“저, 저는 나가 보겠습니다.”

“인턴이라고 했나?”

그의 입술만 미소를 띠고 있을 뿐 그의 눈빛은 달라져 전혀 웃지 않고 있었다.

상대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내가 인턴한테 무시당할 사람은 아닌데 말이야. 안 그래? 가현 씨.”

“무… 무시라니요. 아닙니다.”

겨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협박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해 자리에 못이 박힌 듯 서 있었다.

“나도 우리 가현 씨와 친해지고 싶어 그러지. 여기 사무실이야 자주 오고 가족과 마찬가지거든.”

가현이 주눅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달래듯이 말하며 다가오는 손길이 소름 돋았다. 온몸에 세포들이 곤두서 두 손을 맞잡은 채로 고지국 앞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 가현 씨 정직원 되고 싶지 않아? 내가 어디 좋은데 정직원으로 취직시켜 줄까? 여기 말고도 내가 좋은 회사 얼마든지 넣어줄 수 있는데….”

그의 손이 가현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손이 더는 아무 짓도 하지 않길 바라게 되었다. 점점 심장 박동수가 빨라져 쿵쿵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저, 아니요….”

“가현 씨, 아직 사회생활을 안 해서 잘 몰라 그래. 융통성이 있어야 사회생활도 순탄하게 잘 할 수 있는 거야.”

움찔하면서도 차마 피하지 못하는 가현의 행동에 이제는 대담하게 회의 테이블에 걸터앉아 어깨를 한쪽 팔로 끌어당겼다.

“오늘 저녁에 뭐 해? 집에 빨리 가면 뭐하나, 나와 식사도 하고 진솔한 대화도 하면서 앞으로 가현 씨 하고 싶은 일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고.”

“아, 아닙니다. 나가보겠습니다.”

손이 덜덜 떨렸지만,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손을 뿌리치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회의실 문으로 걸어갔다. 저 문만 열면 살 수 있다는 생각 이외에 다른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그때, 먼저 걸음을 옮긴 고지국이 가현이 반쯤 열었던 회의실 문을 붙잡고 밖을 살피더니 힘으로 닫았다. 인기척이 없는 사무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더니 직설적으로 말했다.

“끌어줄 사람이 있는 것도 복이야. 나 정도면 한방에 평탄하게 사회생활 잘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인데.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것도 어리석은 거야. 가현 씨 앞으로 사회생활 힘들게 하고 싶어?”

고지국의 눈과 마주치자 마음 밑바닥에 있던 어떤 표정과 겹쳤다.

느물거리며 끈적한 눈빛, 자기 몸을 훑는 시선이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가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심장이 뛰다 못해 흉통이 느껴졌다. 가현이 회의실 문을 놓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걸 또 놓치지 않고 뒷걸음질 친 만큼 가현에게 걸어오며 고지국이 가현을 압박했다.

“가현 씨가 한번 마음 잘 먹으면 되잖아. 요즘 젊은 아가씨들 명품 가방 하나에도 능력 좋은 남자 많이 만나는데, 순진한 척이야? 정말 순진한 거야?”

가현의 대답도 못 하는 행동에 고지국은 오히려 흥미가 당기는 말투로 말했다.

“가현 씨, 남자 한 번도 안 만나봤구나? 생각보다 가현 씨 귀엽네.”

가현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가슴을 들썩였다. 정신을 차리려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이미 공포감에 휩싸인 가현은 압박하듯 다가오는 고지국에게 한 발짝이라도 멀어지려 자꾸 뒷걸음질 쳤다.

“가현 씨. 자꾸 이러니까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

고지국은 늦은 시간 올 사람도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여유가 있어 보였다.

“나쁜 새끼가 아니면 더 이상하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는 불쾌함이 한껏 묻어 있었다.

숨을 몰아쉬는 가현도 그녀에게 다가가던 고지국도 뒤돌아보았다.

검은 정장에 검은 코트까지 차려입은 지한이 방금 사무실에 도착했는지 회의실 문 앞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웠다. 저승사자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서 있으니 그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의 시선이 가현과 교차했다. 가현의 상태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는 더 언짢아졌는지 한숨을 쉬었다. 잠시 당황하던 고지국이 표정을 바꾸고 지한에게 몸을 틀었다.

“오셨습니까? 사무실에 계실까 해서 찾아뵈었습니다.”

“이 밤에?”

지한의 목소리에는 찍어누르는 특유의 고압적인 기운이 서려 있었다. 이런 목소리로 변하면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동으로 긴장했다.

