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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69)화 (69/214)

69화 

* * *

록사나는 학생들, 영지민들과 어울리며 잠시 별채 앞 공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캠든 상단주를 맡은 잭, 고용인들과 함께 동물 귀 머리띠를 쓰고, 등 뒤에 날개를 달았다.

그들의 모습을 본 아이들과 사람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

“저것 봐! 천사 날개야!”

“머리띠 너무 귀여워!”

“나도 갖고 싶다!”

다들 난리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열망을 가득 담아 바라보았다.

“다들 갖고 싶지?”

“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모든 아이들이 록사나 앞으로 몰려와 합창했다.

“너희 모두 하나씩 나눠 줄 거야.”

“와!”

“진짜 저희 주는 거예요?”

“정말요?!”

“그래, 선물이야.”

“신난다!”

“받으려면 우리 앞에 차례대로 줄을 서렴. 어린아이들 먼저야. 알았지?”

“네!”

우렁찬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후다닥 움직여 줄을 서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뜻밖의 선물에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또한 모두가 환호하며 무척 좋아했다.

록사나와 잭, 고용인들이 아이들에게 동물 귀 머리띠와 날개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대신 동물 귀는 가지각색이었기에 아이가 게임처럼 만들어 뽑도록 했다.

동물 얼굴이 그려진 판을 세워 놓고 마음에 드는 동물을 화살이나 공으로 맞히는 게임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연령대에 따라 던질 수 있는 거리에 차등을 두었다. 대체적으로 아이들은 본인이 원하는 머리띠를 획득할 수 있었다.

“아빠, 이것 봐. 나한테 날개가 생겼어!”

“와, 우리 딸 천사가 됐네!”

“엄마, 나 어때? 어울려?”

“우리 아들, 토끼 귀가 너무 잘 어울려! 멋지다.”

“난 사자가 좋은데, 여우야.”

“그럼 내 사자 머리띠랑 바꾸지 않을래? 난 여우가 더 좋아.”

여우 머리띠를 뽑은 아이가 다가가 제안하자,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있던 다른 아이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어느새 별채에는 날개 달린 천사들이 동물 귀 머리띠를 쓰고 방방 뛰어다녔다.

그것을 본 아이들과 어른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끊임없이 피어났다.

이 자리에 오지 못한 영지의 다른 아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동물 귀 머리띠와 날개가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 * *

캠든 성의 식당에 귀빈들과 행사에 참여한 각각의 대표자들이 함께 자리했다.

유치원생 키아와 초등학생 리나는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 푹 빠져 별채에 남았다.

그들이 앉자마자 맛있는 음식이 바로 나오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편하게 드세요.”

이런 자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향한 록사나의 배려였다.

학부모 대표 앤, 각 마을의 촌장과 보육원 원장 도로시 부인, 영지민 대표 니콜과 카를로스 부부는 이 순간이 꿈만 같았다.

영주인 록사나와 카일라니 공작을 가까이서 보게 된 것도 모자라 함께 식사까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사 예절을 엄청 걱정했었는데 음식을 보니 기우에 불과했다.

식탁에는 인원수에 맞게 스푼과 포크가 세팅되어 있었다. 다들 나이프가 없는 걸 의아하게 여겼는데 그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나이프를 사용할 필요도 없이 스테이크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 나왔다.

이 자리가 좋으면서도 무척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은 이것이 영주인 록사나의 배려임을 알아챘다.

덕분에 그들은 편하게 점심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식사 후에는 함께 차를 마시면서 약간의 담소를 나누었다.

* * *

록사나가 해야 할 큰 행사는 끝났지만 여전히 바빴다.

그녀의 집무실에 아스테리온과 그의 보좌관 트레버, 집사 겸 교장 프레드릭, 유치원 교사 겸 원장 코델리아, 초등학교 교사 패트릭, 캠든 상단주 잭, 록사나의 보좌관 아이린이 자리했다.

아스테리온과 트레버는 레드포드 공작 령에도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잭은 동물 귀 머리띠와 날개 액세서리 작업 현황에 대해 록사나에게 보고했다.

“이건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누구나 따라 만들 수 있으니 초반에 바짝 많이 파는 게 우리에게 유리해요.”

“물론입니다. 재봉 인력을 구한다는 홍보까지 했으니 인력 걱정은 덜었습니다.”

잭이 신이 나서 말했다.

한꺼번에 제국 전체에 퍼트리려면 많은 양의 상품이 필요했다.

“귀족과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라인을 어떻게 구성할지 생각해 봤어요?”

지난번에 록사나가 잭에게 과제 비슷하게 내 준 업무였다.

“제 생각에는 두 제품에 보석과 비싼 옷감들을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중저가 제품과 차별성을 두면서 고급화시키는 것이죠.”

“아주 좋네요.”

록사나의 긍정적인 반응에 잭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한 게 있습니다.”

어서 말해 보라는 듯 록사나가 그를 바라보았다.

“저희가 만든 제품에는 무조건 캠든 영지 상표를 붙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모조품이 나와도 저희가 원조라는 것을 쉽게 각인시킬 수 있고, 품질을 보증하는 역할도 겸할 수 있으니까요.”

“정말 좋은 아이디어에요. 잭. 역시 제가 상단주는 기가 막히게 뽑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옆에서 교육 시설 논의를 하고 있던 그의 아내 코델리아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내가 모든 걸 다 감당하지 않고 믿고 맡기니까 충분히 잘해 내네.’

