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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7)화 (7/214)

7화 

“앞으로 이름으로 불러 주면 좋겠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연애결혼한 부부처럼 보이고 싶으니까.”

그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족 하나를 덧붙였다.

아까부터 뭔가 못마땅해 보이는 것 같다 했더니 그녀가 칭하는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나 보다.

“아. 그럴게요.”

록사나가 쉽게 수긍했다. 낯설어 아직은 바로 이름으로 부를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내가 보기에 그대도 좋아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면 바로 기억나게 해 줄 수…….”

록사나가 냅다 탁자 위로 몸을 날려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행동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상시의 아스테리온이 록사나에게 보이는 무심한 표정들을 생각하면 드물게 솔직한 감정 표현이었다.

사람을 홀릴 만큼 잘생긴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지어도 잘생겼다.

가까이에서 그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 록사나의 두 볼이 살짝 달아올랐다.

손바닥을 통해 말캉한 그의 입술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록사나가 슬며시 손을 떼며 제자리에 앉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민망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아스테리온이 너무도 얄미웠다.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제가 경험은 공작님밖에 없어서 잘 모르지만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아요.”

“난 지극히 정상인데.”

그가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과하다고요!”

록사나가 소리치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스테리온도 사실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도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애로 사항이 있었다.

몰랐으면 모를까, 이미 경험해 본 몸은 시도 때도 없이 달아올랐다. 이건 그에게 일종의 지독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록사나가 그를 거부해 열흘이 넘게 이를 해소할 수 없다 보니 애가 더 타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밀린 업무를 처리하며 그 시간을 버텼지만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스테리온은 ‘베갯머리송사’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군.”

록사나가 원하던 말이 나왔다.

“그래요. 합의해서 추가 계약서를 작성해요.”

“당신이 원하는 조건은?”

“일주일에 두 번이요.”

“나보고 지금 말라 죽으라는 건가? 난 한창 혈기 왕성한 시기라고.”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공작님하고 밤을 보내면 저는 최소 이틀을 내리 누워서 지내야 해요.”

“그건!”

아스테리온이 항의하려다 멈췄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치료 목적과 욕망 사이에서 주객이 전도되어 그 둘을 구분 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전략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입이 바짝 마른 아스테리온이 자신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축였다.

“내 뜻대로 해 주면 그대가 원하는 것을 주지.”

“어떤 거요? 실권이요?”

“그건 빼고. 보석이나 돈 같은 거.”

만약 록사나가 공작 부인으로서의 실권을 갖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위험에 처할 수 있었기에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됐어요.”

금전적인 걸 잠자리의 조건으로 받는다고 생각하니 록사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그녀 앞으로 주어지는 예산도 많았고, 굳이 더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럼…….”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는지 그가 말끝을 흐렸다.

“계약으로 맺어지긴 했어도 진짜 부부가 되었으니까, 대가 같은 건 필요 없어요. 그냥 횟수만 조정해요.”

아스테리온이 의외라는 눈빛을 띠었다.

“좋아. 그렇게 해. 참고로 나는 매일 원해.”

록사나가 뜨악했다.

“설마, 원점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죠?”

“그건 아니야. 당신도 생각해야 하니까. 매일 하되, 내가 조금 절제하도록 하지.”

“전혀 신뢰가 안 가네요. 일주일에 세 번이요. 더 이상 양보 못 해요!”

록사나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럼 당신이 더 힘들 거야. 이틀에 한 번 꼴로 하다 보면 그 전날 몫까지 하느라 자제가 안 될걸.”

“콜록!”

사레가 들린 록사나가 차를 뿜었다.

아스테리온이 곧장 손수건을 주머니에서 꺼내 건네자 받아서 입가에 묻어난 물기를 닦아 냈다.

그의 말은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는 무시무시한 예언과도 같았다. 실제로 해 보지 않아도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이전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록사나는 잠자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이 상황이 참으로 민망했다. 하지만 그녀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대로 선을 정해야 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고생하는 것보다 매일 적당히 하는 게 당신 몸도 적응하기 수월할 거야.”

“매일 동침하는 대신 횟수는 한 번으로 해요.”

“그건 안 돼! 일주일에 세 번보다 못하잖아.”

아스테리온이 반박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한 번이라고 말한 거다. 안 그랬다면 그와의 협상은 점점 더 불리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록사나는 그의 지치지 않는 체력이 원망스러웠다.

“두 번이에요. 더는 양보 못 해요.”

“다섯 번은 해 줄 줄 알았는데.”

“미쳤어요? 난 살고 싶어요! 전 복상사당하고 싶지 않다고요.”

그의 부인은 순진하게 생겨서는 하는 말에 거침이 없다. 언제 저런 말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하녀들 사이에서 지낸 과거의 영향인가 싶다.

