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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132)화 (132/214)

132화 

“그렇다고 저희가 아무한테나 덥석덥석 도움받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혹시라도 록사나가 독수리 용병대를 줏대가 없다고 생각할까 봐 괜한 조바심에 말을 덧붙였다.

거친 에이글은 록사나 앞에만 서면 순한 양처럼 돌변했지만, 독수리 용병대는 단장인 그도 그렇고 대원들도 자존심이 상당히 강한 이들이었다.

“저도 아무한테나 도움 주고 그러지 않아요. 믿음이 가는 독수리 용병대니까 하겠다는 거예요.”

“흠흠.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독수리 용병대는 받은 은혜는 반드시 갚습니다.”

기분이 좋은지 에이글의 입가가 실룩였다.

“먼저 지원 내용이나 제안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아, 지원과 제안은 별개이니 들어 보고 제안은 거절해도 돼요.”

“네, 알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본부를 예전과 같은 형태로 복구할 건가요?”

“맞습니다. 최대한 비용을 적게 들이는 선에서 예전 규모만큼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비용 걱정 없이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실래요?”

“당연히 규모를 키워야지요. 사실 오래전부터 포화 상태였던지라 본부 공터에 건물 하나를 더 세울까 고민하긴 했었습니다. 아마 이번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작게나마 건물을 신축할 수 있었을 겁니다.”

“건물 뒤에 딸린 땅이 독수리 용병대 소유인 거 맞죠?”

“맞습니다. 나중에 가족들과 동족들을 찾았을 때 잠시나마 안전한 거주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다소 무리를 해서 샀었지요.”

에이글과 독수리 용병대가 수도에 처음 자리를 잡을 때 그들은 모든 자금을 끌어모아 넓은 부지를 매입했다. 지금의 자리였다.

처음부터 자리해 있던 기존 건물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건물 뒤의 야트막한 야산과 넓은 공터가 독수리 용병대 소유였다.

“선견지명이 있으시네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에이글이 쑥스러워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록사나가 본론을 꺼냈다.

“저는 독수리 용병대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큰 규모로 확장하는 것을 추천해요. 못해도 한 열 배쯤? 당연히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제가 다 지원할 거고요.”

에이글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지금의 열 배라고 하셨습니까?”

“네.”

록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저희야 미래를 내다봤을 때 기존보다 확장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비용은 둘째치고 록사나 님께 별다른 이익이 없지 않습니까?”

“없으면 만들면 되죠! 제가 캠든 상단의 실질적 주인이라는 거 잘 아시잖아요. 전 장사치고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한답니다.”

“건물 장사를 하실 예정이십니까? 가령 임대 사업이라든가……. 그러신 거라면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에이글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순식간에 딱딱하게 변했다.

하지만 록사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계속 이야기해 보라고 눈짓을 했다.

“저희 용병대에서도 새 발 주점을 운영하고 있고, 임대 사업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독수리 용병대 땅에서 임대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알아요. 만약 애초부터 임대 사업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미 하고 있었겠죠. 돈은 없어도 땅이 있으니 투자자들을 모은다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자 에이글이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역시 남다르시군요. 그런데 제가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물어봐 주길 바라나요?”

“네?”

순간 에이글이 적지 않게 당황했다.

‘보통 이럴 때는 그 이유를 물어보는 게 당연한 수순 아닌가?’

에이글이 혼란스럽다는 듯이 록사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눈빛 속에는 제발 한번 물어봐 달라는 은근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이를 눈치챈 록사나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만 놀려야겠네.’

더 놀렸다가는 들켜서 내내 그에게 원망을 들어야 할지도 몰랐다.

“제가 맞혀 볼게요.”

에이글의 눈에서 초조함이 사라지고 기대감으로 반짝거렸다.

“수인족들은 자신의 영역을 중요시 여기고 자연을 사랑하죠.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무리하게 확장하고 싶지 않았던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우리에 대해 잘 아시는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에이글이 박수를 치며 감탄을 쏟아 내자, 록사나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자세를 가다듬었다.

“제가 말하는 확장은 에이글이 생각하는 확장과 조금 달라요. 그렇다고 임대 사업을 하자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한번 들어 보실래요?”

“물론입니다.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군요.”

록사나는 에이글에게 캠든 영지에서 진행하는 주택 건축과 거기에 들어가는 기술, 특히 보일러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니까 그 보일러라는 시설이 들어간 건물들을 세우고 싶다는 거군요.”

“네. 기존에 독수리 용병대 본부는 주거와 일터가 한 건물 안에 있었잖아요. 저는 일터와 주거 공간을 분리해서 생활하는 걸 추천해요. 그게 삶의 질을 훨씬 높여 줄 거예요.”

“한 건물에서 출퇴근하기가 편했는데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퇴근해도 퇴근한 거 같지 않았던 적은 없나요?”

“음, 언뜻 그런 말을 들었던 것도 같군요.”

