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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152)화 (152/214)

152화 

영지가 벌어들이는 수익금이 많을수록 그에 관여하거나 기여한 이들의 수입 역시 늘어나는 구조였다. 록사나는 이를 인센티브라고 했다.

만약 캠든을 떠난다면 오히려 그들의 손해가 더욱 막심했다. 누구라도 땅을 치며 후회할 정도다.

어마어마한 위약금은 둘째치고, 그들이 지금 받는 처우와 대가, 미래에 약속된 보상들과 감히 비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캠든에, 아니, 자신들의 주군인 록사나에게 꼭 붙어 있고 싶었다.

복지와 대우가 좋았고, 무엇보다 그녀가 보여 주는 기술과 미래는 혁신을 넘어 대륙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었다.

여기에 온갖 재물과 명예가 뒤따라오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이번 4구역 사업을 계기로 록사나와 캠든 영지, 그들의 이름은 대륙에 널리 떨치게 될 것을 어느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록사나가 모두를 단숨에 집중시켰다.

“이번 4구역 사업은 이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큰 부와 명예를 안겨 주게 될 거예요. 그만큼 중요한 사업이고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해요.”

사람들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계획안도 좋지만 저는 더 획기적으로 4구역을 변화시키고 싶어요.”

록사나가 조감도 부분에서 4구역을 가로지르는 강을 기다란 지휘봉으로 짚었다.

그녀가 기존의 계획에서 부족한 부분과 추가로 생각했던 부분들을 하나씩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여기 강을 따라 우선 운하와 거대한 시민 공원을 조성하는 게 좋겠어요.”

“시민 공원이요?”

수도로의 물자 수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배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수로가 있다면 운하 건설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였다.

하지만 시민 공원은 뭘까? 그들이 생각하는 공원이 맞는 건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공원이라 하면 산책이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말하는 건가?”

아스테리온이 단지 그것만은 아닐 것 같은데, 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장난을 치려는 개구쟁이처럼 록사나가 씨익 웃으며 그와 사람들을 한 바퀴 휘 둘러보았다.

“공작님 이야기도 어느 정도 맞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너무 뻔하고 밋밋하잖아요.”

“사람들이 즐길 거리를 추가하시는 건가요?”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델리오가 말했다.

“맞아요. 크게 휴식, 운동,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날 거예요. 그리고 이 일대 주변으로 쇼핑과 업무 공간도 조성할 거고요.”

록사나가 잔디밭, 놀이터, 야영장, 운동 시설 설치, 자전거 도로와 인도의 구분, 극장 무대, 분수 쇼, 야외 도서관, 마차 주차장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쏟아 냈다.

직원들은 이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받아 적느라 손이 바빠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보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후에는 어느 구역에 어떤 시설을 배치하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 갔다.

또한 4구역 내 기타 편의 시설과 치안대가 새롭게 들어설 자리와 관련하여 심도 있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오고 갔다.

오전부터 시작되었던 회의는 식사 시간과 중간중간 잠깐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밤이 늦도록 빡빡하게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모델 하우스 제작 및 오픈 시기를 정하며 회의는 겨우 끝을 맺었다.

* * *

“흠, 이것이 장인이 말한 그것입니까?”

“네, 황태자 전하.”

도노반이 깡마른 아이의 몸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 내렸다.

로웰 후작은 그저 옆에서 사태를 관망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아이는 도노반의 시선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아이는 뱀이 아가리를 벌리고 다리를 타고 오르는 것처럼 끔찍한 기분에 소름이 돋았다.

“너, 고개를 들어 봐.”

아이가 주저주저하기는 했지만 순종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차마 도노반을 마주 보지는 못하고 그의 어깨 너머에 눈을 두었다.

흔한 갈색 머리에 살짝 녹색빛이 돌기는 하지만 까만 눈을 가진 아이의 외모는 평범했다.

그나마 햇빛을 자주 보지 못해 피부가 하얗다는 것 빼고는 볼품이 하나도 없었다.

“다 자라도 별 볼 일 없겠군.”

도노반이 혀를 끌끌 차자, 로웰 후작이 나섰다.

“부모의 외모가 둘 다 출중하니 저것도 성체가 되면 봐줄 만할 겁니다.”

로웰 후작이 아이의 머리를 가리켰다.

“저 갈색 머리도 며칠 후면 화려한 금발이나 은발로 탈바꿈할 겁니다. 눈동자 색도 완전히 바뀔 거고요.”

“뭐, 그렇다면야 두고 보면 알겠죠. 그나저나 아벨리오 남작은 검은 머리라 공작 취향이 금발이나 은발은 아닐 것 같은데 말이야.”

“검은색으로 염색하면 됩니다.”

“뭐, 나쁘지 않군.”

도노반이 그제야 다소 만족스러운 기색을 띠었다. 그러나 궁금증은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머리색이 검은색이 되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게 희한하게도 다른 유색 머리는 나와도 흑발은 나오지 않더군요.”

그들이 개발한 특수한 약을 일정 기간 복용시키면 어린 개체는 성체가 되면서 머리색과 눈동자 색이 바뀌었다.

그런데 머리색이나 눈동자 색 모두 검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저것, 종족이 뭐라고 했죠?”

“조인족입니다.”

“날개가 있겠군.”

도노반이 눈빛을 번뜩이며 구석에 조용히 서 있는 로웰 후작의 수하에게 눈짓을 했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수하가 아이의 몸을 거칠게 돌려세웠다. 아이는 몸이 언 채로 힘없는 인형처럼 어떤 반항도 하지 못했다.

찌이익.

