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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81)화 (81/214)

81화 

* * *

기사단 소속의 헨리가 헐레벌떡 본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어느새 진급하여 병사가 아닌 기사가 되었다.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은 결실이었다.

쾅쾅쾅.

숫제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렸다.

“영주님, 급보입니다!”

아이린이 바로 문을 열자, 헨리 경이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품 안의 서신을 바로 록사나에게 건넸다.

서신을 펼쳐 읽어 내려가는 록사나를 보며 헨리 경은 입이 몹시 근질거렸다. 제법 차분한 성격이었지만 오늘만은 자꾸 마음이 들썩였다.

덩달아 록사나의 눈도 점점 커져 갔다. 그녀는 다 읽은 편지를 내려놓으며 자신의 앞에 반듯하게 서 있는 헨리 경을 올려다보았다.

“헨리 경, 이게 사실인가요?”

“물론입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제야 록사나의 얼굴이 더없이 환해졌다.

“영주님, 무슨 일이에요?”

궁금증을 참지 못한 아이린에게 록사나가 노스 촌장이 보낸 서신을 건네며 말했다.

“페어리 레이크에서 온천이 발견되었다는구나.”

“온천요?”

아이린이 서신을 급하게 읽어 내려갔다.

페어리 레이크는 노스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저번 영지 시찰 때 록사나 일행이 지나던 길에 들렸었던 곳이다.

“영주님, 정말 잘됐어요.”

서신을 다 읽은 아이린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방 뛰었다.

아이같이 순수한 그 모습에 록사나와 헨리 경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이린은 올해 열여섯으로 아직 성인이 아니니 아이가 맞았다.

“그래. 우리 영지에 정말 잘된 일이지.”

“경하드립니다, 영주님.”

헨리 경이 축하의 인사를 올렸다.

“이렇게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해 줘서 고마워요, 헨리 경.”

“편지를 읽으실 때 제가 먼저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그는 노스에서 온 심부름꾼에게 서신을 전달 받으며 내용을 이미 다 들었었다.

“우리 영지에 온천이 생겼으니 관광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겠어요.”

아이린의 말에 두 사람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온천에도 효능 비슷한 게 있지 않겠습니까?”

헨리 경이 기대감을 내비쳤다.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건강이나 미용에 좋은 성분이 섞여 있는 온천이었으면 좋겠네요.”

어떤 온천은 더러 병을 치료하거나 미용에 탁월한 효능이 있어 황족이나 귀족들이 자주 이용할 정도로 매우 유명한 곳도 있었다.

그러한 지역은 관광지로 무척 각광받았고, 웬만한 온천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관광업이 성행하여 그 지역 영주는 부유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영지 내 모든 자원은 영주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록사나는 이번에 발견된 온천을 사사로이 여기지 않고, 영지 전체의 공용 재산이라고 생각했다.

온천이 발견된 만큼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먼저 두 눈으로 직접 살펴봐야 했다.

“내일 당장 페어리 레이크에 가 봐야겠어요.”

“기사단에 전달하겠습니다.”

“아이린, 빈센트에게 내일 같이 온천 보러 갈 거라고 전해 주렴.”

“네, 영주님.”

“아차!”

헨리 경이 깜박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영주님, 정말 죄송합니다. 서신을 가져온 심부름꾼이 제게 주머니 하나도 건넸었는데 깜박하고 놓고 왔습니다. 가서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헨리 경이 바람같이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헨리 경이 조그마한 주머니를 들고 다시 집무실을 찾았다.

헨리 경이 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록사나에게 내밀었다.

록사나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건 뭐죠?”

까만 돌덩어리를 보며 록사나가 물었다.

“페어리 레이크 근처 산맥에서 이번에 새로 발견한 돌이라고 합니다. 촌장도 무슨 돌인가 싶어서 서신과 함께 보냈다고 합니다.”

헨리 경이 내미는 돌을 받아 든 록사나가 이리저리 살폈다.

‘정령 샤일리가 곁에 있었다면 바로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록사나가 한숨을 삼켰다.

그때 내일 온천 시찰을 전달하기 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던 아이린이 마도 공학자 빈센트와 함께 집무실로 들어왔다.

“록사나 님, 온천이 발견되었다면서요?!”

빈센트가 잔뜩 들뜬 얼굴로 말했다.

“빈센트, 마침 잘 왔어요.”

어쩌면 이 돌의 정체에 대해서 그라면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록사나의 손에 들린 것을 본 빈센트의 눈이 번뜩였다.

“들고 계신 광물은 그래파이트 아닙니까?”

역시나 빈센트는 검은 돌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래파이트요?”

처음 들어 보는 광물 이름에 록사나가 반문했다. 그녀의 손에 있던 검은 돌은 빈센트에게로 넘어갔다.

“영주님 손이 새까매지셨군요.”

빈센트의 말처럼 록사나의 손뿐만 아니라, 처음 돌을 만진 헨리의 손도 새까매져 있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까맣게 묻어나는 무른 돌이죠. 몇 년 전 어느 약초꾼이 발견해서 저에게 잔뜩 가져왔었습니다. 여러 가지 실험을 했었는데 철 같은 광물도 아니고 별 쓸모없는 돌입니다.”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록사나가 그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헨리 경과 아이린도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밖에다 버렸더니 동네 아이들이 그걸 가지고 벽 같은 데 낙서를 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글을 ‘쓰다’라는 뜻과 ‘광물’이라는 뜻을 합쳐서 그래파이트라고 제가 이름을 지었습니다.”

빈센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광물에 최초로 이름을 붙였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렇군요. 이번에 온천이 발견된 페어리 레이크 근처의 산맥에서 발견되어 보내진 거예요. 정말 쓸모가 없을까요?”

