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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62)화 (62/214)

62화 

“조끼 형태는 천이 많이 들어가니까, 어깨에 메는 형태로도 만들어 봤어요.”

록사나가 상자에서 다른 형태의 날개옷을 꺼냈다.

“오, 이거라면 조금 큰 아이들도 날개를 가질 수 있겠군요.”

잭이 어깨에 메는 날개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맞아요. 유치원 아이들 말고도 더 큰 아이들도 좋아할 거 같아서 추가로 만들었어요.”

“이것도 영주님께서 생각해 내신 겁니까?”

“나는 설명만 했어요. 실제로는 손재주가 뛰어난 고용인들이 만들었고요.”

“발상은 영주님께서 하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영주님이 다 하신 거나 다름없다고 봐요.”

너무 겸손한 태도라고 생각한 아이린이 록사나를 추켜세웠다. 이에 당연하다는 듯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록사나가 자신의 살짝 볼을 긁적거렸다.

이세계의 지식을 그대로 가져와 활용한 것뿐인데, 제가 새롭게 창조해 낸 것처럼 되어 버려서 무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영주님, 그것도 가져올까요?”

아이린이 눈을 빛내며 록사나의 허락을 기다렸다.

“아, 맞다. 그것도 있었지. 가져와 줄래?”

“이번엔 또 뭐예요?”

코델리아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이린이 새롭게 가져올 그 뭔가도 범상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띠요.”

“머리띠요?”

코델리아와 잭이 동시에 영주의 말을 따라 했다.

날개옷이야 이해가 충분히 되었지만, 뜬금없이 머리띠라니?

여자아이들을 위한 선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짜잔!”

상자를 내려놓자마자, 한껏 들뜬 아이린이 뚜껑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세 사람의 시선이 상자 안으로 곧장 빨려 들어갔다.

“어머!”

“오호!”

기존의 머리띠와 다른 형태에 세 사람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머리띠라고 해서 흐물거리는 긴 리본을 상상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록사나가 웃음을 머금고 머리띠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바로 자신의 머리에 썼다.

“아!!”

세 명의 어른이 탄성을 내질렀다.

록사나의 윤기 흐르는 까만 머리 위에 눈처럼 하얀 늑대 귀가 순식간에 생겨났다.

“어때요?”

살짝 쑥스러움을 삼키며 록사나가 물었다.

“너무 귀여워요!”

“멋져요!”

아이린과 코델리아가 즉각 반응했다.

한 박자 늦게 필립과 잭도 한마디씩 했다.

“허허허. 영주님께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시는 분이시군요.”

“너무… 앙증맞으십니다.”

잭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그의 아내인 코델리아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영주인 록사나의 미모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보, 미안해요.’

* * *

수인족 다섯 명이 마주 앉아 있었다.

아니, 다섯 사람이 각자 마음에 드는 머리띠를 착용하고 있었다.

록사나는 벨루카를 본뜬 은빛 늑대, 아이린은 그녀와 비슷한 하얀 여우, 코델리아는 고양이 귀 머리띠였다.

각자 마음에 드는 머리띠를 써 보라고 권했을 때 한참 망설이던 잭과 필립은 어디 가고 두 사람은 마치 블랙 재규어와 사자라도 된 것처럼 양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코델리아, 아름다워요. 머리띠가 너무 잘 어울리네요.”

잭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슬쩍 보며 본인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살짝 치켜 올라간 아내의 눈꼬리가 고양이 귀와 찰떡궁합이었다.

“고마워요, 잭. 재규어의 귀가 용감한 당신에게 딱이네요.”

잭의 입이 귀에 걸렸다. 자제하려는 듯 바로 입꼬리를 내렸지만 자꾸 위로 치솟았다.

코델리아가 잭의 어깨에 고개를 살짝 기댔다. 그러자 잭이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어흠.”

아들과 며느리의 애정 행각에 민망해진 필립이 헛기침을 했다. 자신이야 익숙하다지만 아이린과 영주인 록사나까지 있는 자리였다.

“두 사람 참 보기 좋아요.”

그들이 민망해하지 않도록 록사나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동물 귀 머리띠를 하고 있으니 평소와는 다른 과감한 행동들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동물 귀 머리띠는 남자아이, 여자아이 구분 없이 모두 할 수 있는 하나의 액세서리다.

캠든 성이라는 낯선 환경과 학교라는 새로운 시스템에 아이들이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한 작은 선물이었다.

물론 제국에는 학교와 비슷한 아카데미가 있었다. 하지만 재학생들은 거의가 귀족가의 자제였고, 열세 살부터 입학이 가능했다.

천재거나 어릴 때부터 꾸준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아 온 아이가 아니라면 평민은 입학시험 통과 자체가 어려웠다.

이번에 캠든 성에서 시작하는 글 공부방은 록사나가 다른 세계의 교육 체계를 바탕으로 만든 학교의 시초였다.

그녀는 금전적인 부담 없이 영지민 누구나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전 영지에 학교를 순차적으로 설립할 계획이었다.

똑똑똑.

“영주님, 프레드릭입니다.”

“들어오세요.”

프레드릭이 작은 털 뭉치를 들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벨루카?”

벨루카는 집사의 한 손에 뒷덜미를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록사나가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 프레드릭을 바라보자, 그 역시 그녀와 다른 사람들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들 동물 귀 머리띠를 하나씩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큼큼.”

