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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63)화 (63/214)

63화 

잭을 필두로 다른 사람들의 눈빛이 흥미롭게 빛났다. 그들은 귀족가나 부유한 평민 아이들이 홀딱 반할 만한 물건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돈이 웬만큼 있는 자들은 사치품을 구입하는 데 지출하는 비용을 아깝게 여기지 않았다.

“네. 상단을 설립해서 이 물건들을 시작으로 규모를 점차 키워 나갈 생각이에요. 그렇게 하려면 상단을 맡아 운영할 사람이 필요하죠.”

록사나가 미소를 머금고, 건너편에 자리해 있는 잭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녀의 뜻을 깨달은 잭의 눈에 기대가 점점 차올랐다.

꿀꺽. 그의 목울대가 한 차례 들썩거렸다.

“저는 그 일을 잭에게 맡기고 싶은데, 잭의 생각은 어때요?”

잭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영광입니다!”

그는 허리까지 90도로 접어 가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가 들어 올렸다.

잔뜩 흥분한 잭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영주님.”

특히 가족인 코델리아와 필립의 기쁨은 더했다. 그들은 캠든으로 오며 잭이 앞으로는 상단에 몸담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지역을 알아 가며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잭이었다. 무력이 뛰어나지 않았기에 험한 용병 일보다는 상단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했었다.

올랜도 상단에 몸담게 되며 이곳저곳 가 볼 수 있었던 그는 언젠가 자신의 상단을 세우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상인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잭은 물건에 대한 안목이 높았고, 상인으로서의 자질도 뛰어났다.

하지만 가정을 이루고 우여곡절 끝에 캠든에 정착하게 되면서 그의 꿈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던 차에 영주인 록사나의 제안은 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상단은 아니겠지만, 한 상단의 단주로서 일할 수 있고, 캠든 영지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가슴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잭과 그의 가족들은 서로를 얼싸 끌어안았다.

코델리아의 하늘빛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잭이 자신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발이 묶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녀의 마음을 짓누르던 커다란 돌덩이가 산산이 부서지며 사라졌다.

“울지 말아요, 코델리아.”

잭이 아내의 눈가를 연신 훔치며 달래기 바빴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진정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주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필립은 여전히 코끝이 찡했지만, 애써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은혜라고 하니 민망하네요. 잭과 코델리아, 필립은 제게 꼭 필요한 사람들이에요. 아직 별 볼 일 없는 작은 영지이지만, 우리 서로 힘을 합해서 캠든 영지를 제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영지로 만들어 나가도록 해요.”

록사나의 말에 각자의 각오를 다지며 모두가 고개를 진중하게 끄덕였다.

이후 그들은 다 마무리 짓지 못한 학교 문제와 상단의 설립, 운영에 대한 논의 등을 늦은 시간까지 이어 나갔다.

* * *

캠든 성 앞이 북적거렸다. 성내의 사람들이 몰려나와 진풍경에 넋을 놓았다.

“이런 광경은 내 평생 처음이에요.”

“나도. 도대체 저게 몇 대야?!”

“못해도 한 서른 대쯤은 되어 보이는데요.”

줄줄이 성문을 통과하는 마차 행렬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구경하기에 바빴다.

“저번에 웨스트에서 화재가 일어났었잖아요. 혹시 건축 자재 같은 걸 가져오는 걸까요? 날이 풀리면 공사를 시작할 거라고 하던데…….”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아, 저기 영주님도 나오셨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록사나에게로 쏠렸다. 그녀 역시 본관 앞에 나와 마차가 들어오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아이린과 프레드릭, 잭이 함께 자리했다. 네 사람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저리 큰 규모라니! 대단한 상단인 거 같습니다.”

잭이 감탄했다. 그가 상행을 다닐 때는 정말 많아야 마차 열 대 정도였었다.

올랜도 상단의 규모가 작기도 했었지만, 이동하는 마차가 늘어날수록 호위해야 하는 인원도 추가로 고용해야 했기에 비용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행렬을 이끌며 맨 앞에서 달리던 마차가 본관 앞에 다다랐다.

마차 문이 열리고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훤칠한 두 청년이 내려섰다.

록사나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휴고, 핀.”

“오랜만에 뵙습니다. 록사나 님.”

“안녕하세요, 록사나 님.”

문라이트 상단의 단주 휴고와 그의 보좌관 핀이 번갈아 가며 반갑게 록사나를 포옹했다.

“먼 길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록사나 님 편지를 받자마자 휴고 님이 바로 출발하려고 하셔서 제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짧은 밀색 머리의 핀이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로 자꾸만 서두르는 휴고 때문에 하마터면 록사나가 요청했던 물품들을 제대로 싣고 오지 못할 뻔했었다.

진짜로 그랬냐는 듯 록사나가 휴고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추우니까 우리 들어가서 얘기해요. 아, 그전에 소개시켜 줄게요.”

록사나가 프레드릭과 잭, 아이린을 차례대로 두 사람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아이린은 멍하게 서 있다가 당황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소녀의 귀 끝이 빨개졌다.

