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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133)화 (133/214)

133화 

‘몇 년 내로 상상도 못 할 만큼 그곳은 변하게 될 거야. 조금만 기다려, 내 부동산들아.’

가까운 미래에 독수리 용병대 상업 지역이 랜드마크가 되면 그 일대 역시 땅값이 오르고 발전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자, 이제 첫 단추를 꿸 시간이었다.

“에이글. 더 망설일 이유가 있나요?”

“없습니다.”

“좋아요. 그럼 우리 계약서를 작성해 볼까요?”

록사나가 미리 작성해서 준비해 두었던 서류를 아이린에게서 받아 에이글에게 건네주었다.

계약서상에는 자금과 전문 건설 인력을 아벨리오 남작 측에서 전담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계약서를 쭉 읽어 내려가던 에이글이 한 부분에서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우리 독수리 용병대를 건설 현장에 고용하겠다고요?”

“네. 독수리 용병대는 계속 생계 활동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저희 쪽에서는 건설 전문 인력을 보호하고 현장의 치안을 담당할 사람들이 필요하니까 서로 상부상조하면 좋잖아요.”

“역시 내 사람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어…….”

에이글이 감동 어린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다가 다시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록사나는 에이글이 서류를 내려놓을 때까지 느긋하게 차를 즐겼다.

비밀 유지 조항까지 확인을 마친 에이글이 망설임 없이 서류에 서명을 했다.

독수리 용병대의 보금자리를 재건하는 데 예상보다 기간이 늦춰지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시설을 갖추게 될 예정이었다.

에이글의 얼굴에 켜켜이 쌓여 있던 근심 걱정들이 스르르 허물어지면서 먼지처럼 흩어졌다.

“자, 진짜 마지막이에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제안은 거절해도 돼요. 저는 지금까지의 계약과는 별개로 독수리 용병대와 정보 교류 계약을 장기로 맺고 싶어요. 일종의 정보부라고 보면 되겠네요.”

“카일라니 공작가에서 정보를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카일라니 공작가의 정보력은 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만큼 정확하고 빨랐다.

그에 반해 독수리 용병대의 정보 수집 능력은 우수하기는 했지만 공작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공작가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제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지금의 아스테리온과 록사나는 서로 공동의 적을 두고 있고, 사업상 교류를 하고 있어서 협력 관계를 맺었을 뿐이었다.

아직 캠든 기사단의 규모가 작아 수도에 올라올 때도 카일라니 기사단이 호위를 도맡다시피 했으며 남작저 경비에도 도움을 받고 있었다.

협력하는 사이일지라도 한쪽이 지나치게 받기만 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수도에서 온전히 그녀의 사람이라고 할 말한 이들은 아이린, 마르셀 경, 필립뿐이었다.

인재의 부족함을 절감했고, 일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나 단체가 필요했다.

록사나에게는 독수리 용병대가 제격이었다.

“저희 독수리 용병대를 록사나 님의 세력으로 거두시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에이글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의 본능적인 감은 록사나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것처럼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반드시 잡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네, 온전한 제 세력이 된다면 저야말로 환영이에요.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 줄 거고요. 만약 그게 어렵다면 장기 계약이라도 맺고 싶어요. 앞으로 서로 공유할 정보들이 있으니 긍정적으로 고려해 줬으면 해요.”

록사나는 이종족 구출을 목표로 준비를 하고 있었고, 에이글 역시 사라진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쫓고 있었다.

에이글은 당장 록사나의 온전한 세력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쉽게도 이 문제는 저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답을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빠른 시일 내로 답을 드리겠습니다.”

에이글은 독수리 용병대에 큰 투자를 감행한 록사나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는 자정이 다 된 시각이었다.

* * *

록사나는 아이린과 함께 마차를 타고 황궁으로 향했다. 황태자의 티타임에 가는 것이었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던 둘이 동시에 하품을 하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록시 님,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너도, 아이린.”

어젯밤 에이글이 떠나고도 두 사람은 새벽까지 일에 파묻혀 있었다.

“진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다.”

“저도요.”

“그래? 그럼 우리 한 잔씩 더 마시자.”

아침에 이미 한 잔 마셨지만 부족했다.

“황태자 궁에 가시면 차를 또 마실 텐데요.”

“괜찮아. 거기 차 맛 별로더라. 이거 마시고 차는 입만 대는 시늉만 할래. 그리고 아마 차 마실 경황도 없을 걸?”

“그렇겠네요. 불편한 자리라 차만 마시고도 체하실지 몰라요.”

아이린이 준비한 보온병을 꺼내 두 개의 잔에 커피를 담았다. 은은한 커피 향이 퍼지며 마차 안에서 때아닌 커피 타임이 벌어졌다.

록사나의 무릎 위에 얼굴을 올리고 옆에 딱 붙어 앉아 있던 벨루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고는 아이린을 지그시 바라보며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꼬리로 좌석을 탁탁 내려쳤다.

“벨루카 님 것도 안 잊었어요. 여기요.”

아이린이 과일이 얹어진 케이크 한 조각이 담긴 티 접시를 벨루카 앞에 내려놨다.

- 고마워, 인간 아이린.

