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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28)화 (28/214)

28화 

순간 록사나의 코끝이 찡해졌다.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으레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자신만 먹기에는 아쉬운 마음과 맛있는 음식을 맛보여 주고 싶은 마음. 록사나의 부모님도 늘 그러셨다.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는 기드온 경의 마음이 가슴에 더욱 와닿았다.

“니아, 남은 전이 하나도 없나요?”

“있습니다. 만들어 놓은 것 중 영주님께서 드실 것을 주방에 조금 남겨 놓았어요.”

“그걸 기드온 경께 다 싸 드리세요.”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서 기드온 경의 입이 찢어졌다.

“영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복받으실 겁니다.”

그 모습을 본 기사단원들이 심하게 그를 부러워했다.

“여러분, 서운해하지 마세요. 다음에 다른 콩으로도 성공하면 다들 넉넉하게 싸 줄게요.”

혹여 분란이 일어날까 싶어 록사나가 얘기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영주님.”

“약속하신 겁니다.”

“야호, 다음에도 먹을 수 있다니 좋아요.”

“저도 주세요, 영주님.”

제프리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그래. 당연히 제프리도 챙겨 줘야지.”

“와하하하…….”

연회 홀 안에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번졌다.

다들 기드온 경을 부러워하면서도 더 이상 질투를 하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며칠간 영지 시찰을 떠나는 록사나를 프레드릭이 현관에서 배웅했다.

“조심히 잘 다녀오십시오, 영주님.”

“그럴게요. 다녀와서 봐요, 프레드릭.”

록사나가 몸을 돌리자, 그 뒤를 아이린이 따랐다.

준비된 마차는 가문의 문장이 없는 평범한 마차였다.

아직 가문의 마차를 준비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록사나는 신분을 숨기고 평범하게 영지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록사나와 아이린이 올라타자 마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위 인원은 기드온 경과 병사 두 명이 전부였다.

그중 한 명인 마르셀이 마부 역할을 하며, 마차를 몰았다.

마차가 성문을 통과하여 캠든 성을 떠나갔다.

네 개의 큰 마을들을 중심으로 중소 규모의 마을들이 속해 있었다. 첫 번째로 방문할 곳은 서던에서 가까운 이스트였다.

이스트로 가는 길은 잘 나 있었지만, 흙을 다져 만들어서 그런지 중간중간 돌부리에 걸려 마차가 들썩거렸다.

“앗!”

아이린이 신음했다. 마차가 튀어 오르면서 맞은편에 앉은 아이린의 몸이 좌석에서 들렸다. 록사나도 마찬가지였다.

“안심할 만하면 꼭 방심하게 만들어요.”

“후후후.”

아이린의 귀여운 투덜거림에 록사나가 웃었다.

“작은 영지인 데다 부유한 곳도 아니니 길을 제대로 포장할 여유가 없었겠지.”

“그러게요. 앞으로 돈 많이 버셔야겠어요.”

“그럴 생각이야. 서든에서 가까운 이스트가 이 정도면 노던과 웨스트도 다르지 않겠지.”

“그런데 캠든에는 돈이 될 만한 게 없는 거 같아요.”

“이제부터 하나씩 찾아보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렴. 그리고 이미 하나 계획하고 있는 것도 있고.”

작게 한숨을 내쉬던 아이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록사나를 쳐다보았다.

“뭔데요?”

“콩을 작물로 키워서 캠든 특산품으로 만드는 거지.”

“그렇게 되려면 적어도 2, 3년은 걸리지 않을까요?”

“맞아, 최소 그 정도는 걸리겠지. 당장 수익이 되는 건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쁘지 않아.”

아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니?”

‘영지 내에 콩이 널리 퍼지면 좋은 점이 뭘까?’