그래도 답답하게 아무 말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아스테리온은 생각했다.

“세 번으로 하지. 나도 더는 양보 못 해.”

“너무 많아요. 두 번으로 해요. 한 번 추가하는 건 그날 상황이나 컨디션에 따라 합의하는 걸로 하고요.”

록사나가 마지못해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러지.”

아스테리온이 드디어 수긍했다.

그는 매일 추가될 한 번에 대해 그녀를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순진한 그녀는 꿈에도 모르겠지만.

【 짐승같이 보이겠군 】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도 다 한때라고.’

록사나는 생각했다.

“달거리 기간에 따라 발생하는 공백은 어쩔 수 없는 거니 연장이나 추가 같은 건 절대 없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당신 사정상 못 하는 날도 포함해서요.”

아스테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둘은 ‘매일 두 번, 합의에 의한 추가 한 번’으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방을 나서려던 아스테리온이 몸을 살짝 돌렸다.

“시간 될 때 집무실에 잠시 들르도록 해.”

“왜요?”

의아한 표정으로 록사나가 되물었다.

아스테리온은 당연히 록사나가 어련히 알아서 먼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해서 그동안 말하지 않았었다.

“실권은 못 주지만 그대에게도 남는 게 있어야지.”

“아!”

청혼할 때 그녀에게 이 결혼이 이득이 될 거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너무 늦게 챙기는 감이 있지만 굳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알겠어요.”

아스테리온이 방을 나가자, 록사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첫눈에 그에게 반한 건 아니었다. 전 공작 부인이 돌아가시고, 자신의 마음을 묶어 둘 곳이 필요했던 것도 같다.

어느 순간, 그가 마음에 들어와 있었고 결혼을 선택했다. 그에게 청혼받았을 때, 사랑이 없는 결혼을 견딜 수 없을 거 같아 거절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거절하면 다른 사람을 찾겠다는 말을 들으니 단번에 마음의 추가 기울었다.

‘어차피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는 거라면 내가 공작 부인이 되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의 곁에 다른 여자가 서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싫었기 때문이다.

아스테리온은 앞으로도 알 수 없겠지만, 록사나는 그의 아내가 되어서 기뻤다.

* * *

한편, 공작 부인의 방을 나온 아스테리온이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금발에 살짝 가려진 그의 귀 끝이 붉었다.

“하아.”

그녀와의 밤을 사수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남편이 아니라 짐승같이 보였겠군.’

록사나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씁쓸한 얼굴로 아스테리온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스테리온은 집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알렉을 호출했다. 얼마 안 있어 알렉이 그의 앞에 당도했다.

서둘러 달려온 알렉이 헐떡거리던 숨을 재빨리 가다듬고는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가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아스테리온이 결혼 전에도 확인했던 내용을 재차 물었다.

“자네 처방대로만 계속하면 되는 거지?”

“물론입니다, 공작님. 마님과 밤을 자주 보내시되 피임을 잘하신다면 별 탈이 없을 것입니다.”

알렉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에 아스테리온이 다소 안심한 기색을 띠었다.

그만 나가 보라는 듯 손짓을 하자, 알렉이 인사를 하고는 재빨리 집무실을 나섰다.

‘최소 3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때까지는 그녀를 내 옆에 단단히 묶어 놔야겠군.’

아스테리온이 등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신록이 깃든 나무들을 바라보는 그의 새파란 두 눈에는 진득한 집념이 가득했다.

록사나에게 청혼했을 때는 잠자리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그저 그녀를 제 옆에 가까이 두고 그 나름의 방식대로 지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엘프 절맥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후, 그의 다짐은 당연한 수순처럼 대폭 수정되었다.

아스테리온이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가가고 싶었는데.’

록사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지만, 파렴치한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가 록사나와의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 역시 세간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처럼 신황태자파의 압박 때문은 아니었다.

아스테리온의 머릿속에 청혼 전 있었던 기분 더러운 일 하나가 떠올랐다.

* * *

그날, 아스테리온은 신분을 감추고 수도 번화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야, 저 여자애 끌고 와!”

“하, 하지만 자작님. 저 앤 카일라니 공작가 소속입니다.”

우뚝.

아스테리온의 발걸음이 멈췄다. 남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향해 그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한 가게 앞에서 과일을 살피고 있는 검은 머리의 여자가 보였다. 그가 잘 아는 이였다.

‘록사나 아벨리오.’

가녀린 몸과 채 젖살이 빠지지 않은 외모는 묘하게 시선을 끌었고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열여덟을 지나 스무 살이 되었지만 작은 체구와 앳된 얼굴 때문에 록사나는 원래 나이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잔말 말고 당장 끌고 와.”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스테리온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스테리온이 뚱뚱한 남자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온갖 더러운 소문이 도는 니코 자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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