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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144)화 (144/214)

144화 

한편 바네사는 마음속으로 엄청나게 놀라는 중이었다. 그녀는 록사나의 이름과 아까부터 이어진 대화를 내내 들으면서도 설마 했었다.

‘그런데 이분이 정말로 그 유명한 아벨리오 남작님이었다니!!’

4구역 유흥가는 온갖 정보가 모이는 곳이었다.

덕분에 바네사 역시 록사나 아벨리오 남작에 대한 소문과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더구나 그녀는 4구역 사업으로 인해 이 구역 사람들에게 높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바네사가 가빠진 호흡을 조절하는 사이, 록사나는 그녀를 호명하여 이름을 물은 이유를 상기했다.

록사나는 왠지 이쪽 구역에도 자신이 모르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바네사, 4구역 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죠?”

“네, 남작님. 워낙 화제가 되고 있는 소식이다 보니 이 구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답니다.”

바네사가 이 바닥에서 은퇴할 시기가 지났음에도 지금까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버텨 낼 수 있었던 데에는 그녀 나름대로의 비결이 있었다.

그건 8할이 제법 빠른 두뇌 회전과 많은 손님들을 상대하며 터득한 눈치 덕분이었다.

록사나의 질문을 받은 순간이었다.

바네사는 하늘에서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단도직입적으로 묻을게요. 바네사는 임대 분양권이라든가 그 비슷한 권리증이라도 받은 게 있나요?”

“없습니다. 저희 손보다는 아마도 대부분 이곳 유흥가 가게 주인들의 손에 들어갔을 겁니다.”

바네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공손하게 조목조목 사실을 고했다.

‘4구역 주거 환경 및 거리 정비’ 개발 사업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을 때쯤이었다.

악질적인 가게 주인들은 자신의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서류를 하나씩 내밀며 서명을 할 것을 강요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들은 폭력과 횡포가 두려워 자신에게 전혀 해가 없다는 말 하나만 믿고는 뭣도 모른 채로 사인을 했다.

반면 어느 정도 세상 돌아가는 것에 밝았던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놓치지 않으려고 강하게 반발하며 저항을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승자는 정해져 있었다.

갖은 폭력과 폭언, 심지어 소중한 이들이 있는 사람들은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힘없는 이들에겐 상처만이 남았다.

반대로 악덕 가게 주인들은 많은 사람들의 임대 분양권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들은 희희낙락했고, 사업을 넓혀 나갈 구상을 하며 핑크빛 미래를 그렸다.

모든 전후 사정을 들은 록사나 일행은 맹렬히 분노하며 이를 아주 빡빡 갈았다.

“이런 인간 말종들 같으니라고!”

“썩을 대로 썩은 놈들입니다!”

“절대로 이대로 넘어가서 안 돼요!”

“당연합니다! 아주 그놈들 뼈도 못 추리게 잘근잘근 밟아서 아작 내야죠!”

모두가 씩씩대고 있는 와중, 소피아가 울상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그러고 보니까 방금 기억난 게 하나 있어요. 어느 날인가 주인집 아저씨가 서류를 가지고 와서는 저희에게 손바닥 도장을 찍으라고 했어요.”

말을 이어 가는 소피아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잔뜩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저희는 글을 몰라서 안 하려고 했는데, 그 집에서 한 달 더 살아도 된다는 증명 서류라고 해서 그만……. 월세 밀린 것도 봐주셔서 어쩔 수 없이 저희 셋 다 손바닥 도장을 찍었어요.”

록사나는 분양권과 관련해 바네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피아 가족에게도 뭔가 다른 게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역시나.

“나 참, 정말 어이가 없네. 아, 소피아. 소피아한테 한 말이 아니에요.”

자신의 말에 상처받았을까 봐 록사나가 소피아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소피아는 그녀의 말을 오해하지 않았다.

“네, 알아요. 남작님께서는 제가 아니라 집주인한테 화가 나신 거라는 걸요.”

소피아가 살포시 웃었다. 하지만 그 미소에는 후회가 꼬리처럼 따라붙어 있었다.

“집주인이 선행을 베푸는 척하면서 글을 모르는 아이들을 감쪽같이 속였군요!”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따로 없네요!”

“허, 있는 것들이 더하다더니. 기가 차군.”

록사나 일행은 화를 이기지 못해 잔뜩 흥분을 했지만 이것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님을 다들 잘 알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록사나 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에이글이 침통한 표정으로 록사나 앞에 서서 고개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4구역 사업 보상 및 분양권 관련 업무는 카일라니 공작가와 독수리 용병대에서 맡아 합동으로 담당하고 있었다.

“독수리 용병대가 4구역 업무를 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죠. 사과는 조사를 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봐요. 잘잘못은 그때 가서 따질 테니 지금은 일어나도록 하세요.”

“이 사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이 우선인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록사나의 말에 에이글이 몸을 바로 했다.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의 눈빛은 흡사 같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 같았다.

만약 분양권이 부당하게 잘못 배정된 사실을 더 늦게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문제를 지금보다 늦게 알게 되었다면 대처하기가 무척 까다로워졌을 거야.’