“늘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일하셔서 당연히 계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언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했지? 고 의원.”

빈정거리는 반말에도 고 의원은 눈치만 보았다. 한참 나이가 많은데도 지한과 고 의원의 상하관계는 확실해 보였다. 가현은 호흡이 힘들어 회의 테이블에 기대어 겨우 서 있었다.

“긴히 정당에서 전하라는 할 말이 있어서….”

“웃기는군.”

지한이 그의 진지한 태도에 말도 끝나기 전에 끊어버렸다. 그가 걸어들어와 고 의원의 앞에 섰다.

“고의원 일 년 동안 받는 돈이 얼마지?”

“…그건 갑자기?”

“재깍재깍 대답해야지. 여러 말 하기 싫어하는 거 알 텐데.”

“네!”

“친절은 오늘이 마지막이야. 일 년에 10억 정도 거기에 플러스알파까지.”

“…….”

고 의원이 머쓱해 하며 지한의 비위를 맞추려 머리를 굴리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지한은 고 의원의 처세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의 머리에 박아넣듯 읊조렸다.

“그런데 말이야 고지국 국회의원이란 금딱지는 내 사무실에서 내 직원 이따위로 대하라고 준 시간과 돈이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날 여러 말 하게 만들었어. 이미.”

심각성을 느꼈는지 고 의원의 말이 빨라졌다. 그 사이 장신인 그가 고 의원 앞에 서 있었다.

“대표님, 오해 십니다. 이 여직원이 먼저 저한테 추파를….”

지한이 고 의원의 가슴팍에 꽂혀 있는 금배지를 잡아당겼다. 그대로 그의 손에 딸려 올라간 금배지를 고정하던 핀이 빠져 그의 손에 들린 채 반짝였다.

뒤에서 지한을 뒤늦게 따라왔는지 명 비서의 인기척이 들렸다.

“대표님 무슨 일이십니까?”

지한은 명 비서의 목소리에 손을 들어 올려 말을 저지했다.

“많이 컸네. 고 의원. 그러면 이 배지도 혼자서 잘 지켜봐.”

“윽.”

그러면서 정장 안 와이셔츠에 그대로 금배지를 꾹 눌러 고정했다. 금배지가 박힌 와이셔츠에서 피가 번져갔다. 고의원은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고도 그가 두려워 토 한번 달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잘못했습니다.”

“머리 회전 빠르니 알아들었겠지. 당신 말고도 날 위해 일해 줄 사람은 많다는 말이야. 정치자금은 여기까지 하지.”

“대표님. 제가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는 제대로 일하겠습니다.”

고 의원은 꼴사납게 지한에게 매달리며 말했다.

지한은 저를 붙잡은 손을 억세게 잡아 악력으로 떼어냈다. 고 의원의 손에서 으드득 소리가 났다.

어딘가 부러졌는지 고 의원은 한 손을 움켜쥐고 신음했다.

으윽

그의 비명이 크게 들렸다.

“내 눈에 띄지 마. 고 의원.”

“…….”

고 의원의 눈높이에 눈을 맞춘 그가 노려보았다. 고 의원은 더는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일 뿐이었다.

손을 부여잡고 식은땀을 흘리는 고 의원을 돌아 가현에게 다가갔다.

“숨 쉬어. 정가현.”

가현은 숨을 몰아쉬면서 겨우 짚고 있던 한 손을 뻗어 그의 슈트 자락을 움켜쥐었다.

덜덜 떨리는 손이 그대로 지한에게 전달되었다.

지한은 그대로 가현을 잡아 들어 올렸다. 허물어지듯 주저앉던 그녀의 몸이 가볍게 그의 손에 딸려 올라가 발끝이 겨우 바닥에 닿아있었다.

그가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가현을 보고 인상을 썼다.

“일 시키기도 쉽지 않아.”

다른 팔로 그녀의 다리를 받쳐 안아 올렸다.

그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은 그녀를 안고 회의실 문을 나서면서 명 비서를 흘긋 보았다.

“저 물건 이 사무실에서 치워.”

고 의원을 턱짓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곧바로 나갔다.

그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호흡은 점점 가빠졌다. 한번 느낀 공포는 끈덕지게 가현을 괴롭혔다.

“정신 차려. 정가현.”

그는 더는 안 되겠는지 핏기 하나 없이 숨을 제대로 쉬지 않는 그녀를 엘리베이터 손잡이에 의지할 수 있게 세웠다. 그녀가 자리를 잡고 서자 그의 입술이 단숨에 가현을 집어삼켰다.

길들여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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