【 내가 사는 동안 그렇게 되는 건 바라지 않소 】

록사나의 물음을 떠올리며 아이린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우선 콩은 영지민들에게 좋은 식량이 되어 줄 거예요. 장기 보관이 가능하고, 부족한 식량을 보충해 주겠죠. 문제는 사람들이 다양한 콩 요리법을 알아야 식량으로 자주 사용하지 않을까요?”

“잘 알고 있구나.”

아이린은 록사나와 같이 업무를 보기 시작하며, 영지 사정을 잘 파악하게 되었다.

“록시 님은 콩 요리법을 보급할 생각이신 거군요.”

“응. 이번에 영지 시찰이 끝나면 다른 콩 요리들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생각이야. 마법의 콩은 내년이나 되어야 수확이 가능할 테니까.”

“저도 열심히 도울게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아이린이 자신의 각오를 내보였다.

“기대할게.”

현재 캠든 영지는 작물 수확량이 낮았고, 특산품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거둬들이는 세수도 적었다.

영지민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늘어야 세금도 늘 수 있는데, 아직까지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 콩 요리가 영지 전체에 널리 퍼지면, 콩 요리 자체가 캠든의 특산품이 될 수도 있겠어요.”

“역시 우리 아이린은 똑똑해.”

“헤헤헤.”

록사나의 칭찬에 아이린이 좋아했다.

“네 말처럼 몇 년만 지나면 콩 요리가 특산품이 되고, 요리법이 더 멀리 퍼져 나가게 되면 콩 자체가 특산품이 될 수 있을 거야.”

“역시 록시 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어요.”

아이린의 말처럼 록사나는 그 외에도 콩으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판매할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가을까지 농사를 지은 영지민들에게 겨울에도 정기적인 일거리가 생긴다면 그들의 수입도 늘 거고, 생활 자제가 안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주로 겨울을 이용해 콩 가공식품들을 만든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콩과 관련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록사나의 머릿속에 가득 들어 있었다.

록사나는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앞으로 차근차근 하나씩 실행에 옮길 계획이었다.

마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렸을 때였다.

기드온 경이 자신의 산 같은 체격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거대한 갈색 말을 탄 채 마차 옆으로 다가왔다.

록사나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영주님, 저 나무만 지나면 이스트로 들어섭니다.”

기드온 경이 한 손가락으로 마차가 가는 방향의 앞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서던과 이스트의 경계를 구분 짓는 표식이자, 수호목 같았다.

“알려 줘서 고마워요. 마을에 들어서면, 여관에 먼저 들러 짐을 풀고 움직일 거예요.”

“네, 영주님.”

기드온 경이 창문에서 물러났다.

그는 마부석 쪽으로 말을 몰아갔다.

마르셀에게 여관으로 먼저 가야 한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이리라.

“와, 나무가 엄청 크네요!”

마차가 아름드리나무를 지나쳐 가자, 아이린이 감탄을 내뱉었다.

멀리서도 커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더 거대했다.

“꽤 오래된 나무 같아.”

“네. 지금은 잎이 져서 앙상하지만, 봄이 되면 정말 장관이겠어요.”

록사나는 봄이 되어 보게 될 녹음 가득한 아름드리나무를 잠시 상상했다.

아름드리나무를 뒤로하고, 마차가 이스트 마을로 들어섰다.

화려하거나 4층 이상의 높은 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건물이 1, 2층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 거리는 제법 깨끗했다. 초겨울의 추운 날씨에 두툼하게 옷을 껴입은 사람들이 이스트 마을 거리를 오고 갔다.

마차가 3층으로 이루어진 여관 앞에 멈추었다.

기드온 경이 마차 문을 열어 주었다. 그의 손을 잡고 록사나와 아이린이 땅에 내려섰다.

여관에 들어선 록사나 일행은 3층에 짐을 풀었다. 록사나와 아이린이 한 방을 사용하고, 양옆 방에는 마르셀과 헨리, 기드온 경이 짐을 풀었다.

