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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80)화 (80/214)

80화 

“하압!”

빈틈이라곤 전혀 없었지만 키얀이 선공을 했다.

날쌘 몸놀림과 빠른 속도는 키얀의 장점이었다. 거기에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을 훌쩍 뛰어넘는 체력까지.

그동안은 감추고 있었지만 카일라니 공작을 상대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키얀의 검이 날카롭게 휘몰아쳐 올 때마다 아스테리온은 여유롭게 맞받아치거나 흘렸다.

“와~ 대단한데!”

“키얀, 힘내!”

연무장의 모여 있는 기사단 사람들이 눈을 빛내며 둘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

단장인 기드온 경과 훈련 교관 로사 경을 제외하고는 카일라니 공작과 제대로 된 대련을 펼치는 이는 키얀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훈련생 신분인 키얀이었기에 다들 놀라 자빠질 정도였다. 살짝 샘이 나기도 했지만, 감춰진 실력을 보니 그 마음도 쏙 들어갔다.

타앙!

두 사람의 검이 사선으로 마주했다.

“록사나한테서 떨어져.”

아스테리온의 금빛 눈썹이 날갯짓하는 새처럼 꿈틀거렸다.

“이름을 부르는군.”

키얀의 검을 밀쳐내며 아스테리온이 힘을 순간적으로 발산했다. 그에 따라 두 사람의 주변에 흙먼지가 회오리쳤다.

두 사람의 몸이 조금 멀찍이 떨어졌다.

“흥. 그래도 된다고 했어.”

“그렇군.”

아스테리온이 처음으로 검을 내뻗었다.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속도였다.

키얀이 동물적인 감각으로 아슬아슬하게 검을 맞받아쳤다. 받아치지 못했다면 가슴에 일격을 허용할 뻔했다.

공격의 틈을 주지 않기 위해 키얀이 힘을 실어 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따악!

아스테리온이 단숨에 키얀의 검을 막았다.

“넌 뭐지?”

“난 키얀.”

“아니, 그게 아니라…….”

상대가 몸만 성인이고, 올해로 열네 살이 되어 가는 어린 수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아스테리온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한숨이 자신을 비웃는 거라고 생각한 키얀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러면서 마구잡이로 검술을 펼쳤다.

“너, 지금 날 비웃는 거야?!”

무지막지하게 쉼 없이 쏟아지는 키얀의 검을 매번 가볍게 쳐 내며 아스테리온은 자신이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이런 어린놈이 내 연적이라니.’

상대가 어린 것은 물론이요, 그런 어린 상대에게 질투하는 자신이 참으로 우스웠다.

그렇다고 키얀을 단순한 연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캠든 기사단에 기드온 경과 로사 경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호위가 되기에는 이 녀석이 가장 제격이긴 하지.’

아스테리온은 키얀을 록사나의 호위감으로 보고 있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록사나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고, 자질도 무척이나 뛰어났다.

수인족이 가진 뛰어난 신체 조건과 노력이 더해진다면 키얀 또한 소드 마스터가 될 것이라고 그는 내다보았다.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무력이 부족한 캠든 기사단에 중요한 전력이 될 것임이 틀림없었다.

아스테리온이 대련을 자청한 것은 키얀의 자질과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물불 안 가리고 욱하는 성질은 고쳐야겠지만, 꽤 쓸 만해. 단기간에 열심히 굴려 주지!’

적당히 키얀을 상대하던 아스테리온이 그의 목을 향해 목검을 내리그었다.

“그 정도 실력으로 록사나를 지킬 수나 있겠어?!”

따악!

두 사람을 중심으로 거대한 흙먼지가 휘날렸다.

“윽!”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신음하며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검을 맞부딪친 키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팔이 찌르르 아파 왔다.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 어마어마한 고통이 팔을 타고 전신을 강타했다.

키얀이 이를 꽉 악물며 외쳤다.

“더 강해져서 반드시 지킬 거야!”

그와 동시에 키얀의 몸이 수인화의 조짐을 보였다.

아차!

너무 자극한 걸 깨달은 아스테리온이 재빨리 목검을 역수로 쥐고 칼자루를 키얀의 복부를 향해 내질렀다.

퍼억.

컥!

명치에 칼자루가 꽂히자,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키얀의 몸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기절한 것이었다.

아스테리온이 키얀의 몸을 받쳐 안았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연무장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얼이 빠진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난 거 같은데,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공격하던 키얀이 갑자기 쓰러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공작님.”

이상함을 감지한 로사 경만이 두 사람 곁으로 다가섰다.

“갑자기 큰 힘을 쓰더니 이렇게 됐군.”

키얀을 부축한 아스테리온이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 그렇군요. 숙소로 데려가겠습니다.”

로사 경이 맞장구를 쳤다.

“내가 하지.”

자신과 거의 맞먹는 체격의 키얀을 인형처럼 가볍게 들어 올린 아스테리온이 그를 어깨에 둘러메며 기사단 건물로 향했다.

로사 경은 휘하의 기사에게 훈련병들의 나머지 훈련과 정리를 맡기고 서둘러 아스테리온의 뒤를 따랐다.

“수인화 하려고 했었다고요?”

병상에 누워 있는 키얀을 내려다보며 로사 경이 물었다.

