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136)화 (136/214)

136화 

투자의 기회를 놓친 도노반과 다른 사람들은 나중에서야 자신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걷어찼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카일라니 공작을 사랑에 눈이 멀어 앞뒤 안 재고 투자를 했다가 그야말로 대박을 친 억세게 운 좋은 남자라고 여길 것이다.

회상에서 빠져나온 록사나가 아스테리온을 힐끔거렸다. 평소보다 더 잘 갖춰 입은 그의 외모가 오늘 더욱 빛이 났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이런 관계도 나쁘지 않네. 앞으로도 쭉 이랬으면 좋겠다.’

록사나는 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기로 한 자신의 선택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앞으로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영지민들과 내 사람들이랑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야지!’

록사나가 방긋 웃었다. 그러자 그녀의 생각을 모르는 아스테리온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더불어 도노반을 엿 먹이게 되어 고소했다.

“그들은 나중에 다들 땅을 치며 후회하겠지.”

“맞아요, 공작님. 그런데 카일라니 공작님 힘도 예전만 못하신가 봐요. 약발이 전혀 안 먹힌 걸 보면요.”

간 크게도 아이린이 아스테리온에게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이에 질 그가 아니었다.

“그 약발에 코니움 영식이 걸렸다만.”

어디 멀리 변방으로 치워 버리고만 싶은 코니움 영식이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될 줄이야.

‘개똥도 약에 쓸 일이 있다더니.’

아스테리온은 사람 일이란 참 모르는 법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하지만 아스테리온의 변명은 아이린 앞에서 파사삭 깨졌다.

“겨우 한 명이라니……!”

아스테리온이 아이린의 이어지지 않은 뒷말을 떫은 표정으로 곱씹었다.

“오히려 한 명뿐이라서 다행이다.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더 있었으면 우리 수익이 더 줄었을 것 아니냐?!”

“누가 뭐래요?”

아스테리온은 얄미운 아이린의 머리통을 콩 쥐어박고 싶었으나 차마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카일라니 공작의 체면이 말이 아닌 날이었다.

아스테리온과 아이린이 기 싸움을 계속하는 가운데 벨루카는 그들이 그러든 말든 록사나의 무릎 위에 고개를 살포시 기댔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자신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는 록사나의 다정한 손길을 원 없이 즐겼다.

“두 사람 다 이제 그만해요.”

이를 보다 못한 록사나의 한마디에 아스테리온과 아이린이 입을 바로 다물었다. 그러나 서로를 노려보는 눈빛만은 어찌할 수 없었다.

록사나가 손에 들고 있던 서신을 펼쳐 들었다.

다 읽고는 아스테리온에게 이를 건넸다.

“역시 우리가 파악한 것보다 세세하군.”

아스테리온이 서신을 록사나에게 다시 건네려고 하자 그녀가 손을 내저었다.

“공작님이 가지고 계세요.”

서신은 빅토리아가 쓴 것으로 약속된 장소에 놓인 것을 벨루카가 가져온 것이다.

환상이 걸려 있었기에 다른 사람에게 발견될 염려가 지극히 낮았다.

반대로 록사나나 벨루카와 같이 빅토리아의 환상을 꿰뚫어 볼 수 없다면 알아볼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서신에는 로웰 후작저의 구조와 경비 인력의 배치, 동선 등 유용한 정보가 기재되어 있었다.

* * *

아벨리오 남작저에 도착하자, 록사나와 아스테리온, 아이린, 벨루카가 록사나의 집무실로 향했다. 록사나의 부름을 받은 마르셀도 함께였다.

그 전에 아스테리온은 남작저 입구에서 뒤따라온 공작가의 마차에 올라타 카일라니 공작저로 향하는 모습을 연출해야만 했었다.

뒤에 따라붙은 미행자들을 속이기 위함이었다.

얼마 안 있어 트레버와 마커스 경, 에이글도 남작저로 몰래 넘어와 합류했다.

그들은 독수리 용병대를 공격한 배후가 로웰 후작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로웰 후작이 어떻게든 감추려던 꼬리를 밟은 것이다.

한 가지 새로운 소식도 공유되었다. 로웰 후작이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이종족들을 후작저 안으로 들였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한 번만인가요? 아니면 지속적인가요?”

“지금까지는 딱 한 번 확인되었습니다. 이종족들을 계속 후작저로 옮기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지금도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록사나의 물음에 마커스 경이 고했다. 거기에 이종족들이 얼마나 있는 것인지 그 정확한 숫자까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이종족 이야기가 거론되면서부터 에이글은 로웰 후작에게 분을 참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혹 그들이 저와 같은 조인족들은 아닙니까?”

마커스 경이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이종족인 것을 알아볼 수 있었던 건 그들 중 한 명의 손이 검은 털로 덮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조된 마차에는 단단한 철창이 둘러져 있었고, 검은 천으로 덮여 있어서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마차가 로웰 후작가 후문을 통과하기 직전이었다. 하늘이 도운 듯 때를 맞춰 제대로 묶여 있지 않은 검은 천이 펄럭였다.

