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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163)화 (163/214)

163화 

아스테리온이 휘장을 걷었다. 그러자 동화 속 공주처럼 반듯한 자세로 잠들어 있는 록사나의 모습이 드러났다.

무척 예뻤지만, 전보다 마른 듯한 얼굴이었다.

테오도르의 눈가에 맑은 서서히 물기가 차올랐다. 록사나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떠올랐다.

캠든 영지로 내려간다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 후 두어 번의 편지가 오고 가며 수도에 더 머물게 되었다고 해서 얼마나 기뻤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수도에 오래 머물게 되면 한 번이라도 더 만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나중에 자신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또래 아이들이 여럿 있다고 해서 얼마나 설레었던지.

테오도르가 손등으로 눈물을 쓱 훔쳐 냈다. 자신이 우는 모습을 보면 그녀가 마음 아파하리라.

테오도르가 아스테리온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이불 밖으로 살짝 드러난 록사나의 한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슬그머니 그러쥐었다.

그 모습을 본 아스테리온은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혹여라도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바스러질까 봐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감싸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록사나, 저 테오도르예요. 제가 왔어요.”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잘 지냈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녀의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나 안 보고 싶었어요? 제발 눈 좀 떠 봐요. 난 록사나가 너무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남작저에 방문 요청을 보냈는데 카일라니 공작에게 단칼에 거절당했어요.”

어린 황자의 귀여운 고자질에 아스테리온이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픽 웃었다.

“그래서 저도 거절을 거절했어요. 결국 이렇게 록사나를 보러 왔어요.”

테오드르가 한 손을 들어 옷 속에 감추어 두었던 정령의 목걸이를 꺼내서 만지작거렸다. 보호의 힘과 정령의 축복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

정말로 이 목걸이를 받은 후부터 테오도르에게는 실제로 좋은 일들이 가득 생겼다.

“제가 어디 책에서 봤는데요, 사람의 청각은 예민해서 잠들어 있어도 소리를 들을 수 있대요. 록사나, 내 목소리 들려요?”

테오도르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록사나에게서는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그럼에도 실망하지 않고 정령의 목걸이를 움켜쥔 채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이거 록사나한테 다시 돌려줄게요. 악몽을 꾸거나, 꿈속에서 헤매고 있다면 이 정령의 목걸이가 록사나를 반드시 보호해 줄 테니까요.”

테오도르가 강한 믿음을 드러내며 목걸이를 풀어내기 위해 자신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 이게 왜 안 되지?”

테오도르는 목걸이가 벗겨지지 않아 당황했다.

그 모습을 내내 지켜보고 있던 아스테리온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떠올랐다.

다시 목걸이를 풀어내려고 록사나의 손을 잡고 있던 다른 한 손을 테오도르가 어쩔 수 없이 막 놓으려던 찰나였다.

화악!

느닷없이 한 줄기 눈부신 빛이 정령의 목걸이에서 뿜어져 나왔다.

“어어?”

테오도르의 입이 쩍 벌어졌고, 아스테리온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바람에 아스테리온이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우당탕 소리를 냈다.

너무 놀란 두 사람이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목걸이에서 곧장 뻗어 나간 빛은 록사나의 몸에 가 닿더니 순식간에 그녀에게 스며들었다.

워낙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공작, 방금 그 빛 봤어요? 나만 본 거 아니죠?”

“저도 분명히 봤습니다.”

한순간에 빛이 사라지자, 아스테리온과 테오도르는 한여름 밤의 꿈을 꾼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가 록사나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몸은 전과 한 치도 달라진 점이 없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글쎄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신하건대 목걸이에서 나온 힘이 그녀에게 결코 해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목걸이의 원 소유주는 록사나였다.

아스테리온이 기억하는 한 그녀는 테오도르에게 주기 전까지 한시도 몸에서 목걸이를 떼어 놓지 않았었다.

목걸이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위험한 것이었다면 결코 그렇게 애지중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테오도르의 목에 걸려 있지도 못했을 터였다.

테오도르가 고개를 숙였다. 손에 든 정령의 목걸이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내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자신이 여전히 붙잡고 있는 록사나의 손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스테리온의 시선도 그를 따라갔다.

“록사나가 하루빨리 건강하게 일어났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어요. 그래서 혹시 정령의 목걸이가 내 소원을 들어주려는 것일까요?”

예전에 목걸이를 받을 때 록사나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린 테오도르가 물었다.

“꼭 그랬으면 좋겠군요.”

아스테리온의 목소리에도 강한 염원과 바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정령석을 가져오고 있으니 그녀가 다시 눈을 뜰 날도 실제로 머지않았다. 테오도르는 아직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리고 방금 전 일어난 일이 록사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황자가 방문한 게 종은 방향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겠군.’

아스테리온이 옆에 있는 테오도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이 더없이 반짝거렸다.

“왜, 왜요?”

부담스러운 뜨거운 시선에 테오도르가 저도 모르게 목을 살짝 움츠렸다.

“오늘 잘 오셨습니다.”

아스테리온이 손을 뻗어 테오도르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었다. 전보다 더 사랑스럽게.

