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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대신 영주님이 되겠습니다 (4)화 (4/214)

4화 

오랜 가신이자 아스테리온의 최측근인 칼리드는 예비 공작 부인인 록사나의 상태에 대해서 전해 들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알렉이 꼭 끌어안고 있던 고서적을 조심스럽게 아스테리온 앞에 내려놓았다.

“여, 여기 보십시오.”

감격에 겨워 알렉의 목소리가 떨렸다.

알렉이 손가락으로 짚어 준 부분으로 아스테리온의 시선이 향했다.

정말 그 부분에 치료제 배합법과 복용 시 주의 사항 등이 고대어로 상세히 기재되어 있었다.

내용을 확인한 아스테리온의 금빛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두 손으로 책을 꽉 움켜잡았다.

[엘프 절맥증의 치료법]

치료제를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주기적으로 복용하며 곧바로 이성과의 육체적 교합을 통해 최소 한 시간 이상 체온을 높게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치료제가 효과를 발휘하며, 다른 방법으로 체온을 올리면 치료제 효과가 없다.

적어도 3년 이상 치료제 복용과 치료법을 병행해야만 완치가 가능하다.

치료제 재료와 배합 비율은 아래와 같다.

치료법을 발견했다는 기쁨에 세세한 내용까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알렉의 눈동자도 거센 파도를 만난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다가 이내 잔잔한 바다처럼 평온해졌다.

‘내 알 바 아니지. 공작님께서 알아서 잘하시겠지. 힘깨나 쓰셔야 하지만.’

‘소드 마스터이시니 걱정할 건 없군.’

순간 허공에서 알렉과 칼리드의 시선이 마주쳤다가 비꼈다.

“흠흠.”

두 사람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반면에 아스테리온 카일라니 공작의 귀 끝은 붉게 불타고 있었다.

* * *

제국력 895년 8월의 여름, 아스테리온 카일라니 공작이 결혼했다.

신부는 카일라니 공작가에서 하녀로 일하던 몰락 귀족 출신의 록사나 아벨리오였다.

하객으로 참석한 사람들은 카일라니 공작이 황태자와의 알력 싸움 끝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아무나 공작 부인으로 들인 거라고 수군거렸다.

신관의 주관하에 공작가 정원에서 열린 결혼식과 피로연이 끝나고,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신방에 서 마주했다.

두 사람의 앞에는 간단한 요깃거리와 붉은 와인이 준비되어 있었다.

가운을 느슨하게 걸친 아스테리온의 모습에 록사나는 아찔해졌다. 신혼 첫날밤이라는 사실보다 그의 고혹적인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아스테리온의 사파이어빛 두 눈이 록사나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록사나는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킬까 봐 조심스러웠다.

두 개의 유리잔에 와인을 따른 아스테리온이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록사나가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필연적으로 둘의 손끝이 잠시 스치었다.

태연해 보이는 그와 달리 긴장이 된 록사나는 잔을 왼쪽 손으로 받쳐 들었다.

아스테리온이 그녀 쪽으로 자신의 와인 잔을 내밀었다. 그를 따라 그녀가 와인 잔을 내밀자, 유리의 맑은 울림이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아스테리온이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다. 록사나도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와인의 풍부한 향과 달콤함이 혀끝에 닿았다가 이내 그녀의 목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갔다.

“당분간은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어.”

그 순간 아스테리온이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록사나가 화들짝 놀랐다. 만약 아직도 입에 와인을 머금고 있었다면 바로 뿜어냈을지 모른다.

“방금 뭐라고……?”

그녀의 놀라는 표정에 아스테리온이 물었다.

“난 당분간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는데. 설마 첫날밤을 거부할 건가?”

록사나의 눈이 다시 커졌다. 첫날밤을 치를 거라는 뉘앙스 가득한 그의 말을 그녀가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적어도 그가 오늘 밤엔 자신을 건드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당연히 형식적인 첫날밤이 될 거라고.

그런데 아이 이야기를 꺼내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이에 대해 한 번도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그저 조금 더 먼 훗날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

아스테리온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록사나는 목욕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둘의 모습이 자꾸만 의식되었다. 그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대기 시작했다.

자신과의 동침을 거부할 리 없다는 오만한 자신감이 아스테리온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록사나는 목이 타 와인을 들이켰다.

그를 거부할 수 있을까?

아스테리온의 강렬한 눈빛이 그녀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그… 그게…….”

록사나가 말을 더듬었다.

그녀는 부부 생활에 대해 무지하지 않았다. 전 공작 부인이 살아 있을 때, 잠시나마 교육을 받았었으니까.

차가운 얼굴로 아스테리온이 한쪽 눈썹을 까닥였다.

“밤을 함께 보내면 아이가 생길 수밖에 없을 거예요. 물론 피임약을 주기적으로 복용하면 되지만, 부작용이 심하다고 들었어요.”

주기적으로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인들은 두통과 메스꺼움에 많이 시달린다고 들었다.

다른 하녀들과 친하지는 않았지만 의도치 않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싸구려 피임약은 그렇다고 하더군.”

아스테리온도 기사단의 기사 하나가 자신의 연인이 피임약 부작용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부작용이 없는 피임약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스테리온이 눈짓으로 탁자 한쪽을 가리켰다.

그의 눈길을 따라가자, 테이블 위 쟁반에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작은 유리병 두 개가 고이 놓여 있었다.

통증 완화에 좋다는 연노랑빛의 액체가 담겨 있는 것이 하나.

