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86)화 (86/214)

86화 

“여기에 꽃이 피었어!”

한 여자아이가 소리 높여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놀이터의 기구들은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로 칠해져 있었다.

“너무 멋져!”

다른 아이들도 방방 뛰며 무척이나 좋아했다.

“우아!”

“우와~!”

어린 마리솔과 마빈 남매가 입을 쩍 벌리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와아~! 대따 큰 미끄럼틀도 있어!”

눈이 왕방울만 해진 키아를 필두로 아이들이 너도나도 우르르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 기구로 몰려갔다.

그 모습을 보며 교사와 학부모, 어른들은 다들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여러분, 다들 차례를 잘 지키면서 함께 타고 놀아야 해요.”

“네, 선생님.”

코델리아 선생님의 당부에 병아리같이 귀여운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한편, 이스트, 노스, 사우스의 큰 마을을 중심으로 주거 환경 재정비 사업이 시작되며 뚝딱거리는 소리가 캠든 영지 내에 끊이지 않았다.

자신의 집을 직접 지으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웃으며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자네 집이 먼저 선정되어서 참으로 부럽네 그려.”

“하하하. 딸린 식구가 많다 보니 운 좋게 1차에 선정되었네. 2차로 선정된 자네 가족도 곧 멋들어진 집이 생길 터인데 무슨 걱정인가?”

“하하하, 자네 말이 맞네. 자네 집이 빨리 지어져야 내 집도 빨리 지어지지. 내 열심히 하겠네.”

“고맙네.”

“자네도 내 집 지을 때 와서 일할 것 아닌가.”

“당연하지. 하하하.”

두 남자가 유쾌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우리 열심히 벌어서 대출 갚아 나가세.”

“암. 그래야 이 새집이 온전히 내 집이 되니까 하루라도 빨리 갚아야지.”

주변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다른 이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 재정비 사업이 시작되기 전, 먼저 대상자 선별이 이루어졌었다.

어린 자녀나 부양가족이 많은 집 또는 집의 상태에 따라 1차 대상자가 먼저 선정되었고, 뒤를 이어 각 가정의 상황에 따라 2차, 3차 순으로 나뉘었다.

자기 집을 짓는 데 동참하는 이들에게 영주가 급여를 지불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 사람들은 반신반의했었다.

집도 지어 주고 급여까지 주니 영지민들 입장에서야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진 것과 다름이 없었지만, 영주만 손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심은 금방 사라졌다. 촌장과 관리가 나와 대출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모두가 난생처음 들어 보는 희한한 내용들이었다.

집 짓는 데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영주가 부담하고, 이 비용은 무이자로 영지민들에게 대출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추후 집이 완공되면 각자의 형편에 따라 금액과 기한을 정해 모두 갚으면 온전한 그들의 집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만약 일거리가 없거나 다쳐서 또는 집안의 환자를 돌봐야 해서 벌이가 없을 경우에는 이를 판단하여 일정 기간 동안 납부를 멈출 수 있다는 사실도 영지민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또한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는 온돌 난방 시스템 보일러도 모든 집에 설치한다고 하니 무척 기대되었다.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새로운 난방 방식인지라 다들 1차 선정자들의 집이 하루 빨리 완성되기를 학수고대했다.

* * *

제국의 수도 케일라에 당도한 캠든 상단주 잭은 감격에 겨워 했다.

예전에 몇 번 수도에 와 본 적이야 당연히 있었지만 그때와 비교했을 때 그의 감회는 무척 남달랐다.

게일 백작 령의 소규모 상단인 올랜도에서는 중간 관리자였었지만 지금은 한 영지의 어엿한 상단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상단 일을 하게 된 것도 그의 가슴을 벅차게 했다.

번화가를 가로지르던 마차가 멈추고, 잭과 문라이트 상단의 핀이 내렸다.

“이곳입니다.”

잭이 눈을 반짝이며 웅장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하얀색에 가까운 석재로 지어진 웅장한 5층 건물이 위용을 뽐냈다.

문라이트 상단의 도움을 받아 마련된 이곳은 캠든 상단의 수도 지부로 사용될 건물이었다.

“정말 멋있고 아름답습니다.”

잭의 투박한 표현에 핀이 활짝 웃었다.

“역시 마음에 들어 하실 줄 알았어요. 록사나 님이 수도에 캠든 상단 건물을 대신 알아봐 달라고 했을 때 외관, 규모, 주변 환경, 가격 등 얼마나 많이 신경을 썼는지 몰라요.”

어깨를 쭉 펴며 말하는 핀의 목소리는 뿌듯함과 자신감에 차 있었다.

상단 건물과 부지를 보기 위해 수도의 매물을 거의 모두 보다시피 했고, 그 까다로운 문라이트 상단주 휴고의 기준을 통과한 곳이었다.

“네! 영주님께서 직접 보셨다면 저와 같이 무척 만족하셨을 겁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 봐요.”

핀의 재촉에 잭이 커다란 대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로 이어진 길은 마차 여섯 대가 나란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무척 넓었다.

그 양옆으로는 잘 가꿔진 정원과 화단이 자리하고 있어 새 잎이 돋아난 나무와 화사한 봄꽃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지방 귀족인 어느 자작가에서 소유했던 곳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정말 큽니다.”

“맞아요. 그래서 전 주인이 집안의 세가 기울면서 유지하기가 힘들었는지 매물로 내놓았더라고요.”

두 사람은 넓은 부지와 건물을 일일이 두 발로 걸어 돌아다니며 살폈다.

핀은 이미 다 본 건물이었지만 캠든 상단주인 잭을 위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안내했다.

