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어느새, 그의 손길에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얇은 슈미즈가 완전히 사라졌다. 아스테리온이 몸에 걸친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험이 없는 그녀는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듯 휩쓸려 가고 있었다.
짙은 키스를 퍼부으며, 그녀의 몸을 쓸어내리는 아스테리온의 손길에 열기가 피어올랐다.
록사나는 마주 안고 자신의 도드라진 날개 뼈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에서 검을 쥐느라 딱딱하게 자리 잡은 굳은살을 느꼈다.
보드라운 그녀의 피부 위에서 아스테리온의 손이 계속해서 춤을 추었다.
아스테리온의 행동에 록사나가 흘린 신음이 이내 맞닿은 그의 입술 안으로 삼켜졌다.
뜨거운 그의 입술이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을 벗어나 목을 탐하며 점점 아래를 향해 나아갔다. 아스테리온의 금빛 머리칼이 그녀의 가슴 위에서 흔들렸다.
록사나가 아스테리온의 몸을 끌어안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칼을 헤집었다.
“하아.”
그녀의 신음 소리에 그의 움직임이 더 격해졌다. 그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그녀가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아스테리온이 불러일으키는 욕망이 록사나를 잠식해 갔다.
록사나는 왠지 모르게 아스테리온의 파란 눈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고개는 한동안 들릴 줄을 몰랐다.
온몸에 새겨지는 열기는 낯선 흥분을 계속해서 불러일으켰다. 점점 아찔해져 갔다.
아스테리온이 한 손으로 그녀의 가는 허벅지를 쓸어내렸다. 그는 그녀의 작은 몸이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득하게 이끌었다.
침실 안의 공기가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며 두 사람의 숨결도 거칠어져 갔다.
* * *
록사나가 스르르 눈을 떴다.
그녀는 정신이 멍했다. 몸 역시 나른했다. 누워 있는 상태 그대로 어둠으로 물들어 있는 맞은편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눈을 뜨는군.”
그녀의 뒤에서 아스테리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록사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가 허리를 강타하는 근육통에 몸을 웅크렸다.
“윽.”
“진통제를 먹였는데도 근육통은 어쩔 수 없나 봐.”
아스테리온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얇은 천을 사이에 두고 와 닿는 그의 손길에 그녀가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물렸다.
‘세상에!’
여름 이불을 덮고 있었지만 자신은 알몸이었다.
록사나가 후다닥 천을 그러쥐고 턱 밑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 온몸을 가리려고 애썼다.
그 짧은 순간에 그녀는 자신의 몸 곳곳에 장식처럼 존재하는 울긋불긋한 멍울들을 발견했다. 순식간에 얼굴로 열이 확 몰렸다.
록사나의 행동에 아스테리온이 손을 거두며 말했다.
“근육통을 풀어 주려 한 건데 너무하는군.”
“괘, 괜찮아요.”
“그렇다면 뭐. 다른 아픈 곳은 없고?”
‘다른 아픈 곳?’
그의 시선이 그녀의 하체로 향했다.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록사나의 얼굴이 한층 더 빨갛게 물들었다.
“말을 안 하니까 모르겠군. 확인해 봐야겠어.”
“안 아파요!”
록사나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아무리 밤을 함께 보냈다지만 너무 부끄러웠다. 더군다나 자신은 시트 하나로 몸을 겨우 가리고 있는데 그는 깔끔한 모습으로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어젯밤보다 그의 얼굴은 더 빛이 났다.
그나저나 신기하다. 너무나도 과하고 격렬한 밤을 보냈는데 몸이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허리에서 느껴지는 근육통은 어쩔 수 없지만.
그녀의 의문을 알고 있다는 듯 아스테리온이 말했다.
“진통제를 처방받아 먹이고 발랐어.”
테이블에 준비해 두었던 연노랑빛 액체를 그녀가 완전히 잠들기 전에 먹였었다.
혹사당한 후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잠에 들었던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귀족가에서 으레 그렇듯, 그 약은 첫날밤을 보낸 새 신부를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거기에 그녀만 모르는 다른 한 가지가 더 있었지만 아스테리온은 그 사실을 알릴 마음이 전혀 없었다.
* * *
록사나는 약을 처방받았다는 아스테리온의 말을 이해했다. 그런데 먹이고 발랐다는 부분에서 귓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에게 약을 먹이고 발라 줬을 사람은 분명 그였을 것이다. 물론 하녀들이 해 줬을 수도 있지만…….
혹시나 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누가요?”
“신혼 첫날밤을 보냈다고 해도 부인이 하녀에게 몸을 맡길 정도로 부끄러움이 없는 줄은 몰랐어. 다음부터는 하녀에게 맡기도록 하지.”
“아, 아니에요!”
말해 놓고 보니 뉘앙스가 이상하다. 다음에도 그가 해 달라는 대답 같았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은 왜 그녀만의 몫인가.
의외라는 듯 그가 록사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원인 제공자가 나니 다음에도 내가 해 줄 테니까 염려 마.”
으악! 이게 아닌데.
아니라고 말하자니 더 민망했다.
다행히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근육통 때문에 약을 과하게 쓰면 몸에 더 무리가 갈 수 있다고 하더군. 그래서 적정량만 처방해서 허리가 좀 아플 거야. 근육통은 마사지로 풀어야 덜 아파.”
