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209)화 (209/214)

209화 

【 정령 왕들의 왕, 별의 정령사 】

수도 케일라가 발칵 뒤집혔다.

“속보요! 속보.”

“호외입니다, 호외.”

“수도에 키메라가 나타났습니다!!”

“뭐? 키메라라고?!”

“여기 신문 하나 주게.”

지난밤 카일라니 공작과 아벨리오 남작이 황실 여름 무도회에 참석했다가 귀가하는 도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에게 공격을 당했다는 소식은 모든 신문 기사의 1면을 장식했다.

공격한 자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의 키메라였으며, 그 와중에 아벨리오 남작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은 제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록사나가 납치라는 말 대신 행방불명으로 처리된 것은 카일라니 공작가 측에서 일부러 정보를 조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은 카일라니 공작과 록사나의 측근들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한편 황제의 명을 받은 황실 직속 3기사단이 현장에 급파되었다. 그들은 곧바로 현장 수사를 벌이며 조사에 착수했다.

발칵 뒤집힌 아벨리오 남작가와 카일라니 공작가는 합동 조사단을 꾸렸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록사나를 찾기 위해 캠든 기사단과 카일라니 기사단이 협심을 했다.

그들은 사건이 벌어졌던 현장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수도 전역에 걸쳐 대대적인 검문과 탐색을 신속하게 벌여 나갔다. 안타깝게도 반가운 소식이나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이제 겨우 만 하루도 안 되었잖아.”

“맞아, 키메라를 피해서 도망치다가 숲속에서 길을 잃었을 거야. 내 장담하건대 틀림없어.”

“혹시 또 아나. 저녁때쯤 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떡하니 나타날걸?”

“그런데 말이야. 그 어마어마한 키메라는 대체 어디에 있다가 나타난 것일까?”

“갑자기 왜 나타나게 된 것인지 그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야.”

“망조가 든 건 아닐까?”

“예끼, 이 사람아. 무슨 그런 큰일 날 소리를!”

“입 간수 잘하게. 잘못하면 이 세상 하직할 수도 있어.”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고 판단했다.

날벼락 같은 이 소식이 리온 제국 전역을 넘어 이웃 나라와 대륙 전체로 퍼져 나가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록사나는 온몸이 까만 천에 덧씌워진 채 누군가의 어깨에 짐처럼 걸쳐진 상태에서 어딘가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녀를 잡자마자 로웰 후작의 수하 하나가 그녀에게 정신을 잃는 약을 썼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녀가 몰래 바람의 힘을 일으켜서 약을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미약하게만 힘을 펼쳤고, 정령사가 아닌 이상 로웰 후작의 수하들은 이 사실을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깨어 있는 상태였지만, 정신을 잃은 척하고 있었다.

‘흠, 나를 대체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로웰 후작저? 아니면 다른 곳?’

곧장 목표 지점에 가지 않고 일부러 길을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록사나는 벨루카나 아스테리온이 알아볼 수 있도록 정령술을 이용해 지나는 길목마다 부지런히 표식을 남겼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드디어 어딘가로 들어가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뭐야, 로웰 후작저잖아.’

후작저 감옥에 있던 이종족들을 구출할 때 구조를 파악했었기에 눈 감고도 알 수 있었다. 굳이 정령의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전혀 알지 못하는 방향과 길을 이용해 어딘가로 나아갔다.

로웰 후작저 내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한 비밀 통로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하로 향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를 어깨에 걸쳐 메고 있던 자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엉뚱한 사람을 데려온 건 아니겠지?”

질문을 하는 자의 목소리가 약간 익숙했다.

“아닙니다,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얼굴을 보여 봐.”

록사나는 자신을 바닥으로 내던질까 바짝 긴장했다. 여차하면 정령술을 써서 충격을 완화시키려고 대비했다.

수하가 그녀를 어깨에서 조심스럽게 내렸다.

‘휴, 다행이다.’

몸 전체를 가린 천 중 머리 부분만 풀어내 그녀의 얼굴을 보여 주자, 로웰 후작이 만족해했다.

“수고했다.”

얼굴에 다시 천이 덧씌워졌다. 그들은 또 다른 어딘가로 그녀를 데려고 움직였다.

‘내가 무슨 짐짝도 아니고……. 아이고, 내 팔자야. 어, 이 기운은?’

순간 록사나는 이질적이면서도 친숙한 기운을 느꼈다. 마치 게이트를 작동시킬 때 정령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과 흡사했다. 그런데 그 기운은 더 탁했다.

그녀는 그제야 로웰 후작저 본관 지하에 게이트와 비슷한 장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번개처럼 깨달았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이런 것이 있었을 줄이야. 그래서 아무리 찾아도 더 깊이 파고들 수 없었던 거였어.’

그녀의 예상대로 그들이 장치를 넘어가자 다른 장소로의 순간 이동이 이루어졌다.

* * *

로웰 후작과 그 수하가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낯선 이와 잠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얼마 안 있어 자리를 떴다.

“그만 일어나지? 기절 안 한 거 다 아니까.”

“…….”

불쾌한 쇳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혼자 눈 뜨기 어렵다면 친절한 이 몸이 직접 도와줄 수밖에.”