록사나가 살짝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때 당시 제가 보일러 개발에 미쳐 있어서 철광석과 관련된 실험만 했던지라……. 본격적으로 연구를 해 보면 완전히 쓸모가 없는 건 아닐 겁니다. 하다못해 애들 낙서용으로라도 사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살짝 멋쩍은 듯 호탕하게 웃는 빈센트였다.

록사나가 이렇게 지대한 관심을 보일 줄 알았으면 좀 더 연구를 해 볼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아이들 낙서용……!!’

빈센트가 한 말을 무의식적으로 곱씹어 보던 록사나가 벼락을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녀의 짤막한 외침에 세 사람의 시선이 록사나에게로 집중되었다.

“그거예요!!”

록사나가 집무 책상을 탁 내려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빈센트, 아이린, 헨리 경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빈센트의 앞에 다가선 록사나가 그래파이트를 들고 있는 그의 손을 맞잡고 신나게 위아래로 마구 흔들었다.

“록나사 님?”

영문을 모르는 빈센트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의문이 떠올랐다.

“그래파이트가 무르다고 했죠?!”

“맞습니다.”

“이렇게 손대면 검은 게 묻어나고요!”

“네.”

록사나의 질문에 빈센트가 꼬박꼬박 답했다.

“고마워요, 빈센트. 덕분에 그래파이트의 쓰임을 찾았어요!”

“네에?”

빈센트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마도 공학자인 자신도 찾지 못한 이 돌의 쓰임새를 오늘 처음 본 록사나가 찾았다고 하니 믿기 어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입니까, 영주님?”

“정말요?”

반면에 헨리 경과 아이린은 록사나의 잔뜩 기뻐하는 표정을 보며 좋은 일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래파이트는 다른 세계인 지구에서의 흑연과 같은 게 틀림없어!’

록사나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연필을 만들 수 있어요.”

“연필요?”

“그게 뭡니까?”

“저도 처음 들어 봐요.”

세 사람은 처음 들어 보는 연필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연필이 뭐냐면요. 잉크를 찍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는 펜하고 비슷한 거예요.”

다시 집무 책상에 자리 잡은 록사나가 펜을 들어 종이에 연필심과 연필에 대한 구조를 그림으로 그리며 설명을 차근차근 해 주었다.

모든 설명이 끝나자 세 사람의 눈빛이 더없이 빛났다.

“아니, 이런 멋진 쓰임이 있었다니!”

빈센트는 마도 공학자로서 살짝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게 많이 보고도 이 귀중한 쓰임을 발견하지 못했다니!’

“영주님, 이게 만들어진다면 아이들이 한결 편하게 공부할 수 있을 겁니다.”

헨리 경의 말처럼 깃펜과 잉크를 한 세트처럼 늘 사용해야 하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학습의 질을 높여 줄 수 있는 필기구였다.

“바로 잭을 불러올게요.”

연필의 상품성을 알아본 아이린이 잭을 호출하기 위해 서둘러 집무실을 다시 나섰다.

‘다음부터는 집무실에 심부름할 고용인 한 명을 두든가 아니면 보좌관을 추가로 뽑아야겠어.’

누군가를 부를 때마다 매번 아이린이 다녀와야 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한 심부름으로 인해 보좌관 업무에 흐름이 끊기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집무실에는 잭까지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가장 관련이 적어 보이는 헨리 경의 경우에는 추후 흑연 생산 지역 관리와 관련해 기사단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남아 있게 했다.

그래파이트와 연필에 대해 가장 늦게 들은 잭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들의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록사나가 앞으로의 일정과 일에 대해 언급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내일 나랑 같이 온천이랑 흑연이 발견된 지역을 둘러보도록 해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건 알지만 연필 개발도 빈센트가 맡아 줬으면 좋겠어요.”

“당연한 말씀을요. 보일러 시설 생산과 설치는 이제 관리 감독만 하면 되니까 문제없습니다. 아까 영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래파이트와 점토를 섞어 연필심 개발에 착수하겠습니다.”

새롭게 주어진 연구 과제에 빈센트는 신이 났다.

“잭은 아이린과 함께 앞으로 연필 생산 시설과 판매 관련해서 같이 진행해 주시면 되고요. 헨리 경은 흑연 생산 지역을 둘러보고 그곳의 경비를 어떻게 할지 기드온 경과 상의해서 추후 보고해 주세요.”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네, 영주님.”

“네, 알겠습니다.”

세 사람이 흔쾌히 동의했다.

“저, 영주님. 빈센트 씨께서 흑연을 처음 본 지역이 따로 있지 않습니까. 그 지역의 흑연 광산을 매입하시는 게 어떨지요?”

“좋은 의견이에요, 잭. 그곳의 영주와 협상해서 우리가 흑연 광산을 사도록 하죠. 그리고 광물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과 약초꾼들을 중심으로 우리 영지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조사를 벌일까 해요. 우선은 산맥 위주로요.”

“물론입니다. 숨겨진 광물을 개발하는 건 영지 발전을 위해서 여러모로 중요합니다.”

한참 동안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모두의 표정이 더없이 밝았다.

특히 영지에 온 지 얼마 안 된 빈센트는 자신의 연구거리가 점점 늘어날 거 같다는 기대감에 차올랐다.

‘캠든에 오길 정말 잘했군! 아예 눌러앉아야겠어. 그러려면 역시 록사나 님께 잘 보일 수 있을 만한 아주 큰 공을 반드시 세워야 해!’

마도 공학자들은 경제적 걱정 없이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꿈꿨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빈센트의 입장에서는 록사나가 영주로 있는 캠든이 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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