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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123)화 (123/214)

123화 

그사이 마가렛이 마치 보라는 듯 자신의 손에 든 연한 핑크색 미니 클러치 백을 살짝 들어 올렸다. 록사나가 선물한 것이었다.

“물론 제 것은 알렉시스 것이지만요.”

마가렛은 표정에서부터 자부심과 만족감이 물씬 묻어났다. 그녀는 록사나에게 이야기를 들어 알렉시스와 피닉스 제품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

주변의 귀부인과 영애들이 수군거렸다.

피닉스와 알렉시스가 다른 제품인 것 같다는 소리가 얼핏 록사나의 귀에 들려왔다.

“록사나, 다른 제품도 구입하고 싶은데 알렉시스가 아직 판매 전이라서 많이 아쉬워요. 대체 언제쯤 매장을 정식 오픈하는 건가요?”

“그게 문제가 좀……. 캠든 상단 입장에서는 이만저만 고민이 되는 게 아닌가 봐요.”

“뭐가요?”

록사나가 눈꼬리를 축 내렸다.

“숙련된 최고의 장인 한 명이 한 달에 겨우 네다섯 개만 만들 수 있어서 내놓을 수 있는 수량이 워낙 적다 보니……. 생산량을 늘리려고도 해 봤지만 장인 의식이 워낙 투철해서 그쪽 장인들 고집이 여간 아니래요.”

“장인들이야 돈만 많이 벌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많이 만들수록 많이 벌 거 아니에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사용되는 가죽은 물론 바늘과 실까지 최고급 재료만 사용한다고 해요. 그리고 완성하고도 마음에 안 들면 아예 상품으로 안 내놓겠다고 싹 불태운다고 하더라고요.”

이 자리에서 캠든 상단의 실질적 주인이 록사나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녀는 일부러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록사나가 말한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물론 일부 각색되고 포장된 부분이 있었지만.

장인들은 고수입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제품을 불태우는 건 장인들이 아니라 캠든 상단 측이었다.

“정말 놀랍군요. 제품의 최고급 품질을 위해 돈을 포기하고 장인 정신을 고집하다니요!”

마가렛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들고 있는 미니 클러치 백을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디자인과 색상은 물론 유무형적 가치까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가렛의 눈빛에는 귀한 선물을 준 록사나에 대한 감사함이 담겨 있었다.

록사나는 그 마음을 다 이해하고 잘 안다는 듯이 그녀를 따스하게 바라보았다.

두 여인의 대화는 당연한 수순처럼 록사나가 착용한 파격적인 디자인의 드레스로 화제를 옮겨 갔다.

마가렛이 록사나에게로 몸을 살짝 기울여 조그맣게 속삭였다.

“록사나, 혹시 코르셋을 안 한 게 맞나요?”

“네, 맞아요.”

“부러워요. 코르셋을 하지 않아도 되는 얇은 허리를 가지고 있다니. 오늘 입은 드레스도 그래서 예쁘게 소화할 수 있는 거겠죠. 제가 이런 새로운 스타일을 입으면 잘 안 어울릴 거예요.”

코르셋을 해서 그렇지 실제 자신의 허리가 굵다는 걸 돌려 말한 마가렛이 울상을 지었다. 아쉬움에 나지막하게 한숨까지 내쉬었다.

“아니에요. 마가렛이 입어도 충분히 아름답게 소화할 수 있어요.”

“설마요.”

록사나가 자신을 위로한다고 생각한 마가렛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마가렛은 오늘따라 더욱 꽉 조이는 코르셋에 무거운 드레스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반면에 록사나의 드레스는 무척이나 하늘거리면서도 가볍고, 그녀의 움직임이 편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록사나가 두 손으로 마가렛의 손을 살포시 붙잡았다.

“마가렛, 며칠 뒤에 있는 위즐리 공작가 파티에 참여하죠?”

“네.”

“그럼 내일 오후에 시간이 괜찮다면 아벨리오가에 방문해 줄래요? 사브리나도 제 드레스를 궁금해했어요. 따로 연락 주신다고 하시긴 했는데 이 김에 사브리나도 함께 초대할까 봐요.”

“시간 돼요. 실례가 안 된다면 내일 오후에 꼭 갈게요.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환영해요. 내일 기대해도 좋아요.”

“어머,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요. 우리 뭐라도 마셔요.”

“좋아요.”

곁에 있던 아스테리온과 가브리엘은 이미 중간쯤 두 사람에게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신들을 본 사람들이 곁으로 다가오려고 하자 두 여인이 대화를 편히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옮긴 것이다.

각자 음료를 든 록사나와 마가렛은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둘은 홀 곳곳에 마련된 휴식 공간 중 한곳에 놓여 있는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안 있어 마가렛을 아는 이들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네요. 록사나는 여기서 좀 편히 쉬다 움직여요. 나중에 제 지인들을 소개시켜 줄게요.”

마가렛이 먼저 일어나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녀의 배려에 록사나의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다.

궁금한 것이 많은지 록사나에게도 다가오려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다가오지 못했다.

록사나가 반투명 휘장을 풀어 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습이 어슴푸레 가려졌다.

휘장이 쳐진 휴식 공간은 그곳에 사람이 있으며, 쉬고 싶으니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어디 뭐라고들 하는지 한번 들어 볼까?’

록사나가 약하게 바람의 힘을 일으켜 휘장 너머로 내보냈다. 그 바람에 휘장이 살짝 흔들렸다.

정령이 없는 상태에서 바람을 이용해 엿듣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홀 정도 크기에 바람을 퍼뜨리는 것 정도는 괜찮았다.

