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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118)화 (118/214)

118화 

“어떻게 이런 핑크가 나올 수 있죠?”

“세상에. 앙증맞고 너무 예뻐요.”

부인들은 전시된 토트백들을 손으로 쓸고 만졌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손에 드는 것 말고는 그 이상 어떻게 하지 못했다.

이에 보다 못한 직원이 앞으로 나서며 한 부인에게 적극적으로 착용을 권유했다.

“직접 메 보시겠습니까? 여기 거울도 비치되어 있으니 착용하신 모습을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어머, 정말요?”

핑크색 미니 토트백을 조심스럽게 만지던 부인의 표정이 단번에 밝아졌다.

“손으로 드셔도 되고, 안에 숨어 있는 스트랩을 꺼내 이렇게 사선으로 메거나, 한쪽 어깨에 메셔도 됩니다.”

점원이 부인의 토트백 착용을 도와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의 눈이 황홀한 빛을 띠었다.

직접 착용을 해 본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거울 속의 그녀는 회색빛 계열의 밋밋한 드레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한 핑크색 미니 토트백을 메고 있으니 그녀의 분위기가 화사하게 확 피어났다. 칙칙한 인상은 사라지고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부인이 떨리는 눈빛으로 직원에게 물었다.

“이거 얼마예요?”

“부인께서 메신 토트백의 가격은 30골드입니다.”

“아…….”

부인이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못 살 정도는 아니었지만 30골드를 한 번에 지불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런데 오늘 부인의 선택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부인과 그녀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직원이 애태우지 않고 사람들의 궁금증을 바로 풀어 주었다.

“오늘 신상품 출시를 기념하여 공지되지 않은 특별 행사가 있습니다. 여기를 봐 주시겠습니까?”

직원이 기다랗게 세워진 무언가에 씌워져 있던 천을 걷어 냈다.

“이건 다트 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숫자가 보이시죠? 돌아가는 다트 판을 작은 화살처럼 생긴 이 다트를 던져 맞힌 숫자만큼 할인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다음 기회에’라고 쓰여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10~100%까지 할인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만약 다트 판에 안 맞고 다트가 튕겨 나가면 다시 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다트를 던지셨어도 원치 않으시면 물건을 구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 이 특별 행사는 오늘, 그것도 단 한 시간 동안만 진행됩니다.”

“할게요!”

부인이 냉큼 직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에 직원이 먼저 시범을 보여 줬고, 부인이 다트를 던질 차례가 되었다.

주변인들이 응원을 보냈고, 부인이 떨리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다트 판에 다트를 있는 힘껏 던졌다.

탁!

경쾌한 다트 꽂히는 소리가 나자 직원이 다트 판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나타난 결과는, 90% 할인.

“꺄악~!”

부인은 어린 소녀처럼 방방 뛰며 좋아했다. 핑크색 미니 토트백은 단 3골드에 부인의 손에 쥐어졌다.

이후 어른들은 너도나도 다트 판 앞으로 몰려들었고, 환성과 비탄이 난무했다.

이 와중에도 일부 사람들의 시선은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 무리 중 한 사람인 프란시스가 품위 있게 조용히 매장을 둘러보며 감탄을 쏟아 냈다.

“캠든 상단의 장사 수완이 보통이 아니군요.”

“맞습니다. 하나같이 기존의 것들과 차별되는 제품들입니다.”

트레버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공작가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록사나를 떠올리니 속이 이만저만 쓰린 게 아니었다.

트레버는 추궁하는 듯한 시선으로 옆에 있는 아스테리온을 바라보다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아스테리온은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그림을 제출하고 받은 번호표를 자꾸 만지작거렸다.

‘이게 잔뜩 긴장할 만한 일인가?’

남들이 보기에 아스테리온은 더없이 무표정했지만, 그의 오랜 측근으로서 표정을 읽는 건 트레버에게 식은 수프 먹기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떨리십니까?”

“좀… 그렇군.”

“제가 봤을 때 각하의 그림 솜씨는 저희 중 가장 뛰어났습니다.”

의외로 프란시스의 그림도 꽤 볼만했었지만 트레버는 그 말을 삼켰다.

트레버를 보며 아스테리온의 금빛 눈썹이 불만스럽게 꿈틀거렸다.

“그래. 그 위로 참 고맙군. 자네 말처럼 우리 넷 중에서만 볼만했지.”

이어 아스테리온이 떨떠름하게 매장 한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한창 상품들을 구경하고 있는 브루노, 케빈, 세르지오 영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스테리온의 새로운 연적들.

“주군, 제가 저자들 그림을 살짝 봤는데 별것 없었습니다. 그러니 분명 주군의 그림은 수상작 중 하나에 들 것입니다.”

마커스 경이 두 손과 품 안에 연필 제품을 가득 안아 든 채로 아스테리온에게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당연히 그럴 것이야.”

자신만만하게 얘기했지만, 아스테리온은 그림을 제출한 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다. 심사 발표가 나야지만 이 두근거림이 멈출 것 같았다.

아스테리온이 손에 축축이 밴 땀을 자신의 바지 한쪽에 쓰윽 닦았다. 손수건을 꺼낼 생각조차 못 했다.

‘어떤 적이나 상황 앞에서도 이렇게 떨어 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하, 빨리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군.’

