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116)화 (116/214)

116화 

“벌써 오픈 준비가 다 끝났군요!”

“네. 남작님 오시기 전에 막 끝낸 참입니다.”

록사나가 만족스럽게 1층 매장을 둘러보았다.

오늘의 상품들은 정갈하고 멋스럽게 진열되어 있었고, 연필로 그린 그림들이 적절하게 장식되어 이목을 끌었다.

“안녕하세요, 남작님.”

“어서 오십시오.”

“너무 일찍 오셨습니다, 남작님.”

캠든 상단 직원들이 록사나를 발견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여러분, 정말 수고가 많아요. 오늘 하루 잘 부탁해요. 그리고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해 왔어요. 우리 같이 먹어요.”

“와~!”

“감사합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다들 행복한 표정으로 아침을 즐겼다.

이후, 매장을 오픈했다. 그리고 드디어 연필 그림 그리기 행사가 시작되는 오후가 되었다.

* * *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기 전 심사 위원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직원이 그들을 심사 위원 대기실로 안내했다.

심사 위원은 록사나를 포함하여 총 아홉 명으로 화가 네 명, 그레이슬린 공작 부부, 쿠엔틴 소백작 부부였다.

특히 화가 4인은 록사나가 특별히 신경을 써 초청을 한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귀족가의 후원을 받고 있지는 않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지녔고, 실력 면에서도 아주 뛰어났다.

화가들은 대귀족들을 만나게 되어 다소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록사나 아벨리오입니다. 오늘 캠든 상단에서 주최하는 연필 그림 그리기 행사에 심사 위원으로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록사나는 자신의 소개를 시작으로 우선 심사 위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필기구에 대한 홍보와 필기구 사용 활성화를 위한 행사의 취지 및 일정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심사 위원들은 록사나가 사전에 보내 준 연필을 다들 사용해 봤다.

깃펜과 연필은 서로 간의 장단점이 뚜렷했다.

심사 위원들은 연필이 손에 묻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상으로 본 행사에 대한 설명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행사 시작 전까지는 조금 여유 시간이 있어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오픈 전인 지금 편하게 매장을 한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나가시면 직원들이 안내해드릴 거예요.”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저도요.”

화가 한 명을 시작으로 다른 화가들도 인사를 하고는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갔다.

대기실에 들어오기 전 봤던 캠든 상단의 다양한 상품들이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그레이슬린 공작 부인 사브리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록사나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왔다.

록사나는 사브리나와는 드문 사교 활동 중에 이미 안면이 있었지만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속으로 깜짝 놀랐다.

하지만 사브리나의 다정한 미소와 이어지는 말에 거리감이 서서히 사라졌다.

“고마워요, 아벨리오 남작. 덕분에 우리 로즈마리가 생일날 무척 즐거워했답니다. 지금까지 최고의 생일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공녀에게 선물을 보내지 않았는걸요.”

“무슨 그런 말씀을. 물론 딸아이 선물은 여기 있는 쿠엔틴 소백작 부부가 해 주었지만 멋진 선물을 만들어 준 건 캠든 상단이잖아요.”

“맞아요. 캠든 상단에서 저희에게 동물 귀 머리띠와 날개옷을 소개해 주어서 저희 고민이 단번에 해결되었는걸요.”

쿠엔틴 소백작 부인인 마가렛이 사브리나를 거들었다. 이 모습을 보는 그녀의 남편들도 역시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록사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감사합니다.”

“괜찮다면 앞으로 사브리나라고 불러 줄래요?”

“저도 마가렛이라고 편하게 불러 주세요.”

귀족 사회에서 성이 아니라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건 친애의 의미였다.

“저를 록사나라고 불러 주시면요.”

“그래요, 록사나.”

사브리나의 대답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참! 제가 두 분 부인께, 아니, 사브리나와 마가렛을 위해 따로 준비한 선물이 있어요.”

록사나가 눈짓하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고급스러운 쇼핑백을 두 개 들고 다가왔다.

사브리나와 마가렛은 물론 그레이슬린 공작과 쿠엔틴 소백작의 두 눈이 큼지막해졌다.

종이로 만든 것 같은 가방에 들기 편하게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형태의 가방이었다.

종이 가방 겉에는 ‘A’가 우아하고 아름답게 새겨져 있었다.

“이건 대체 뭐요?”

내용물보다 종이 가방에 푹 빠진 그레이슬린 공작 매튜가 물었다. 쿠엔틴 소백작 가브리엘 역시 종이 가방 가까이로 바짝 붙어 섰다.

“이건 종이로 만든 가방인데, 쇼핑백이라고 해요. 특수 처리를 해서 튼튼한 것은 물론 보시는 것처럼 손잡이가 있어서 들고 다니기 편리해요. 여기 로고 ‘A’는 캠든 상단의 브랜드 중 하나인 ‘알렉시스’를 나타내는 로고예요.”

“브랜드는 뭐고 로고는 뭐죠?”

처음 듣는 용어에 가브리엘이 관심을 표했다. 한편으로는 쇼핑백의 무궁한 활용도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에 록사나의 눈이 반짝이며 초롱초롱해졌다.

“브랜드는 타사의 상품과 구별하기 위한 이름이라고 보시면 돼요. 로고는 브랜드를 간략하게 나타내는 일종의 기호고요. 가문의 문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브랜드와 로고, 그것참 멋진 발상이네요.”

“호오. 그것참 재미있습니다.”

“쇼핑백이라는 것도 그렇고… 선물 포장의 판도를 바꿀 거 같아요.”

두 쌍의 부부는 연신 감탄을 쏟아 냈다.

