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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100)화 (100/214)

100화 

록사나가 몸을 바로 하며 균형을 잡았다. 아이린이 옆에서 흐트러진 옷차림을 정리해 주었다.

여전히 창가에 붙어 있는 마르셀에게로 록사나가 눈을 돌리며 물었다.

“밖에 다친 사람들이 있어요?”

“저희 쪽 사람들은 없습니다.”

록사나를 상대하게 된 마르셀이 반색했다.

“다행이네요.”

안도하며 록사나가 이번에는 아스테리온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나가 봐야겠어요.”

“아니, 내가 나가 보지. 다른 사람들은 마차 안에 그대로 있도록.”

아스테리온이 반강제적인 말투로 말하고는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 *

네 명의 기사가 바닥에 드러누운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그들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아스테리온이 그들을 향해 다가가자, 호위 기사단을 이끄는 마커스 경이 고개를 돌려 그를 맞이했다.

“나오셨습니까, 주군. 나무에서 떨어진 것 같습니다. 나무 위를 살펴본 바, 두 사람의 발길이 닿았던 흔적이 있습니다. 미리 파악해서 대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송구합니다.”

마커스 경이 그들의 머리 위쪽에 위치한 나무를 눈짓으로 가리키고는 허리 숙여 사죄했다.

이어서 작금의 상황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했다.

필립은 평상시와 같은 속도로 마차를 몰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위치에 가까워졌을 때였다.

난데없이 두 사람이 길 위에 뚝 떨어졌다. 마차가 지나갈 위치 정중앙에 떨어졌기에 그대로 가다가는 두 사람은 말발굽과 마차 바퀴에 깔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필립은 급작스럽게 마차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간발의 차로 두 사람을 깔아뭉개지 않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기사단이 나서서 손쓸 틈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아스테리온이 선두 마차의 마부석에서 고삐를 단단히 부여잡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필립을 쳐다보았다.

결코 필립의 잘못이 아니었다.

필립이 아스테리온의 시선을 마주하고는 앉은 자세 그대로 허리를 깊이 숙였다가 세웠다.

마차 안에 계신 분들에게 불편함을 드린 것에 대한 정중한 사과 인사였다.

아스테리온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려 죽은 듯 엎드려 있는 두 사람을 잠깐 쳐다봤다. 그 이후, 마커스 경이 가리켰던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굵직한 가지가 그들이 들어선 길 쪽으로 제법 길게 뻗어 나와 있었다.

“나무에서 떨어진 충격이 제법 컸는지 미동을 안 하고 있습니다.”

아스테리온이 이 사달을 낸 인물들에게 다시 시선을 돌리자, 마커스 경이 말했다.

“숨은?”

“아직 붙어 있습니다. 우선 옆으로 치울까요?”

“그래. 그리고 수상한 자들일지도 모른다. 깨워서 누구인지 밝히도록.”

“네!”

아스테리온의 명령에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절한 두 사람을 우선 한쪽으로 들어 옮겼다. 그리고 록사나 일행이 탑승한 선두 마차와 다른 마차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말들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마차는 사람이 탑승하지도 않았고, 마차 간에 일정 거리를 두고 따르고 있었기에 아무 피해도 없었다.

급정거를 해서 마차 안에 탑승객들이 다칠 뻔했다는 점과 놀랐다는 점 빼고는 별다른 이상이나 피해가 없었다.

기사들이 쓰러진 두 사람의 몸 상태를 살폈다. 높은 나무 위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부러진 곳은 없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옷차림만 보면 가난한 평민으로 보이기 십상이었으나 그들의 얼굴과 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을 깨우기 위해 기사들의 몸을 흔들 때, 마커스 경이 조금 떨어져 서 있는 아스테리온 곁으로 다가갔다.

“주군, 저들의 몸을 보아하니 제법 훈련되고 단련된 자들입니다.”

“결코 우연히 우리 앞을 가로막은 게 아니라는 얘기군.”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아스테리온의 얼굴이 냉정하게 변했다.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직 그 무엇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위험한 자들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록사나가 있는 상황 속에서 저들을 데려가는 것이 과연 옳을까. 그렇다고 방치하고 가기에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마커스 경이 아스테리온의 명을 기다렸다.

그사이 두 기사가 두 사람의 입가에 물을 흘려 넣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얼마 안 있어 깨어날 것 같았다.

“두 번째 마차에 실어라. 그리고 두 번째 마차를 맨 뒤로 보내고, 한시도 눈을 떼지 말도록. 오늘 밤은 야영을 해야겠군.”

록사나가 있는 선두 마차 뒤에 위험인물들이 바로 뒤에 있게 할 수도, 그렇다고 혹을 두 개나 달고 여관에 머물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아스테리온의 뜻을 헤아린 마커스 경이 몸을 돌려 그에게서 멀어졌다. 그의 머릿속에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주르륵 펼쳐졌다.

두 사람을 철저히 감시하면서 이동하고, 저녁이 되기 전에는 야영하기에 적합하고, 한적한 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먼저 두 번째와 세 번째 마차의 위치가 바뀌었다. 그래서 잠시간 선두 마차의 행렬 뒤가 분주해졌다.

이어서 기사들이 두 사람을 특수 밧줄로 꽁꽁 포박해 마차에 옮겨 실었다.

혹시라도 오러 사용자일 경우, 밧줄을 손쉽게 끊어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들의 호위 및 감시 인원이 재정비되고 모든 마차가 다시 출발할 준비를 갖추었다.