“별말씀을요. 맛있게 드세요.”

케이크를 맛보는 벨루카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케이크는 최애 간식이었다.

“벨루카, 그렇게 좋아?”

- …….

먹는 재미에 푹 빠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록사나가 벨루카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전에는 아기 강아지 같았었는데, 지금은 빈말로도 그렇다고 못 하겠군.’

벨루카는 다 자란 리트리버 정도로 덩치가 엄청 커진 상태였다. 뒷발을 딛고 일어서면 록사나의 키만 했다.

수도에 올라오는 도중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느라 힘들었었는지 새 저택에 도착하고서는 내내 잠만 잤었다.

처음에 만났을 때부터 벨루카가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기에 록사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깨어날 테니까.

드디어 오늘 아침에 벨루카가 긴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바로 록사나에게 달려와 새벽에 겨우 잠든 그녀를 깨웠다.

제 딴에는 너무 반가웠기 때문이다.

처음 벨루카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환청이 들리는 줄 알았었다.

이제 벨루카는 록사나와 대화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하루 정도는 자신의 몸을 거뜬히 투명화할 수 있었고, 공격력도 월등히 높아졌다.

록사나와 동행한 오늘이 벨루카의 공식적인 수도 첫 나들이 날이 되었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있어서 데리고 가는 것인 데다가 별로 가고 싶지 않은 황궁이었지만.

벨루카가 접시를 싹싹 비우고는 자신의 입가를 혀로 핥았다. 케이크를 먹었었다는 사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벨루카, 내가 말한 것 잊지 않았지?”

- 물론이야. 잘 기억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황태자 궁에 도착했을 때, 록사나는 제법 졸음기가 가시고 머리가 맑아진 상태였다.

록사나와 아이린이 마차에서 먼저 내렸다.

뒤를 이어 투명화를 한 벨루카가 땅에 네 발을 디뎠다.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벨루카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록사나의 눈에만 보였다.

록사나가 벨루카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나 갔다 올게. 이따 만나.

이내 벨루카가 먼저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록사나와 아이린이 황태자 궁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황태자의 티 파티 장소는 건물 내부가 아닌 정원이었다.

저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제국의 미래이신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어서 오시오, 아벨리오 남작.”

도노반이 반갑게 맞이하자, 록사나는 피부 위에 뱀에 기어가는 것만 같아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긴팔 입고 오기를 잘했네.’

날이 점점 더워지는 가운데 테이블에 둘러앉은 여자 손님들은 그녀와는 다르게 팔이 드러나는 의상을 착용하고 있었다.

오늘은 벌써 6월의 첫날이었다.

여러 가지 일로 록사나의 캠든 복귀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도노반이 한몫 단단히 하고 있었다.

초대 손님들이 모두 도착해 자리에 착석했다.

잠시간 사소한 잡담이 오고 갔지만, 록사나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녀는 벌써부터 심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흠흠. 아벨리오 남작님께서 오늘 평소보다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세르지오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록사나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제 딴에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었다고 생각할 테지만, 시나리오처럼 의도된 행동이라는 것이 눈에 빤히 보였다.

록사나가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네, 조금 피곤한 상태랍니다.”

아니라고 대답해도 세르지오의 답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솔직하게 말했다.

“저런, 일이 아무리 바쁘셔도 건강은 챙겨 가면서 하셔야지요.”

“이거 내가 괜히 미안해지는군. 바쁜 사람을 오라고 했으니 말이야.”

때를 맞춰 도노반이 끼어들었다. 그러더니 시녀 한 명에게 지시를 내렸다.

“너, 가서 몸의 피로에 좋은 차를 내오거라.”

“황태자 전하의 명을 받듭니다.”

“아닙니다. 전하. 저는 괜찮습니다.”

시녀가 몸을 막 돌려 자리를 떠나기 직전에 록사나가 바로 거절했다.

“아닐세. 앞으로도 큰일 할 사람이고, 리온 제국의 인재인 남작을 소홀히 대할 수야 없지.”

“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하지만 제가 황궁에 오기 직전까지 차를 많이 마셨던지라…….”

록사나가 근처 건물에 힐끔 시선을 주었다.

여기서 차를 더 마시게 되면 화장실을 드나들 수밖에 없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그렇게 되면 록사나에게 용건이 있는 황태자의 입장에서는 흐름이 끊기게 되면서 여간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 될 것이 뻔했다.

록사나는 이를 핑계로 황태자가 꺼내려는 말을 피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될 때까지 진드기처럼 더 달라붙을 것 같아 깔끔하게 포기했다.

아예 한 번에 해결을 보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남작이 그렇다면야. 관둬라.”

도노반이 자신의 명을 취소하자, 시녀가 아까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대기를 했다.

“그래, 남작. 요즘 무슨 일을 하길래 몸까지 상해 가면서 하나?”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닌데……. 황태자 전하께서 하문하셨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들으시고 비웃으시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록사나가 보란 듯이 일부러 눈가를 축 늘어뜨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런 염려는 하지 말고 편하게 말해 보게.”

도노반의 두 눈이 번들거리며 입가가 자꾸 실룩거렸다. 어지간히도 록사나가 진행하는 일이 궁금한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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