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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67)화 (67/214)

67화 

“와, 이건 일일이 장작 패고, 불을 살필 필요가 없으니 정말 편리하겠군요.”

그때였다.

“저, 영주님.”

캠든 영지 출신의 목수가 손을 들었다.

“편하게 얘기해요, 단테.”

“보일러라는 기계를 돌리려면 마석이 필요하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맞아요.”

“마석은 워낙 비싸 저희 같은 사람들의 집에서는 사용이 어려울 것 같은데요…….”

단테의 지적에 록사나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 이 질문을 해 주기를 속으로 바랐었다.

“중급 이상의 마석은 당연히 고가지요.”

잠시 말을 멈춘 록사나가 기술자들을 쓰윽 둘러보았다. 그녀가 자신의 보좌관에게 눈짓하자, 아이린이 마석 하나를 록사나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걸 본 단테와 기술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하급 마석 조각이 아닙니까?”

로한이 동전 크기의 마석을 보며 말했다. 그가 조각이라고 표현한 것은 최하급 마석의 크기가 적어도 어른 주먹만 했기 때문이다.

“이건 최하급 마석을 다듬은 거예요. 이거 하나로 보일러를 반영구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어요.”

록사나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마석을 들어 올려 보였다.

“네?”

“진짭니까?”

다들 까무러치기 직전이었다. 최하급 마석은 워낙 활용도가 낮아 가난한 평민들이 한 일주일만 일하면 하나 정도는 거뜬히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작은 크기라니!

록사나와 아이린은 사람들의 놀라는 얼굴이 참 재미있었다.

아이린이야 록사나에게 이미 다 들었던 내용이라 그랬다.

물론 온돌식 난방 시스템과 동전만 한 마석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는 아이린도 경악스러워했었다.

‘리온 제국의 최하급 마석 광산의 9할이 내 소유라는 것까지 알면 다들 쓰러지겠네. 이건 비밀로 해야지.’

록사나가 비밀스럽게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미소를 오해했다.

앞으로 영지에 설치될 온돌 난방 시스템이 영지민들의 삶을 따뜻하게 해 줄 거라는 생각에 흡족해하시는 거라고.

물론 완전히 틀린 오해는 아니었다.

‘빈센트에게 특별 보너스를 더 줘야겠군.’

얼마 전 록사나는 온돌 난방 시스템을 영지에 보급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문라이트 상단을 통해 빈센트에게 편지를 보냈었다.

그가 보내온 답장은 그녀를 무척 놀라게 했다. 원래 보일러를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최하급 마석 하나가 통째로 필요했었다.

그런데 록사나가 연락을 취하지 않은 1년 사이에 빈센트는 연구를 거듭했다고 한다.

그 결과, 동전 크기의 마석만으로도 충분히 보일러를 작동할 수 있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중급이나 고급 마석으로도 보일러를 작동시키는 시험을 해 보았는데 그는 그건 돈지랄이었다고 표현했다.

동전 크기 마석이나 중급, 고급 마석으로 모두 보일러를 작동시킬 수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중급과 고급 마석을 사용한 보일러가 자주 고장이 났다고 밝혔다.

최종적으로 최하급으로 가공한 동전 크기 마석이 가장 적합하다고 언급했다.

이를 토대로 록사나는 문라이트 상단을 통해 리온 제국 내의 최하급 마석 광산을 사들였다.

시세보다 높은 값을 쳐 주니 다들 좋다고 애물단지 최하급 마석 광산을 그녀에게 팔았다.

‘이제 돈을 긁어모을 일만 남았어!’

록사나가 설계도를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한동안 회의실에서 온돌 난방 시스템 설계도를 놓고 토론과 논의가 뜨겁게 오고 갔다.

* * *

늦은 밤, 록사나는 내일 개원과 개교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설레어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산책이나 하고 올까.’

외투와 숄을 걸치고 본관을 빠져나왔다. 그녀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별채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달빛 아래에서도 2층 창문 안쪽에 붙인 동물들이 눈에 잘 보였다. 천을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록사나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그녀는 별채를 빙 둘러 조성된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아이들을 위해 새롭게 단장한 것이었다.

원래 별채의 양옆으로는 넓은 화단이 자리했었다. 이 넓은 화단에 가로세로로 여러 갈래의 길을 오솔길처럼 내어 작은 화단들을 만들었다.

‘봄이 되면 예쁜 꽃들이 필 테니 아이들이 산책하면서 구경하기 딱 좋겠다.’

록사나는 처음으로 캠든에서 맞이할 화사한 봄을 상상했다.

별채 뒤편에 다다르자 잘 다듬어진 빈터가 보였다. 이곳은 봄이 되면 아이들이 각자 뭔가를 심고 키울 수 있는 자연 학습장이었다.

어린 고용인인 제프리의 의견이 반영된 곳이었다.

‘교육적으로도 참 좋지.’

식물 앞에 자신의 이름이 써진 팻말을 보고 좋아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따뜻해졌다.

별채의 왼편에는 큰 실내 체육관이 지어지고 있었는데, 아직 공사가 다 끝나지 않았다.

한 바퀴 다 돈 록사나가 별채를 등지고 앞을 바라보았다.

별채 앞에는 넓은 공터가 펼쳐져 있었다. 록사나가 이 별채를 임시 학교와 유치원의 건물로 선택한 이유였다.

넓은 공터는 운동장으로 사용하기 딱 알맞았다. 운동장 한쪽에는 아이들을 위한 그네와 미끄럼틀, 시소 등 간단한 놀이기구를 설치할 예정이었다.