캠든 성에서 한 시간 거리라 이스트를 둘러본 후 성으로 복귀해도 됐지만, 왔다 갔다 하는 시간들이 록사나는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영지 시찰 중에는 여관을 이용하기로 했다.

시찰 기간은 이동 시간을 포함해 한 지역당 이틀 정도의 일정으로 잡았다.

세 지역을 다 돌고 나면 마지막으로 영주 성의 관할 지역인 서던으로 올라온다.

영주 성으로의 복귀까지는 일주일 정도가 걸릴 예정이었다.

록사나 일행은 잠시간 각자의 방에서 휴식을 취한 후, 여관에 딸린 식당에서 점심을 들었다.

그 후 마르셀만 여관에 남기고, 록사나, 아이린, 기드온 경, 헨리가 여관 밖으로 나섰다.

“우선 사람이 많은 시장부터 가 보는 게 좋겠죠?”

“네, 록시 님. 시장을 다 둘러보시면 이스트 시가지를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기드온 경이 대답했다.

신분을 숨기기 위해 록사나는 영지 시찰 기간 동안 자신을 록사나 또는 록시라고 부르라고 일행들에게 당부해 놓았었다.

“기드온, 미안한데요. 우리랑 일행이 아닌 척 좀 떨어져서 오세요.”

“네?”

“우리 셋은 눈에 덜 띄는 편인데, 기드온은 워낙 덩치, 아니, 키가 크다 보니 너무 눈에 띄어요. 덩달아 우리까지 주목받겠어요.”

록사나의 지적에 기드온 경이 난감한 듯 옆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록사나 일행을 흘끔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지역이 아니라서 경계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의 체격 자체가 주변에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물론 기드온 경은 이런 경험을 자주 했었다.

“그럼 저는 좀 떨어져서 뒤따라가겠습니다.”

“좋아요. 우리 먼저 출발할게요.”

기드온 경만 남겨 놓고, 세 사람이 발걸음을 옮겼다.

헨리가 록사나를 중앙 시장 쪽으로 안내했다.

이십 대 초반인 헨리는 웨스트 출신이었지만 그의 어머니가 이곳 마을 출신이어서 이스트에 있는 외가를 자주 방문했었다고 한다.

또한 헨리의 아내는 노스 출신이었다.

그러다 보니 헨리는 이스트, 웨스트, 노스 지역에 대한 지리와 정보에 대해 밝았다.

이만하면 캠든 영지를 거의 다 안다고 해도 무방했다. 기드온 경이 헨리를 영지 시찰 일행으로 적극 추천한 이유였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장을 보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 짐을 나르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등 각자 자신의 목적에 맞게 움직였다.

“시장이 꽤 크네요.”

“서던까지 한 시간 거리지만 평민들은 대부분 이스트 시장에서 장을 봅니다. 이동 수단이 없으면 서던까지 왔다 갔다 하기가 무척 번거롭거든요.”

록사나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 이스트 시장은 서던하고 가까워서 서던만큼이나 품목들이 다양하고요. 굳이 서던까지 발걸음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헨리의 설명을 들으며 록사나는 식자재를 파는 곳으로 발길을 움직였다.

시장은 사람을 활기차게 만든다. 덕분에 그녀의 발걸음도 절로 들뜬 기색을 띠었다.

식자재 가게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는 어느 시장에서나 파는 곡물과 채소, 과일, 허브와 향신료 등이 가게 안과 앞 가판대에 늘어서 있었다.

특별한 것들이 있나 눈여겨봤지만, 아직까지 별달리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이스트에서는 주로 어떤 작물들을 키워요?”

“감자, 옥수수, 밀, 야채 종류를 키웁니다. 다들 자급자족하는 방식이라 남는 농산물이 거의 없습니다. 어쩌다 남으면 시장에 내다 팔기는 하는데 소량이에요. 여기 있는 것들은 대부분 외부에서 사 온 품목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가축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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