물약 외에도 그는 의사가 처방한 근육통 약을 집사를 통해 건네받아 록사나에게 추가로 먹였었다.
그가 그녀에게 손을 다시 뻗었다.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시트를 꼭 붙잡고 있는 록사나가 고개를 격렬하게 가로저었다. 나름대로 애절한 저항이었다.
“안 풀면 근육이 더 뭉쳐서 고생할 거야.”
“알았어요. 제가, 제가 풀게요.”
“혼자서 어떻게 잘 풀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아스테리온이 한 말의 뉘앙스가 이상했지만, 록사나는 미처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스테리온의 눈이 잠시간 반짝거렸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좀 나을 거예요.”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미 한 번 했으니까 지금은 식사 먼저 하고 좀 쉬는 게 좋을걸.”
그러고 보니 몸에서 땀 냄새와 찝찝함 기분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목욕을 한 것처럼 상쾌하고 깨끗했다.
믿을 수 없게도 얼음같이 차가운 저 남자가 직접 그녀를 씻겨 줬다니. 물론 침대에서는 완전 불이었지만.
침대 시트도 새로 갈았는지 보송보송해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록사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침대 옆 탁자 위에 그녀를 위한 옷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녀의 의도를 알아챈 아스테리온이 무심하게 말했다.
“곧 있으면 어차피 다시 벗을 건데 뭐 하러 다 갖춰 입어. 벗기기 번거롭게. 그냥 가운만 걸쳐.”
그 말에 록사나가 입을 뻐끔거렸다. 너무 어이없는 말에 뭐라 대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어두운 창 쪽을 가리켰다. 지금은 새벽이 아니라 해가 진 저녁이었다.
늦은 아침에 겨우 잠들었기에 이 시간에 일어나게 된 건 당연했다. 그래도 억울하다.
‘눈 뜨고 일어났더니 저녁이라니. 설마 오늘 밤은 내버려 두겠지, 양심 있는 인간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공작 부인의 방으로 건너가야겠다고 록사나는 생각했다.
“식사가 준비될 테니 응접실로 나가지.”
아스테리온이 몸을 일으켰다.
응접실과 연결된 침실 문 앞까지 다가갔던 그가 뒤따라오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그녀를 돌아봤다.
“배가 안 고프다면 나야 좋지.”
그가 자신의 가운을 여민 끈을 풀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록사나가 시트를 붙잡고, 허둥지둥 몸을 일으켰다.
“밥 먹을 거예요!”
그녀의 강한 의지에 아스테리온이 가운을 다시 여몄다.
밥만 먹고 후딱 가자.
그가 침실 문을 완전히 나서자, 록사나가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그의 말처럼 절대 가운만 걸치지는 않았다. 속옷과 실내용의 얇은 드레스를 챙겨 입고, 가운까지 걸쳤다.
두 사람은 저녁을 같이 들었다.
오늘 첫 끼인 록사나는 접시를 하나하나 비워 내기 시작했다.
먼저 저녁 식사를 마친 아스테리온은 그녀가 다 먹을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 주었다.
식사를 다 마친 록사나가 공작 부인의 방으로 건너가려 하자, 아스테리온이 바로 그녀를 안아 들고는 그들의 공용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록사나는 그를 밀어내며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인 아스테리온 앞에서는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스테리온은 선물 포장지를 벗기듯 그녀의 옷을 벗겨 냈다. 근육통을 풀어 줘야 한다며.
이날 이후, 록사나는 며칠 동안 침실 밖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교묘히 그녀를 통제하는 아스테리온 때문에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응접실도 마음껏 드나들지 못했다.
매일 밤 괴물 같은 체력을 가진 그에게 시달리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스테리온은 본격적으로 작정이라도 한 듯, 웬만해서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심지어 목욕을 시켜주는 와중에도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녀 혼자 목욕을 하겠다고 그를 어렵사리 떼어 냈었다.
그런데 하필 그의 손을 놓자마자, 다리에 힘이 빠져 욕실에서 넘어질 뻔했다.
“이런. 혼자 씻는 건 포기해.”
“…….”
그녀가 다치면 아무래도 난감할 수밖에 없어서 아스테리온은 혼자 목욕하는 것도 잘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거의 모든 일이 그의 손을 거쳐 이루어졌다. 아스테리온은 그녀가 아프지 않게 약을 먹이고, 연고도 빼먹지 않고 정성스럽게 발라 주었다.
맨정신으로는 견디기 힘든 그 과정은 그녀가 쓰러지듯 잠에 들면 이루어졌다.
잠결에 그의 손길을 느끼며, 그녀는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남들 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지다 못해 깨소금이 쏟아지는 신혼다운 일주일을 보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그를 볼 때면 이 남자가 자신의 몸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을 순진한 록사나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몸을 생각 이상으로 좋아할 뿐이었다.
밤을 함께 보낼 때 그의 눈에는 뜨거운 욕망이 넘쳐흘렀다. 매 순간 그녀를 원했고, 과도하게 충실했다.
열렬한 육체적 교감에 순진했던 록사나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갔다.
몸이 버텨 낼까 싶을 때쯤에, 아스테리온은 그녀의 상태를 귀신같이 알아챘다.
그 뒤로 그녀의 체력에 도움이 될 보양식 위주로 식단을 구성해 대령했다.
록사나는 간간이 자신이 사육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