리온 제국도 그렇고 다른 나라들도 브랜드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다. 그저 어디 지역에서 난 상품이라고 설명하는 정도가 다였다.

그런데 잭은 브랜드를 만들자고 말하고 있었다.

“잭, 내 생각에는 우리 캠든 상단을 상징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거기에 추가적으로 마법적인 처리를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브랜드도 도용될 수 있으니까요.”

“처음부터 철저하게 대비하는 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마법사를 고용해야 하고 돈도 제법 많이 들 텐데요…….”

그의 말처럼 마법사 고용 비용은 무척 비쌌다.

“잠시만요.”

록사나가 자신의 집무 책상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 들고 왔다.

“인장이군요.”

“맞아요. 그런데 보통 인장이 아니에요.”

록사나가 흰 종이 위에 인장을 꾹 눌렀다 떼었다.

당연하게도 잉크나 인주를 묻히지 않았기에 종이에는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다.

잭이 눈을 끔벅거리며 록사나를 바라보았다.

“잘 봐요.”

록사나가 자랑하듯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종이 가까이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종이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며 인장의 문양이 떠올랐다.

“와!”

잭뿐만 아니라, 록사나의 집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인장이 보이는 종이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아니, 어떻게?!”

“맙소사!”

잭과 트레버가 동시에 감탄했다.

아스테리온의 시선이 그녀가 끼고 있는 반지로 향했다.

“그 반지는…….”

낯이 익은 반지였다.

“맞아요. 당신이 찾아서 돌려준 반지예요.”

노스에서 육망성 무리에게 납치당했을 때 일부러 떨어뜨린 반지. 그 반지를 아스테리온이 찾았었다.

“인장도 그렇고 참 신기한 반지입니다. 마법사나 마도 공학자가 만든 겁니까?”

잭에게 보여 주기 위해 꺼내 든 건데, 트레버가 더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이 특수 반지 인장은 제가 아는 마도 공학자가 만든 거예요.”

발명에서 작명까지 빈센트가 했다.

“한 쌍이고, 이렇게 반지를 가져다 대면 안 보이던 인장 문양이 보여요.”

록사나가 다시 한번 시범을 보여 주었다.

특수 반지 인장은 그녀가 의뢰한 것이 아니라, 문라이트 상단에서 문서 위조 방지 등을 위해 의뢰 제작한 것이었다.

록사나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래전에 문라이트 상단주 휴고로부터 선물 받았었다.

그동안 별달리 쓸 곳이 없었다가 상단을 설립하면서 특수 반지 인장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브랜드 이야기가 나와서 잭에게 설명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그 마도 공학자 저한테도 소개시켜 주십시오!”

트레버의 눈이 더없이 반짝거렸다.

“빈센트가 만들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도착하면 소개는 시켜 줄게요.”

“감사합니다.”

록사나에게 고개 숙여 꾸벅 인사한 트레버가 자신의 주군을 쳐다보았다.

“각하, 제 덕분에 위조문서 걱정은 한시름 덜게 되었습니다.”

약간 어폐가 있다는 걸 그도 알았지만, 의기양양한 태도로 당당하게 말했다.

‘나도 빨리 칭찬해 줘! 이렇게 유능한 보좌관이 어디 있습니까?’

트레버의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듯 아스테리온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졌다.

“수고했군.”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두 사람의 눈을 피해 낮게 키득거렸다.

“빈센트가 오면 잭이 그에게 상단에서 쓸 인장과 제품에 찍을 인장을 의뢰하면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영주님.”

록사나도 영주용 특수 반지 인장을 별도로 만들 예정이었다.

“이제 온돌 난방 시스템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모든 사람들이 록사나에게 주목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대한 논의는 다 끝난 모양이네.’

“남작님, 온돌 난방 시스템은 또 뭡니까?”

록사나가 속으로 씨익 웃었다.

회의에 참여한 모든 기술자들에게 비밀 엄수를 해 둔 상황이라 트레버의 귀에 아직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온돌 난방 시스템 역시 앞으로 캠든 상단에서 팔게 될 주력 제품이었다.

지금, 이에 대해 잭에게 설명해 주면서 레드포드 공작 령을 대상으로 겸사겸사 영업을 하기에 딱 제격인 상황이 되었다.

일부러 이 점을 노린 그녀였다.

록사나는 아이린이 꺼내 온 설계도를 놓고 모두에게 온돌 난방 시스템과 보일러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트레버, 코델리아, 얼떨결에 계속 자리에 남게 있게 된 초등 교사 패트릭, 잭은 물론 아스테리온까지 놀라움을 넘어 경악하는 표정을 드러냈다.

“영주님, 이건 완전 대박입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돈을 쓸어 모아 대륙 최고의 부자가 되기라도 한 듯 잭이 소리쳤다.

이 자리의 어느 누구도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사계절 내내 따뜻하고 더운 나라가 아니고서는 대륙의 거의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팔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영구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은 가히 혁신적이었다.

“대박! 온수도 맘껏 쓸 수 있고 온도까지 조절 가능하다니요. 이거 완전 사깁니다!”

충격에서 겨우 빠져나온 트레버가 한 박자 늦게 격하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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