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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87)화 (87/214)

87화 

“저희야말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은 저희 아이들입니다. 올해 여덟 살이지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아이야나 쿠엔틴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안 쿠엔틴입니다.”

쌍둥이 누나인 아이야나의 뒤를 이어 이안이 얼마 전에 익힌 귀족식 인사를 했다.

“다른 분들은 다 선물을 전달하신 것 같으니 저희가 마지막이겠군요.”

아버지 쿠엔틴 소백작의 눈짓에 두 아이가 들고 있던 선물 상자를 내밀었다.

“생일 축하해요, 로즈마리 공녀.”

“생일 축하합니다.”

로즈마리의 유모가 두 아이의 선물을 건네받아 앞에 놓아 주었다.

“고마워요.”

로즈마리가 포장을 풀고 선물 상자를 열었다.

“어?”

상자 안을 들여다본 로즈마리의 두 눈이 저절로 커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세 공자와 공작 부부의 눈도 덩달아 동그래졌다.

다들 무척 놀란 표정이면서도 신기한 것을 바라보듯 눈을 반짝였다.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에게 쏠렸다.

홀린 듯 로즈마리가 상자 안에서 머리띠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이건!”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레이슬린 공작의 반응에 어느새 아이야나가 어머니의 시녀에게서 건네받은 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고 있었다.

쿠엔틴 소백작 부부와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야나를 필두로 그 가족들이 머리띠를 착용했다. 주변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아이야나는 토끼, 이안은 강아지, 소백작 부부의 머리에는 각각 앙증맞고 귀여운 고양이와 늑대 귀가 생겨났다.

“우와아!”

“너무 귀여워!”

“멋지다!”

“엄마, 나도 저거!”

“세상에나!”

어린아이들을 중심으로 뜨거운 눈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우르르 공작 가족과 쿠엔틴 가족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로즈마리 공녀, 빨리 써 보세요.”

한 아이의 간절한 외침에 공녀의 입가가 절로 실룩거렸다.

로즈마리가 들고 있는 건 은빛 여우 머리띠였다.

그레이슬린 공작가 문장에는 은빛 여우가 들어간다. 쿠엔틴 소백작 가족이 준비한 이 선물은 공작가의 상징 동물을 고려한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엄청 신경 쓴 티가 났다. 쿠엔틴 소백작 가족이 한 동물 귀 머리띠는 천 재질로 만든 것들이었다.

반면에 로즈마리가 선물 받은 머리띠에는 비싸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작은 보석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너무 예쁘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여우 귀 머리띠를 바라보며 로즈마리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었다.

“어서 써 보렴, 로즈.”

공작 부인 사브리나가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드디어 로즈마리가 머리띠를 착용했다.

“와아~!”

“엄청 멋져!”

공작 부인을 닮아 예쁜 소녀에게 은빛 여우 귀 머리띠는 귀여움을 배가시켰다.

“우리 꼬맹이, 너무 귀여운데!”

“막내가 여우가 됐어~”

“우리 딸 너무 귀여워서 어떡하지?!”

흐뭇하게 웃음 짓는 가족들의 진심 어린 너스레에 로즈마리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자리에서 사뿐히 일어난 로즈마리가 몇 걸음 앞으로 옮겼다.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무릎을 약간 굽혀 쿠엔틴 소백작 가족에게 인사를 했다.

“이런 멋진 선물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잘 어울리셔서 기쁩니다.”

쿠엔틴 소백작이 대표로 화답했다.

“아빠.”

소백작 옆에 있던 쌍둥이들이 옷자락을 붙잡고 재촉했다.

“아. 공녀, 다른 선물도 풀어 보시지요.”

쌍둥이들이 각각 선물한 상자 중 지금까지 하나만 개봉한 상태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분 좋게 제자리로 돌아간 로즈마리가 나머지 상자 하나도 마저 개봉했다. 그러자 날개 액세서리가 나타났다.

“오오오!”

이번에도 반응이 무척 뜨거웠다.

“제가 도와 드려도 될까요?”

여기저기서 감탄과 소란스러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이야나가 로즈마리 공녀에게 물었다.

“네, 아이야나 영애.”

로즈마리가 웃으며 선뜻 대답했다.

처음 본 아름다운 날개 액세서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공작 가족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아이야나와 쿠엔틴 소백작 부인이 로즈마리에게 다가가 눈처럼 하얀 날개 액세서리를 착용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가방을 메듯 어깨에 걸쳐 고정할 수 있는 형태라서 착용이 무척 쉬웠다. 또한 공녀의 드레스 차림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금가루를 뿌린 듯 반짝이는 하얀 날개를 등에 달고 여우 귀 머리띠를 착용한 공녀의 모습은 천사 그 자체였다.

다들 로즈마리의 모습에 넋을 잃었고, 오늘의 주인공은 소녀는 더욱 주목받았다.

동시에 자신도 공녀가 한 걸 사 달라는 아이들의 떼쓰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어른들은 대체 저런 선물을 어떻게 마련한 것인지 속으로 무척 궁금해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궁금증은 공작 부인 사브리나가 입을 열며 금방 해결되었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이런 선물을 준비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저의 옆 영지 소속인 캠든 상단에서 만든 제품인데 공녀의 선물을 고민하던 중 저희 아이들이 이걸 선물하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줬어요.”

서로의 얼굴을 잠시 마주 본 쿠엔틴 소백작 부부 중 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제품을 접하게 된 상황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몇 주 전 캠든 상단이 쿠엔틴 백작가에 찾아왔다. 캠든 영지의 상단 출범을 알리며 쿠엔틴 백작 령에서 제품을 팔고 싶다는 요청과 함께 동물 귀 머리띠와 날개 액세서리의 제품들을 보여 주었다.