록사나가 사브리나와 마가렛에게 쇼핑백을 하나씩 안겼다.

“실례가 안 된다면 여기서 열어 봐도 될까요?”

마가렛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던 사브리나도 마찬가지인지 기대가 어린 표정으로 록사나를 쳐다보았다.

쇼핑백 안에는 상자가 들어 있었고, 당연하게도 내용물은 볼 수 없었다.

“그럼요.”

이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가렛과 사브리나가 쇼핑백에서 상자를 꺼냈다.

상자 뚜껑을 들어 올린 두 사람의 손이 허공에서 일시 정지를 했다.

“……!!”

잠시 후.

“…후우.”

두 여인 중 한 명이 나지막하게 숨을 내쉬고는 떨리는 손으로 안에 든 것을 갓난아기를 안 듯 조심스럽게 꺼냈다.

사브리나는 다크 그린, 마가렛은 연한 핑크색의 미니 클러치 백이었다.

매끈하고 은은한 광택이 도는 가죽 위에 고가의 보석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천으로 만든 손가방만 봐 왔던 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선물 받았으니 이미 자신들의 소유였지만 당장 갖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이리저리 만져 보고 살펴보던 사브리나가 먼저 입을 떼었다.

“이거 혹시 손가방인가요?”

“어머, 그런 거 같아요. 여기 안에 긴 줄도 들어 있어요.”

미니 클러치 백을 여는 데 성공한 마가렛의 목소리가 잔뜩 들떠 있었다.

긴 줄인 스트랩은 특이하게도 금속으로 만든 체인에 가죽이 아주 얇게 엮여 있는 형태였다. 상당히 얇음에도 닳거나 끊어질 염려가 없어 보였다.

“맞아요. 손가방보다는 캠든 상단에서는 클러치 백이라고 불러요. 이렇게 크기가 작은 건 미니 클러치 백이랍니다. 이 미니 클러치 백은 캠든 상단 최고의 브랜드 알렉시스 제품이고요. 스트랩은 어깨에 메고 싶을 때 사용하시면 돼요.”

어느새 자신의 것을 직원에게서 받아 든 록사나가 스트랩을 이어 달고 직접 메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녀의 것은 색상이 블랙이었다.

그러자 사브리나와 마가렛도 따라서 했다.

록사나는 미니 클러치 백을 벗어 스트랩을 풀어 내 다시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한 손에 가볍게 쥐었다.

“스트랩이 없어도 편하게 들고 다니기 좋아요. 특히 모임이나 파티에 나갈 때 잘 어울려요. 물론 보통 때는 시녀나 하녀들이 대신 손가방을 들어 주곤 하죠. 하지만 가끔 몸에서 떨어뜨리기 애매한 소지품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이런 미니 클러치 백이 있으면 부담 없이 들고 다닐 수 있어요. 무엇보다 의상과 무척 잘 어울리면서 한 단계 더 멋진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답니다.”

“정말 그래요!”

“이 반짝이는 가죽 좀 보세요! 보통 가죽이 아닌 것 같아요.”

한쪽에 준비된 전신 거울 앞에서 미니 클러치 백을 든 두 사람이 이리저리 포즈를 취했다.

여인들 위주의 대화가 지속되다 보니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될 법도 하다.

하지만 매튜와 가브리엘은 지루한 기색 없이 각자의 부인을 향해 예쁘다며 연신 찬사를 보냈다.

한 가문을 이끄는 가주이자 미래의 가주인 그들이 보기에 쇼핑백과 저 작은 상품이 시장의 판도를 바꾸리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록사나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두 여인에게 선물을 하고, 브랜드 정도만 간단히 소개하려 했던 록사나의 설명은 당연하게도 조금 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록사나는 캠든 상단의 브랜드인 알렉시스와 피닉스에 대해서 두 신사에게 간단히 설명을 했다.

앞으로 알렉시스는 캠든 상단 내, 더 나아가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브랜드가 될 것이며, 이후 시간을 좀 더 두고 다양한 상품을 가지고 시장에 등장할 것이라는 점.

오늘은 고급 브랜드인 피닉스를 매장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며 관련 상품 판매를 시작할 것이라는 점 등을 알렸다.

선물한 제품이 마수 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는 네 사람 모두 화들짝 놀랐다.

다른 동물 가죽처럼 어떤 거부감도 들지 않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이 봐 온 가죽 제품과는 차원이 달랐다.

미묘한 촉감과 광택, 다양한 색상의 구현과 아름다운 형태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리온 제국에서는 여러 방면으로 마수의 부산물을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특히 마수 가죽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나 고약한 냄새를 없앨 방법을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록사나가 마수 가죽으로 만든 제품을 보여 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연히 록사나는 관련자가 아니면 영지민들도 모를 만큼 마수 가죽과 부산물을 활용하는 연구를 캠든 영지에서 비밀리에 진행해 왔었다.

록사나는 천생 귀족인 네 사람의 반응을 보며 마수 가죽으로 만든 상품을 사람들이 꺼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거기다 동부와 수도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그레이슬린 공작가와 서부 귀족인 쿠엔틴 백작가라는 든든한 우군을 얻게 되었다.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본의 아니게 자신들끼리만 따로 이야기를 나눈 상황으로 인해 록사나는 또 다른 심사 위원들을 배제시킨 듯해 마음에 걸렸다.

이에 록사나는 추후 행사가 끝난 뒤 화가들에게 톡톡히 보상을 했다.

심사 및 작품 활동 지원 명목으로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고액의 금전적 보상을 해 준 것이다.

또한 피닉스 교환 상품권 등 다양한 혜택을 안겨 주었다. 상품권의 경우에는 직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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