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아이린, 너는 나가 있는 게 좋겠다.”
“콜록, 큼. 아니에요, 이제 좀 괜찮아요.”
아이린이 간신히 목을 가다듬고는 록사나의 배려를 정중히 거절했다.
록사나는 그래도 아이린을 걱정스럽게 살펴보다가 속으로 꼭 다짐했다.
‘음, 4구역에는 반드시 별도의 흡연 구역 시설을 따로 만들어야겠어. 그 외 실내 및 공공장소에서는 흡연 금지!’
이를 어길 시 벌금을 부과하는 방법도 떠올렸다. 아마도 4구역만의 특별 규칙이 되지 않을까.
록사나 일행을 발견한 한 치안대원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록사나 아벨리오예요.”
“아, 아벨리오 남작님이시군요. 그렇지 않아도 저희 대장님께서 남작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찰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치안대원이 한 사무실로 록사나 일행을 안내했다.
치안대장은 다소 덩치가 있는 중년의 사내였다.
“어서 오십시오. 수도 치안대를 이끌고 있는 벤자민 포치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포치 경. 록사나 아벨리오예요.”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포치 경이 찰스에게 차를 준비해 달라고 말했다.
“경,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빨리 조사 진행 상황과 추후 이어질 처리 과정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그러시다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포치 경이 찰스가 그의 책상에서 가져온 서류들을 건네받아 록사나에게 내밀었다.
“노예상들과 4구역 임대 분양권 부당 취득 및 불법 노예 매매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명단과 관련 조사 내용입니다.”
“감사해요.”
록사나가 서류를 한 장씩 넘기며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포치 경은 그녀가 그것을 살펴볼 동안 기다리기 지루해서 가슴 안쪽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그가 한 손에 시가를 꺼내 들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아이린이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는 아픈 시늉을 했다.
“큼큼.”
포치 경이 아이린과 록사나 쪽을 살짝 보더니 한숨을 낮게 내쉬고는 시가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도 시가 연기가 사람 몸에 안 좋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아이린이 이내 헛기침을 멈추었다.
잠시 후, 록사나가 서류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서류 내용은 전날 아스테리온이 보여 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 거죠?”
“가장 죄질이 무거운 자들 열 명은 모두 공개 처형을 당할 겁니다.”
록사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더한 자들 역시 그 죄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평생 감옥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겁니다.”
“그들이 가졌던 재산은 전부 몰수해서 피해자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하하, 좀 덥군요.”
포치 경이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 냈다.
아벨리오 남작 뒤에는 카일라니 공작은 물론 다른 유수의 귀족가가 버티고 있었다. 이 일을 흐지부지 처리했다가는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른다.
“일 처리가 꼼꼼하시네요. 그럼 저는 치안대장이신 포치 경만 믿고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뒤처리를 잘못했다가는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였다.
온갖 비리와 뇌물 수수죄를 저질러 갈린 전 치안대장과 달리 포치 경은 그나마 사리 분별력이 있는 자였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록사나가 포치 경과 찰스의 배웅을 뒤로하며 건물을 나섰다. 그녀가 마차에 오르기 전 잠시 치안대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이린, 치안대에 지원 좀 해야겠어.”
“어떤 식으로 지원하면 될까요? 제 생각에는 커피와 차랑 함께 요깃거리 간식들을 주기적으로 지원하면 어떨까 하는데요.”
두 사람이 오르자 마차가 아벨리오 남작저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린이 치안대 내부 모습을 떠올리고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업무가 아무리 과중하다지만 어휴, 시가만 피워 대니 너구리 굴이 따로 없어요.”
“네 말대로 하도록 해. 입에 다른 게 들어가면 시가를 조금이라도 덜 피우겠지.”
“내일부터 당장 지원할게요!”
록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치안대가 더 썩어 곪아지기 전에 물갈이 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아스테리온이 사전에 손을 쓴 덕분이었다. 안 그랬다면 이번 체포와 조사는 전대 치안대장과 그 결탁 세력에 의해 흐지부지되었을 것이다.
명예와 출세가 보장된 황실 속속 기사단이나 귀족가의 기사단과는 달리 치안대는 그와 거리가 한참 멀었다.
예산 지원도 늘 부족했고 급여도 그저 그랬다.
반면에 전반적인 수도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보니 크고 작게 하는 일들은 늘 끊이지 않아 업무 강도는 높은 편이었다.
‘지금은 최소한의 도움을 주는 걸로 하고, 장기적인 방안을 고민해 봐야겠어.’
록사나는 새롭게 들어설 4구역에 치안대도 포함시켰다. 4구역의 치안을 높이려면 이를 안정적으로 담당할 치안대의 역할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치안대 내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내야 했다.
* * *
캠든 영지에서 수도 아벨리오 남작저에 도착한 건축 전문가와 기술자들, 마도 공학자 빈센트와 그 조수들이 이틀간의 여독을 풀고 저택 내 회의실에 모두 모였다.
