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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210)화 (210/214)

210화 

안 되겠다. 클라우드는 혹시 모르니 미리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을 목전에 두고 죽고 싶지 않았다.

죽음은 언제나 그와 멀리 떨어져 있는 딴 세상 이야기와 다를 바 없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클라우드가 손가락 하나를 까닥였다. 검은 빛줄기가 어느 지점에 가 닿더니 공기가 진동하며 울리기 시작했다.

“뭐, 뭘 한 거야?”

록사나가 당황하자, 그가 껄껄 웃었다.

“내 작은 선물이야. 방금 정령사 아가씨한테 위협이라는 선물을 받으니까 나도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선물이 생각나서 꺼냈어.”

클라우드가 말을 끝내자마자 울림이 멈추었다.

록사나는 저자가 그녀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 필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는 단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뿐이었다. 궁지에 몰린 쥐를 감상하듯이 말이다.

“그 선물 거절하겠어.”

“이런, 어쩌지. 이미 내 선물이 정령사 아가씨한테 전해진 것 같은데.”

클라우드가 그녀의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록사나는 본능적으로 번개가 온몸을 관통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손안에 정령의 기운을 끌어모았다. 이내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힘이 전혀 발휘되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록사나가 버럭 성을 내자, 클라우드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보다시피 정령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았지. 불리한 상황을 계속 이어 갈 생각이 없거든.”

상황이 역전되었다. 록사나는 힘을 잃었고, 클라우드는 그녀와 다르게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얼마 안 있으면 그녀의 힘은 그의 것이 될 것이다.

그동안 그녀가 정령술을 사용할 수 있게 내버려 둔 건 정말 그녀가 정령사가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에 불과했다.

‘내가 짐작했던 것 이상으로 강해.’

록사나가 그를 위협하며 처음 손에 힘을 모았을 때 이미 파악을 다 끝냈다.

그녀가 가진 정령의 기운의 순도는 무척 맑고 높았다. 그가 지금껏 보아 온 정령 왕들보다도 더!

클라우드는 자연스럽게 아주 오랜 옛날 만났던 한 정령사와 정령이 떠올랐다.

보통은 정령사보다 정령이 더 강하다. 정령사는 그저 정령의 힘을 빌리는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딱 한 명 예외가 존재했다. 그 예외는 바로 그녀가 만났던 한 소녀였다.

소녀는 정령 왕들보다 강했다. 모든 정령 왕들은 소녀에게 모두 무릎을 꿇었었다. 그리고 그들은 소녀를 이렇게 불렀다.

정령 왕들의 왕, 별의 정령사.

‘어쩌면 정령 왕들을 뛰어넘는 잠재력을 가졌을지도 모르겠군.’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이 세상의 하나뿐인 보석을 쥐게 된 클라우드의 입가에 절로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잔뜩 성이 난 록사나가 그의 상념을 깨뜨렸다.

“역시 네가 로웰 후작 뒤에 있는 최종 흑막이자 빌런이었어. 이 모든 일의 원흉!”

그녀가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클라우드의 입꼬리가 삐딱하게 비틀렸다.

악당이니 원흉이니 하는 말들은 워낙 많이 들어서 식상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정령사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그녀의 행동이 무례하게 느껴져 거슬렸다.

‘그러고 보니 내게 처음부터 경어를 사용하지 않았어.’

지금까지 그가 긴 생을 살아오는 동안 권력과 힘을 갖지 못했던 때인 초반을 제외하고는 그는 우러름의 대상이 되었고, 모두가 늘 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오랜만에 격식을 차리지 않고 편하게 말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그는 무척 신선한 기분이 들어서 그녀의 말투를 신경 쓰지 않았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으니 지금 당장 말버릇을 고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

록사나가 그에게 줄 것들을 생각하니 클라우드의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졌다.

그는 그녀가 궁금해할 사실들을 지금 모두 다 알려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록사나는 이에 대해서 들을 충분한 자격이 있었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감출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이상 자신의 비밀을 숨기고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맞아, 정령사 아가씨. 내가 이 모든 일의 시작이자 원흉이지.”

록사나는 그 말끝마다 자신을 정령사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이 몹시 귀에 거슬렸다. 시비를 걸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를 계속 정령사 아가씨라고 부르는 데에는 분명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

가령 꼭 정령사여야만 하는 이유라거나, 혹은 모든 일을 해결하는 단서일지도 몰랐다.

‘때를 기다리자. 절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겠다고 아스와도 약속했고. 게다가 전체적인 상황을 알아야 샤일리와 봉인된 정령들을 구할 수 있어.’

록사나는 격언을 떠올렸다. 준비된 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녀는 침착한 얼굴을 가장한 채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클라우드가 신이 난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자신이 어떻게 해서 힘을 얻어 대마법사가 되었고, 힘을 잃은 뒤에는 어떻게 해서 다시 힘을 조금씩 모았는지를 마치 영웅의 모험담처럼 줄줄이 풀어냈다.

모든 이야기를 끝마친 클라우드가 기대를 가득 담아 록사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육망성 표식을 가진 자들과 로웰 후작은 당신 따까리라는 거네.”

“맞아.”

특히 육망성 내에는 소수의 흑마법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클라우드만큼은 아니지만 최소 백 년 넘게 살아온 자들이었다.