성공적으로 공사를 끝낸다고 해도 4구역의 불법 유흥가를 없앤다는 계획이 물 건너가는 것은 물론 리온 제국 수도의 랜드마크로써 자리매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곳 악덕 업자들 같은 후안무치한 자들에게 최신식 시설이 갖추어진 새 건물들을 갖다 바치면서 그들의 배만 불려 주는 꼴이 될 뻔했어.’

그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는 자신들의 몫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에게 역으로 우리가 원망과 질타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몰라.’

록사나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주뼛거리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 한편을 조용히 쓸어내렸다.

그녀의 시선이 심각한 분위기에 어쩔 줄 모르는 소피아 남매와 기대 어린 표정을 한 바네사에게로 향했다.

오늘 이들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면 큰 곤란에 처했을 것이다.

록사나는 자신이 남매를 도와준 게 아니라 반대로 소피아 남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바네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록사나를 바라보았다.

“소피아, 더스틴, 소니아, 나와 함께 우리 집으로 가지 않을래?”

“그 말씀은…….”

소피아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녀는 이제 자신들에게 돌아갈 집이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인상 좋은 얼굴로 자신들을 속인 집주인인데 그들이 그 집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안전할까?

답은 이미 명확하게 나와 있었고, 록사나가 꺼낸 말은 기분 좋은 꿈처럼 몹시 달콤했다.

“너희들이 원하는 만큼 우리 집에서 나와 같이 살자. 우리 집에 방 많거든. 너희에게 한 사람당 방 하나씩 줘도 남을 정도로 말이야.”

“소니아 갈래!”

“그럼 저도…….”

“감사합니다, 남작님. 괜찮으시다면 저희 모두 함께 남작님 집에서 살고 싶어요.”

소니아가 먼저 아무 고민도 없이 좋다고 대답하자, 더스틴이 이어서 긍정적인 의사를 표했다. 소피아 역시 만면에 미소를 활짝 지었다.

“당연히 괜찮고말고.”

록사나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잘됐다.”

소피아 남매의 희소식에 바네사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에 사람들의 시선이 바네사에게로 쏠렸다.

“그, 그냥 정말 잘되어서요.”

바네사가 당황하며 멋쩍게 웃었다.

록사나가 바네사 앞으로 곧장 다가가 그녀의 두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바네사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바네사, 정말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4구역 사업과 관련된 심각한 일의 전말을 더 늦기 전에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별말씀을요.”

세상 모진 풍파를 겪은 여인은 쑥스러워했다.

“당신 몫이었던 분양권 문제는 걱정하지 말아요. 아무 문제 없이 잘 해결될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바네사가 이 부탁을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어떤 부탁이신데요?”

“이곳 사장이 잡혀 들어갔으니 이 일은 당장 때려치우고 내일부터 우리 사무실로 출근하는 건 어때요? 지금보다 더 높은 월급을 줄게요.”

“제가 평생 해 온 일이라고는……. 아무튼 저는 기껏해야 청소 같은 일밖에 못 할 텐데요.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청소엔 그다지 소질이 없지만요.”

바네사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 들어갔다. 그녀는 유흥가에서 하는 일 말고는 자신이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이 없다는 것이 못내 부끄러웠다.

록사나가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청소 말고 오직 바네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그 일에 저는 바네사가 꼭 필요하고요.”

“설마요. 그게 뭔데요?”

바네사는 난생처음으로 누군가가 사람다운 일에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넓고 푸른 숲 같은 록사나의 눈빛을 마주하는 바네사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희망이 싹트기 시작하며 그녀의 심장이 설렘으로 두근거렸다.

“내일부터 분양권 부당 취득에 대한 조사를 대대적으로 벌일 거예요. 그 일을 바네사가 맡아 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처음이 있는 법이죠.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바네사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팀을 이뤄서 움직일 거고, 위험하지 않게 실력이 뛰어난 자들이 호위를 할 거예요.”

바네사는 여전히 망설였다. 이것이 그녀에게 다시없을 좋은 기회라는 것을 잘 알았지만, 너무 큰 욕심을 부렸다가 잘못될까 봐 두려웠다.

그저 자신 몫의 임대 분양권만 제대로 챙겨도 행운이라고 여겼다.

조금 더 확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바네사는 한 번 더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남작님은 왜 제가 그 일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첫 번째 이유는 바네사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서요. 뺏긴 임대 분양권을 포기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고 제게 일의 전말을 모두 알렸죠. 두 번째는 이곳 사람들과 4구역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록사나의 말에 바네사의 얼굴이 차츰 밝아졌다.

“임대 분양권을 뺏긴 사람들에게 우리 쪽 직원들이 먼저 접근을 하게 되면 잔뜩 경계하고 의심부터 할 거예요. 힘없는 사람들은 또 보복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워서 선뜻 나서지 못하겠죠. 그럴수록 일 진행은 늦어지고 적들에게 이 일에 대비할 시간을 벌어 주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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