록사나와 아이린, 아스테리온과 트레버, 에이글과 델리오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투자자들을 제외하고 이 자리에 모인 그들은 이번 4구역 사업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록사나의 주도 아래 회의가 시작되었다. 4구역 현 거주민들에 대한 이주 및 임시 숙소 관련해서는 이미 대책이 마련되어 진행되고 있었기에 간단한 현황 보고 및 정보 공유가 이루어졌다.
본 회의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논의되는 부분은 4구역에 들어설 주거와 상업 구역으로 나뉘어 들어설 시설들이었다.
건설 교통부 수장인 로한과 그 밑의 부하 직원들이 커다란 조감도와 설계도를 꺼내 들었다.
록사나가 캠든 영지로 보내왔던 4구역의 지역 정보와 지도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었다.
기존 영토부는 명칭을 건설 교통부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외부에서 왔던 전문가와 기술자들은 얼마 전 정식으로 캠든 영지 소속 공무원이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이 진척되었군. 거의 이대로 진행해도 무방하겠어.”
아스테리온이 한쪽 벽면에 걸린 조감도와 설계도를 살펴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들도 기존보다 배 이상 높은 고층 건물들을 보며 흥미를 감추지 못했다.
“우리 건설 교통부 직원들이 좀 하죠.”
“칭찬 감사합니다, 남작님.”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봐 주는 록사나의 눈길에 로한과 직원들이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들 이번 사업에 거는 기대가 무척 큽니다. 수도에 올라오는 길이 다들 지루했는지 열심히 의견을 나누며 1차안을 수정하고 보완했습니다.”
로한이 부하 직원들의 노고를 치켜세웠다.
“누가 일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하하하.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진척이 빨랐습니다.”
“제 기대 이상이에요. 덕분에 공사 착수를 더 빨리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두 열심히 노력해 줘서 고마워요.”
직원들이 4구역을 방문한 적이 없으니 윤곽만 잡아 와도 나쁘지 않겠다고 록사나는 생각했었다.
“그동안 영지 공사를 진행하면서 배우고 익힌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 직원의 말에 건설 교통부 직원들이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리온 제국과 대륙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의 신기술이 접목된 건축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캠든 영지에서는 우후죽순 세워지고 있었다.
“저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언제 물어볼까 내내 기회를 엿보던 에이글이 손을 슬쩍 들었다.
“얼마든지요.”
록사나가 흔쾌히 허락하자, 에이글의 얼굴이 활짝 폈다. 그는 지체 없이 자신을 궁금증을 풀어내고 싶었다.
“건물이 저렇게 높으면 오르내리기가 여간 힘들지 않을 텐데요. 풍경 보는 재미야 좋겠습니다만.”
조인족들이야 튼튼한 두 날개가 있으니 수인화해서 이동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순수 인간들은 수고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3~4층만 되어도 번거로워하니까 말이다.
“층간 이동은 전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때 마도 공학부 수장인 빈센트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설계도 하나를 펼쳐서 한쪽 빈 벽면에 내걸자, 다른 몇몇이 이를 거들었다.
그것이 무슨 설계도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며 빈센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이것은 엘리베이터 설계도입니다. 4층 이상 건물에는 무조건 설치가 될 것이며 짐을 실어 나르는 화물용과 사람들이 이용하는 일반용으로 나뉘어 사용될 겁니다.”
빈센트는 엘리베이터의 작동 원리와 높은 안정성, 화재 등의 비상사태에 대비한 내부 시설과 비상 탈출구에 대해서도 조금 더 설명을 곁들였다.
이에 사람들이 경탄해 마지않았다.
“부럽군요.”
트레버가 캠든 영지의 부흥에 일조하는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부하 직원을 둔 록사나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들이 록사나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구현되었다는 사실을 회의실에 모인 이들 대부분이 잘 알고 있었다.
“4구역 사업이 마무리되면 공작 령에서도 바로 관련 사업을 진행할 거야. 그렇게 하는 걸로 남작과 계약을 했지.”
아스테리온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 너무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고층 건물 건설은 캠든에서 시작되어 그다음으로는 수도 4구역, 레드포드 순서로 진행된다.
“만약 빌더 가문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든 여기 있는 인재들을 빼내 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빌더 가문은 건축술로 대륙 내에서 가장 이름이 높았다. 그로 인해 쌓은 부도 막대했다.
게다가 아무리 돈 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자라고 할지라도 빌더 가문에게 공사를 맡기려면 최소 몇 년은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캠든 영지 재정비 소식이 아직 거기까지 퍼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가 빌더 가문으로 넘어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정보를 팔아먹지도 않을 거고요.”
트레버의 지적에 어느 누구도 그 점을 나서서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건설 교통부와 마도 공학부 직원들은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강력하게 자신들의 뜻과 의지를 밝혔다.
이를 본 록사나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현재 그들은 캠든 영지 소속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록사나와 맺은 파격적인 종신 계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