이 모든 과정을 끝까지 지켜본 아스테리온이 그제야 선두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록사나 일행은 무슨 일이 발생했고, 어떻게 처리되었는지에 대해 아스테리온의 설명을 들었다.

세 사람의 얼굴도 아스테리온처럼 심각해졌다.

* * *

록사나 일행이 고즈넉한 숲에 자리를 잡고 야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준비한 짐에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야영 물품들이 실려 있었다.

모두가 말렸지만, 록사나도 마차 밖으로 나와 일손을 거들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그녀에게는 더 어려웠다.

록사나와 아이린이 조리 기구와 식재료를 부지런히 날라 오자, 기사 한 명이 음식 만들 준비를 서둘렀다.

누군가 어느새 날라다 놓은 장작으로 불을 피우고, 지지대와 가로대를 설치해 그 위에 큰 솥을 걸었다.

안드레아스는 양철통에 물을 길어 여러 번 날랐고, 마부들은 말과 마차를 챙겼다.

기사단원들은 호위 경계, 취침 준비, 감시 등으로 나뉘어 각자 임무를 수행했다.

“그나저나 벨루카 님이 안 보이네요. 어디로 가셨을까요?”

물이 끓기 시작해 솥 안에 야채와 고기를 집어넣으며 아이린이 말했다.

“글쎄. 처음 와 보는 곳이라 궁금해서 주변이라도 둘러보러 갔나?”

록사나도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벨루카의 능력을 알기에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스테리온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수상한 인물들을 취조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좀 그렇지만, 여관에만 머물다가 야영을 하게 되니 좀 색다르네요.”

“동감이야. 완연한 봄이라 날씨도 적당하고.”

록사나가 조리 도구 중에서 커다란 국자를 찾아 들었다. 그러자 아이린이 손을 내밀었다.

“이리 주세요. 제가 할게요.”

“아니야. 스튜 젓는 건 내가 할게.”

록사나는 빼앗기고 싶지 않아 국자를 두 손에 꼭 쥐고는 기어이 고집을 부렸다.

“록사나 님 고집을 누가 말려요. 제가 졌어요.”

아이린이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이내 포기했다.

록사나가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는 솥에 국자를 넣고 내용물이 눌어붙지 않도록 저어 주었다.

“그럼 저는 뭘 할까요?”

록사나와 아이린에게 자신의 임무이자 자리를 빼앗긴 소렌 경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어머, 소렌 경. 아직도 여기 있었어요? 다른 일 보셔도 돼요.”

식사 준비는 록사나와 자신, 두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듯 아이린이 당당하게 말했다.

늘 그렇듯 야영할 때는 빵과 스튜만 있으면 되었기에 일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이린 양, 식사 준비가 원래 제 담당입니다.”

소렌 경의 순한 눈매가 더욱 밑으로 축 처져서 처연함을 자아냈다. 속으로는 어떻게든 자신의 임무를 되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우리가 소렌 경의 임무를 빼앗아 버려서 곤란하게 만들었군요.”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는 소렌 경을 향해 록사나가 미안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러고는 일감이 없나 하고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기사들은 고지식한 사람들이 많았다. 호위 기사 중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소렌 경 또한 그런 부류임을 록사나는 간파했다.

“아, 빵이 안 보이네요. 마차에서 빵 좀 찾아서 가져와 줄래요? 인원이 많으니까 넉넉히요.”

부족한 것을 발견해 낸 록사나의 부탁에 소렌 경이 안도하면서 곧장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찾아오겠습니다.”

소렌 경이 바람처럼 빠르게 식자재가 실린 마차 쪽으로 달려갔다.

* * *

야영지에서 한참 떨어진 숲속에 아스테리온과 두 명의 기사가 자리했다.

그들의 앞에는 아직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두 명의 남자가 포박된 채 무릎 꿇려져 있었다.

“우리 마차를 공격한 이유와 정체를 밝혀라.”

아스테리온이 몸속 기운을 풀어 헤쳤다.

날카로운 칼날처럼 파고드는 흉포한 기운에 두 남자가 숨을 거칠게 헐떡거렸다. 한껏 허약해진 몸이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러 댔다.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밧줄에 묶인 채 마차 안에 갇혀 있었다. 마차가 멈춘 후에는 바로 이곳으로 끌려왔다.

그래서 두 남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파악할 시간조차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금발에 청안, 감히 그 끝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기운과 위압감.

‘카일라니 공작!’

갈색 머리의 남자가 속으로 경악했다.

어쩌다가 카일라니 공작과 자신들이 마주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몰랐다.

그야말로 되묻고 싶었다. 자신들이 어째서 카일라니 공작을 앞에 두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입을 열 생각이 전혀 없는 건가?”

맹수가 입을 쩍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두 남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럼에도 아스테리온의 기운은 자비 없이 더욱 강하게 두 남자를 옥죄였다.

“윽, 제발. 멈춰… 줘요.”

백금발의 사내가 애원했다. 그는 옆의 갈색 머리 남자를 자신의 몸으로 보호하려는 행동을 취했다.

아스테리온이 힘을 일부 거둬들였다.

그러자 두 남자가 한계치까지 물속에 잠겨 있다가 급하게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된 사람처럼 거칠게 공기를 들이켰다.

“허억. 헉. 헉.”

아스테리온은 잠시간 그들이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을 주었다. 그가 저들에게 베푸는 마지막 배려였다. 그들이 사실대로 정체를 밝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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