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137)화 (137/214)

137화 

프레드릭, 기드온 경, 에밀리오, 니아, 나디아, 심지어 가장 어린 제프리 등등 캠든 저택 내 고용인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캠든에 둥지를 튼 마도 공학자 빈센트를 위시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와 기술자들의 이름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또 한 장을 넘기자 마부 필립과 캠든 상단주 잭의 가족 이름이 보였다. 거기에는 미성년자인 키아와 키얀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확인한 록사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만약 키아와 키얀이 빠져 있었다면 그녀가 챙길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잭이 이미 잘 챙겨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명단 내 사람들의 이름 옆에는 금액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사람마다 다 달랐다.

이것은 4구역 사업에 대한 투자 자금이었고, 그들은 소액 투자자들이 된 것이다.

모두 록사나의 지시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록사나는 자신의 사람들에게 투자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부유해지기를 바랐다.

자신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기보다는 그들과 다 같이 잘 살고 싶었다.

록사나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모두 확인하고는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른 서류를 집어 들었다.

이번 것은 수도에 올라오고 있는 건축 관련 전문가와 기술자들 명단이었다.

빠짐없이 명단까지 살펴본 록사나가 그것을 아이린에게 건넸다.

“이건 투자자들 서류랑 같이 보관하고, 이쪽 건 4구역 건축 서류랑 함께 보관하면 되겠죠?”

“응.”

록사나의 집무실에 쌓이는 서류의 양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면서 산을 이루었다.

아이린은 한 번 서류를 뒤섞어 잘못 보관하다가 어떤 서류 하나를 찾는 데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그 뒤로는 철저하게 분류해서 보관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집무실에 딸린 문서 보관용 방에 서류를 두고 온 아이린이 소파에 다시 앉았다.

“헤헤헤.”

록사나와 눈이 마주치자 실없이 웃었다.

“그렇게 좋아?”

“네! 우리 모두 곧 부자가 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정말 좋아요. 록시 님처럼 고용인 챙겨 주는 귀족은 세상에 없을 거예요.”

아이린이 경험한 귀족가는 카일라니 공작가와 아벨리오 남작가가 전부였다.

타 귀족가의 소식은 알음알음 고용인들 간의 교류를 통해 타 귀족가로 퍼지기 마련이다.

다른 귀족가에서 자신의 고용인들에게 상여금이나 선물을 내려 주는 경우는 더러 있었다.

그러나 가신이 아닌 이상에야 고용인들을 사업에 참여시키는 경우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록사나가 특이하고 유일하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제 몫으로 넘치게 챙겨 주시고……. 정말 감사해요.”

“내 곁에서 오랫동안 함께해 줄 거지?”

“당연하죠!”

아이린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록사나 같은 고용주라면 그만두라고 해도 찰거머리같이 찰싹 달라붙을 거다.

아이린은 며칠 전 기억을 떠올렸다.

록사나가 아벨리오 남작가 소속 고용인 한정으로 소액 투자 얘기를 꺼냈을 때 그녀는 자신이 가진 돈을 전부 4구역에 투자했다.

그러다가 다음 날 해당 서류를 확인해 보다가 깜짝 놀랐다. 본인이 투자했던 금액보다 어마어마한 금액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서류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록사나에게 바로 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록사나는 그제야 내막을 밝혔다. 카일라니 공작저에서 일했던 아이린의 퇴직금을 개인적으로 자신이 챙긴 것이라고. 공작가의 돈이 아닌 자신이 번 돈으로 퇴직금을 챙겨 주고 싶었다고.

투자금의 규모를 떠올린 아이린이 헤실헤실 웃었다. 수도에 번듯한 2층집 한 채는 거뜬히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사이 하녀가 커피와 간식을 가져와 두 사람 앞에 두고 갔다.

‘이런 디저트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아이린이 폭신한 시폰 케이크 한 귀퉁이를 잘라 입으로 가져갔다. 입 안에서 부드럽게 사르르 녹아내렸다.

“벨루카 님도 공작가에서 이런 맛있는 디저트 드시고 계시겠죠?!”

“아마 그렇지 않을까?”

록사나가 카일라니 수도 저택의 주방장 솜씨를 떠올렸다. 워낙 솜씨가 좋으니 어쩌면 이곳에서보다 더 맛있는 디저트를 맛보지 않을까 싶었다.

“깨어나신 지 하루도 안 되었는데……. 함께 안 계시니까 허전하네요.”

“나도 그래. 게다가 거기 디저트가 더 맛있다고 안 온다고 하는 건 아닌지 걱정돼.”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예요. 공작가 디저트가 아무리 맛있어도 록시 님이 여기 계시니까 일 끝내시면 냉큼 달려오실걸요!”

“그럼 다행이고.”

벨루카는 특별한 임무를 맡아 오늘 아침부터 카일라니 공작저에 가 있었다.

로웰 후작저 탐색과 이종족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돕기 위해서였다.

“어머, 벌써 이렇게 시간이! 록시 님, 저 준비 상황 좀 점검하고 올게요.”

록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이 한 마리 나비처럼 포르르 집무실을 나섰다.

오늘 오후에는 ‘4구역 주거 환경 및 거리 정비 사업’ 투자 설명회가 열린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남작저에 속속들이 도착했다. 시종의 안내에 따라 그들은 차분하게 꾸며진 회의실로 들어섰다.

