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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55)화 (55/214)

55화 

【 필립 일행 】

“영주님, 해리슨입니다. 급하게 전할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와요.”

록사나의 허락에 초조한 표정의 도어맨 해리슨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인가?”

프레드릭이 록사나를 대신하여 물었다.

“그게… 영주님께만 전해 달라고 해서요…….”

해리슨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말을 해도 되는지 망설여졌다.

“괜찮으니까, 얘기해도 돼요.”

프레드릭과 기드온 경, 아이린은 록사나가 믿는 사람들이었다.

“영주님이 처음 캠든 성에 오셨을 때 모시고 왔던 마부 필립이 찾아왔습니다.”

“필립이요?”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의 이름에 록사나가 되물었다.

한편으로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마부 필립에게 뭔가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데리고 왔는데, 다친 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급하게 영주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록사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요.”

“2층 응접실에 있습니다.”

앞서 걷기 시작한 해리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 뒤를 따라 록사나가 서둘러 식당을 나섰다. 그녀의 뒤로 프레드릭과 기드온 경, 아이린이 함께 했다.

응접실 앞에 다다르자, 해리슨이 문을 두드렸다.

“필립 씨, 영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잠시 후,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문틈 사이로 지친 표정의 필립이 얼굴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록사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해리슨,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문 앞을 지켜요.”

“알겠습니다.”

필립이 옆으로 비켜섰다. 록사나가 일행과 함께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필립을 제외하고도 어른 세 명과 아이 세 명이 더 있었다. 망토를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들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찢겨나가고 먼지투성이 옷가지에는 핏물 비슷한 것들이 물들어 있었다.

양쪽 소파에 나뉘어 앉아 있던 그들이 그녀의 뒤를 따르는 기드온 경을 발견하고는 몸을 움찔거렸다.

이를 눈치챈 록사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이 사람은 캠든의 기사단장 기드온 경이에요. 그리고 집사 프레드릭, 보좌관 아이린, 저는 캠든의 영주 록사나 아벨리오 남작이에요.”

록사나의 소개에 세 사람이 낯선 손님들에게 가볍게 묵례했다.

“필립, 안심하고 자리에 앉으세요.”

상석에 자리하며 록사나가 말했다. 그러자 필립이 비어 있는 자리에 착석했다.

아이린과 프레드릭은 록사나의 뒤쪽에 자리했다. 기드온 경은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섰다.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록사나가 먼저 입을 떼었다.

“필립, 이들은 모두 제 사람들이니 걱정하지 말아요.”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남작님.”

필립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청하라고 한 건 저였으니 편하게 얘기해 보세요. 아, 그전에 다친 사람들 치료부터 먼저 하는 게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필립의 대답과 거의 동시에 누군가가 응접실 문을 두드렸고, 록사나의 허락에 애슐리와 캘빈이 들어왔다.

간단히 두 사람을 필립 일행에게 소개하고, 록사나 일행은 잠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치료가 끝나자 다시 응접실에 자리했다.

이전보다 한결 긴장감이 누그러졌지만 결연한 표정의 필립이 입을 열었다.

“남작님, 저희를 숨겨 주십시오! 남작님의 보호가 아니면 저희는 갈 곳이 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필립이 바로 무릎을 꿇고 애원을 했다.

“일어나세요, 필립. 제대로 된 얘기를 들어야겠어요.”

“하지만……!”

마음이 급했던 필립이 록사나를 간절하게 올려다보았다.

“혹시 범죄를 저질러서 쫓기고 있는 건가요?”

“절대 아닙니다!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어서 일어나세요. 제게 도움을 청하는 이유를 듣고 싶으니까요.”

록사나가 필립을 다독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게 했다.

“이유를 말씀드리기에 앞서 제 일행을 소개해드리는 게 설명 드리기 더 쉬울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록사나가 동의하자, 필립이 맞은편에 자리한 사람들을 한 명씩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쪽은 제 아들 잭과 며느리 코델리아입니다. 안고 있는 아이들은 두 사람의 아이입니다.”

잭과 코델리아가 망토를 젖혀 얼굴을 드러냈다. 그들이 록사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그녀도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잭은 필립의 젊은 시절을 보는 듯 무척 닮아 있었다.

코델리아에게 시선을 옮긴 록사나와 다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짙푸른 머리칼에 옅은 물빛 눈동자를 가진 여인은 무척 아름다웠고, 살짝 뾰족한 귀 끝이 물갈퀴 모양이었다.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이 놀랄 것을 당연하게 예상한 듯 필립 일행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맴돌았지만 표정은 평온했다.

“보시다시피 코델리아는 인간이 아닌 인어족입니다.”

“인어족요?”

다들 처음 보는 인어족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건 록사나도 마찬가지였다.

드워프나 엘프, 수인족이 드물게 인간과 교류했었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어 봤었다.

하지만 인어족은 정령과 더불어 고대 기록에서나 볼 수 있는 이들이었다.

“저는 진짜 인어족이 맞아요.”