잠시 넋이 나가 있던 프레드릭이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벨루카 님께서 주방에서 준비한 아이들 간식을 모두 먹어 치우셨습니다.”

록사나와 다른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큰 벨루카가 72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간식을 모두 먹어 치웠다는 말이었다.

근래 며칠 사이 캠든 성에는 아이들이 많이 늘었다.

수습 고용인 신분인 서른 명의 아이들과 코델리아 일행의 아이들 네 명, 정규 고용인들과 기사단에 속한 사람들의 자녀나 형제자매 또는 손주들이 도합 서른여덟 명이었다.

기드온 경과 로사 경의 아들과 딸도 일하는 부모님을 따라 성으로 출퇴근하고 있어 그들도 포함한 숫자였다.

주방에서는 성장기 아이들을 위해 매일같이 간식을 준비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그 시간을 간절히 기다렸다.

“벨루카, 너!”

록사나의 엄한 목소리에 아기 늑대가 솜방망이 같은 두 앞발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동시에 두 귀는 축 처졌다.

‘저 말썽쟁이가 사고를 거하게 쳤네!’

캠든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록사나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혼내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지.’

이내 그녀가 고개를 들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프레드릭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아이들 간식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요?”

“쿠키 대신 과일로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다행이네요. 과일이 부족하지는 않고요?”

록사나와 다른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겨울철에 더 비싸지는 과일은 쉽게 먹기 힘든 귀한 간식거리였다.

“네. 어제 추가로 들어온 과일이 있어 부족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잘 수습되었다고 판단한 것인지 벨루카가 잡힌 몸을 버둥거렸다.

“이리 주세요.”

프레드릭이 말썽꾸러기 아기 정령을 록사나에게 넘겼다. 아기 늑대가 좋다고 꼬리를 신나게 흔들며 그녀의 품에 얌전히 안겼다.

“너 나중에 두고 보자.”

어떤 벌을 내려야 할지 잠시 고민하며 록사나가 단단히 별렀다.

인간의 음식을 좋아하는 벨루카가 몸의 크기에 비해 상당히 많이 먹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에 따라 몸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형 사고를 칠 줄이야.

‘그냥 넘어가면 다음에는 더 큰 사고를 치겠지. 이 기회에 제대로 교육을 시켜야겠어.’

록사나의 무릎 위에서 작은 존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고개를 내려 바라보자, 벨루카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아울, 아후울.”

벨루카의 시선은 그녀의 머리 위쪽을 향해 있었다. 무척 만족스러운 눈빛이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린이 입을 열었다.

“영주님께서 하신 머리띠가 벨루카 님도 엄청 마음에 드시나 봐요.”

“그런가?”

“네! 은빛 귀가 꼭 닮았잖아요.”

록사나가 벨루카의 코를 손가락으로 살짝 튕기었다. 사고를 친 것에 대한 작은 벌이었다.

그러나 이내 눈웃음을 지으며 벨루카의 머리와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사고를 치긴 했지만 귀엽긴 했다.

“제 눈에도 그리 보입니다.”

프레드릭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기 늑대 정령을 바라보았다.

프레드릭과 눈이 마주친 벨루카가 시선을 슬쩍 피하며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

간식을 맛있게 다 먹고 자신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다가 프레드릭에게 현장을 들켜 버렸다.

결국 인간인 그에게 바로 잡혀서 엄마 앞까지 오게 되었다. 정령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헌데 하신 것들은 다 뭡니까?”

처음 봤을 때부터 가장 먼저 묻고 싶었던 것을 프레드릭이 지나가듯 물었다.

“이 머리띠는요.”

잭이 대표로 나서서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동물 귀 머리띠와 더불어 날개옷에 대해 주르륵 설명을 해 주었다.

슬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프레드릭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흥미롭게 빛났다. 그는 사람들의 머리 위를 여러 번 슬쩍슬쩍 훔쳐보았다.

“집사님도 하나 해 보실래요?”

아이린이 아직도 많은 머리띠가 담겨 있는 상자를 프레드릭의 앞에 내밀었다.

“허허. 그럼 나도 한번 해 볼까.”

권하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상자 안에 손을 뻗는 노집사를 보며 다른 사람들은 남몰래 웃음을 삼켰다.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보이면서도 속마음까지 다 숨기지 못하는 다 큰 어른의 모습은 진귀한 볼거리였다.

드디어 원하는 머리띠를 발견한 프레드릭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어서 써 보십시오.”

필립이 프레드릭을 재촉했다. 이 작은 소동에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프레드릭까지 동참하게 되니 든든한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남아 있던 손톱만 한 민망함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떻습니까?”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여러 번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프레드릭이 손을 떼었다. 마음 같아서는 거울로 확인해 보고 싶은데 당장 그럴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와! 너무 잘 어울리세요.”

“정말 딱입니다.”

노집사의 잿빛 머리 위로 솟아오른 기린의 앙증맞은 뿔과 귀를 본 아이린과 필립이 가장 열렬하게 반응했다.

다른 사람들도 환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이들이 동물 귀 머리띠랑 날개옷을 좋아할 거 같죠?”

“네. 세상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레드릭이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걸로 장사를 해 보려고요.”

“정말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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