이것들을 본 아이야나와 이안이 엄청 좋아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그레이슬린 공작가의 생일 파티 초대장을 받고 며칠간 고민했던 게 무색하게 두 아이의 추천으로 공녀의 선물이 바로 정해졌다.

쿠엔틴 소백작 부부는 지금 공녀가 착용하고 있는 머리띠와 날개를 선물용으로 의뢰했다.

쿠엔틴 백작가에서 주문한 건 처음 본 제품과 동일한 퀄리티였는데 제작되어 온 것은 업그레이드된 완전 고급품이었다.

이에 대한 비용을 모두 지불하려고 했으나, 캠든 상단주 잭이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오히려 다른 신제품들을 아이들 선물로 주기까지 했다.

“사실 저희가 그레이슬린 공작 가족을 위해 별도로 더 준비한 선물이 있는데, 보시겠어요?”

“물론입니다.”

공작 가족들은 두말하지 않고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백작 부부의 신호를 받은 시종 한 명이 제법 커다란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상자 안에는 공녀가 받은 것과 같은 품질의 여우 귀 머리띠가 들어 있었다. 공녀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 것이었다.

거기다가 여우의 형상을 본뜬 옷이 공작 가족들의 수에 맞게 여섯 벌이 들어 있었다.

“우하하하, 이거 완전 대박인데!”

공작은 물론 세 공자들까지 뒤집어졌다.

평상시에는 어렵겠지만 이런 특별한 파티에서라면 동물 귀 머리띠와 동물 옷을 어른들도 재미 삼아 착용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레이슬린 공작저에서 공녀의 생일 파티가 한창이던 그 시각.

“이걸 내게 전해 주라고 했다고?”

“네, 테오도르 황자님.”

잭이 공손하게 답했다.

곱게 포장된 상자를 풀어 본 소년의 얼굴이 기괴하게 변했다. 빛나는 자수정빛 두 눈과 미세하게 실룩거리는 볼, 무언가를 참는 듯 잔뜩 일그러진 입매.

‘처음 선물을 받았을 때의 키얀과 똑같군.’

기쁨을 감추는 모습이라는 걸 잭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7황자의 상황은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껏 기쁨을 표현하지 못하는 소년이 안타까웠고, 자식을 둔 부모로서 마음이 아팠다.

“황자님, 저는 록사나 아벨리오 남작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니 제 앞에서는 편히 웃으셔도 됩니다.”

주제 넘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이는 아이다운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잭이 과감하게 말했다.

“그… 봐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느새 테오도르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져 입꼬리가 보기 좋게 위로 올라갔다.

“마음에 드십니까?”

흥분으로 볼이 살짝 달아오른 테오도르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응. 근데 나 이제 곧 열두 살이야. 그러니까 다 컸는데…….”

“아니, 황자님. 열두 살이면 어린아이가 맞습니다! 한참 어리십니다. 성년이 되시려면 8년도 넘게 남으셨는데요.”

잭이 답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테오도르 황자님은 여전히 꼬맹이이지요.”

망을 보던 테오도르 검술 스승 리키가 거들었다. 이에 테오도르가 눈을 거두며 입술을 삐죽였으나 미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자자, 황자님. 이것들 좀 보십시오.”

잭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양한 동물 머리띠와 날개 장식, 테오도르 황자 전용 동물 책가방 등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그럴 때마다 테오도르의 두 눈은 초롱초롱 빛났고, 두 손은 선물들을 만져 보며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번 써 보십시오.”

“하지만…….”

잭이 재촉하자, 테오도르가 망설였다.

“수줍어하실 것 전혀 없습니다. 동물 귀 머리띠는 어른 아이, 남녀 구분 없이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어떤 게 더 어울리는지 알 수 있지요.”

그때 리키가 곰 머리띠를 하나 집어 들어 자신의 머리에 썼다.

“어떻습니까?”

“아!”

“잘 어울립니다, 리키 경.”

리키를 부럽게 바라보던 테오도르가 손에 들고 있던 머리띠를 썼다. 황가의 상징인 드래곤이 아닌 상상 속 동물인 유니콘 머리띠였다.

“정말 멋있습니다, 황자님.”

“정말?”

발그레해진 얼굴로 테오도르가 리키를 슬쩍 쳐다봤다.

리키가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그러자 테오도르의 표정이 더 활짝 피어났다.

이후에도 계속되는 두 사람의 권유에 테오도르는 날개 장식을 달아 보고, 동물 옷 등을 입어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옆에서 열심히 호응해 주는 잭과 리키 덕분에 신난다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테오도르의 마음 한구석에 따뜻한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늦은 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궁을 빠져나가는 잭을 위해 리키가 호위로 따라 나갔다.

한편 방 안에는 혼자 남은 테오도르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토끼 귀가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며 올라갔다 내려갔다가 하다가 양쪽 귀가 쫑긋 서기도 하며 열심히 움직였다.

“우아!”

아까도 해 본 거긴 하지만 여전히 신기했다.

토끼 모자에 달린 손잡이 부분을 누를 때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모습에 테오도르의 얼굴이 더없이 밝아졌다.

평범한 또래 아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록사나가 보낸 선물 하나하나가 마음에 쏙 들었다.

자신이 받은 선물들이 유행하게 될 경우, 손쉽게 구매할 황세손 막시밀리언과 그 무리들이 얼마나 자랑을 늘어놓을지 저절로 상상이 되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실제로 닥친다고 해도 자신은 전혀 부럽지 않을 것이다. 드러내 놓고 자랑할 수는 없지만 이미 멋진 것들이 잔뜩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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