그는 편하기만 했는데 부하들이 평소에 투덜거렸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용병대 부지가 넓으니까,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을 분리하면 외부인들이 드나드는 장소를 상업 공간으로 한정해서 최소화할 수 있어요.”

“좋은 생각입니다. 임대 사업은 아니라고 하셨으니까, 그럼 상업 지구는 우리 독수리 용병대에서 운영하는 겁니까?”

“맞아요. 독수리 용병대도 새 발 주점 하나만 운영하는 것보다는 상업 지구 내에 다양한 상점을 운영하는 게 수익적인 면에서 훨씬 나을 거예요.”

에이글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처럼 수익이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면 조만간 용병대가 해산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대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날이 머지않아 다가오고 말 것이다.

이번에 그들의 둥지가 파괴되면서 그 위기감은 바로 목 앞에 드리워진 칼날처럼 선명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제가 도움을 드린다기보다는 독수리 용병대에 투자하는 것에 가까워요.”

“저희 입장에서는 도움이나 투자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만.”

“아니요, 달라요. 저는 투자라는 명목으로 독수리 용병대에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할 거거든요.”

“그 조건이 뭡니까?”

“첫 번째 조건은 새 발 주점을 제외한 상업 지구 상점들의 순수익 중 매달 50%를 배분받는 거예요. 두 번째는 캠든 상단과 관련된 상품들을 판매하는 매장을 하나 열고 싶어요. 마지막은 어떤 상점을 열지 서로 논의해서 결정하자는 거고요.”

“거주 공간인 집도 순수익의 50%입니까?”

“아니요, 상업 지구만요.”

“그 정도 조건이라면 오히려 저희에게 훨씬 유리한 조건이군요.”

건축 비용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상업 공간을 통해 수익까지 낼 수 있게 된다면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었다.

하지만 에이글은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기가 망설여졌다.

에이글이 자신의 턱을 한 손으로 문지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확장으로 인한 자연 공간의 축소가 여전히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독수리 용병대원들에게 넓은 공터와 자그마한 산은 모두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고향의 자연에 비할 바는 못 되었지만 삭막한 수도 생활에서 유용한 놀이터이자 소중한 휴식처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록사나가 빈 종이와 연필을 집어 들었다. 종이를 탁자 위에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에이글의 고민을 끝내 주기 위한 록사나의 선택이었다.

“이게 독수리 용병대 부지라고 쳐요. 건물을 짓는 데 실제로 사용되는 땅은 최대로 잡아도 10분의 3 정도밖에 안 될 거예요.”

에이글의 시선이 록사나가 종이 위에 그리는 선들을 따라 움직였다.

“록사나 님이 여기 그린 대로 이 정도 부지에만 건물을 짓는다면 열 배로 확장하기는 어렵겠는데요. 물론 이대로라면 기존보다 세 배 정도 확장되는 거기도 하고, 땅도 덜 차지하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좋습니다만.”

“맞아요. 땅을 덜 차지하죠.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건물 부지는 이 정도로만 정하고 건물 부피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그거야 건물을 높이면 되는 거 아닙니까?!”

너무 쉬운 질문에 에이글이 코웃음을 쳤다.

짝짝짝.

“정답입니다!”

기뻐하는 록사나와 달리 마커스 경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지금 그들이 논의한 부지만으로 망가진 본부의 열 배 정도 규모의 건물을 지으려면 적어도 그 땅에 한 건물당 6층 이상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황궁을 제외하고는 수도 중심지의 건물들 대부분이 4~5층이었다.

6층 이상의 건물이 없는 건 돈 때문이 아니라 건축 기술 문제 때문이었다.

그래서 에이글은 호기롭게 말했다.

“여기 이 정도 땅에 록사나 님이 말씀하신 기존 건물 규모의 열 배를 올릴 수 있다면 저는 더 이상 이견이 없습니다. 물론 고층으로 지어졌을 때 안전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겁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죠.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건축물은 그냥 쓰레기예요.”

록사나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씩 웃었다.

최근 캠든에서 기분 좋은 서신을 하나 받았다.

건축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고층 건물 건설에 대해 진행되었던 연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내용이었다.

지진 등의 자연 재해에 대비한 내진 설계 및 고층 건물에서 필수적인 마력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역시 성공적으로 개발이 완성된 상태였다.

“독수리 용병대 부지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면 반드시 그곳이 수도 케일라의 중심지가 될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저희 독수리 용병대가 단체로 록사나 님께 단체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독수리 용병대에게 감사받게 될 일도 좋았지만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록사나는 처음 독수리 용병대가 있는 지역을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었다.

본능적 감각이 뛰어난 이들답게 그들이 자리 잡은 곳은 주변 자연 환경이 뛰어났고, 여러모로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일대에 거주하는 이들이 주로 위생 관념이 약한 하층민들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심한 악취가 난다는 것이었다.

록사나는 미리 먼 미래를 내다보고 그 인근의 땅을 조금씩 사 모으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 기간이 앞당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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