‘실내 체육관 공사가 끝나면 놀이기구 설치도 빨리 해야겠어.’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해서 순서를 정해 진행해야 했다.

휘잉.

차가운 바람에 록사나의 풀어 헤친 검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아, 춥네. 이제 들어가자.’

처음 산책을 나왔을 때와 다르게 그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흠칫, 우뚝.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 록사나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나무 아래에 커다란 사람의 형체가 서 있었다. 그늘에 가려 상대방의 얼굴은 안 보였다.

그녀를 봤을 텐데도 상대는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그렇지만 강한 시선이 느껴졌다.

록사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숨을 가다듬었다.

“거기 누구예요?”

덕분에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올 수 있었다.

상대방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남자의 얼굴이 달빛에 드러났다.

“…록사나.”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아스테리온,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요?”

록사나의 두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너무 놀라 자신이 카일라니 공작을 이름으로 불렀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했다.

반면에 아스테리온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 주다니.

말할 수 없는 희열감이 그의 가슴속에 차올랐다. 서둘러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다들 발이 느려서… 내가 먼저 도착했어.”

록사나의 질문을 떠올린 아스테리온이 카일라니 기사단을 거북이처럼 취급하는 발언을 했다.

“…….”

할 말을 잃은 록사나가 입을 뻐끔거렸다.

카일라니 기사단은 제국에서 가장 실력 있고, 발이 빨랐다.

사실 아스테리온은 자신의 대답이 그녀의 물음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다.

육망성과 관련된 일의 경과나 수도에서 처리된 일들에 대한 결과는 서신이나 다른 사람을 통해 전달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직접 온 건 그의 저열한 욕심 때문이었다.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어.’

차마 사실대로 드러낼 수 없는 속마음이었다.

자신이 그녀에게 얼마나 냉정하고 못되게 굴었던가.

그의 심장 한쪽이 찌르르 아파 왔다.

문득 자신만을 바라보던 시절의 록사나도 이만큼 아팠을 거라고 생각하니 심장이 미친 듯이 조여 왔다.

‘나는 감히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당신은 더 아팠겠지.’

모든 건 뒤늦은 후회였다.

록사나가 발을 떼어 움직였다.

아스테리온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가 자신의 앞을 스쳐 지나가자, 욱신거리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안 들어갈 거예요?”

“뭐?”

아스테리온이 바보처럼 물었다.

살짝 고개를 틀어 아스테리온을 바라본 록사나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밤이 늦어서 고용인들은 다들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당신을 숙소로 안내할 수밖에요.”

“아!”

자신을 밖으로 당장 쫓아내지 않는 록사나의 친절에 아스테리온이 속으로 안도했다.

아니,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 추운 겨울날 사람을 밖으로 내몰 만큼 독하지 못하다는 걸 말이다.

아스테리온의 가슴에 온기가 퍼졌다.

록사나가 걸음을 옮기자 아스테리온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그녀의 보폭에 맞춰 속도를 늦춰 걷는 그의 모습은 주인을 따르는 강아지 같았다.

록사나는 따끔거리는 뒤통수가 몹시 신경 쓰였다. 간신히 한숨을 참았다.

“저녁은요?”

“응?”

넋 놓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스테리온이 아차 싶었다가 정신을 차렸다.

“생각 없어.”

실제로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그녀의 잠든 고용인들을 귀찮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고용인들을 아끼는 록사나에게 더 이상 미움받고 싶지도 않았다.

‘안 먹었다는 얘기잖아!’

앞서 걷는 록사나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본관 홀에 들어선 록사나가 왼쪽으로 향했다.

손님 침실이 있는 위층으로 향할 줄 알았던 아스테리온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의 걸음이 주춤했다.

“저, 손님방은 위층 아닌…….”

“뭐 해요? 주방은 이쪽이에요.”

록사나가 살짝 타박하듯 그를 쳐다보았다.

“어?”

“저녁 식사 안 했다면서요.”

아스테리온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괜찮아. 그리고 고용인들도 다들 자고 있다고…….”

록사나가 아스테리온의 말을 뚝 잘랐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살짝 노기가 서려 있었다.

“설마, 그렇다고 나를 손님이나 굶기는 못된 영주로 만들 셈이에요?”

“아니, 그런 뜻은 전혀 아니었어.”

강철 같은 남자가 몹시 드물게 당황했다.

“고용인들 손을 빌리지 않아도 간단한 것 정도는 나도 할 줄 알아요.”

록사나가 투덜거리자, 아스테리온의 눈에는 놀라움이 깃들었다.

“그 눈빛 뭐예요? 설마 숯 검댕같이 못 먹을 거 줄까 봐 그래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었어.”

아스테리온이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저 당신이 직접 챙겨 준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해서 놀랐었던 것뿐이야.”

그의 변명에 뾰족하게 올라갔던 록사나의 눈꼬리가 평소의 자리를 되찾았다.

티격태격하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주방 앞에 다다라 있었다.

“거기에 앉아서 기다려요.”

“응.”

주방 안으로 들어선 록사나가 한쪽에 자리한 테이블과 의자를 가리켰다.

아스테리온은 그녀의 명에 따라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 모든 것들이 정말 꿈만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원수 같은 전 남편에게 저녁을 차려 줄 생각을 다 한단 말인가.

록사나가 주방 찬장 등을 이리저리 뒤지는 동안, 아스테리온도 그녀의 모습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으로 열심히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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