상단 일행들을 응대하기 위해 프레드릭만 자리에 남고, 다른 사람들은 응접실로 자리로 옮겼다.

문라이트 상단이 가져온 물품 목록을 건네받은 잭도 물건 하차를 위해 자리를 금방 떴다.

아이린이 따라 준 차를 홀짝이며 휴고와 핀이 캠든 영지에 대한 본인들의 소감을 털어놓았다.

“나쁘지 않군요.”

휴고의 감상은 추상적이고 짧았다.

“저는 시골 영지라고 해서 성이 엄청 작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니까 공작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엄청 큽니다.”

조금은 과장된 핀의 말에 록사나가 미소를 지었다.

“아주 오래전에 요새로 사용된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캠든에 처음 왔을 때 프레드릭에게 들은 말을 떠올린 록사나가 설명을 해 주었다.

“어쩐지. 성벽도 그렇고, 부대 건물도 많아 보이고… 그래서 그렇군요.”

“후지고 너무 많이 낡았습니다.”

휴고가 무심하게 지적했다. 이에 핀이 휴고를 째려보았다.

‘이 양반 또 시작이야!!’

다른 영주가 들었다면 충분히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쁠 말이었다. 그렇지만 록사나는 아무렇지 않게 생글거렸다.

반면에 수줍어하던 아이린의 얼굴에는 살짝 금이 갔다. 휴고를 무척 좋게 보았던 소녀의 마음이 상처를 입은 것이다.

“지금이야 그렇죠. 하지만 몇 년만 두고 보세요. 이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곳이 될 테니까요.”

캠든 영주인 록사나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럼요! 록사나 님이라면 충분히 해내실 수 있지요.”

상관의 무례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핀이 격하게 동조했다. 그렇다고 빈말은 결코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봐 온 록사나는 충분히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거기다가 캠든 영지 사람들 표정도 밝은 게 다들 영주님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휴고와 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이린이 저도 모르게 살짝궁 맞받아쳤다.

이에 두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록사나가 작게 웃었다.

“참, 프리다는 잘 지내죠?”

“네. 따라오려고 해서 진땀 뺐습니다. 쥴리안마저 타국에 가 있는 상황인데, 부단주라도 남아서 상단을 건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누나를 떠올린 핀이 호소하듯 말했다. 쥴리안은 문라이트 상단의 총관이었다.

“이해해요. 보고 싶었는데 다음 기회가 있겠죠. 돌아가면 프리다한테 안부 전해 줘요.”

“그러겠습니다. 안 전해도 저를 닦달할 텐데요, 뭘.”

그들의 대화를 경청하는 아이린은 휴고와 핀의 직함이 서로 바뀐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휴고가 상단주라고 들었는데, 그는 거의 입을 닫고 있었다.

그리고 핀이 록사나와 주도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린의 시선이 휴고에게로 향했다. 핀과 같은 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묶지 않은 머리는 그의 허리까지 길게 내려왔다.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듯한 휴고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재미있는 기운이 느껴집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기운이 성내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음? 더 있나?’

“나중에 소개해 줄게요.”

무엇을 말하는지를 눈치챈 록사나가 미소를 지었다.

핀도 휴고가 말하는 바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러면서도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록사나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언제까지 머무실 거예요?”

핀이 휴고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입을 열었다. 상단의 우두머리가 그였으니 결정권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한 2~3일 머물까 합니다만…….”

“더 있어도 되니까 머무는 동안 편하게 지내요. 그리고 피곤할 테니까 이제 가서 좀 쉬어요. 저녁 만찬을 같이 들고 싶은데 괜찮죠?”

휴고와 핀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 두 분 먼저 안내해 드리고, 점심은 방으로 가져다드리라고 주방에 전달해 줘.”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준 두 사람에 대한 작은 배려였다.

“네.”

아이린을 따라 휴고와 핀이 응접실을 떠나고, 혼자 남은 록사나가 넓은 창가로 다가갔다.

사람들이 한창 짐을 내리고 그것들을 보관 창고로 옮기고 있었다.

문라이트 상단이 가져온 것들은 대부분이 영지를 재정비할 때 필요한 물품들이었다.

그러나 꼭 물품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요청대로 건축과 토목 등 여러 분야의 기술자들도 함께 데려왔다.

록사나가 문라이트 상단주를 만나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무려 17년 전의 일이었다.

그녀가 일곱 살 때,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저택을 방문했던 휴고는 지금의 모습과 똑같았다.

‘사고 이후로 모든 게 변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네.’

그것은 휴고의 성격과 외모였다.

어찌 보면 사회화가 덜 된 것처럼 보이는 휴고의 무심한 듯한 태도와 뼈를 때리는 직설적인 말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또한 휴고가 17년이 지난 지금도 그 전과 다름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그가 하프 엘프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휴고는 외부에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단주가 얼굴을 내비쳐야 하는 대외적인 업무에는 부단주 프리다와 문라이트의 총관인 쥴리안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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