등 뒤 옷자락이 수하의 손에 의해 단번에 찢기며 아이의 맨 등살이 훤히 드러났다. 날개 뼈가 앙상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보시다시피 날개는 없습니다. 돌연변이라서 수인화도 못하고요.”

로웰 후작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가 수하에게 저리 치우라고 눈짓을 했다.

수하가 아이의 가녀린 어깨를 거칠게 떠밀었다.

아이가 흘러내리는 옷자락을 허겁지겁 추스르며 서둘러 방 밖으로 나갔다.

“며칠만 기다리면 볼만하겠어. 장인, 내 기대하겠습니다.”

혼잣말을 되뇌던 도노반이 로웰 후작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두 눈은 못된 장난을 앞둔 아이의 것과 같아 보였다.

“잘될 것입니다.”

“그래야지요. 그나저나 요즘 4구역 사업 문제로 카일라니 공작이 많이 바쁜 거 같던데, 아십니까?”

“전하,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임대 분양권인가 뭔가 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지요.”

로웰 후작이 고소하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카일라니 공작을 향한 것이었다.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일이 잘 해결되어 무사히 공사를 마친다고 해도 사람들이 몰리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잡음이 이리 끊이지 않으니 나중에는 얼마나 큰 잡음이 일겠습니까.”

“그런데 이번에 체포한 자들이 노예상들이고 그들과 다들 연관된 자들이요. 범죄 세력을 일망타진했다며 카일라니 공작의 행태를 영웅처럼 떠받들더군요.”

도노반이 소파의 팔걸이를 세게 내려쳤다.

그 일의 여파로 인해 그의 사람이었던 치안대장은 뇌물 수수 및 권력 남용죄로 경질되면서 곧바로 황실 감옥에 구금되었다.

로웰 후작이 도노반의 비위를 맞추었다.

“그딴 평민들의 찬양은 얼마 안 갈 것입니다. 공사가 시작되면 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법이지요. 그럼 다른 말들이 나돌 것입니다.”

“맞소. 좋은 생각이요.”

도노반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사고가 안 난다면 만들면 그만이었다.

【 록사나, 제발 눈을 떠! 】

그날 밤, 로웰 후작저 별채에 마커스 경과 벨루카가 숨어들었다.

벨루카가 정령의 힘으로 안쪽 창문 고리를 풀었다.

마커스 경이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고는 창틀을 넘어 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다시 창문을 닫고 침대로 다가갔다.

한창 단잠에 빠져든 아이의 인영이 보였다.

“아이야.”

마커스 경이 아이의 몸을 살짝 흔들며 소리를 낮춰 불렀다.

“으응.”

잠기운에 취한 아이가 눈을 힘겹게 떴다가 검은 그림자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나 기억하겠니?”

마커스 경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자신의 얼굴을 반쯤 가린 천을 턱 밑으로 내렸다.

반면에 벨루카는 침대 위로 훌쩍 뛰어 올라가 아이 옆에 자리 잡았다.

“아!”

벨루카를 본 아이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마커스 경은 순간 무안해졌다. 아이는 자신보다 여전히 정령인 벨루카를 반겼다.

손을 뻗어 벨루카의 털을 여러 번 쓰다듬던 아이가 마커스 경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안녕.”

“안녕하세요.”

아이가 경계심을 허물어뜨리고 인사를 받아 주자, 마커스 경의 얼굴이 단번에 환해졌다.

하지만 그가 잠시 망설였다. 손에 작은 주머니를 든 상태로 고민에 빠졌다.

가져온 사탕을 먼저 줄까, 아니면 전에 약속한 것처럼 아이에게 이름을 줄까?

다음에 만나면 이름 없는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기로 했는데 아이가 기억을 하고 있을까?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혹여 아이가 잊었을까 봐 그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 너 뭐 하냐?

벨루카의 낮은 울음소리에 마커스 경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미안. 아이야, 네게 줄 것이 있는데, 네가 기억할지 모르겠다만…….”

“내 이름이요.”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질질 끄는 사이 몸을 일으켜 앉은 아이가 또렷하고 맑은 눈으로 마커스 경을 올려다보았다.

“기억하는구나.”

마커스 경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기대에 가득 찬 아이의 눈빛을 받으며 그가 이름을 말했다.

“렌시아. 이게 네 이름이야. 용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지.”

“…렌시아? 렌시아……. 내 이름은 렌시아야.”

아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 옆에서 벨루카가 위로를 건네며 렌시아의 뺨에 자신의 얼굴을 한껏 비볐다.

목이 멘 마커스 경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렌시아. 네 이름은 렌시아야. 내 친구들이랑 며칠 동안 열심히 고민해서 지은 것이란다.”

렌시아는 당연히 모르는 그 친구들은 카일라니 기사단원들과 트레버, 프란시스, 심지어 아스테리온도 껴 있었다.

모두가 열성적으로 좋은 이름을 후보에 올렸고, 최종적으로 렌시아라는 이름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아 선정되었다.

렌시아가 활짝 웃으며 자신의 진녹색 두 눈가에 촉촉하게 어린 물기를 한 손으로 쓱 닦았다.

“고맙습니다, 마커스.”

“렌시아,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구나. 음?!”

기뻐하던 마커스 경의 두 눈에 경악이 서렸다.

“렌시아, 네 두 눈동자 색이……?”

“제 눈동자 색이 어떤데요?”

렌시아가 초조하면서도 차분한 낯빛으로 마커스 경을 올려다보았다.

마커스 경이 침대 곁에 한쪽 무릎을 꿇고는 아이의 눈을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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