아스테리온이 신경 쓰고 염려해야 할 점은 이어질 록사나의 추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마음은 온통 세 명의 영식들과의 대결 결과인 수상작 발표에 집중되어 있었다.

【 친구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

잭이 명단을 손에 들고 단상 위로 올라섰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손을 맞잡거나 두 손을 모으고 그를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 기다리셨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캠든 상단이 주최한 ‘연필 그림 그리기’ 행사의 수상자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순서는 아동부, 청년부, 성인부로 이어지며, 장려상, 우수상, 최우수상을 차례대로 발표합니다. 수상한 사람들에게 뜨거운 박수 부탁드리며, 수상자는 호명된 순간 단상 위로 바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배부받은 번호표 챙기는 것 꼭 잊지 마시고요. 그럼 먼저 아동부 장려상 다섯 명은…….”

수상자가 호명될 때마다 기쁨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캠든 상단 본관 앞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드디어 아스테리온과 그의 측근들이 기다리던 순간이 다가왔다.

“다음으로 성인부 수상자입니다. 먼저 장려상 다섯 명은 …입니다. 우수상 두 명은 …입니다.”

꿀꺽.

아스테리온 일행 중 누군가 침을 삼켰다.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잭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성인부 최우수상 수상자는 61번입니다.”

일순 장내가 조용해졌다. 으레 들려야 하는 환호성이 없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번호를 재차 확인했다.

“대체 성인부 최우수상이 누구야?”

“영애, 번호표 다시 한번 보세요. 61번.”

“저는 19번이에요.”

19번 번호를 든 영애가 울상을 지었다.

“그럼 대체 누가 61번이야?”

“61번이 누구요?”

“집에 갔나?”

“결과 발표도 듣지 않고, 설마 그럴 리가요.”

수상자가 나오지 않자, 사람들의 말소리가 점점 커졌다.

잭이 주변을 넓게 훑어보았다. 단상 위에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들 주변만 두리번거리는 상황이었다.

그건 아스테리온 쪽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 전 63번인데 안타깝군요.”

“저는 64번입니다. 각하는… 아! 62번이셨군요.”

트레버의 뒤를 이어 마커스 경이 자신과 아스테리온의 번호를 확인했다. 경품 뽑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척 아쉬워했다.

그리고 한꺼번에 접수를 했으니 그들 중 나머지 한 명인 프란시스는 61번일 터였다.

“61번? 61번 안 계십니까? 성인부 최우수상 수상자는 61번입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잭이 목소리를 높여 다시 한번 수상자를 호명했다.

자신의 번호가 계속해서 불리자, 61번이 손을 달달 떨며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어디 아프십니까? 왜 이렇게 땀을…….”

마커스 경이 무심코 손을 뻗다가 상대의 팔을 건드렸다.

툭.

무언가 바닥에 떨어졌다. 세 남자의 눈이 단번에 커다랗게 뜨였다.

“어?”

“이건?!”

“……!!”

프란시스가 파리한 얼굴로 삐걱삐걱 고개를 돌렸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각하.”

그와 동시에. 61번 번호표를 주워 손에 든 마커스 경이 팔을 번쩍 위로 들었다. 잭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61번을 찾기 위해 목청을 높이던 찰나였다.

“여기 있다, 61번!!”

“61번 없……?”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한곳으로 쏠렸다.

“진짜 61번 맞아요?”

“맞네요. 축하합니다.”

“어서 앞으로 나가세요.”

사람들이 마커스 경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 그게. 제가 아닙니다. 이분입니다. 이걸 떨어뜨려서 제가 대신 주웠습니다. 집사님, 어서 앞으로 나가세요.”

마커스 경이 프란시스에게 61번 번호표를 손에 쥐여 주며 등을 떠밀었다.

“아, 그래요. 암튼 61번 축하합니다.”

“빨리 안 나가고 뭐 하세요?”

“엄마, 저 아저씨 최우수상 받아서 너무 놀랐나 봐요.”

“그러게.”

잔뜩 굳어 있는 프란시스를 한 아이가 힐끔거렸다. 인간 석상이 따로 없었다.

그때 아스테리온의 한껏 억눌린 목소리가 얼음이 된 프란시스의 몸에 균열을 일으켰다.

“축!하!하!네!, 프란시스. 앞으로 나가지.”

프란시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뒤통수가 몹시 따가웠지만, 단상을 향해 정신없이 나아갔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축하 인사와 박수를 보냈다.

성인부 최우수상 수상자의 등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록사나가 속으로 깜짝 놀랐다.

‘프란시스에게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었구나.’

수상자 선정은 이름을 미기재하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상자가 번호표를 들고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수상자를 알 수 없었다.

이로써 모든 수상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드디어 행사의 마지막 순서가 이루어졌다. 번호표로 본인 확인을 모두 마친 ‘연필 그림 그리기’ 행사의 수상자들에게 상패와 상품이 수여되었다.

수상자들은 각자의 상품을 받아 들고는 다들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나같이 캠든 상단에서 최초 출시되는 가치 있는 고급 상품들이었다.

연필깎이와 필통 등의 필기구 관련 제품뿐만 아니라, 제품 할인권까지 다양한 부상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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