미니 클러치 백이 없는 영애들 중 한 명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내일 당장 캠든 상단에 사람을 보내야겠어요.”

“저도요!”

“미니 클러치 백 사려고요?”

“네.”

그때 갈색 머리를 가진 영애가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마 구입하기 어려울 거예요.”

갈색 머리 영애의 말에 주변 영애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영애가 잠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며칠 전 어머니께서 그레이슬린 공작 부인을 티 파티 모임에서 뵈었는데 그때 오늘 보신 클러치 백을 들고 오셨대요. 어디서 구입하신 건지 물어보셨는데, 선물 받은 거라고 하시면서 캠든 상단에서 판매 예정인 상품이라고 말씀해 주셨대요.”

모두 자신에게 집중을 하자, 갈색 머리 영애는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어쨌든 어머니께서는 집에 돌아오시자마자 캠든 상단으로 사람을 보내셨어요. 피닉스 제품이라도 구입하려고요. 그런데 다 품절이라지 뭐예요. 게다가…….”

“게다가 뭐요?”

“영애, 궁금하잖아요.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얘기해 주세요.”

다들 못 참고 재촉을 했다.

갈색 머리 영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밝혀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전부터 자신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싶었다.

“알렉시스는 아직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래요. 판매까지도 시일이 조금 걸릴 거고요. 영애들도 들었겠지만 이게 무슨 말이겠어요?”

그들은 피닉스보다 알렉시스가 한 단계 더 높은 가치를 지녔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럼 예약하면 되죠!”

뭐가 문제냐는 듯이 다른 영애가 자신 있게 나섰다.

“알렉시스는 현재 예약이 안 된대요. 추후 예약이 가능하긴 한데 그건 VVIP들만 가능할 거라고 하고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돈 벌기 싫은가 봐요. 우리가 구매한다고 할 때 팔 것이지!”

오만한 귀족으로서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이 못마땅함을 표출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알렉시스 제품은 아마 쉽게 구입하기 힘들 거예요.”

갈색 머리 영애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녀는 마가렛이 가진 알렉시스의 미니 클러치 백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가격이 만만치가 않거든요.”

“손바닥보다 조금 큰 그게 얼마나 하겠어요.”

“네. 손바닥보다 조금 큰 그게 직원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기본 100골드를 넘기더라고요.”

“비싼 보석이 많이 사용되었나 보네요.”

“아니에요. 보석이 하나도 안 달린 클러치 백이 100골드가 넘어요.”

“네에?!!”

“설마요…….”

“믿을 수가 없어요!”

다들 경악하거나 소스라치게 놀랐다. 입이 도저히 다물어지지 않았다.

100골드면 평민이 한 푼도 안 쓰고 80~90년 넘게 모아야 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웬만큼 잘사는 귀족가 안주인이나 영애들도 최소 몇 달간 품위 유지비를 열심히 모아야만 했다.

게다가 그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치는 모든 게 돈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것들은 포기를 감수해야 한다.

“비싼 만큼 정말 예쁘긴 해요. 그 돈을 들여서라도 정말 꼭 하나라도 사고 싶어요.”

“내일 당장 피닉스 걸 먼저 사야겠어요.”

알렉시스 제품을 당장 구매하기 어려우니 다들 차선책을 떠올렸다.

미니 클러치 백이 품절이라도 피닉스 제품 중 다른 디자인의 상품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저도요.”

한 영애가 마음에 드는 색상과 디자인의 미니 클러치 백을 든 자신의 고아한 모습을 상상했다.

“드레스는 또 어찌나 예쁜지…….”

장식이 거의 없어 자신들이 입은 드레스보다는 단순하기가 그지없었다.

하지만 은근히 우아하고 시선을 잡아끄는 드레스였다는 점이 영애의 머릿속에 자꾸 상기되었다.

“내가 보기엔 미니 클러치 백을 들어서 예뻐 보이는 것 같아요.”

“그 드레스도 캠든 상단에서 나온 거 같죠?”

“맞을 거예요.”

미니 클러치 백이나 드레스에 대한 영애들의 의견이 각자 서로 갈리기는 했지만, 열망이 가득한 눈빛만은 똑 닮아 있었다.

물론 긍정적이고 좋은 반응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 들고 고리타분한 귀부인들은 록사나의 드레스를 두고 망측스럽다거나 천을 조금만 사용한 것을 보니 돈이 없나 보다며 헐뜯고 비웃었다.

어딜 가나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의 견제나 시기가 있기 마련이었다.

바람을 통해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한 록사나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이 정도면 성공이야.’

록사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어 냈다.

그녀의 휴식이 끝났음을 알아챈 마가렛이 록사나를 향해 손짓했다.

록사나는 마가렛과 친분이 있는 이들을 소개받았다. 마가렛의 성향처럼 모나지 않은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홀의 음악이 춤곡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춤을 추기 위해 하나둘씩 짝을 이루어 무대로 나갔다.

다른 무리에 섞여 있던 아스테리온이 자신에게로 다가오려고 하자 록사나가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여기에서 그와 춤까지 추면 소문을 돌이킬 수 없어.’

지금은 전략적인 관계인 사업 파트너 관계로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것이 좋았다.

록사나의 의도를 눈치챈 아스테리온이 중간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아스테리온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아스테리온은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매튜에게로 다가갔다.

이후 록사나는 무난하게 사교계 복귀를 마쳤다.

그녀는 집까지 에스코트하겠다는 아스테리온을 거절하고 아벨리오 저택으로 돌아갔다.

떠나기 전 그레이슬린 공작 부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사브리나를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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