잭이 본관 건물 내의 자신의 집무실에 당도했을 때쯤에는 문라이트 상단에 잠시 맡겨 놓았었던 물건들이 모두 당도해 있었다.

이후 잭은 무척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수도에 캠든 상단의 등장을 본격적으로 알리기에 앞서 상단 건물을 꾸미고, 물품을 진열하는 등 할 일이 정말 많았다.

【 베렛 공국의 거절 】

동부 귀족인 그레이슬린 공작가의 수도 저택이 몹시 분주했다. 공작의 막내딸인 로즈마리가 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공작 부인인 사브리나가 로즈마리의 한 손을 잡고 저택 현관으로 향했다.

로즈마리는 적금발 머리를 초록색 리본을 섞어 반묶음으로 땋아 묶고, 연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있어 막 피어나기 직전의 꽃봉오리 같았다.

그때 현관에 그레이슬린 공작이 나타났다. 눈꼬리가 위로 향해 있어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아빠!”

로즈마리가 잡고 있던 사브리나의 손을 바로 놓고는 공작에게 곧장 달려갔다.

“아이쿠, 이 천사가 대체 누구야!”

부드럽게 눈꼬리가 접힌 공작이 로즈마리를 안아 올렸다. 그러고는 비행기를 태우듯 한 바퀴 빙 돌았다.

“꺄르르르.”

로즈마리의 웃음소리에 공작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아들만 내리 셋을 낳고 마흔하나에 얻은 늦둥이 딸은 그의 보물이었다.

“여보, 옷차림 망가져요.”

“오늘의 주인공을 망칠 순 없지.”

공작이 로즈마리를 바로 내려놓았다. 이어서 매의 눈으로 딸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솥뚜껑같이 커다란 손으로는 살짝 구겨져 보이는 드레스 자락 부분을 폈다.

“손님이 오십니다!”

시종의 외침에 세 사람이 몸을 바르게 세웠다.

손님들을 태운 마차가 속속들이 도착했다. 주로 로즈마리 또래의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이었다.

근래 수도에서는 드레스 코드를 정한 파티가 유행이었다. 오늘의 주인공 로즈마리는 ‘귀여움’이라는 드레스 코드를 정했다.

여자아이들은 주로 커다란 리본이나 앙증맞은 머리핀, 장식용 미니 햇 등을 하고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색색의 부토니에를 하거나 보타이를 맸다.

본격적으로 생일 파티가 시작되었다.

그레이슬린 공작 부부의 축하 인사말을 시작으로 로즈마리가 거대한 9단 케이크 위의 촛불을 불었다.

짝짝짝짝짝.

“축하해요.”

“축하합니다, 공녀.”

큰 박수 소리와 함께 다들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어서 선물 증정식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손님들은 가족 단위로 나와서 주인공에게 선물을 전달했다. 선물은 그 자리에서 풀어 보고 감사 인사를 건네는 게 예의였다.

“모쉬나 후작 부인, 그리고 영애. 감사해요. 너무 예쁜 목걸이네요.”

“공녀의 마음에 든다니 정말 기쁘네요.”

모쉬나 후작 부인이 말했다. 후작 부인과 함께 서 있던 코트니 모쉬나가 활짝 웃어 보였다. 소녀는 올해 열두 살이었다.

모쉬나 후작 부인과 코트니는 자신들의 선물을 최고로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제일 마지막에 건넸다.

그레이슬린 공녀가 받은 선물 중에는 액세서리가 많았다. 하지만 모녀는 자신들이 선물한 목걸이만큼 값진 것은 없다고 자부했다.

또한 반응을 보니 공녀뿐만 아니라 공작 부부 또한 살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이 어린 공녀에게 조금 과한 선물을 한 이유는 그레이슬린 공작가와 가까워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쉬나 후작 부인이 공녀의 옆에 함께 자리하고 있는 세 명의 공자를 은근슬쩍 훔쳐보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모녀는 그레이슬린의 3공자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레이슬린 공작가는 장자 계승을 고집하지 않는 특이한 가문이었다. 그리고 세 형제 중에서 3공자는 가주에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셋 다 모두 준수하네. 특히 3공자는 우리 코트니하고 세 살 차이니 아주 좋아.’

검은 속내를 숨기며 모쉬나 후작 부인이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잘생겼다.’

3공자를 훔쳐본 코트니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자신보다 세 살 어린 로즈마리와 친분을 쌓는다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코트니는 생각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공녀도요.”

모쉬나 후작 부인과 그녀의 딸 코트니가 뒤로 물러날 때였다.

“저…….”

꼭 닮은 쌍둥이 남매가 각자 상자 하나씩을 들고 로즈마리에게 다가왔다. 두 아이의 뒤에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응? 우리가 마지막이 아니었나?’

코트니가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 어때. 그래도 내 선물만큼 좋은 건 없어.’

‘어디 시골에서 올라왔나? 드레스 코드도 챙기지 않다니. 쯧쯧.’

드레스 코드를 하나도 챙기지 못한 일가족을 바라보며 모쉬나 후작가 모녀가 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모녀는 특별한 선물을 돋보이기 위해 쿠엔틴 소백작 가족이 일부러 의도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레이슬린 공작 각하, 공작 부인.”

“로즈마리 공녀, 생일 축하해요. 그리고 세 공자들도 반가워요.”

“어서 오시오, 쿠엔틴 소백작.”

“먼 길이었을 텐데 기꺼이 초대에 응해 줘서 고마워요. 소백작 부인.”

젊은 부부의 인사에 공작 일가가 화답했다.

실제로 쿠엔틴 백작 령은 수도에서 먼 서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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