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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39)화 (39/214)

39화 

자이르가 노스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추악한 일들을 벌이고 있었다니.

채드는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코앞에서 이뤄졌을 일들을 눈치채지 못한 바보 같은 자신을 원망했다. 마음속에 자괴감이 몰려들었다.

“진정해요, 채드.”

“송구합니다, 영주님.”

채드가 록사나에게 짧게 묵례했다.

“이 자리에서 자이르의 치안대장 직위를 박탈합니다. 지금 이 시간부로 노스의 치안대장은 채드입니다.”

갑작스런 록사나의 임명에 채드가 입을 뻐금거렸다.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제 눈앞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바보처럼… 저자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채드를 임명한 거예요.”

“에?”

“부대장으로 지금까지 이런 위험이 노스에 퍼지고 있었다는 걸 제대로 파악해 내지 못한 당신의 잘못 또한 크다는 걸 모르지 않겠죠. 이번 실책에 대한 책임을 지세요. 거절이나 이의 제기는 받지 않겠어요.”

채드의 얼굴이 순간 멍해졌다가 결연해졌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 임무를 다하겠습니다.”

채드가 록사나 앞에 바로 무릎을 꿇었다.

록사나가 기드온 경에게서 검을 받아 들었다. 그녀는 검날을 뉘인 상태로 채드의 양어깨를 번갈아 가며 가볍게 두드렸다.

기사의 서임식은 아니었지만, 한 마을의 치안대장을 임명하는 일이었기에 간소하게나마 형식을 갖춘 것이었다.

“채드 경, 그대는 앞으로 노스의 치안대장으로서 노스와 캠든 영지 전체를 수호할 것을 맹세합니까?”

“노스의 채드가 맹세합니다.”

“그대의 굳건한 맹세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나 록사나 아벨리오는 채드 경 그대를 노스의 치안대장으로 임명합니다. 앞으로 노스의 안전을 그대의 손에 맡깁니다.”

“영광입니다, 영주님.”

채드가 고개를 깊이 숙여 예를 표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채드가 몸을 일으켜 바로 섰다.

옆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기드온 경이 채드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안 좋은 사건을 계기로 승진을 하게 되기는 했으나 축하와 격려, 위로를 담은 행동이었다.

“승진을 축하하네, 채드 경.”

“감사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채드 경.”

“저도 축하드려요.”

마르셀, 헨리, 아이린이 차례대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포박이 된 자이르만이 눈을 벌겋게 부릅뜨고, 그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이르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록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명을 내립니다. 저자를 철저히 구금하고, 노스의 촌장을 당장 잡아들이세요. 또한, 노스 지역 전체를 조사해서 파파베르의 뿌리를 모두 뽑아내야 합니다.”

“명을 받듭니다.”

채드가 몸을 돌려 자이르에게 다가갔다.

“이거 놔! 당장 놓지 못해!!”

몸부림치는 자이르를 힘으로 제압한 채드가 그를 끌어냈다. 헨리가 그 뒤를 따라 나갔다.

잠시 후, 집무실 안이 조용해졌다.

록사나를 시작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영주님께서 파파베르 가루를 알아보지 못하셨다면 영지 전체에 큰 위기가 닥쳤을 겁니다.”

무겁게 입을 연 기드온 경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파파베르의 독에 당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영지가 상상이 된 아이린도 한마디 거들었다.

“영지 시찰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마르셀의 말에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퍼지기 전에 적발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긴 하죠. 하지만 분명 영지민들 중에 이미 파파베르를 접한 사람들이 제법 있을 거예요.”

“분명 그럴 겁니다.”

굳은 얼굴로 기드온 경이 대꾸했다.

“기드온 경, 그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찾아내세요. 완전한 치료는 어렵겠지만 사람들을 따로 모아 의원에게 데려가세요. 그리고 그들이 소지하고 있던 파파베르와 치료제로 사용된 것들도 모두 수거해서 소각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저들의 행적을 모두 파악하고, 캠든 영지 전체를 빠짐없이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처벌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록사나가 입을 떼었다.

“그들이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면 죄질에 따라 노동형에 처합니다.”

그 뒤로 록사나 일행은 더욱 바빠졌다.

이틀 후에는 노스의 전 치안대장 자이르와 촌장에 대한 재판이 중앙 광장에서 열렸다.

재판은 영주의 명을 받은 기드온 경의 주관 아래 진행되었다.

두 명의 죄인은 평생 동안 중노동형에 처해졌다.

제국 법에 따르면 두 사람은 모든 영지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태형이나 최고형인 사형에도 처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록사나는 영지민들 사이에 공포를 조장하고 싶지 않았다.

쉽게 죽는 사형이나 고통스런 태형보다도 중노동형이 그들에게는 더욱 무거운 형벌이 될 것이다.

죄인들에게 살아서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속죄하며 살 기회를 준 것이기도 했다.

죄를 지었다면 응당 그에 대한 벌을 내리면 된다. 하지만 상인들은 타 지역 사람들이었고, 그 배후를 밝힐 필요가 있었다.

록사나는 이들을 캠든 성으로 압송해 지하 감옥에 가두도록 지시했다.

