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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143)화 (143/214)

143화 

더러는 오늘 밤 이 가게에 소란이 일 것을 예상하며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갔다.

귀족 여인에게 자신의 신상이 들통나 체면이나 품위가 손상되는 것이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작 이는 록사나의 관심 밖이었지만.

잠시 뒤, 가게 주인인 중년의 남자가 몸을 굽신거리면서 응접실로 들어왔다.

“아이쿠, 이런 누추한 곳에 귀부인께서 직접 납시다니요.”

남자는 겉으로는 능글맞게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오늘 장사는 다 공쳤다며 잔뜩 울상을 짓고 있었다.

“오늘 이곳에 온 소피아를 지금 당장 내 앞에 데려오게!”

“예? 그…….”

록사나의 서릿발 같은 명령에 남자가 눈치를 살피며 우물쭈물거렸다.

‘그놈들이 문제 있는 여자를 넘겼구나!’

유부남인 귀족과 바람이 났거나 귀족가의 재산에 손을 대어 문제가 되는 여자들이 이곳에 더러 넘겨지는 경우가 있었다.

비싼 몸값을 지불하고 데려온 소피아는 간만에 쓸 만한 상품이었다.

남자는 소피아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그녀를 잃게 되는 것이 몹시 꺼려졌다. 그렇다고 손해를 볼 수는 없었다. 그가 탐욕스럽게 머리를 굴렸다.

남자의 검은 속을 대번에 눈치챈 에이글이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빨리 소피아를 데려오지 않고 뭘 꾸물거리는 거지?!”

“그, 그게…….”

록사나를 둘러싼 호위들의 기세가 매서워 남자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자네에게 불리해질 거야.”

“바로 데려오겠습니다.”

록사나의 경고에 남자가 꼬리를 내렸다. 그가 막 응접실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제가 데려올게요.”

록사나 일행을 안내한 여인이 한발 빠르게 나섰다. 그러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응접실에서 잠시 벗어날 기회를 놓친 남자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입을 떼었다.

“소피아는 제가 거금을 들여서 정당하게 데려온…….”

탕!

록사나가 탁자를 세게 내려쳤다. 그 바람에 남자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내가 여기 오기 직전에 수도 치안대가 불법 노예상들을 검거했지. 보아하니 자네도 그들과 한패로군. 내 치안대에 연락해…….”

“아,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저는 그저 부모 빚을 갚기 위해 이 일을 꼭 해야 한다는 여인에게 선불로 돈을 준 죄밖에는 없습니다.”

남자가 기겁하며 강력하게 부인했다. 소피아의 동의 없이 노예상에게 직접 돈을 지불하기는 했지만 그 돈이 부모의 빚 대신인 건 사실이었다.

‘젠장! 그놈들과 거래하는 게 아니었는데!!’

록사나가 소피아를 데려가겠다고 하면 좋은 상품을 잃게 되어 아쉽기는 하지만 원래 몸값에서 더 높게 불러 이익을 얻으려고 했었다.

남자는 일이 한참 잘못 꼬였음을 깨달았다.

‘소피아 말고도 불법으로 여자들을 수도 없이 사들여 장사를 했겠지. 게다가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탐욕스런 자들에 의해 스러져 갔을까.’

생각만으로도 록사나는 구역질이 확 치밀어 오르면서 열이 받았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조사해 보면 알겠지.”

록사나가 이를 으득 갈았다. 그녀는 저 탐욕스런 자와 협상을 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저 면상 치워.”

록사나의 명령에 용병대원들이 한발 앞으로 나서 남자의 신체를 구속했다.

남자가 악을 쓰자, 입에 재갈이 물려진 채로 질질 끌려 나갔다. 그는 치안대에 넘겨질 것이다.

“언니~!”

“누나!”

“소니아, 더스틴!! 너희들이 어떻게 여기에?!”

여인의 손에 이끌려 온 소피아가 동생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바로 동생들에게 다가가서는 자신의 품 안에 깊숙이 끌어안았다.

소피아는 여인인 바네사가 자신을 찾는 사람이 있다며 데리러 왔을 때, 기어코 이들이 말하는 첫 손님을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복도를 지나오며 지옥 불을 걷는 것만 같았는데 귀여운 동생들이 떡하니 나타날 줄이야.

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 소피아의 마음속에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동생들의 얼굴과 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나 있었고, 멍이 잔뜩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피아는 그 상처가 이미 치료를 받은 흔적이 있다는 걸 미처 알아챌 정신이 없었다.

어린 동생들도 자신처럼 결국에는 잡혀서 온 거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덮치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이라도 어서 도망쳐, 빨리!”

품에서 두 동생들을 떼어 낸 소피아가 다급하게 외치며 응접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더스틴과 소니아가 겨우 한두 발짝 움직이고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소피아가 의아함에 몸을 돌려 동생들을 내려다보았다.

“소피아 누나, 우리 여기 붙잡혀 온 거 아냐.”

“응, 안 붙잡혔어. 붙잡힐 뻔했는데 천사님이 나타나서 구해 줬어.”

더스틴과 소니아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천사?”

소피아가 어리둥절해하며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자, 소니아가 그런 언니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천사님, 우리 언니예요. 이름은 소피아예요.”

“음, 그래. 저기, 소니아, 난 천사가 아닌데…….”

“천사 맞는데요?!”

소니아의 천진난만한 대꾸에 록사나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가 반쯤 포기했다. 그러고는 이내 소피아를 마주 바라봤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아이인데!’

소피아는 몸에 맞지 않는 화려한 드레스 차림에 화장을 해서 한껏 꾸며진 상태였다.