그리고 나머지 유리병 안에는 아쿠아 빛깔이 도는 액체가 3분의 2 정도 담겨 있었다.

록사나는 그것이 최고급 피임약임을 직감했다.

정확한 가격을 알지 못했지만, 아쿠아 빛깔의 액체가 든 것은 한 병에 최소 5골드였다.

비싼 만큼 효과가 확실하고 부작용 또한 없다고 들었다. 한 달에 한 병만 복용하면 되었기에 번거로움도 덜하다고 했다.

록사나가 고민을 하자, 아스테리온의 푸른 두 눈에 잔뜩 긴장이 서렸다.

저 아쿠아빛 약은 색만 거의 비슷할 뿐, 사실은 피임약 따위가 아니었다.

아스테리온 본인이 이미 남성용 피임약을 복용한 상태였기에 피임은 전혀 걱정할 게 없었다.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록사나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아스테리온은 속이 탔다. 검은 속눈썹에 살짝 가려진 페리도트빛 눈동자가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미처 보지 못했는데 언제 준비된 것일까?’

록사나는 아스테리온의 명에 의해 두 사람이 신방에 들기 전 집사나 하녀장이 가져다 두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신방은 공작과 공작 부인의 방 사이에 있었다. 록사나는 공작 부인의 방에서 준비를 마치고 신방으로 향했었다.

잠시 피임약을 바라보던 록사나의 시선이 아스테리온에게로 향했다.

이 이상 더 할 말이 있냐는 듯, 그가 록사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느낀 것이지만 그는 참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대의 대답은?”

아스테리온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입 안이 바짝 마르고 일 초가 몇 시간같이 느껴졌다.

록사나 역시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아스테리온의 이런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느새 두 볼이 붉게 물든 록사나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것을 신호로 아스테리온이 몸을 일으키며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그의 눈에는 록사나는 모르는 안도가 깃들어 있었다.

아스테리온이 그녀에게 자신의 왼손을 내밀었다.

록사나가 아스테리온의 손바닥 위에 손을 살그머니 올렸다. 이를 신호로 그가 그녀를 침대로 이끌었다.

결혼식을 치르며 록사나는 아스테리온의 손을 처음 잡아 봤었다.

‘그때는 서로 장갑을 끼고 있어서 지금처럼 맨살이 닿지는 않았었는데.’

평온해 보이는 아스테리온의 태도와 달리 록사나의 심장은 마구 떨려 왔다.

록사나가 조심스럽게 침대에 먼저 올라앉았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몸놀림이었다.

아스테리온이 몸에 걸쳤던 가운을 벗고 그녀를 뒤따랐다.

탄탄하게 굴곡진 아스테리온의 가슴 근육과 단단한 팔, 날렵한 허리선이 록사나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성인 남자의 벗은 몸을 처음 접한 록사나의 시선이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갈피를 잃고 흔들렸다.

아스테리온이 유리병의 뚜껑을 따 순식간에 액체를 자신의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점점 록사나에게 몸을 기울였다. 이어서 그의 손이 그녀의 턱과 고개를 잡았다.

살짝 벌어진 록사나의 붉은 입술을 아스테리온이 덮쳤다.

틈 없이 밀착해 그녀의 입술을 머금은 아스테리온이 입 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동그랗게 떠진 페리도트빛 두 눈이 록사나의 감정을 대변했다.

아스테리온이 머금고 있던 액체가 서서히 그녀의 입 안으로 넘어왔다.

꿀꺽.

록사나는 반사적으로 액체를 삼켰다.

피임약은 신기하게도 아무 맛도 안 나서 물을 마시는 것 같았다. 약간 청량한 느낌도 들었다.

그녀가 약을 다 넘기자, 아스테리온이 입술을 살짝 떼었다.

록사나의 붉고 반짝거리는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입술도 반들거렸다.

아스테리온이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쓸었다. 실크보다 더 부드러운 촉감이 손끝을 통해 전해져 왔다.

록사나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침대 시트를 꼭 움켜쥐고 있던 그녀의 손을 아스테리온이 풀어내고, 가운을 벗겼다.

얇고 부드러운 슈미즈 아래로 록사나의 몸 선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그의 시선이 몸을 천천히 훑어 내리자, 록사나는 자신의 온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칼이 하얀 피부와 대조를 이루며 여리면서도 청초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의 손바닥보다도 한참 작은 얼굴에 자리한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단아했다.

어디 얼굴뿐이랴. 그녀는 몸도 작았다. 190cm인 그보다 30cm 정도는 작았고, 워낙 가녀려서 더 차이가 나 보였다.

그녀는 마른 몸임에도 제법 봉긋한 가슴 선을 지니고 있었다.

록사나의 어깨에 닿은 그의 손이 슈미즈의 끈을 끌어 내렸다.

그녀가 몸을 살짝 움찔거렸다. 그러자 내심 서두르던 아스테리온의 손길이 잠시 멈추었다.

록사나가 긴장했음을 모르지 않았다.

아스테리온이 그녀를 끌어안으며 아랫입술을 머금었다.

그녀의 입술이 벌어지자, 그가 맹수처럼 입 안을 누비었다. 도망치는 그녀를 잡아채어 마구 빨아들였다.

갑자기 몰아치기 시작한 폭풍에 록사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결혼식에서 이루어진 맹세의 키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내려 감은 그녀의 검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록사나의 목과 허리를 커다란 손으로 감싸 안은 아스테리온이 그녀를 자신의 품 안에 완전히 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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