달빛에 드러난 것은 쇠사슬에 묶인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가장 작은 덩치를 가진 자의 손목에서부터 팔까지 털이 수북했다.

“조절 능력이 아직 부족한 어린 개체였나 보군.”

에이글이 이를 으득 갈았다.

조인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륙에서 거의 사라졌던 이종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 한없이 기꺼웠다.

“이 자료 덕분에 수색에 어려움이 덜할 것 같습니다.”

트레버가 들고 살펴보던 종이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빅토리아의 서신이었다.

그와 그의 주군은 빅토리아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지만 거기에 적힌 정보들이 로웰 후작저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했다.

이로써 로웰 후작저에 갇힌 이종족들을 언제,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가장 시급한 화두로 떠올랐다.

록사나의 집무실에서는 밤이 늦도록 회의가 이어졌다. 그렇게 모두가 밤을 꼴딱 새웠다.

일행은 그렇게 새벽녘이 되어서야 하나둘씩 집무실 문을 겨우 나섰다.

그때 록사나가 맨 마지막으로 나가던 이를 불러 세웠다.

“에이글.”

“네, 록사나 님.”

에이글이 몸을 돌려 록사나를 마주했다.

“저한테 할 말이 남아 있으신 것 같아서요.”

“지금 많이 피곤하실 텐데 괜찮으십니까?”

장시간의 회의로 인해 록사나의 얼굴에는 다크서클이 짙고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직은 더 버틸 수 있어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록사나가 먼저 다시 소파로 이동하자 에이글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바로 주저함 없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저희 독수리 용병대는 록사나 님 소속으로 편입되고 싶습니다.”

“기쁜 소식에 잠이 확 깨네요. 고마워요, 절 믿어 줘서요.”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왜 제 제안을 수락하겠다가 아니고 편입되고 싶다고 말씀하신 건가요?”

록사나의 소속이 된다는 결론은 같았지만, 그가 한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듯 엄연히 달랐다.

“록사나 님께 저희를 대체할 세력은 얼마든지 존재하지요. 하지만 저희에겐 록사나 님뿐입니다. 저희를 가장 잘 이해하시고, 귀족 밑으로 들어갔을 때 부당한 요구나 대우를 하지 않을 분과 저희가 어디에서 인연을 맺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는 록사나 님께 제안을 받은 입장이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모시고 싶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에이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록사나를 향해 고개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저희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당연하지요. 민망하니까 어서 다시 앉으세요.”

록사나의 얼굴에서 피로가 확 가셨다. 드디어 자신만의 믿을 만한 정보 집단과 수하들을 얻게 된 것이다.

에이글이 소파에 착석했다.

그때 소파 옆에 엎드려 있던 벨루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에이글에게 다가가 그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마치 잘했다는 듯 칭찬을 해 주는 것 같았다.

이에 에이글이 용기를 내어 벨루카의 몸을 쓰다듬었다. 예상대로 은빛 털은 무척 매끄러웠다.

“한 식구가 되어 기쁩니다, 벨루카 님.”

- 환영해, 독수리 인간.

“벨루카도 한 식구가 된 걸 환영한대요.”

“정말 벨루카 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에이글이 깜짝 놀랐다. 당연하게도 그는 정령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의 귀에는 벨루카의 기분 좋은 듯한 울음소리만 들렸기 때문이다.

록사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에요. 그리고 고마워요, 에이글. 음, 입 발린 말 같겠지만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꼭 호강시켜 줄게요.”

“으하하하하! 약속하셨으니 기대하겠습니다.”

에이글이 호탕하게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가 자세를 바로 했다.

“주군, 명을 내려 주십시오.”

“하하하. 마침 그러려고 했어요. 제 첫 번째 명은요…….”

록사나의 명을 확인한 에이글이 남작저를 떠나 용병대 임시 숙소로 되돌아갔다.

* * *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사교계에 ‘4구역 주거 환경 및 거리 정비 사업’에 대한 소식이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황태자의 티 파티에 참여했던 귀족들이 열심히 활약을 한 덕분이었다.

위 사업에 대한 소식은 예상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이나 다름없다는 부정적인 소문이 지배적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주류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이 중 돈 있는 자들은 부랴부랴 4구역의 땅을 사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이미 남아 있는 매물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상황이었다.

‘후후후, 우리 쪽에서 이미 싹 다 사들였지.’

록사나가 잔에 담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입가로 가져갔다.

“아, 좋다!”

“잠 깨는 데는 역시 아메리카노가 최고예요.”

록사나의 얼굴이 사르르 풀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린도 커피를 홀짝였다.

아이린은 록사나의 기분이 평소보다 유난히 좋아 보이는 게 독수리 용병대가 아벨리오 남작가의 정보부가 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짐작했다.

그것도 맞았다. 거기에 더해 앞으로 도노반에게 초대장을 받을 확률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점이다.

또한 이종족 문제가 조금씩 해결 실마리를 보이고 있었고, 사업 진행 상황도 순조로웠다.

“캠든에서 명단 올라왔지?”

“네, 여기요.”

아이린이 오늘 아침 도착한 서류들을 내밀었다.

록사나가 그것을 받아 일일이 한 장씩 넘기며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