정령과 정령사의 힘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출해 내는 방법을 오랜 시간 연구해 왔다.

또한 대륙에서 정령과 정령사의 씨가 마르자, 잡아들인 이종족들을 이용해 갖은 실험을 자행했고, 키메라를 만들어 냈다.

리온 제국이 세워지게 된 추악한 역사와 거기에 숨겨진 비밀들을 모두 알게 된 록사나는 분노를 드러내며 클라우드를 더럽고 하찮은 벌레를 보듯 쳐다보았다.

“날 납치한 건 내 힘을 빼앗아 다시 대마법사의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서라니, 참 솔직하네. 게다가 리온 제국을, 더 나아가 대륙 전체를 지배하려는 속셈인 거고 말이야.”

“아주 잘 이해했군.”

“지금의 황제와 황족들이 모두 당신 후손인 걸 잊지 않았지?”

“설마, 잊었을 리가. 네 말처럼 내 후손들인데.”

“결국 자식과 다른 없는 황제를 몰아내고 기어이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거야?”

지금의 황제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어이가 없었다.

클라우드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반박했다.

“원래는 내 자리였다. 내가 물려준 걸 되찾아 오겠다는 게 뭐가 이상하지?”

이자는 황제나 황태자보다도 더 권력에 미친 자였다. 그의 오른쪽 자수정 안이 소름 끼치도록 징그러웠다.

후손인 테오도르의 고귀하고 순수한 빛으로 반짝이는 자수정 안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순도 높은 은발 또한 칙칙한 그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 맞다. 본래 이자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정령 왕을 죽인 후에 머리와 눈이 은색과 자수정으로 변했다고 했지?’

정령이 가진 힘뿐만 아니라, 그 외모적 특징까지 강탈할 수 있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록사나는 만약 그가 되면 죽으면 외모는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본연의 외모를 되찾게 될까? 그리고 그 후손들은?

테오도르가 은발과 자수정 안이 아닌 다른 빛깔을 가지게 되는 것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다른 색을 지녀도 분명 잘 어울릴 거야.’

남의 것을 빼앗아 거짓으로 이어 온 황족의 외향적 특징은 엄연히 한 정령 왕이 지닌 것이었다.

어쨌든 그러니까 정령 왕의 외향적 특징이라고 바뀌어야 옳았다. 직접적으로 서로 피가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당신 이름이 클라우드라고 했지? 클라우드, 나이를 그렇게 처드셨으면 나잇값 좀 해.”

연장자인 그를 나름 존중해 주는 의미에서 처먹다라고 말하지 않는 세심한 배려를 선보였다.

록사나가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자, 클라우드는 속도 없이 히죽 웃었다.

수하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녀가 저를 질타하는 것조차 기꺼웠다.

곧 새롭게 태어날 자신의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면 인자한 인물을 흉내 내는 것쯤이야.

클라우드가 록사나의 속을 박박 긁었다.

“가만있자. 내 나이가 올해로… 한 1,000살 조금 넘은 것 같군.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는 건 싫은데 정령이랑 정령사들을 잡아먹는 건 참 좋았지.”

“당신은 괴물이야!!”

“부정하지 않을게.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게 당하느니 나처럼 힘 있는 자에게 먹히는 게 나을 거야. 뭐라도 하나 세상에 남길 수 있고, 그걸 계속 이어지게 해 줄 수 있으니까. 이것처럼.”

그가 징그럽게 오른쪽 눈가를 찡그려 윙크했다. 이어서 입으로 바람을 후 불어 앞 머리카락을 날렸다. 그것이 커튼처럼 흔들거렸다.

자수정 안과 은발. 즉 정령 왕의 외향적 특징을 후세에 길이길이 남기고, 만인이 우러러보게 만들었다. 바로 그가 정령 왕에게 베푼 아량이었다.

“역시 악당은 악당이야. 자기 좋을 대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주 능숙해. 정령 왕의 힘을 흡수해서 변하게 된 거지 당신 의지대로 선택했던 게 아니면서 말이야.”

“그래서 이번에는 오로지 내 의지대로 선택했지. 흑발에 녹안이라. 아주 마음에 들어.”

클라우드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순간 록사나는 그의 두 눈을 파내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정령의 기운을 모두 흡수하면 상대방의 외모로 변한다. 클라우드는 그녀의 힘을 취하겠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내가 가만히 앉아서 당할 거 같아? 웃기지 마!”

“이제 정령술도 쓰지 못하는 주제에. 네가 뭘 할 수 있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클라우드는 리온 제국의 시조이자 대제였고, 위대한 대마법사였으며, 다시 대마법사로 거듭날 자신에게 록사나가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맞서자, 단단히 빈정이 상했다.

“흥, 정령술은 막혔어도 내 두 다리와 손은 아주 멀쩡해. 적어도 네놈의 숨통을 조일 수 있을 만큼은 말이야.”

짐승보다 못한 자를 더 이상 존중을 해 주고 싶지 않았다. 록사나는 짐승에게는 짐승의 대우를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당장에라도 그의 목을 조를 듯이 다가오자, 클라우드가 손끝에서 검은 기운을 불러일으켜 그녀의 움직임을 제지했다.

몸에 직접 타격을 가할 수도 있었지만 온전한 힘을 얻기 위해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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