성인이라기엔 소피아의 너무 앳된 모습에 록사나는 겨우 가라앉혔던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다시 펄펄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더 늦었더라면 지금쯤 소피아는…….’

록사나에게서 살벌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자 소피아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이에 록사나는 아차 싶었다. 곧장 마음을 추스르고는 얼굴에 미소를 되찾았다.

“만나서 반가워요, 소피아. 난 록사나 아벨리오예요.”

“안녕하세요, 저는 소피아라고 해요…….”

소피아가 이름을 밝히고 나서도 뭔가를 더 기대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들의 시선에 소개 내용을 덧붙였다.

“더스틴의 누나고, 소니아의 언니예요.”

그제야 동생들이 활짝 웃었다.

“지금 궁금한 게 많죠?”

“네.”

“어떻게 된 거냐면 누나…….”

“있잖아, 언니…….”

록사나가 애써 설명을 해 줄 필요가 없었다. 더스틴과 소니아가 신이 나서 자신들이 겪은 모험담을 열심히 떠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소피아는 울다가 웃었다.

록사나와 다른 일행들은 그 모습을 말없이 흐뭇하게 지켜보며 기다려 주었다.

‘마음이 여리지만 책임감 있는 사람이야. 자기도 어린데 동생들을 위하는 걸 보면.’

성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록사나의 눈에는 소피아가 한참이나 어리게 느껴졌다.

소피아가 마음에 든 록사나는 아이들의 지저귐이 잦아들자, 입을 열어 물었다.

“이제 너희는 어디로 갈 거니?”

“부모님과 살았던 집으로 갈 거예요.”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소피아가 동생들의 손을 한쪽씩 꼭 쥐었다.

“누나, 거기 한 달 후면 나가야 되잖아. 공사 시작하면 다 부순다고…….”

더스틴이 주뼛거리며 말했다.

“원래 거기가 너희 소유의 집이니?”

“아니요. 세 들어 사는 곳이에요. 월세가 두 달 정도 밀려 있기는 하지만 이제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제가 일해서 갚으면 돼요.”

소피아가 당차게 말했다. 뭐든지 해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리고 집주인이 이번에 큰 보상을 받았다면서 마지막 한 달은 공짜로 살게 해 주셨어요.”

낙관적이지 않은 상황임에도 소피아의 얼굴에서 절망적인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록사나는 이들의 상황이 대충 파악되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어 빚쟁이들에게 쫓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피아가 제대로 된 일을 구하지 못해 방세가 밀리게 된 모양이었다.

운 좋게 집주인이 편의를 어느 정도 봐준 것 같지만 한 달 후에는 집을 잃을 처지였다.

“한 달 후에는 어떻게 할 거니?”

“공사하는 쪽에서 집 없는 사람들에게 임시 숙소를 제공해 준대요. 그래서 저희도 그쪽에서 머물려고요.”

“그렇구나. 그런데 너희들도 임대 주택 분양권 받았지?”

“네? 그게 뭐예요?”

혹시나 해서 물어본 록사나의 질문에 셋이 똑같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4구역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공사가 모두 끝나면 임대 주택에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권리증을 받을 수 있어. 그게 임대 주택 분양권이야.”

록사나의 설명에 소피아가 눈을 끔뻑거렸다.

“더스틴과 소니아처럼 미성년자인데 보호자가 없는 경우에도 임대 주택 분양권은 나와.”

조금씩 표정이 변하는 소피아와 더스틴과는 달리 가장 막내인 소니아는 말이 조금 어려운지 잘 모르겠다는 듯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너희 셋 중에서 맏이인 소피아가 이미 성인이잖니. 그러니까 분명 소피아 앞으로 임대 주택 분양권이 나왔을 거야. 그런데 너희는 그걸 받은 적이 없다는 말이지?”

록사나가 불길한 마음에 재차 확인을 거듭했다.

“네.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그걸 저희 집에 전해 주러 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그 사실을 말해 준 사람도 없었고요.”

소피아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혹시나 해서 자신의 동생들에게까지 확인을 했다.

“얘들아, 혹시 너희들만 있을 때 임대 주택 분양권을 주러 누가 우리 집에 방문한 적 있었어?”

“아니, 돈 갚으라고 하는 나쁜 놈들만 왔어.”

“맞아, 언니.”

이내 록사나의 고운 미간에 주름이 잡히며 살짝 찌푸려졌다.

“흠, 그랬었단 말이지.”

“네, 확실해요!”

록사나의 곁에 있던 아이린과 마르셀 경, 에이글의 얼굴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그들은 어디선가, 그리고 누군가 4구역 사업에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록사나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렸다. 응접실 한구석에서 내내 있는 듯 없는 듯 자리 잡고 있던 바네사를 바라보았다.

“당신, 이름이 뭐죠?”

“바네사입니다, 아가씨.”

아까부터 소피아도 그렇고 이어서 바네사까지 그녀를 아가씨라고 호칭하자, 록사나는 이것이 조금 신경 쓰였다.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이를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바네사, 참고로 난 아가씨가 아니에요. 결혼했다가 이혼했거든요.”

“네?!”

뜬금없는 록사나의 고백에 바네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눈치를 살살 살폈다.

“그럼 뭐라고 불러드릴까요?”

“내 이름은 이미 들어서 알 거고…….”

록사나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름으로 부르라고 하기에는 방금 안 사이였다. 그렇다고 남작 작위를 내세우자니 이것도 별로였지만.

“아벨리오 남작님?!”

고민이 무색하게도 바네사가 록사나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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