“맞네. 일부러 변신하려던 건 아니고, 본능적인 반응 같았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키얀을 기절시켰다는 아스테리온의 설명을 들으며 로사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어린 수인이라 본능이 먼저 반응한 게 아닌가 싶어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지금이야 괜찮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수인화는 스스로의 의지대로 할 수 있어야지.”

“네. 그 부분에 대해 집중적인 훈련을 별도로 진행해야겠어요.”

아스테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캠든에 머무는 동안은 나도 거들도록 하지. 그리고 말인데…….”

아스테리온이 키얀을 영주인 록사나의 호위로 키우는 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로사 경에게 설명했다.

“저도 공작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영주님이 정령사이기는 하시지만 추가 호위는 필요하죠. 그리고 현재 캠든 기사단 상황을 봤을 때 어리기는 하지만 수인족인 키얀 만한 적임자가 없습니다.”

공작이 벌인 대련의 진짜 목적이 영주님의 호위 기사를 뽑기 위한 절차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로사 경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 *

거의 일주일 만에 록사나와 키얀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오랜만에 보기도 하고 그동안 수업을 쉬어서 미안했던 록사나는 키얀을 위해 평소보다 다양한 종류의 간식을 준비했다.

그런데 키얀은 평소와 달리 간식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까 인사할 때도 내 눈을 살짝 피하는 거 같았는데……. 시무룩해 보이기도 하고, 무슨 일 있나?’

키얀은 티를 안 낸다고 행동하는 것 같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게 더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키얀, 무슨 일 있니?”

록사나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아니…요.”

힐끗 그녀를 쳐다본 키얀이 답지 않게 존댓말까지 썼다.

‘역시 진짜 내 눈을 피하고 있어. 일주일 동안 쉬었다고 설마 낯가리나?’

자리도 바로 맞은편에 앉던 키얀이었는데 지금은 멀리 떨어지고 싶다는 듯 사선으로 앉아 있었다.

“왜 갑자기 존댓말을 하고 그래. 혹시 누가 뭐라고 했어?”

“아니…요.”

“그럼 누가 너 괴롭히거나 놀려?”

“아니…요.”

키얀의 단답형 답이 이어질수록 록사나의 복장이 터졌다.

“나랑 하는 공부가 싫어졌어?”

“아니야!”

고개를 퍼뜩 들어 올린 키얀이 그제야 록사나의 얼굴을 마주했다.

불안이 깃들어 있는 키얀의 사파이어 눈동자를 바라보며 록사나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녀가 미소 지을 때마다 키얀도 함께 웃어 주곤 했었다.

“공부가 싫은 게 아니라는 건 다행이네. 그럼 뭘까? 나한테 말하기 곤란한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록사나가 미안함을 담아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그때부터 키얀이 안절부절못했다.

입을 벙긋거리면서도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록사나는 한 번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한껏 자신의 어깨와 눈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반응이 즉각 왔다.

“내가 약하니까 그래서 싫어!”

“뭐?”

예상치 못한 뜻밖의 말에 록사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록사나 호위가 되지 못해. 약하니까…….”

결국에는 키얀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약하니까 자신의 호위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내 호위가 되고 싶은 거야?”

“응!”

키얀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검술 연습 열심히 해서 내 호위가 되면 되지.”

“난 안 강한데?”

“검술 연습을 열심히 하다 보면 강해질 거야. 그리고 로사 경에게 듣기로는 키얀 엄청 강하다고 들었는데?”

“정말?”

어느새 눈이 초롱초롱해진 키얀의 몸이 록사나의 맞은편 자리로 바짝 옮겨 왔다.

“그럼! 키얀은 강하니까 분명히 내 호위가 될 수 있을 거야.”

“응. 록사나 호위 할 거야.”

제법 기운을 차린 키얀이 초코 머핀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록사나는 이 일의 전말을 내일 꼭 로사 경에게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날, 오전 영주의 부름에 로사 경이 집무실을 방문했다.

록사나가 키얀의 이야기를 하며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에 로사 경이 아스테리온의 대련을 시작으로 그동안의 일에 대해서 쭉 설명했다.

“그러니까 키얀을 내 호위로 올리기 위해 훈련을 시키고 있다고요?”

“맞습니다, 영주님. 꼭 호위가 되지 않더라도 키얀은 캠든 기사단에 중요한 전력이 될 것입니다.”

“키얀이라면 충분히 그럴 거예요. 하지만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짐과 의무를 지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네요.”

아무리 키얀이 그녀의 호위가 되길 원한다지만, 올해 겨우 열네 살이 되는 소년이었다.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그렇지요.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제가 용병 일을 했을 때 수인족을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수인족은 성체가 되면서 바로 성인식을 치른다고 합니다.”

“성인식요?”

성체가 되었다고 해도 아직 정신 연령이 어린데 성인식을 치른다니 무척 놀라웠다.

“네, 수인족도 종족마다 성인식 시기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성체가 된 후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1년을 넘기지는 않는다고 하더군요.”

옛 기억을 떠올린 로사 경이 자신이 아는 정보들을 축약해서 말했다.

록사나가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키얀이 성체가 된 시기가 지난여름이라고 했으니까, 올여름이면 1년이 되네.’

문득 키얀의 성인식을 열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사 경, 수인족 성인식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알고 있어요?”

“물론입니다.”

신난 표정의 로사 경이 눈을 몹시 반짝이며 자신이 보고 들은 성인식에 대해서 줄줄이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며 록사나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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