코델리아에게서 청아하고 고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전설에서나 등장하는 인어족을 실제로 보게 된 것도 놀라운데,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된 건지 궁금해서 그래요.”

모두를 대신하여 록사나가 변명을 했다.

그러자 코델리아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정말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 미소에서 시원한 바다 내음이 느껴졌다.

록사나는 잭과 코델리아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잭을 따라 코델리아가 육지에서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뭔가 숨겨진 사연이 더 있을 것 같았다.

록사나의 시선이 두 사람이 안고 있는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인간과 인어족의 혼혈이겠구나. 음, 한 살 정도 됐으려나…….’

그녀의 시선을 의식한 듯 잭과 코델리아가 아이들의 얼굴을 보여 주었다.

“쌍둥이입니다. 제가 안고 있는 아이가 누나 마리솔이고, 이쪽이 남동생 마빈입니다. 한 살이 막 지났습니다.”

잭이 사랑이 가득 담긴 따뜻한 눈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잭을 마주 보는 코델리아의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아기들이 잭과 코델리아를 쏙 빼닮았네요.”

신비롭고 아름다운 아기들의 모습에 록사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리솔과 마빈은 코델리아의 짙푸른 머리칼과 물빛 눈동자를 물려받았는데, 귀는 잭을 닮아 있었다.

마리솔과 마빈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록사나를 쳐다보았다.

“안녕. 마리솔, 마빈.”

록사나가 가볍게 두 손을 흔들었다.

“꺄하.”

이에 화답하듯 두 아기가 발버둥 치며 앙증맞은 손들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직은 안 돼, 마빈.”

코델리아가 안고 있는 아기를 타일렀다. 잭도 마리솔을 어르며 달랬다.

“우선 소개를 마저 하고, 자세한 얘기를 드리겠습니다.”

필립이 나서며 다시 소개를 이어 나갔다. 그가 망토를 아직 벗지 않은 남자와 아이를 가리켰다.

아이는 일행 중 가장 덩치가 큰 남자의 품 안에 꼭 안겨 있었다.

“여기 작은 아이의 이름은 키아이고 조인족입니다.”

“네?!”

록사나의 뒤에 있던 아이린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죄송해요, 너무 깜짝 놀라서요. 인어족에 조인족이라니……. 그, 그럼 진짜 날개가 있어요?”

아이린의 사과와 질문에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던 필립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네, 키아는 날개가 있는 조인족입니다. 다섯 살이고요.”

필립의 대답에 록사나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날개 없는 조인족도 있나?’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굳이 묻지를 않았다.

“키얀, 이제 망토를 벗어도 된단다.”

필립의 말에 남자가 주춤거리다가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그러곤 키아의 망토도 젖혀 주었다.

“아!”

록사나 일행이 일제히 감탄사를 내뱉었다. 특히 아이린의 두 볼이 살짝 상기되었다.

밀가루처럼 하얀 얼굴에 사파이어를 그대로 박아 넣은 듯한 맑은 눈과 붉은 입술을 가진 젊은 청년 키얀은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오직 필립 일행만이 무덤덤했다.

‘머리카락이 나보다 더 검은색이네. 마치 흑표범이나 검은 늑대 같아!’

키얀의 검은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록사나가 홀린 듯 연신 감탄했다.

그의 품에 안겨 있는 키아의 외모는 천사가 따로 없었다. 꼽슬꼽슬한 금발이 살짝 파란 눈을 가렸다. 날개 있는 조인족이기까지 하니 정말 천사가 강림한 게 아닐까 싶었다.

두 쌍의 파란 눈이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록사나 일행을 주시했다.

‘형제가 어쩜 보석 같은 눈이 똑 닮았어!’

“키얀과 키아는 친형제가 아닙니다.”

“네?”

록사나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필립이 말했다.

“키얀은 수인족입니다. 그리고 열세 살이고요.”

“허허.”

프레드릭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응접실에 들어서고 나서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저 덩치에 열세 살이라고요?!”

기드온 경 역시 깜짝 놀라며 반론을 제기했다. 키얀의 얼굴과 덩치는 뭐로 보나 건장한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덩치와 맞먹었다.

이에 대해 잭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수인족은 성장 속도가 빨라서 그렇습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제가 3년 전에 처음 키얀을 만났을 때는 키아보다 조금 큰 정도였습니다.”

즉, 3년 동안 저렇게 자랐다는 얘기였다.

기드온 경이 키아와 키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신도 어릴 적에는 남들보다 성장 속도가 배는 빨라 하루가 다르게 쑥쑥 몸이 자랐었다.

하지만 저 키얀처럼은 절대 아니었다. 수인족을 오늘 처음 보았으니 잭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제 열세 살밖에 안 됐다니!

록사나도 기드온 경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인어족에 조인족, 거기에다 수인족까지 새롭게 접하게 된 정보들로 인해 그녀의 머릿속은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록사나가 잠시 심호흡을 하며 머릿속의 여러 가지 정보들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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