“피, 언제는 오지 말라고 하고, 왔을 때 도끼눈으로 봤으면서…….”

테오도르는 그의 손길에서 록사나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과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포근하고 몽글몽글하고 구름 속에 있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괜스레 가슴이 울렁거린 테오도르가 화제를 돌렷다.

“역시 목걸이는 록사나에게 돌려줄래요. 그럼 더 빨리 깨어날지도 모르잖아요. 어?”

하지만 여전히 목걸이는 벗겨지지 않았다.

심지어 록사나의 손을 놓고 두 손으로도 해 보았지만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제 힘으로 들 수 없을 정도로 엄청 무거운 것도 아니고, 심지어 한 살배기도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무게인데도 말이다.

“공작, 목걸이가 안 벗겨져요.”

테오도르는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요청했다.

그에 아스테리온이 두 손을 뻗었다. 목걸이의 줄을 양쪽으로 잡고 들어 올렸다.

“허!”

아스테리온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헛숨을 내쉬었다. 정말 목걸이가 안 벗겨졌던 것이다. 들리기는 하는데 테오도르의 목에서 빼낼 수가 없었다.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을 인지한 테오도르가 말했다.

“소드 마스터인 공작이 해도 안 됩니까?”

“안 되는군요. 목걸이가 전하와 함께 더 있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냥 계속 하고 계시죠.”

아스테리온이 손을 물리며 아무 미련도 없이 깔끔하게 포기를 했다.

“그런가 보군.”

테오도르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실룩거렸다.

록사나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쉬워 그런 것이 전혀 아니었다. 마치 목걸이에 자아나 의지가 있는 듯해서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이 누구와 함께 있을지를 선택하는 목걸이라니!’

다른 한편으로는 어쩌면 정령의 목걸이를 주던 록사나의 의지가 깃들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테오도르는 다시 록사나의 손을 꼭 붙들고는 신나게 말을 쏟아 냈다.

요즘 자신의 검술이 얼마나 늘었는지, 훈련 시간 외에 무엇을 하고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었다.

아스테리온은 넘어뜨렸던 의자를 일으켜 세워 다시 그 위에 앉았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는 일방적으로 떠드는 어린 황자의 얼굴을 관조했다. 처음 록사나를 마주했을 때보다 테오도르의 표정이 한결 밝아져 있었다.

“앗, 저건 강아지 아니에요?”

테오도르가 뒤늦게 침대 한 귀퉁이 작은 바구니 안에 잠들어 있는 아기 늑대 벨루카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째서 귀여운 강아지가 록사나 침대 위에 놓여 있는 거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정령이야. 그리고 강아지가 아니라 늑대 새… 지금은 보다시피 아기 늑대고.”

하마터면 늑대 새끼라고 말할 뻔했다.

“네, 뭐라고요?! 정령이요?”

너무 놀라서 크게 소리치다시피 한 테오도르가 곧장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고는 눈을 도르르 굴렸다.

자신의 큰 소리에 록사나가 놀랐거나 아기 늑대가 깼을까 봐 조마조마해했다.

“아기 늑대가 다행히 안 깼어요.”

테오도르가 아스테리온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여 속삭였다. 이에 아스테리온이 피식 웃었다.

“아무리 소리쳐도 지금은 안 깰 겁니다.”

“네?”

아스테리온은 벨루카가 저리된 것에 대해 로웰 후작저 감옥에서 있었던 자세한 일은 쏙 빼고 정령의 힘을 많이 써서 그런 것이라는 정도로만 간략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정령석과 벨루카가 록사나를 깨울 수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록사나가 곧 깨어날 거라는 말에 테오도르가 대번에 기뻐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테오도르가 사랑스러운 눈길로 벨루카를 바라보았다. 처음 본 정령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록사나가 다음에 벨루카도 보여 준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네요. 지금은 아기라서 저는 벨루카 동생이나 새끼인 줄 알았어요. 공작이 말해 주지 않았다면 벨루카인지 몰랐을 거예요.”

테오도르가 벨루카를 한번 만지고 싶은지 손가락을 연신 꼼지락거렸다.

그 모습을 본 아스테리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을 뻗어 벨루카의 뒷덜미를 잡아서는 테오도르의 품에 척 하니 안겨 주었다.

설마설마하던 테오도르의 표정이 순식간에 헤실헤실 풀어졌다.

“아, 엄청 부드럽고 조그맣다.”

꼭 끌어안은 정령에게서 온기가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벨루카의 몸에 얼굴을 비비었다.

테오도르는 잠을 조금 포기하고 남작저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 *

록사나는 샤일리와 헤어진 이후로 어둠 속을 한참 동안이나 헤매고 있었다.

“나가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거라고 하더니. 샤일리는 순 거짓말쟁이!”

그의 말과는 다르게 아무리 찾아도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길 같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흐르는 것 같은데 오래 걸은 만큼 다행스럽게도 목이 마르거나 다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하아~”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더 헤매야 할지 몰라서 저절로 나오는 한숨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문득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스쳐 지나갔다. 아이린, 아스테리온, 테오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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