금방 회의실이 꽉 들어찼다. 다들 어느 정도 서로 안면이 있었기에 친근한 인사말이 오고 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록사나는 여기에 그녀와 사이가 우호적이고 교분이 있는 가문과 사람들만을 초대했다. 그녀가 투자자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레이슬린 공작 부부, 쿠엔틴 소백작 부부, 브루노 코니움 후작 영식, 아스테리온의 보좌관인 트레버와 길레르모, 문라이트 상단의 부상단주 프리다와 총관 줄리안으로 총 아홉 명이었다.

이들은 각 가문과 단체를 대표해 자리했다. 얼굴에는 사업에 대한 염려나 걱정이 전혀 없었다.

록사나가 이들에게도 사전에 4구역 관련 사업에 대해 정보를 공유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오늘은 형식적인 투자 설명회라고 할 수 있었다. 도노반의 눈을 속이기 위해 사전에 협의된 내용의 계약서를 작성하는 자리였다.

록사나는 약간의 이윤을 붙여서 이들에게 그녀가 미리 확보했던 땅을 되팔았다.

미래에 얻을 그들의 이익이 훨씬 컸기에 모두가 이 사실을 알고서도 기꺼이 거래를 했다.

더군다나 록사나가 그들에게 전적으로 호의를 베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땅을 되팔지 않는다면 아벨리오 남작가가 더 많은 수익을 얻게 될 것이 자명한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투자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아벨리오 남작가가 가진 기술력과 아이디어, 카일라니 공작이 가진 재력이라면 두 집안만으로도 4구역 사업은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록사나는 그들에게 자신이 투자를 받는 이유를 가감 없이 공개했다.

막대한 이익이 아벨리오 남작가와 카일라니 공작가에만 집중될 경우, 두 가문에게 황실과 타 귀족가의 집중적인 견제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록사나는 이 점을 우려했다.

투자 유치는 이러한 견제를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또한 투자 가문들과는 돈독한 관계를 이어 가며 세력을 키울 수 있으니 훨씬 더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록사나 측과 투자 가문 양측 모두의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사회적·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었다.

투자 설명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아주 만족스럽게 계약서에 사인을 진행할 때였다.

하녀 한 명이 회의실로 조용히 들어왔다. 하녀는 바로 아이린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그 말을 듣고는 아이린이 곧장 록사나에게 다가가 은밀하게 귓속말을 전했다.

에메랄드빛 두 눈을 살짝 크게 뜬 록사나가 놀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그게 정말이야?”

“네, 어떻게 할까요? 물릴까요?”

“음. 아니야. 일단 응접실로 모시라고 해. 여기 일을 마무리한 다음에 그쪽으로 갈게.”

“네, 알겠습니다.”

아이린이 하녀에게 그대로 말을 전했고, 하녀가 빠르게 회의실을 벗어났다.

‘한 번쯤 만나 보려고 생각하기는 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먼저 접촉을 해 올 줄이야……. 아, 그건 그거고 우선은 지금 일에 집중하자.’

록사나가 산만해지려는 마음을 붙잡고 남은 계약을 매듭짓기 시작했다.

모든 계약이 순탄하게 마무리되고, 투자자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남작저를 나섰다.

그제야 록사나의 발걸음이 응접실로 향했다.

* * *

벨루카가 하얀 생크림 케이크 조각 위에 올라가 있는 빨간 딸기를 제일 먼저 집어 먹었다. 상큼하고 달달한 것이 정령의 입맛에 제격이었다.

록사나 손바닥 반만 한 케이크가 순식간에 벨루카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벨루카가 아쉬움에 입맛을 잔뜩 다시며 빈 접시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정말 맛있었어. 그런데 양이 이렇게 적다니, 이 집은 손님 대접이 엄청 짜군!’

그때였다.

스윽.

아스테리온이 자신의 디저트 접시를 벨루카에게 넌지시 밀어 주었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안드레아스 것도 강탈해 같이 놓아 주었다.

벨루카가 잔뜩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손도 안 댄 생크림 케이크 두 접시와 아스테리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남자 인간,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부족해 보이길래.”

- 네가 아무리 그래도, 너네집 케이크가 아무리 맛있어도 나는 절대 안 넘어간다!

벨루카의 눈동자가 케이크 위를 이리저리 배회하는 가운데 표정만은 한껏 결연했다.

“먹어야 이따 힘내서 특별 임무를 잘 수행하지.”

- 그런 거냐?

벨루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반면에 아스테리온은 평온하게 커피 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셨다. 긴장을 감추면서.

‘여기서 또 하나의 장애물을 만들 수는 없지.’

아스테리온이 저한테 뾰족하게 구는 아이린을 떠올리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경계하는 정령을 어떻게든 구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록사나와 디저트인가?’

다행스럽게도 벨루카의 약점을 두 가지나 금방 발견해서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응, 맞아. 우리 쪽에서는 네 도움이 필요해. 그래서 록사나가 너를 보내 줬잖아. 네가 힘을 내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면 록사나가 엄청 기뻐할 거야.”

- 음, 맞다. 힘을 내려면 먹어야지. 록사나한테 칭찬도 받고 말 거다.

고민을 한순간에 날려 버린 벨루카가 케이크 두 조각을 연달아 한입에 꿀꺽 삼키자, 이번 간식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덩치가 커져서 그런 걸까. 전에는 두세 조각이면 충분했는데 지금은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벨루카의 두 귀가 아래로 축 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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