영지 시찰을 모두 마치는 대로 영주 성으로 돌아가 더 취조를 한 후, 수도에서 열리는 공공 재판에 그들을 모두 회부할 예정이었다.

이를 통해 리온 제국의 모든 이들에게 파파베르의 진실과 위험성을 제대로 알려야 했다.

이미 다른 영지에 깊이 침투한 상태라면 모조리 뿌리를 뽑아 버려야 했다.

황실과 귀족들도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고, 각자의 영지를 점검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 상인들의 뒤에 권력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상인들을 심문하며 그 심증은 더욱 굳어졌다.

시골 영지의 남작인 록사나에게 그것을 파헤칠 만한 힘이나 권력이 아직은 약했다.

현재로서는 겨우 자신의 영지를 단속할 수 있을 뿐이었다.

만약 그 숨은 세력이 캠든 영지와 록사나를 공격해 온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손 놓고 당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권력이 없으면 빌려 오면 되는 일이다.

록사나는 전 남편 아스테리온 카일라니 공작에게 인편으로 서신 하나를 보냈다.

사건을 처리하며 한 번이라도 파파베르를 사용한 이들은 모두 조사를 받았다.

과실과 죄의 유무를 가려내어 그에 따라 처벌을 내렸다.

무지에 의해 사용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들은 가벼운 노동형에 처해졌다. 일종의 사회 봉사 활동과 같은 처벌이었다.

파파베르에 대한 진실과 사건은 캠든 영지의 다른 치안대와 영지민들에게도 속속들이 알려졌다.

록사나는 진실을 숨기기보다는 공개하기를 택했다.

무분별한 수용을 경계하고, 영지의 법을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앞으로 언제 어떻게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영지민들이 알고 있어야 그들 스스로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추후에 비슷한 사건이 생겼을 때 적절한 대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 * *

파파베르 사건을 마무리한 록사나 일행이 나디아의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다.

3일만 머무르기로 했던 기간은 일주일 가까이 되었다.

“이거 받아요, 나디아.”

록사나가 손바닥 반만 한 천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영주님, 괜찮습니다. 추가 숙박비로 많은 금액을 주셨잖아요.”

송구해진 나디아가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래도 받아요. 영지 시찰만 아니면 같이 성으로 돌아가면 좋을 텐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돈 아낀다고 걸어갈 생각 말고 꼭 마차를 대여해서 타고 가요. 이건 명령이에요.”

록사나 일행은 웨스트로 넘어가야 했기에 나디아 모녀와 동행할 수가 없었다.

록사나는 기어코 별도로 준비한 여비 주머니를 나디아의 손에 쥐여 주었다.

“영주님… 감사합니다.”

“내가 필요해서 나디아를 채용했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나디아가 받아도 되는 돈이에요. 성에 돌아가면 많이 부려 먹을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네, 영주님. 많이 부려 주세요.”

나디아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일주일 동안 노스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록사나의 능숙한 일 처리 능력을 볼 수 있었다. 영주님은 대단하고 멋있는 분이었다.

만약 자신이 영주였다고 해도 절대 엄두를 내지도 못할 일들을 록사나는 척척 해결해 냈다.

그러면서도 영지민들에게 그녀가 영주라는 사실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노스의 사람들은 그녀를 영주의 보좌관 또는 대리인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나디아는 여자도 저렇게 능력을 발휘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다 한편으론 귀족가에서 나고 자라 충분한 교육을 받았을 테니 당연한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 * *

차츰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나디아는 모든 귀족가의 여자들이 록사나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록사나가 할 말이 있으면 해도 좋다는 듯 그녀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나디아의 망설임의 벽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어째서 영주님이신 걸 드러내지 않으시고 다니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내 눈으로 편견 없이 영지의 상황을 알고 싶어서요. 만약 내가 영주라는 걸 밝히고 시찰을 한다면 어떨지 생각해 봐요.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여 주고 싶은 모습들만 선택적으로 보여 줄 거예요. 영주가 봐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감추려고 하겠지요. 난 내가 다스리는 영지의 상황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어요. 그래야 잘못된 점들을 고치고, 부족한 점들을 개선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충분한 대답이 되었나요?”

“네, 영주님. 어리석은 질문에 대답해 주셔서 감사해요.”

록사나가 엄한 표정을 지었다.

“나디아, 자신을 비하하거나 스스로를 낮추지 말아요. 물론 때로는 상황에 따라 자신을 낮춰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는 나디아가 당당하게 행동하기를 바라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요, 영주님. 영주님처럼 언젠가 저나 제 딸이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나디아는 왠지 확답이 듣고 싶었다.

록사나가 그렇다고 하면 언젠가는 꼭 그렇게 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이에요.”

록사나가 활짝 웃었다.

나디아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듯이, 록사나는 부유하고,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는 영지를 꿈꾸고 있었다.

한참 동안 두 사람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내용은 주로 서로가 잘 알지 못하는 각자의 삶에 관한 것이었다.

록사나의 일행들도 간간이 그들의 대화에 참여했다.

밤이 점점 깊어졌다.

리나와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잠에 빠져들었다. 곧 나디아와 아이린도 잠자리에 몸을 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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