기쁜 나쁜 웃음소리와 거의 동시에 날카로운 기운이 그녀에게 쇄도했다. 록사나가 눈을 번쩍 뜨며 힘을 일으켰다.

허공에서 맞부딪친 두 힘이 힘겨루기를 했다. 스파크가 번쩍 튀며 각자의 힘을 파훼했다.

록사나는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양손과 몸을 묶어 구속했던 줄을 끊어 낸 후 둘러져 있던 검은 천을 허물 벗듯이 벗겨 냈다.

그녀의 두 눈이 확 커졌다. 오드 아이를 가진 사내가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 누구야?”

“클라우드 마르퀴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의 목소리는 물론 바위에 파묻혀 있는 형상마저 괴이했다.

“설마, 당신이 리온 제국의 대제라고?”

그의 정체를 파악한 록사나는 그 사실을 쉬이 믿기 어려웠다. 인간이 어떻게 몇백 년 동안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였다고 해도…….’

그녀가 경악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클라우드가 입이 찢어져라 미소 지었다.

“믿기 힘든 모양이지? 하긴, 나도 정령사를 다시 보게 될 줄 몰라서 많이 놀랐어.”

클라우드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는 지금 몹시 흥분된 상태였다.

차갑게 식어서 오래전 딱딱하게 굳은 피었던 다시 뜨거운 붉은 피가 되어 온몸을 질주하는 것처럼 끓어올랐다.

“나를 납치한 진짜 배후는 그쪽이군.”

“맞아. 내 집에 온 걸 환영해, 정령사 아가씨.”

그가 주변을 눈으로 쓱 가리키며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몸이 자유로웠다면 귀족의 인사를 건넸을 법한 태도였다.

벽을 짚으며 몸을 일으킨 록사나가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이곳에 들어왔을 때 꺼져 가는 기운을 느껴서 짐작은 했었지만 역시나였다.

내부 가득 벽에 정령의 흔적이 산재해 있었다.

그녀는 분노에 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가 바득 갈렸다. 반대로 머리는 차갑게 식어 내렸다.

어느 순간 그녀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추었다. 에메랄드빛 두 눈이 화악 커졌다.

“샤, 샤일리?”

언제나 애타게 그리워하던 샤일리였다. 직접 보고 있었음에도 현실이 아닌 그저 꿈만 같았다.

록사나가 샤일리가 갇혀 있는 벽을 향해 더듬더듬 걸음을 내디뎠다. 호흡이 가빠졌다. 발걸음도 빨라졌다.

그녀가 두 손을 뻗어 샤일리의 얼굴을 감쌌다.

‘드디어 찾았다! 여기에 있었구나. 어둡고 음침한 이곳에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손 아래 느껴지는 그의 차가운 피부가 두 사람의 이 만남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샤일리. 나야, 록사나. 내가 왔어. 제발 눈 좀 떠 봐.”

록사나가 눈물을 흘리며 더욱 애타게 그의 얼굴을 붙잡고 매달렸다. 그를 와락 끌어안고 싶었지만 클라우드처럼 벽에 갇혀서 얼굴만 겨우 드러난 상태였기에 불가능했다.

그녀가 계속해서 그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렀다. 애석하게도 샤일리는 마치 죽은 것처럼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정령은 생을 다하면 소멸된다. 샤일리는 분명 살아 있었다. 그의 몸이 그 증거였다.

‘이번엔 내 차례야. 내가 꼭 구해 줄게, 샤일리.’

록사나가 까치발을 들고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그녀의 눈물이 거기에 흔적을 남겼다.

“눈물겨운 상봉도 끝났으니 이제 나한테 관심 좀 가져 주지?”

웬만하면 끈기 있게 기다려 주고 싶었지만 그의 인내심이 한계를 드러냈다. 그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고, 그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와 더욱 조바심이 났다.

이제 드디어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그의 모든 것이 있었다.

‘이틀, 아니, 빠르면 하루가 다 가기 전에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벌어날 수 있어!’

클라우드는 전율에 휩싸였다. 반면에 록사나의 눈에는 불꽃이 일었다. 당장에라도 그를 태울 듯이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본 클라우드는 상황에 맞지 않게 그녀가 애교를 피우는 고양이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 봤자 고양이는 고양이일 뿐, 결코 맹수가 될 수 없지.’

록사나가 샤일리에게서 떨어져 클라우드에게로 한 발짝씩 다가갔다. 그녀의 걸음이 딱 중앙에서 멈췄다.

“내게 원하는 게 뭐야.”

“하하하, 시원시원해서 좋군.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궁금해?”

록사나가 눈에 독기를 품었다. 그녀가 손에 힘을 모아 그를 향해 들어 올리자, 질겁했다.

“워워. 진정하라고, 정령사 아가씨. 잘못하다간 저 친구까지 다칠 수 있거든.”

클라우드가 눈짓으로 샤일리를 가리켰다. 그에게 최고의 인질이 아닐 수 없었다.

“뭐야, 협박한다고 내가 못 할 거 같아?”

“내가 다치면 저 정령도 다쳐. 우린 서로 연결되어 있거든.”

록사나의 얼굴이 대번에 와락 구겨졌다.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에 모아 쥐었던 힘이 단숨에 흩어졌다.

살짝 긴장했던 클라우드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정령사 아가씨를 다루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